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이야기꾼
마음챙김
북인도의 한 도시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잘 아는 인도인의 아들이 천연두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여려 해 동안 친하게 지내고 여행을 함께 한 적도 있는 사이라서 서둘러 그의 집을 찾아갔다. 환자는 좁은 침대에 누워 고열에 신음하고 있었다. 온몸에 붉은 발진이 가득했다.
마타지(어머니라는 뜻)라고 불리는 천연두에 걸리면 인도인들은 병원에 가지 않고 민간요법에 의존하거나 마타지 신을 모시는 사원에 가서 기도를 올린다. 병원에 데려가면 마타지 신이 분노해서 증상이 더 심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잘 달래어 떠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스무 살 갓 넘은 환자는 내가 이마를 만져도 겨우 눈을 뜰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 환자 주위에는 아카시아 잎처럼 생긴 초록색 님neem나무 잎사귀가 가득 뿌려져 있었다. 님 나무 잎은 천연 항생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인도의 시골에는 집집마다 이 나무가 있다. 인도인들은 박하향이 나는 툴시 허브와 더불어 님 나무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믿는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환자를 격려하고 부모를 위로하며 30분 남짓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천연두 환자의 집에 다녀온 걸 알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비롯해 모든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천연두는 사망률이 매우 높은 법정 전염병으로, 밀폐공간에서는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고열, 오한, 두통과 함게 심한 복통과 의식의 변화까지 초래한다. 그런 심각한 병 이라는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차츰 걱정이 밀려왔다. 작고 밀폐된 방에서 환자의 손과 이마를 만지며 반 시간이나 있었기 대문에 천연두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서둘러 귀국해야 하나? 만약 천연두 진단을 받으면 결리 환자가 될 텐데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아니면 님 나무 잎 빻은 즙을 피부에 바르고 몸 둘레에 잎을 뿌린 채 누워 있어야 할까? 게스트 하우스에선 나를 계속 투숙하게 할까?
두려움은 빠른 속도로 커져 갔다. 만약 의식이 오락가락하면 누가 나 대신 한국의 가족에게 여락하지?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 데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발진이 돋으면 누구도 곁에 오려고 하지 않겠지? 나를 간호해 줄 현지인 친구를 미리 정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온갖 상상으로 잠을 설치고 맞이한 이튿날 아침, 입맛이 없어 게스트하우스 베란다에 앉아 있던 나는 등을 긁다가 피부발진과 흡사한 붉은 색 부스럼이 생긴것을 발견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마를 짚어보니 의심스러운 미열도 있었다.
생각이 급속도로 복잡해졌다. 균이 각막에 침범하면 실명할 수도 있고 뇌에 침범하면 뇌염이 발생한다는데, 뇌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생수를 눈을 빡빡 씻을까? 아니 이건 흔한 종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긁어보니 진물 같은 것이 나는데 천연두일 가능성이 컸다. 판단이 오락가락 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던 때라서 천연두의 증세를 자세히 확인 할 길도 없었다. 이 정도 증세를 가지고 의사를 찾아가 상담하면 웃음거리밖에 안 될 노릇이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 오후가 되었을 때 복통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나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 님 나무 잎들이 내 주위에 뿌려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마지막에는 갠지스 강가의 화장터로 옮겨지겠지.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전염병 환자의 집에 가는 게 아니었다. 아니, 이번에는 인도에 오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죽을 거였으면 차라리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이나 시도 했어야 했다.
아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자. 그래야 오랫동안 명상을 해 온 사람답지 않겠는가. 아쉽더라도 '하하하' 웃으며 작별하자. 조건 지어지고 형상이 가진 모든 것은 소멸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 그 전에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라도 몇 통 해야하지 않나? 뉴스에도 내 이름이 등장하겠지.
아곳아 '마음이야기'이다. 나를 번뇌에 빠뜨리고, 앞당겨 걱정해서 지금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조건과 형상을 부여해 강력한 힘을 갖게 하는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이다.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도 그 이야기 실력을 능가 할 수 없다.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는 어떤 소설, 어떤 신화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잇다. 그것이 의식을 지배할 때 눈앞의 현실보다 가공의 세계가 더 생생한 현실이 된다. 그때 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버스에 앉아 망상에 빠진 사람처럼 삶의 표면을 그림자처럼 지나갈 뿐이다.
마음은 매우 쉽게 우리를 충실한 하인으로 만든다. 그러나 마음만큼 형편없는 주인도 없어서 , 지금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실제보다 상상에 더 많이 고통받게 만든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드느라 마음은 항상 바쁘다. 매사추세츠 의과 대학 교수이며 명상 교사인 존 카밧 진의 지적대로 ,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에 한 번도 완전히 존재해 본적이 없을 수도 있으며 우리 자신의 충만한 가능성과 단 한 번도 완전히 접촉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생각이 자기 멋대로 꾸며낸 이야기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나가기 전에 알아차려야 한다. 두려움, 욕망, 불안을 연료로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를 알아차리고 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마음의 하인이 아니라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만큼 큰 기쁨과 평화는 없다.
그 인도인의 아들은 천연두가 아니라 수두였으며, 천연두는 1970년대 말에 세계적으로 사라진 질병으로 선언되었다. 수두는 대부분 병이 진행되면서 자연적으로 좋아진다. 그리고 내 등에 난 것은 사소한 부스럼이나 땀띠에 불과했다. 뜨거운 태양아래를 오가느라 약간 더위를 먹었을 뿐이며, 과도한 신경성 복통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지어낸 이야기는 나의 허약한 영적 수준을 드려내며 밤에 꾸었던 꿈처럼 사라졌고, 잠시 마음이 맑아졌다. 다음 이야기를 지어내기 전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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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부족하고 부족하다. 인간이 마음을 마음대로 한다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혹여 특별히 깨달은 자 몇을 빼고는 인간은 거기서 거기 일것이라 생각된다.
나이가 들면 웬만한 것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게 되고 그럴 줄 알았다.
세상을 많이 겪었으니 말이다.
번개가 무섭고 치과가 무섭다며 두려워하는 친정엄마를 보면 나이가 들면
어쩌면 젊을때보다 더 아이처럼 변하고 신에게 가까이 가기는 커녕
이해가 안돼는 행동으로 나도 저러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다.
마음챙김의 공부는 끝이 없다.
죽기전까지 마음의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스님들처럼 깨달은 이처럼
세상이 공인 것을 알면
집착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싶다가도
어떤 문제 앞에선 이기심을 보이며 쥐려하는 마음이 앞선다.
돌아서면 다시 후회를 하는 나날이다.
오늘은 새로운 다짐의 바람을 마음에 싣고 잘 살아내야 하겠다.
자연속의 나무처럼 풀처럼 꽃처럼 ..
여여하게...
환한 모습으로 누구든 반가이 맞고 순간마다 평온하게
하루를 행복하게 걸어야 하겠다. -()-
류시화님의 책은 언제나 큰 깨달음을 안겨준다.
그삶의 여정이 고되게도 보이나 노을처럼 아름답다.
나는 언제나 그러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싶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인도인들은 모두가 깨달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도 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가벼운 오늘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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