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형체가 굽으면 그림자가 굽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바르다. 말도 매한가지다. 말은 마음을 담아낸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사람의 품성이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아무리 현란한 어휘의 화술로 말의 의미를 둘러봤자 소용없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은 ,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를 읽는 것이다.
옛말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다.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리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고 말하지 ㅇ낳았던가. 상대가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마음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잘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 들어야만 한다.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상대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열쇠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 앞 좌석에서 중년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엄마야!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
"밥도 안 먹고 뭐 했어. 어서 챙겨 먹어라!"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이런 대화를 엿들으면, 그 의미가 너무나 맑고 소중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까지 마음에 오롯이 새기고 싶다. "먹다"의 함의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사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입에 욱여 넣으며 살아간다. 밥만 먹는 게 아니다. 커피도 먹고 술도 먹고 욕도 먹고 어느새 나이도 먹는다.
그러므로'먹다'라는 동사와 가장 가까운 말은 '살다'일 것이며, 자식이 밥을 먹었는지 궁금하다는 건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밥 먹었냐?" 하고 물어보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김지하 시인은 [밥은 하늘입니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이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갈라 먹는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
언젠가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은 상대가 있다면 당장 전화기를 들어 다시 약속을 잡아 보는 건 어떨까.
휴가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바캉스vacance는 '텅 비어 있다'는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vacatil에서 유래했다. 바캉스는 무작정 노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일이며, 진정한 쉼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쉼이 필요한 것은 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게 대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잇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숙성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속에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언어학자는 성인의 최대 집중력이 18분이라고 주장한다. 18분 넘게 일방적으로 대화가 전개되면 아무리 좋은 얘기일지라도 참을 성 있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마크 트웨인이 "설교가 20분을 넘으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자와 어렵게 만난 심제량은 나라를 다스리는 비법, 치국에 대한 가르침을 얻고자 했다.
"선생님, 백성을 한데 모이게 하려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합니까? 어떤 기술이 필요합니까?"
그러자 공자는 딱 한마디 말만 남긴 채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모여들게 마련"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프랑스 의 한 카페에 걸려있는 메뉴판
"커피" - 7유로
"커피주세요" -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 - 1.4유로
조금 매정하기는 하지만 기발한 가격표 아닌가. 고객이 커피를 주문할 때 구사하는 말의 품격에 따라 음료의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를 뜯어보면 흥미롭다. 임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의 체취,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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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고 돌아올 때 간혹 후회의 마음으로 무거울 때가 있다.
그냥 그말은 하지 않았어도 좋았는데
왜 말을 그렇게 많이 했을까
조용히 있는 시간을 참지 못해
이말 저말 하다가
그렇게 후회의 길목으로
들어서곤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변치못하고 있다.
오늘 다시 지은이의 책을 들여다보며
새삼 말의 중요성과 나 자신을 돌아본다.
만나는 이마다 눈을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가급적 말을 아껴야 하겠다.
품격있는 길로 인도하는 책..
말의 품격...
즐거운 책읽기, 언젠가 읽었음에도 나는
사람들의 손때가 많이 묻은 이 책을 빌려 읽고
당분간이라도 조용해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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