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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글 877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강하다

새 한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그 위에서는 위험한 동물들로부터 안전하다는 생각에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경치를 즐기며 마음을 푹 놓았다. 나뭇가지가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에 적응하기 시작한 찰나, 갑자기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세찬 바람에 나무가 크게 흔들리고 나뭇가지가 반으로 뚝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새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첫 번째는 자칫 나뭇가지가 부러지더라도 자신의 날개를 활용해 하늘로 날아오르면 안전하다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는 비록 이 나뭇가지가 부러진다고 해도 잠시 쉴 만한 나뭇가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교훈_ 이 이야기는 자신감과 용기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 당신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많다. 당신을 지탱하는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는다..

만족

시니어스가 피루스 왕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물었다. "로마를 정복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시실리를 정복할 거네. 그건 더 쉬운일이지. "그럼 시실리 정복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그 다음에는 아프리카로 쳐들어가 카르타고를 무너뜨리는 거야. "카르타고 다음에는?" -그리스가 되겠지. "그럼 한 가지 물어 보겠는데. 목표로 한 정복을 모두 마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거요?" -그 다음에는 가만히 앉아서 인생을 즐기는 거지. 그 말을 듣고 시니어스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 지금 그 인생이라는 것을 즐길 수 없는 건가?" 책[삶의향기가 가득한 책]/라즈니쉬/ 중에서 -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해도 괜찮습니다

'전환기의 나이'라는것이 있습니다. 20살, 30살, 40살,그리고 50살. 20대는 무척이나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일, 인간관계,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 삶의 방식 등 모든 것에서 어딘가로 가고 싶지만 가고 싶은 곳도 가는 방법도 몰랐고 자신이 어디에 서잇는지조차 몰랐던 시기를 보냈습니다. 30살즈음이 되었을 때 간신히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지도의 작은 조각하나를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보았던 풍경은 지금도 내 의식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모든 나이가 중요하지만, 50살을 맞이하는 것은 커다란 전환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50살은 '한바퀴 돌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차례 다 지나왔다는 '한바퀴'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한 바퀴'도 있습니다. ..

여행에 관한 글

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25년재 해마다 가고 있다. 내 눈이 깊지 않아선지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장소들과 그곳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에 가려진 웃음과 슬픔의 물감 축제들이. 이제는 바라나시만을 무대로 여행기 한 권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낯선 나라와 장소들을 여행한 사람들은 곧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은 그 장소에 대한 긍정적인 여행담을 비난하고 허구라고 단정 짓는다. 그들의 말이 옳다. 한 장소를 오래 만나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도 허구일 수밖에 없다. 장소의 흔들은 처음에는 매력없는 면만을 보여 줄것이다. 당신 자신도 그렇듯이 장소 또한 낯선 이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돈을 뜯으려는 호객꾼과 가방을 뒤지는 여인숙 종업원과 길에 널린 소똥들로 당신을 쫓아 보낼 것이다. 여..

개인은 씨앗, 사회는 밭

지난 몇 년간 저는 즉문즉설을 통해 일관되게 개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습니다. 그랬더닝 ㅣ렇게 반문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스님 말슴처럼 나부터 변하려고 노력하면 결국 그것이 모여 세상이 바뀐다는 논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장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억울한 이가 생기고 희생되는 사람이 생기며 더 나아가 그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져서 잘못된 세상이 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개인만 반성하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들은 왜 자기 반성을 하지 않습니까? 어떤 환경에 처하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이때 부당한 현실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끊임없이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금방 뜯어 고칠수..

행복은, 곧 사라져버릴 덧없는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소박하고 항구적인 하나의 형태

옛날 옛적에 첫사랑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사는 게 아닌 거 같아." 소박한 그가 놀라 물었다. "그럼 너는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답했다. "모르겠어. 아무튼 행복은 아닌 것 같아." 희한할 정도로 행복에 관심이 없었다. 행복의 형제인 즐거움이나 기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행복타령을 해대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눈엔 그들이 하늘에 대고 자기 일신의 안위만 비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욕심꾸러기로 보였다. 어떻게 인생에서 행복만을 바란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지금 , 스무 살때보다 성장한 증거를 대라면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을 내밀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되물을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행복이 무엇이냐고...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 못 된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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