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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살아가는 방법

다림영 2010. 2. 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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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 부터 나이든 아들과 늙은어머니는 소란스럽다. 가끔 웃음소리도 들린다.이른시각에 설맞이 준비에 부산스럽기만 하다. 그녀는 누워 꼼짝 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소리만을 듣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참 좋겠다. 제 집을 나와 엄마 옆에서 만두속을 만드느라 김치도 다지고 두부도 있는데로 물기를 짜내고...

조금 힘에 부치는 일들을 예순을 바라보는 아들이 딸처럼 챙겨주는 노모는 즐거운가보다.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분명 좋아서 하는 일이다. 즐거운 놀이처럼 신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소꿉놀이에 찬바람을 끼얹으면 안되는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물 한 모금이라도 먹고 움직여야 하는데 부엌으로 나가기가 이렇게 싫을 수가 없다. 일을 하기 싫다는 얘기가 아니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이다. 어울리기 싫어서... 그녀는 며칠전부터 볼이 있는대로 부어있다. 식구들 저마다 우겨서 이사온집에 관리비가 기절할만한 액수가 고지되었던 것이다. 그후  아무에게도 웃음을 건네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비위를 거스를까봐  특별한 얘기를 건네지 않고 가만가만 자신들이 해야 할 일만을 한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빚을 지고 사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하는것이 그녀의 생활원칙이다. 분수를 지키는... 

 

 

어젯밤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남자가 집에 보이지 않았다. 휴가가 끝난 큰 아들을 바래다 주노라고 전화가 온 후  그녀는 그가 집으로 향한줄로만 알았다. 왠걸 11시가 넘어 집에 퇴근해 들여다 보니 응당있어야 할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막내에게 아빠에게 전화를 넣어보라고 하니 도통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오른팔을 붙잡아매고  안전벨트도 매지않은채 운전하다  잘못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충 씻고 전화를 해보지만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돌리기를 수십번 ... 집 앞이란다. 술이 떡이 되었다. ...그녀는웬수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태산이란 생각에 한숨만 솟는다. 뼈에 금이 간 것을 언제 붙여놓으려고 날이면 날마다 바보같은 시간을 보내는지 그녀는 남편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자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다.  "엄마 벌써 자?" ...아이들은 눈치는 번개보다 빠르다. 불을 꺼주고 컴퓨터 코드를 빼고  문을 닫아주고 나간다. 막내녀석이 볼에 뽀뽀를 해주며 이불을 덮어준다. 마치 제가 여자의 엄마인듯 행동한다. 냉정한 부모밑에서  살갑기가 이만저만이 아닌것을 생각하니 여자는 자신이 아들녀석 하나는 건졌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어느만큼 되었을까. 그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를 발로 차고... 아이들을 고래고래 소리질러 부르고. 그러더니 제 형 방에 들어가 자는 사람을 깨워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해대나보다. 그녀에게는 아들하나가 더 생겼다. 막내 밑으로 다시 막내를 두게 되었다. 한숨속에 잠을 청하나 불면의 밤은 늘 이렇게 똑같이 시작되고 한시간이 넘도록 잠에 빠져 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어린아이처럼 아프다며 그가 다시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을 돌아가며 불러대며  투정을 한다. 잠이 들었던듯 했으나 다시 그녀는 깨고 말았다. 새벽녘이다. 그를 밀어내고 그녀는 침대아래에 자리를 다시 편다. '난 푹 자야해, 난 푹자야한다구....'

 

 

여자의 둘째는 이것저것 가려서 제입맛에 맞지 않으면 제대로 먹질 않는다. 짜투리 야채들을 다져서 볶고 맛을 가미해서 계란하나를 엎고 케찹을 예쁘게 뿌려준다.  된장찌개만 달랑 하나 불위에 얹혀있는 것을 보니 녀석은 분명 아침을 거를것이라고 판단하는 여자는 아침이면 이렇게 색다른 것을 만들어내며 분주하다.  늦은 아침임에도 눈뜰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을 소리질러 깨운다. 식탁에 앉히고 물을 먹이고 과일을 갈아먹인후 수저를 들게 한다. 눈도 뜨지 못하고 간신히 팔을 움직이며 인상을 쓰며 먹는다. 제 할머니 같으면 어림도 없다. 그렇게라도 밥을 먹이고 집을 나서야 안심이 되나보다.

 

 

그녀의 막내좀 보자.벌써 아침을 해치우고 할머니와 큰아빠 대열에 앉았다. 만두를 빚는단다. 아이의 큰아빠는 남자조카들이 퍽도 좋은가보다. 아이보다 더  신이 났다. 한시도 입을 조용히 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아이와 만두를 빚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즐거운 명절준비를 한다. 설거지를 하던 그녀는 혼자 피식 웃는다. 살기마련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대충치우고 벌려놓은 식탁을 내려다 보며 일찍 오겠노라 말을 던져놓고 집을 나섰다.

그는 여전히 몸을 뒤틀어가며 잠속에서조차 팔이 부러졌는지 헤매는 모양이다.

 

 

눈발은 흩날리고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그동안 너무 추웠던 날들을 보낸터라 오늘 같은 날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여자다. 목도리를 한번 더 두르고 점심가방을 오른손에 움켜쥐고 빠르게 걷는다. 아침걷기를 거른 며칠이라 걸어 어디만큼 가자 하고 걷다보니 온몸에 온기가 퍼져온다. 큰길로 향하지 않고 골목에서 골목으로 걷는다.  그늘진 뒷골목은 온통 얼음판이다. 차들이 날아가는 것이 신기했다. 잘못하면 미끄러질 것 같은데도 잘도 달린다. 대단한 운전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다. 운전경력이 이십여년이 되어도 여전히 운전이 두렵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번 할까말까하니 그럴만도 하다.

 

 

고층 새아파트가 한창 분양중이다. 절반은 커녕 십분의 일도 차지 않은 것 같다. 전세 계약이 끝날때까지 분양이 다 되지 않기를 바래보며 환한 새 아파트 옆 정원을 걷는다... 조그맣게 단촐하게 각별한 모습으로 살꺼야 하면서...

 

 

전철안에는 명절분위기가 확연하다. 어린아이에서 나이든 노인까지 보따리들을 앞에 위에 손에 들고 저마다 소란스럽다.

이렇게 발전되리라고 예전엔 미쳐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전철이 천안까지 연결되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에 눈을 준다. 세상이 온통하얗다. 어릴때 보던 설날 같다. 아이들은 참 좋아하겠지..

 

 

물건을 정리하며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그녀의 화초들도 이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손끝으로 화초들을 만지며 속삭이듯 말한다. '음악 크게 틀어줄까?' ...

화초들이 고개를 끄덕인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대답한다. '그래'...

 

언제 눈이 왔냐는듯 햇살이 눈부시게 창으로 쏟아져 내린다.  별스럽지 않은 이런 평범한 순간들을 그녀는 보물처럼 귀한 시간이라고 여긴다. 가게에 발을 들여놓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순간 가슴이 확 트이고 불을켠듯 밝아지는 기운을 그녀는 느끼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그녀 앞가게들이 모두 문을 열었다.  명절전에도 동지가 생기다니 신이 난 모습이다. 저녁이 몰려오기 전에 들어갈 것이지만 누군가 곁에 함께 불을 켜고 있다는 것은 풍선처럼 가벼워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다.  이곳이 조금만 더 번화가가 될 수 있기를 고대하며  며칠전 읽었던 다산선생의 말씀을 떠올리는 그녀다.

 

 '굳이 먼 데를 기웃거리지 않는일.. 생활속에 운치를 깃들이는 일... 몸은 비록 묶여 있으나 마음만은 훨훨 자유로운 경계에 노닐게 하라'....

단순하게 살면서 이 모든 것을 지켜야지 .. 이러한 생각을 다지며 그녀는 마음을 햇살 눈부신 창에 걸어둔다.

 

'맨시니의 리코더소나타 협주곡'이  요즘 그녀의 마음을 전부가져가고 있다.  들어도 들어도 자꾸만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곡이 좋은가 보다. 알수없는  변화의 물결에 몸과 마음을 씻어내고 있다.

 

'남자의 자격/마라톤완주편' 재방송을 보면서 그녀는 어느덧에 점심을 다 먹는다. 아무런 표정없이 와인 반잔과 함께 콩을 꼭꼭 씹으며 먹고 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는 김성민이 그녀는 참으로 인간적이란 생각을 한다.

 

그녀가  점심을 다 마쳤나보다. 토마토를 먹고있다. 토마토는 점심 가장 마지막에 먹는 것이고 익혀 먹어야 한단다.  뜨거운물에 한참을 담그어 놓고 점심을 마칠무렵이면 겉껍질이 살짝 벗겨져있다.  그녀는 그녀만의 철저한 식습관의 질서가 있다.  친구들이 가끔 방문해서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놀린다. '그래, 너 120살까지 살겠다!' ....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오늘의 습관이 내일의 건강을 지킨다'는 굳건한 신조를 수행할 뿐이다.

 

 

커피만큼은 아름다운 자유로움 속에서 달콤한 빵한조각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근래부터 고수하고 있다. 그녀가  큰수저로 한 가득 커피를 풀어 졌는다. 정말 황당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아줌마임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아줌마는 여자가 아닐 수 도 있다.

 

그녀가 달려가 빵 두개를 산다.  낯익은 아르바이트 학생이 빵 하나를 더 얹어준다. 무슨 횡재인가.. 그녀는 언제나 통밀빵이나 호밀빵만을 고집했다. 그러나 어느날부터 쓴커피 한잔에는 달콤한 것들을 깃들이기도 한다. 그것이 그녀의 기분을 깃털처럼 가볍게 해준다고 믿게 되었다. 알 수 없는 그 언젠가 부터.... 알고 보니 달콤한 것들은 스트래스를 해소해 준다는 얘기가 있다.

 

눈발은  이미 그쳤고 사람들은 선물꾸러미들을 무겁게 들고 역으로 향하거나 이곳 동네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누군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 그녀는 집을 나섰고 별스럽지 않은 순간들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꺼내며 즐기고 있다.  단 한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마음이 더 앞서있지만 말이다.

 

 

리코더가 이렇듯 깊은 음악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감동을 받는 여자다. 음악의 각별함으로 여자의 시간이 은은하게 흐른다.

손님은 전혀 없다. 예상했던 일이다. 두어명의 학생이 다녀갔을 뿐이고 누군가 수리한 물건이 잘못되었다며 다시 해 줄것을 큰 소리로 전하고 횡하게 나간것이 전부이다. 

 

텔레비젼속 남자들은 아직도 뛰고 있고 아름다운 김성민은 눈물을 흘리고 훔치며 스스로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어깨를 돌려 들썩이는 모습을 여자는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다.  리코더 소나타 협주곡은 지속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쓴 커피와 달콤한 빵은 연인처럼 어우러지며 그녀의 하루를 운치있게 해주기에 너무나도 충분하다.

 

생활속에 운치를 깃들이고....생활속 운치를 깃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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