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고 있으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속울림으로 들려온다. 내면의 깊은 골짜기에서 울려퍼지는 넷소리의 힘찬 두드림.
그가 청각장애자였다는 사실때문만은 아니다. 1808년의 10월 그는 단풍이 짙은 하이리겐스탓트에서 한 통의 유서를 썼지만 그는 드디어 검은 죽음에서 극복하고 가혹한 운명에 용감히 도전했다는데서 나는 전율할 공감을 맛본다. 그 엄청난 고뇌를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환희 거기에 영적인 안식과 평화가 있는 것이다.
책상앞 벽에 달랑하니 한 장의 카렌다가 걸려있다.
임술년도 많은 흔적을 역사위에 남겨놓고 저물고 있다.
어떤 성급한 이는 6월쯤이 되면 벌써 한해가 다 갔다는 허망함에 가슴이 조여진다지만 나는 웬지 한 장 남아있는 카렌다에 위안을 받고 안도감을 얻는다.
한해를 보내고 맞는 감정이 20대, 30대의 생피를 끓이던 시절에 비해 한 결 무뎌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해를 매듭질 때마다 정수리부터 싸느랗게 식어 내리는 중년의 공허는 무서운 아픔이다.
어느것 한가지 성공한 것 없이 20여년을 허송해 온 사실을 잊지 못한다. 무엇인가 미미한 생명하나 하늘의 명이 있어 세상을 살아갔다는 흔적을 남기고자 무수히 고뇌해 온 시간의 편린들, 그 족각들이 모여 이제 철늦게 싹을 틔우는 내가 있는 것이다.
철지난 발아여서 성장은 더디지만 기필고 한 송이 들국화를 피우리라 다짐을 거듭한다. 지난 9월 어떤 월간지에 �은 글이 한 편 나갔다. 청탁에 의해 씌어진 자기 고백같은 글이었는데 웬일인가 전국각지, 나중에는 해외동포까지 보내오는 마음 조각들을 받으며 놀랍고 감사하고 감격에 떨었다. 나는 170여통이 넘는 독자들의 편지 속에서 세상의 색갈과 체취를 온 감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어떤이는 사랑을 나눠주고 어떤 이는 희망을 나눠주기도 한다. 그들이 내 이웃이고 어디에 있으나 한 핏줄이라는 사실 또한 감격스럽고 따뜻한 가슴이 있는 사회는 신뢰가 움트고 희망이 있다는 어떤 확신이 서는 것이다.
지난 가을을 감사의 기도로 보냈다. 그러면서 불혹의 나이에 설 때까지 못나디 못난 스스로에 편집되어 살아옴이 큰 오산임을 뼈아프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에 수원 새마을 지도자 연수원에서 일주일의 연수를 받으면서 나는 색맹의 질환을 앓고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거기서 나는 부끄럽지 않는 배달민족의 하나라는 긍지에 찬 국가관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사는 길이 가장 인간적인 삶인가를 생각하게 되엇따. 그곳은 새 인간을 만들어 내는 용광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낮추어 모든 물을 받아 안기 때문이라는 겸허의 극치를 터득한 것이다.
그곳을 수료한 스리랑카의 어느 수료생은 이 지구상에서 이러한 곳이 있다는 사실을 자국민에게 최선을 다해 알리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20대에 하바드 대학에 왔더라면 자기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 했지만 나는 내가 20년전에 그러한 곳이 있어 다녀왔다면 20년의 방황은 없었을 것이고 지금쯤 한 가지 일에 완성의 단계에 서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라도 내 운명의 제 4악장에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초조해지는 것은 어쩌랴.
어느날 갑자기 개안 開眼된 영혼에 비쳐오는 사물의 의미가 너무나 소중해지는 연고이다.
혈연의 인연이 그렇고 이웃의 눈길이 그렇고 하다못해 낯익은 고향산천 음성의 돌비석 하나에도 뜨거운 애정이 감기는 것은 어인일인가.
할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보고 싶은 책, 가보고 싶은 여행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점점 더 애틋해지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가슴속에 찰랑거리는 데 아뿔사 또 한 해는 저물고 있네.
10년 만 하강할 묘안이 있다면 나는 참답게 뜻있는 삶을 펼쳐갈텐데 안타깝다. 그래서 현자는 젊어서 뜻을 세워 면학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 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하루가 24시간이면 앞으로의 내 하루는 48시간으로 쪼개 살아야 허망하게 보낸 세월을 보상하게 되는 셈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공평한 재산이라고 했다. 그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써 나가느냐에 따라 성패는 판가름나는 것.
평생 소원이 책을 실컨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듯 살아온 시간들이어서 이제라도 보고 싶은 책들을 차근차근 읽으리라 마음하지만 허사다. 책을 들고 30분쯤 읽어가다 보면 눈이 침침해지고 글자가 부우옇게 흐려진다. 슬몃 돌아앉아 돋보기를 써본다. 알아챈 아이들이 멋있다고 손뼉을 치고 부추기나 이내 피곤해지는 안구, 그것도잠시 어려운 일, 책 갈피에도 게으른 자에게 보내는 질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제야 말로 미루지 말고 작은 일에도 봉사하며 살일이다. 봉사에는 재물과 시간과 몸을 바치는 세가지 형태가 있다고 강론하신 신부님이 계신다.
첫째는 창조주께 공짜로 받은 재물을 가난하고 병든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봉사이고, 둘재는 내 시간을 나누어 이웃의 어려움에 동참하는 사랑의 실천 행위를 통하여 내 삶의 의미를 찾는 일, 마지막 에 생명까지도 기꺼이 봉사하신 그리스도께 전 생애를 바치는 가장 고귀한 봉사의 행위.
나는 어느 한가지에도 나를 바친일이 없다. 이제야말로 처음이듯 시작할 때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크고 작은 주름살을 펴놓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생활의 여백, 다시는 인색한 시간의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
지나간 세월 부질없음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운명의 목을 졸라쥐고 힘찬 발걸음으로 전진할 것이다. 찬란한 크라이막스를 위해.
이제까지 갈망해 오던 환희가 드디어 제 4악장에서 폭발하듯이 내 아픈 삶의 환희도 타오기를 .
오늘 하루가 생의 마지막 날이듯 살아가는 수도자처럼 다시 한해가 내 생애의 최후의 한 해이듯 진하고 뜨겁게 살아가리.
그래서 나는 노을을 바라보며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를 우러르는 것이다.
(충청문예 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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