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나는 양탄자의 사각형들을 손가락으로 따라가고 색깔들을 비교하면서 며칠이고 즐겁게 보냈다. 또 마룻바닥의 옹이를 살피고, 맞은 편 집의 벽돌 숫자를 헤아리면서 한동안 환희에 젖어 있곤 했다." 러스킨의 부모는 이런 감수성을 장려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자연으로 안내했고, 부유한 셰리주<남부 스페인원산의 백포도주>수입업자였던 아버지는 차를 마시고 나면 아들에게 고전을 읽어주고 토요일마다 박물관에 데려갔다.
여름휴가철이면 이들 가족은 영국 제도와 유럽본토를 여행했다. 단지 쉬고 노느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 때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주로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움과 프랑스 북부와 이탈리아의 중세도시, 특히 아미앵과 베네치아의 아름다움 이었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천천히 여행했다. 하루에 40킬로미터 이상을 가지 않았고 , 몇 킬로 미터마다 멈춰서서 풍경을 감상했다. 이것은 러스킨의 평생에 걸친 여행방법이 되었다.
"하마가 하마로 태어나듯이 어떤 사람은 화가로 태어난다. 자신을 기린으로 만들 수없듯이 자신을 화가로 만들 수도 없다."
이스트엔드<런던 동부의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학생들이 화랑에 내걸 만한 것을 그릴 수 없어 그의 강의실을 떠나도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목수를 화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목수로서 더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1857년 데생에 대해 왕립위원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러스킨은 자기 자신이 재능있는 화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 데생 솜씨를 스스로 조롱했다. "내 기억에 따르면 평생 아이들의 작품 가운데 그렇게 독창성이 없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데생할 수 없었다. 고양이도, 쥐도, 배도, 빗자루도"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었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 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한 장인은 강의를 끝내면서 러스킨이 자신을 포함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자,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데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두사람이 클레어 시장에 걸어 들어간다고 해 봅시다. 둘 가운데 하나는 반대편으로 나왔을 때도 들어갔을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버터 파는 여자의 바구니 가장자리에 파슬리 한 조각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의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그 이미지들을 자신의 일에 반영시킬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와 같은 것을 보기 바랍니다."
러스킨은 사람들이 세부 사항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했다. 그는 근대의 여행자들 특히 기차를 타고 일주일에 유럽을 다 둘러본다고{토머스쿡.영국의 침례교 전도사. <금주 캠페인 집회에 많은 사람들을 참석시키려고 단체 유로 여행을 주선한 것이 유럽 단체 여행 개발의 시초가 되었다. >이 1862년 처음 제공한 여행일정이다. } 자랑하는 사람들의 맹복과 성급을 개탄했다.
"한군데 가만히 앉아 시속150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지거나 ,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낳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총알에게는 빨리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에게는-그가 진정한 사람이라면-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러스킨은 빨리, 그리고 멀리 여행하고 싶어 하는 소망이 한 곳에서 제대로 된 기쁨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즉 바구니 가장자리에 걸린 파슬리의 작은 가지 하나처럼 세밀한 데서 기쁨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여러분은 기차를 타고 달리는 것도 기쁨의 하나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샤펜하우젠 폭포위에 철교를 세워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푸체른 절벽에 있는 텔의 클라렌스 호숫가를 파괴했습니다. 영국에는 여러분이 으르렁거리는 불덩어리 를 채워 넣지 않은 고요한 골짜기가 하나도 없으며, 외국도시도 여러분이 뻗어나가는 곳에는 사람을 잠식하는 하얀 나병 같은 호텔이 들어서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알프스 산맥도 곰 가육장에서 곰들이 오르내리는 비누 기둥으로 여깁니다. 여러분은 그곳을 올라갔다가 다시 미끄러져 내려오며 '기쁨의 비명'을 질러 댑니다."
러스킨은 데생에 대한 애착을 설명하면서<그는 어디를 가든 무언가를 스케치했다>, 그러한 애착이 "명성이나 다른 사람들 또는 나 자신의 이익을 얻고 자 하는 " 욕망에서 생기는 것 이 아니라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과 비슷한 어떤 본능"에서 생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세가지 행동의 공통점은 모두 자아가 세상의 바람직한 요소를 동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바깥의 선善을 안으로 옮기는 것이다. 러스킨은 어린 시절의 풀의 생김새가 너무 좋아 자주 그것을 먹고 싶었지만, 점차 그것을 그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풀밭에 누워 자라는 풀잎을 그리곤 했다. 초원의 구석구석, 또는 이끼 낀 강둑이 나의 소유가 될 때 까지."
러스킨은 영국 시골을 여행하다 제자들이 형편없는 그림을 제출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는 것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하여 자연을 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라고 가르치겠습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의 심리를 우리 자신이 사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런 곳들도 홈볼트가 찾아갔던 남아메리카의 높은 산 고개나 나비가 가득한 밀림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을 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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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 여행얘기였다.
잘 읽혀지지 않았으나 놓지 않았다.
그러나 결구의 "러스킨"얘기에 그만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러스킨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그런것이다.
...
천천히 , 느리게.. 살피며 감상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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