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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상념

다림영 2010. 2. 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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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시험을 보려고 선생님과  회사현관을 밀고 들어섰다. 남자 직원들이 한 줄로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꼭 붙어야 하는 면접시험이었고  바짝 긴장을 하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의 한 남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듯도 했다. 짧게 자른 머리, 걷어올린 팔뚝의 단단한 느낌, 참으로 말간 얼굴....<그때 그는 제대한지 얼마 안되었고 나보다 서너달 앞서 입사를 했다고 한다>

인연이란 그렇게 각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삼십년이 되어감에도 그때의 순간이 생생하기만 하다.

 

 

스무살..

막 입사를 하게 된 그 날, 긴장감으로 그 어느것에도 한눈을 팔면 안되는 날,  나도 모르게 남자 한 사람 운명처럼 가슴에 품으며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새벽같이 밥도 제대로 들지 못한채 출근을 했다. 실습기간이기도 했고 막내이기도 했고 성실한 모습으로 모든 일에 임하리라 마음먹었기에 언제나 출근은 첫번째였다.

내가 머물곳만 청소를 하면 될 것이지만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그가 머무는 사무실까지 청소를 말끔히 하고 시작하는 일과였다. 그의 사무실엔 남자 직원들만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의 성실함이 남자직원들의 입에 오르게 되었나 보다.  몇명의 남자 직원들이 다가왔지만  모르는 척 웃기만 하고 지나쳤다.

사실 그의 눈에 띄기 위해 부러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기도 하고 나름 인연을 만들기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한 어느날, 굳게 닫혀있는 그의 사무실을 지나는 내게 그는 그 환한 얼굴을 내밀며 조그만 쪽지를 쥐어주는 것이다.

 

 

처음 본 남자의 첫인상에 반해서  그냥 마음을 주어버렸던 나는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고 기간은 7년이나 이어졌고 그의 그 어느것도 돌아보지 않은채 결혼을 했으며 그를 닮은 남자 아이를 셋이나 두게 되었고 나의 큰녀석이 어느새 그때의 그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가진 것 없어도 그저 좋았던 시절은 소리도 없이 안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삶의 그림자를 얼굴에 짙게 드리우게 되었다.

이제 그는 술과 담배에 젖어 그때의 말갛던 얼굴은 어디갔는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가끔 젊을때 그의 사진을 찾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전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듯 하다.

  

 

어쩌다보니 우리 젊은시절에 한번도 떠올리지 않던 나이에 다다르게 되고 말았다.  세상의 거친 바다에 정신없이 표류하다가  배는 난파되고 눈을 떠보니 .....

아....어찌 한숨만 쉬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싶다. 평균수명이 너무나 길어졌다. 앞으로 남은 인생 또한 짧지만은 않은 것이다. 삭막하고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삶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순간마다 사소한 웃음 보석처럼  지녀야 하겠다. 내면의 부자가 되는데 노력을 기울이며  막막한 시절 열심으로 순응하며 흘러야 하리라.

 그러면 한 세월 흐른 어느날 평화로움이 깃든 모습으로 어느 쉼터에 앉아 있게 되리라.  누군가 길을 지나는 이 웃으며 이렇게 얘기 건넬지  모른다. 그나 혹은  나에게... '어르신, 모습 참 좋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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