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휴일의 에세이/이어령편저.생떽쥐베리, 카뮈등 56인지음/문학사상사

다림영 2021. 4. 1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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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물들/르 클레지오/프랑스

 

한나절의 질서정연한 광경은 사라졌다. 물굽이는 끊임없이 그형태를 바꾸어서 이따금 너무 길어져 그 끝을 볼 수 없을 정도이고 이따금은 짧아져서 하나의 원을 이루기도 했다. 갑岬은 바다 가운데로 멀리 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멀어져서 조그만 그루터기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나무의 그림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멀리서 둥그스름한 언덕들이 끊임없이 움직여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때로는 세 개의 작은 산들이 지평선 가까이에서 사라져 땅 위에 하나의 커다란 검은 구멍이 파인듯이 보였다.

 

바다는 이따금 무척이나 평평하고 쓸쓸하여 마음이 아플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떤때는 갑자기 수평선 위에 수직선으로 솟아올라서 무슨 성벽처럼 보이기도 했다. 때로 바다는 골함석 같아서 루비 송이처럼, 아롱진 금빛의 무지개처럼, 반짝이는 보랏빛깊은 동공처럼 여러가지 빛깔들이 섞여서 신비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게 모이고 흩어지면서 경치는 그렇게 동요하고 있었다. 땅의 고요하고 황홀한 아름다움은 이러한 대자연과 이러한 변형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은 거기에 아무런 힘도 미칠수 없는 것이다. 다만 눈에 온 힘을 다해서 욕심스럽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 작은 갑 위에서서, 발밑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물굽이의 거대한 곡선, 갑, 언덕과 산들, 소멸하지 않는 하늘, 가로등에서 반사되는 빛, 그리고 꺼젔다가 다시 켜지는 ,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등대의 빨간 빛, 은은한 냄새 그리고 그림자의 너울들, 바다 짐승의 야성적 외침 소리, 깜박이는 집들의 불빛, 두세개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는 무시무시한 숲들, 보이지 않는 공기, 묘지에서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부엉이의 천식에 걸린 숨소리, 동면하는 벌레들로 가득 차 끈적끈적한 땅덩어리들 눈먼 박쥐들의 날갯짓 소리, 반짝이는 별들, 하늘에 박혀 있는 수백만의 별들은너무도 멀리 있어서 생각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깊은 물 위에서, 검은 물 위에서, 수평의 심연 같은 물 위에서, 물결은 혼자서 다가오고 있다. 

 

그 심연속에서는 인간들의 현기증 나는 정신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깊은 구렁을 감추고 있는 무한한 액체 위에서 밤과 낮이 두 개의 다른 종자들처럼 섞여있는, 그처럼 평평하고 황량하며 무한히 광대한 표면위에서 바다는 물결을 이루어 다가오고 있다.

그처럼 세상모든 물체는 수많은 작은 부딪침과 미끄러짐 속에서 스며 나옴으로써 살아 있는 것이다. 작은 관목들 안에서, 동굴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초목들 안에서 세상은 빛이나 또는 그림자와 더불어 노래하며 대변동과 살해로 가득 찬 휴식없는 폭발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뺨을 땅에다 대고 모든 질주와 모든 소란한 소리들을 들으려 귀 기울이며 이렇게 매일 매일을 세상과 함께 살아야 한다. 

 

신경을 뿌리처럼 땅속 깊이 박고 그 투쟁력을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그 삶과 죽음의 샘물을 오랫동안 마셔서 언제나 승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세상은 살아있다>)중에서 

 

청란몽靑蘭夢/이육사

 

거리의 마로니에가 활짝 피려면 아직도 한참 있어야 할 것 같다. 젖구름 사이로 기다란 한 줄의 빛깔이 흘러 내려온 것은 , 마치 바이올린의 한 줄 같이 부드럽고도 날카롭게 내 심금의 어느 한 줄에라도 닿기만 하면 그만 곧 신묘神妙한 멜로디가 흘러나올것만 같다.

정녕 봄이온 것이다. 

이 가벼운 게으름을 어째서 꼭 이겨야만 될 턱이 있느냐, 대태성좌大態星座가 보이는 내 침대는 바다 속보다도 고요할 수 있는 것이 남모르는 자랑이었다. 나는 여기서부터 표류기를 쓸수도 있는 것이다. 날씬한 몸, 몽땅한 놈, 뒤는 놈, 나는 놈, 기는 놈, 달래는 놈, 수없이 많은 어족들이 세상을 찾았는가 하면 어느 때는 불에 타는 열사의 나라 철수화鐵樹花나 선인장들이 가시성城같이 무성한 위에 황금 자국같이 새겨 붙인 작은 꽃들, 그것은 죽음의 유혹같이 사람의 영혼을 할퀴곤 하였다. 

 

소낙비가 지나고 무지개가 서는 곳에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계류를 따라 올라가 자운영꽃이 들로 하나 다복이 핀 두렁길로 하늘에 닿을 듯한 전나무 숲 사이로 들어가면, 살짐맥이들이 잎풀을 뜯어 먹다가는 벗말을 불러 소리치곤 뛰어가는곳, 하얀 목책이죽 둘린 너머로 수정궁같이 깨끗한 집들이 즐비한 곳에 화강암으로 깎아 박은 돌계단이 기다랗게 하양廈陽의 옅은 햇살을 받아 진주가루라도 흩뿌리는 듯 눈이 부시다. 마치 어느나라의 왕궁인듯 호화스럽다. 그렇다면 왕은 수렵이라도 가고 궁전만 비어 있는 것일까 하고 돌축을 하나하나 밟아 가면 또다시 기다란 줄행랑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오른편으로 몰아들어 왼편으로 보이는 별실은 서재인듯 , 조용한 목으 뜰 앞에는 조롱들 속에서 빛깔 다른 새들이 낯선 손님을 맞아 아는 체하고 재재거리고, 그 아래 화단에는 저마다 다른 제 고향의 향기를 뽑아 멀리서 온 에트랑제는 취하면 혼혼하게 잠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가벼운 바람과 함께 앞창이 슬쩍 열리고는 공주보다 교만해 보이는 젊은여자, 손에는 새파란 줄기에 양호필羊豪筆같이 하얀 봉오리가 달린 난화를 한 다발 안고 와서는 뒤를 돌아보며 시비侍婢를  물리치곤, 내 책상위에 은으로 만든 화병에다 한 대를 골라 꽂아두고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하다가는 그만 부끄러운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조심조심 물러가고 만 것이었다. 

 

달빛이 창백하게 흐르면 유리창을 넘어서 내 방 안은 추워졌다. 병든 마음이었고 피곤한 몸이었다. 십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나는 모든 것을 나 혼자 병들어 온다. 병도 나에게는 한개의 향락일 수 있는 때문이었다. 아무도 없는 무덤 같은 방 안에서 혼자서 꿈을 꿀 수가 있지 않은가. 잠이 깨면 또 달이 밝지 않은가. 그 꿈만이 아니었다. 그 여자가 화병에 꽂아주고 간 난꽃이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복욱하고 청렬한 향기가 몇천만 개의 단어보다도 더 힘차게 더 따사롭게 내 영혼에 속삭이는 말 아닌 말이, 보다 더 큰, 더 행복한 위안이 어디 있으므로 이것을 꿈이라 헛되다고 누가 말하리오. 진정 헛된 꿈이라고 말하면 꿈 그대로 살아보는 것도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나는 때로 거리를 걸어보기도 하나 그 꿈속에 걸어본 거리와 그여자의 모습은 영영 볼수 없었다

 

때로 꽃집을 들러도 보고 나꽃을 찾아도 보았으나 내 머릿속에 태워 붙인 그것처럼 사라질 줄 모르는 향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꿈은 유쾌한 것, 영원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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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본인

 

얼마전 막내아들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임신을 해서 회사도 가야하는 데 꿈속에서 동동거리며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는 속이 안좋아 연이틀 죽을 먹고 있었다. 이따금 통증도 있다 했으나 크게 이어지지 않았고 주말이 끼인터라 병원도 가지못했다. 약국에서 증세를 얘기하고 받아온 약을 먹었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월요일 일찍 문을 여는 동네 내과에선 맹장일수도 있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 했다.

의사선생님은 상세히 설명을 해주시며 심하다 했다. 더 늦지 않아 천만 다행으로 며칠 입원 후 수술을 하고  핼쓱해진 젊은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하여 신께서는 남자아이에게 임신을 하게 하여 수술해야 할 일을 얘기 하신 것인가. ..우주 속 너무 작은 인간인 우리로서는 알수가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가게를 이어오고 있다.  늘 그 놈의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곤 하는데 어느날 분명 쓸 일이 있어 따로이 편지봉투에 넣어둔 돈이 사라졌다. 식은 땀이 나도록 찾다가 없어 주저앉아버렸고 포기를 했다.  작은 돈이 아니었다. cctv를 들여다 볼까 하다가 놓아두고  정신없이 사는터라 더는  찾을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무렵의 어느날 ,꿈 속에서 사라진 돈이 나타났다.  서랍 뒤편으로 돈이 넘어가 마구 흐트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꿈속에서조차 놀라서 애그머니 하며 주워담았다. 아침 출근하자마자 옷도 걸어두지 않고  서랍을 빼내어 보았다. 

어떻게 되었을까..후후..  웃음만 나올뿐이었다. 편지봉투에 넣어둔 돈은 서랍 뒤편으로 넘어가 먼지쌓인 낮은바닥에 기절하듯 누워있었던 것이다. 한심한 주인때문에 어둠과 먼지속에서 쿨럭거리다 지쳐  내 꿈 속을 다녀갔던 것이다.

이러한 일 말고도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시아버지나 친정아버지 그리고 한 친구가 나타나면 장사가 잘 되고 소식없던 사람이 꿈속에서 보이면 전화가 오거나 하는등의 일이 생기곤 한다. 친정어머니께 꿈 얘기하면 어머니는 더는 얘기 말라고 한다. 자꾸 그렇게 꿈 얘기를 늘어놓다보면 그러한 꿈이 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꿈에 대해 내게 물으러 오는 이들이 있어  꿈 해몽책을 샀다. 두루 읽다보면 너무나 신기한 일이 많다. 그러나 사람도 각각이 다르고 꿈 내용도 참으로 다양하여 그 많은 것들이 어찌 실릴까 한다. 다만 정리하건데 꿈에서 기분이 좋으면 좋은 꿈이고 우리가 알고 있듯 돼지나 조상꿈은 분명 좋은 꿈이며  연기나는 꿈은 기운이 좋지 않고 불이 났으면 활활 타며 그 불길을 봐야 좋은 것이고 책속의 이야기도 들은 이야기도 아닌 또 하나의 내 꿈을 돌아보건데 물속에 들어가는 꿈이거나 물이 콸콸 쏟아지는 등의 물을 만지는 꿈은 돈과 관련된 좋은 꿈이다. 엊그제도 상당히 기분좋은 꿈을 꾸었는데 이건 비밀로 해야하겠다. 아직 아무좋은일을 만나지 못했으니.. 꿈은 어제 꾸었다고해서 내일 바로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한 6개월정도의 영향이 있다고 한다.

아... 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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