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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글

다림영 2023. 5. 21.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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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25년재 해마다 가고 있다. 내 눈이 깊지 않아선지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장소들과 그곳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에 가려진 웃음과 슬픔의 물감 축제들이. 이제는 바라나시만을 무대로 여행기 한 권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낯선 나라와 장소들을 여행한 사람들은 곧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은 그 장소에 대한 긍정적인 여행담을 비난하고 허구라고 단정 짓는다. 그들의 말이 옳다. 한 장소를 오래 만나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도 허구일 수밖에 없다. 장소의 흔들은 처음에는 매력없는 면만을 보여 줄것이다. 당신 자신도 그렇듯이 장소 또한 낯선 이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돈을 뜯으려는 호객꾼과 가방을 뒤지는 여인숙 종업원과 길에 널린 소똥들로 당신을 쫓아 보낼 것이다. 

 

 

행은 얼마나 '좋은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서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하며, 그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세상의 모든 장소들은 사리와 숄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같다.

 

낯선 자가 다가오면 더 가릴 것이다. 그리고 그 색색의 천 뒤에서 검은 눈으로 쳐다 볼 것이다.

 

세상에는 시간을 쏟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 가고 , 또 가고, 또다시 가라. 그러면 장소가 비로소 속살을 보여 줄 것이다.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정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잡으라. 

인생은 관광tour이 아니라 여행travel이다.

그리고 여행은 고난tdravail과 어원이 같다. 장소뿐만이 아니라 삶도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면 삶  역시 우리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사랑하면 다가오는 것들이있다. 

 

투르니에는 단언한다. 예찬할 줄 모르는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며, 그와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우정은 예찬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르니에의 설명에 따르면 현실 세계는 본 래부터 천연색이 아니라. 흑백,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무채색이다. 그 현실에 색깔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눈이고 예찬이다. 그러면서 투르니에는 말한다. 

 

"나 그대를 예찬했더니 그대는 백 배나 많은 것을 돌려 주엇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세상은 불안전하며, 인간 역시 한계에 갇힌 존재이다. 그 둘을 보완하고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예찬이다. 이름 모를 들풀에서부터 은하의 언저리까지, 아이의 새로 난 앞니에서부터 돌고래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언제나 예찬할 것들을 준비해 놓고 있다. 서로 예찬하지 않으면 인간 역시 볼품없는 존재이다. 예찬보다 더 좋은 치유는 없다. 

 

어느 자연주의자는 말한다. 

"아침과 봄에 얼마나 감동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건강을 점검하라. 자연의 깨어남에 대해 당신 안에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잠을 떨치고 일어날 수 없다면, 첫 새의 지저귐이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눈치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

 

이나무, 신의 손금같은 이 잔가지들, 꽃에서부터 밝아오는 이 새벽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매일 지나치는 똑같은 거리와 도시의 찌든 벽돌담 어딘가에서 부한의 운을 가진 새를 발견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눈을 감고 외면하면  그것들은  증인도 없이 영원한 어둠에 잠길 것이다. 

.. 

나 자신도 여행 초기에는 그들같았다.  낯선 환경이 주는 불편함과 부조리에 실망하고, 여행 자체를 후회한 적도 있었다. 자기방어의 움츠림이 나와 세상을 분리시켰다. 그러다가 서서히 시타르 음악읫 ㅓㄴ율에 고개를 끄덕이고 사리 입은 여인들의 모습에 감탄하고 갠지스 강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해에 가슴을 열게 되엇다. 심지어 한밤중 기차역의 아수라장 앞에서도 전율하고 경탄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순간들은 계시와도 같이 다가왔다.

한번은 정원을 다섯배나 초과한 인파들로 아수라장인 장거리 기차에 올라탔는데, 남자와 여자와 노인을 헤치고 찾아간 내 좌석에는 이미 세 명의 인도인이 앉아 있었다. 배낭놓을 자리조차 없었다. 간신히 창가에 비집고 앉자 위층 의자에 빼곡히 앉아 잇는 사람들의 새카만 발들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런 상태로 스무시간 넘게 가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앉아 잇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남루한 차림의 소년과 소녀가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나타나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소녀는 가녀린 목소리로 가잘(인도, 아랍, 터키 등지에서 민족음악으로 널리 불리는 4행으로 된 서정시) 을 노래하고 소년은 낡은 북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췄다. 나를 포함에 모두가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한곡이 끝나고 내가 5루피를 꺼내 소녀에게 건네자 소녀는 돈을 꼭 쥔 손으로 또 다른 노래를 이어갔다. 그렇게 해서 복잡하기만 했던 기차 안이 잔잔한 음악회장으로 변했다.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은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그것이다. 광부는 수많은 돌들에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광부의 눈은 보석을 발견할 뿐이다.

 

예찬하는 마음 역시 모든 돌들을 보석으로 만든다. 부자는 누구인가?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 한 사람이다. 

[지상의 양식]에서 앙드레 지드는 말한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이 행성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떠날 때 당신은 어떤 말을 할 것인가? 혹은 이 별에 여행 오려고 준비하는 새로운 영혼에게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 인간 세계에서 조심해야 할 긴 목록을 암기시키면서 불바시옹의 자세를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지구에는 예찬할 것이 너무 많다고, 언제나 예찬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주겠는가?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고. 

 

 

책[새는 날아가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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