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뭉클/신경림시인이 가려뽑은 인간적으로 좋은글/책읽는 섬

다림영 2023. 5. 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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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소중한 금생-최인호

 

요즘 문득 느끼는 감정  중의 하나는 매일 아침 내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까지 살아온 방법을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하루가 낯설게 다가온다.

 

인생을 육십이 넘을 만큼 살아왔다면 사는 방법이 있어 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들처럼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군대도 다녀왔다. 남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경험도 해보고, 아이도 낳고 키웠다. 식성도 까다로운 편이 아니어서 먹을 만한 음식은 웬만하면 다 먹어보았고, 수많은 친구도 사귀고 술도 많이 마셨다. 

 

외국여행도 남들보다 많이 해서 안 가본데가 거의 없고, 신문에도 이름이 많이 났었다. 어지된 일인지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어 항상 뉴스의 초점이 되었으며, 우리나라 작가중 나만큼 글을 많이 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책도 많이 팔렸으며, 시쳇말로 돈도 많이 벌었다. 두 아이도 무사히 결혼시켜 부모로서 할 의무도 다 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갑자기 어제까지 살아았던 인생의 방법을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어리둥절해지고 당황할 때가 많이 있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해 잠시 뇌에 충격을 받아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돌연 의식을 되찾은 것처럼 하루하루가 낯이 설다. 어저다가 아내와 둘이서 자장면을 먹을 대가 있다. 그럴 때면 문득 내가 먹는 자장면이 태어나서 생전 처음 먹는 음식처럼 느껴져서 두려워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먹은 자장면만 해도 아마 수천그릇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자장면을 먹고 있으면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이상한 맛을 경험하는 것 같아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최근에 경험한 이상한 충격중의 하나는 수염을 깎으면서였다. 나는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갂는 것보다 항상 날이 선 면도칼로 수염을 깎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면 으레 호텔에서 일회용면도기를 수집해오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화장실 거울 앞에는 일회용면도기가 수북히 쌓여 있다.

 

어느날 아침 거울을 보면서 수염을 깎다 말고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수염을 깎았는지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 동안 면도기를 들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 적이 있다. 

 

지금껏 나는 면도기를 들고 항상 수염이 난 방향의 반대쪽으로 갂아왔었다. 그렇게 되면 억센 수염의 뿌리가 날카로운 면도날에 의해서 잔인하게 베어져나가는 자극적인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남몰래 밀도살하는 정육업자가 짐승의 털을 깎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한 스릴감마저 느기게 한다. 잔인하게 수염을 갂고 나면 턱 근처엔 항상 칼에 베인 상처를 남긴다.

 

한바탕의 밀도살이 끝난 후 스킨을 바르면 상처로 스며드는 미안수의 강렬한 자극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어제까지 내가 깎아왔던 면도 방법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생전 처음 면도날을 수염이 난 방향을 따라서 결대로 밀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염은 마치 익숙한 주부들이 사과껍질을 나이프로 정교하게 깎듯 부드럽게 깎여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어제가지의 수염 깎는 방법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으며, 육십 평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방법으로 수염을 깎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내 입가에는 면도날로 인산 상처는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단 말인가. 수염을 깎는 매우 사소한 일상사마저도 나는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른 채 그저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아왔음이 아닐 것인가.

 

요즘은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데, 일부러 금주 선언을 해서도 아니고 그저 술을 마시는 그 자체에 흥미를 잃었기 대문이다. 예전에는 잠이 오지 않으면 으레 한밤중에 일어나 아편중독자들이 혈관속에 주삿바늘을 찔러넣듯 독한 위스키를 잔에 따라 서너 잔씩 들이켜고 잠들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집안 구석을 뒤져 위스키 병을 찾아낸 후 컵에 가득 술을 따른 후에도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을 뿐 마시지는 않았다.

 

 

한 때는 나도 애주가였다. 저녁이면 으레 사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마련하였으며 황혼병처럼 해가 어두워지면 술을 마시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게 무엇인가.

나는 위스키를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이상한 액체 하나가 불쑥 내 앞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억지로 컵을 쥐고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모서리치도록 그 맛이 쓰디썼다.  지금껏 한 번도 미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낯설고 혼란스러운 맛이었다. 그래서 나는 술 마시기를 포기하였다. 

 

나는 다시 잠자리에 누우며 생각하였다. 

그럼 어제까지 내가 마셨던 술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환상인가. 아니면 마법의 묘약인가. 

어쩌다 오후 늦게 커피한 잔을 마시면 그날 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럴 때면 나는 또 생각하곤 한다. 하루에 열 잔을 마셔도 눕자마자 잠들던 나는 도대체 어디 갔는가. 그것은 분명 나의 전신이었단 말인가.

 

최근에 나는 아는 사람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고속열차에 타고 부산에 들렀다가 밤 열차로 집에 돌아 온적이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새벽 한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차창 밖으로 비틀거리며 거리를 걸어가는 취객들, 택시를 잡기 위해서 위험하게도 도로 한 복판으로 나와 손을 흔드는 사람들,

악마의 눈처럼 화려하게 명멸하는 네온의 불빛들,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추운 날씨에도 짧은 치마를 입고 걸어가는 젊은 아가씨들, 그녀에게 다가가 유혹하며 수작부리는 남자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유괴되어가는 인질처럼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한때 그러한 밤풍경은 내게 몹시 낯익은 모습들이었다. 나 자신이 매일 밤 그러한 야유회에 초대받은 사람으로 언제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도시를 걸어다녔고 때로는 골목길에 목을 걲고 토하기도 했었다. 때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불평 섞인 바가지를  긁었으며, 나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잠자리에 송장처럼 눕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밤풍경은 내게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국적 풍경이었던 것이다. 

어제까지의 사는 방법을 모두 잊어버린 나는 그래서 저녁 여섯시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방법만이 내가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젼을 본다. 텔레비전을 보는 그 행동만이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들녀석마저 장가를 보낸 넓은 집에는 늙은 아내와 나뿐이다. 우리는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아내가 한 밥을 맛잇게 먹는다. 아내가 해준 밥만이 내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사과를 깎고 어떨때는 감도 깎는다. 그 과일을 먹으며 나는 비로소 안심한다. 열시가 넘으면 우리는 서로 이별해 아내는 도단이의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안방의 침대로 간다.

 

"잘자요." 

내가 말하면 아내는 대답한다. '"잘자요."

어쩌다 밤에 잠이 깨면 나는 껍질을 벗은 애벌레처럼 우주의 낯선 별에서 혼자 잠든 어린왕자와 같은 고독감을 느낀다. 그럴때면 유령처럼 일어나 거실에 서서 아파트 창문 앞에 펼쳐져 있는 중학교의 운동장을 쳐다보곤 한다.

새벽 두시가 넘었어도 운동장에서는 젊은이들이 축구를 하기도 하고,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산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처럼 언젠가는 나도 아내와 둘이 그 운동장을 손잡고 걸어보리라 다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상 그 운동장을 바라보기만 할 뿐 걸어 본적은 없다.

인생은 짧은 기간의 망명이라고 플라톤이 말했던가. 나는 지금 그 망명지에서 손꼽아 유배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다. 내 전생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이제 금생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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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다.

작년과도 또 다르고 몇달전과도 또 다르다.

시시각각 늙어가며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내가 그랬었나? 예전에도 그랬나...하면서 새삼 나이탓을 하기가 일쑤이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했는데 달라진다. 

좋은쪽으로 변하면 좋은데 그런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좋은모습으로 늙어가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 되었다. 

오늘을 사뭇 반성하며 후회를 하고 가슴시린일들을 겪으며

못생긴 마음을 다듬는 공부가 부족함을 깨닫는다. 

 

새날이 되었다. 이른시간임에도 훤한 창밖을 바라본다.

더이른 새벽 기운이 좋은데 건강을 챙기자 하고 누워 있었다. 

모든 것을 천천히 맞추어가고 되돌아보며 오늘을 맑게 사는데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조금더 뒤로 물러서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겠다.

 

 

좋은수필들이 들어 있는 책 '뭉클'

뭉클한 마음으로 눈물 한방울 찍기도 한 책..

수채화처럼 마음속에 오래 남는 내가 좋아하는 글들이 많다. 

감사히 읽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좁은 마음으로  편치 못하다. 

맑은 기운의 글속에서

인간수업을 받았다.

어제보다 좋은사람으로 거듭나길 ..

오늘 하루 잘 살수 있기를 ..

후회없는 시간들로 채워나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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