팔공산/박헬레나 그대, 10월의 끝자락 쯤 팔공산에 가십시오. 세월과 더불어 대구 분지를 보듬어 안고 겹겹이 드러누운 그 산자락이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4월의 꽃 잔치도 화려하고 5월의 신록도, 6월의 녹음도 좋지만 자신을 아낌없이 태우는 마지막 불꽃같이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습니까. 흔히들 일년 중 겨울을 계.. 필사 2008.10.17
열두살의 반딧불/반숙자 저녁바람이 좋아서 뜰에 나와 있다. 초승달이 별 하나 거느리고 하늘가로 온다. 탈탈거리던 경운기소리가 요란하다. 수런거리는 나뭇잎사이로 별이 동동뜬다. 반딧불이다. 농약으로 메뚜기를 볼 수 없는 농촌에서 반딧불을 보는 마음 반갑기 그지 없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개똥벌레라 부른다. 이쪽에.. 필사 2008.10.13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 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 필사 2008.10.06
벽擘/석민자 . 처저정! 소나무가 생으로 꺽여지며 내는 소리다. 사시장철 푸르자니 속까지 꽉꽉 채울 여력이 모자랐든가 살풋살풋 내려앉는 눈발에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양이 꼭 속이 빈 강정만 같고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가 꺾여져 내리다말고 엉거주춤하게 걸쳐진 모양세가 가관이다. 마른나무도.. 필사 2008.09.30
제 4악장 알레그로/반숙자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고 있으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속울림으로 들려온다. 내면의 깊은 골짜기에서 울려퍼지는 넷소리의 힘찬 두드림. 그가 청각장애자였다는 사실때문만은 아니다. 1808년의 10월 그는 단풍이 짙은 하이리겐스탓트에서 한 통의 유서를 썼지만 그는 드디어 검은 죽음에서 극복.. 필사 2008.09.29
고독한 날개짓/반숙자 삐르릉 삐르릉 새벽의 전령이다.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뒷산 숲에서 잠을 잔 맷새들이 무리지어 날아와 노래를 한다. 숨어서 몰래 바라보니 어쩌면 저리도 가벼운 몸짓인가. 조막막한 잿빛 새는 편편한 가지는 제쳐놓고 동곳한 가지 끝에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앉아서 꽁지를 까불어 대며 무언가 궁리.. 필사 2008.09.24
사랑할 수 없는 자/장영희 오늘 오후에 백화점에 들를 일이 있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누군가 무심히 내 목발을 건드려서 넘어지게 될까 봐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한 구석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딸인 듯 보이는 네다섯 살 난 어린아이를 달래고 있었 다. 아이는 무슨 일인지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서 울고 있었다. .. 필사 2008.09.19
빛깔연한 꽃이 향기가 짙다/곽흥렬 누군가로 부터 선물을 받는 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특히 그것이 난 종류일 때는 더욱 그렇다. 예로부터 고결함 혹은 지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초화가 바로 난이 아니던가. 이 난초처럼 올 곧게 살아가자며 암묵적인 동조를 구하는 , 보낸 이의 순정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까닭이다. 어저께는 내.. 필사 2008.09.17
몸이 하는 이야기/반숙자 모두가 곤하게 잠든 밤이면 애간장이 끊어지게 울었다. 금방 숨넘어갈듯, 가래 끓는 소리가 나고 한숨토하듯 쇳소리도 났다. 저것이 분명 낮에도 그랬을 터인데 사람들 소리에 묻혀 버렸던 모양이다. 잠결에 나와 어디가 그렇게 아프냐고 한 번 쓰다듬어 주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 필사 2008.09.16
P248~노자.. 죽음이 귀해 멀리 이사가지 않는다. 고향을 떠날 수는 없다. 몸은 떠나 있어도 마음은 항상 고향이 있는 법이다. 타향에서는 고향을 생각하고 외국에 나가면 고국을 생각한다. 왜 그렇게 고향을 버릴 수 없는 것인가. 고향은 태어난 곳인 까닭이다. 태어난 곳에 묻힌다는 것은 자연으로 되돌아감을 뜻.. 필사 2008.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