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회남자/유연엮음/최영갑 풀어씀/풀빛

다림영 2023. 4. 6.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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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에서 유형이 생긴다

아주 가는 털도 틈이 없는 곳으로 집어 넣으면 도리어 큰 것이 되고, 갈대 껍질의 두께도 두께가 없는 곳을 지나면 두꺼운 것이 된다. 가는 털의 미세함이나 갈대 껍질의 두께조차 없이 무한한 사방으로 통하고 경계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미묘하고 미묘한 것이 만물을 들락거리며 천지 사이에서 변화를 만드니 어찌 그것을 논할 수 있겠는가?

 

빠르게 부는 바람은 나무를 뽑아내지만 머리털은 뽑지 못하고, 높은 누각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등이 부러지고 머리가 부서질 텐데 작은 곤충들은 쉽게 날아서 간다. 작은 곤충은 하늘의 움직임을 타고 우주의 한 구석에서 형체를 받아 가볍게 나는 미물인데도 오히려 떨어지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데, 하물며 형체가 없는 것이야말로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것으로 본다면 무형에서 유형이 생기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기의 정신을 신령스러운 곳에 맡기고 만물의 시초로 돌아가 어두운 가운데서 보고 소리 없는는 곳에서 듣는다. 어두운 가운데 서 홀로 깨닫기도 하고 적막한 가운데서 홀로 비추기도 한다.

 

그 작용은 작용하지 않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용하지 않은 다음에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지각은 지각하지 않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자각하지 않은 다음에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본성을 보존하자

...총명함을 버리고 무지로 돌아가 아무 생각도 없는듯이 방황하며 속세의 바깥에서 헤매고 , 일을 일부러 꾸미지 않는 속에서 거닐며, 음양의 기운을 머금었다 토해내고, 만물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 덕이다. 그러므로 도가 흩어지면 덕이 되고 덕이 지나치면 넘쳐 나면 인의가 된다 인의가 확립되면 도덕이 사라진다.

 

백아름이나 되는 나무를 베어서 희준犧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각칼로 새겨서 파란색이나 노란색을 칠하고, 꽃무늬로 장식하고 금빛으로 아름답게 하며, 용과 뱀 호랑이와 표범을 새기고 좋은 문장을 조각한다. 그러나 쓸모없이 잘라진 나무는 도랑에 버려진다.

희준과 잘라진 나무를 비교하면 추하고 아름다운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둘 모두 본성을 잃어버린 점에서는 똑 같다. 그러므로 바깥 사물에 정신이 팔린 사람의 말은 화려하고 덕이 흩어진 자의 행위는 위선이다. 마음에 직극한 정신이 없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외물의 노예가 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덕이 쇠퇴한 뒤에 仁이 생겨나고, 순조로운 행동이 막힌 뒤에 義가 확립되며, 조화를 잃은 다음에 소리가 고르게 되고, 예가 어지럽게 된 뒤에 용모를 꾸미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神明을 알게 된 뒤에야 도덕이 행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도덕을 안 다음에야 인의가 행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며, 인의를 안 다음에야 예약이 닦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추구하며, 요체를 내버리고 세세한 가지만을 찾는 사람과는 더불어 지극한 도를 말할 수 없다. 

 

...윗사람이 꾀 아랫사람도 속이는 일이 많아지고 윗사람이 일을 많이하면 아랫사람은 꾸밈이 많아지며,

윗사람이 고민에 빠져 있으면 아랫사람은 안정되지 못하고, 

윗사람이 요구하는 바가 많으면 아랫사람은 서로 다투게 된다.

근본을 바로 잡지 않고 말단에 매달리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먼지를 날리면서 먼지가 멈추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장작을 끌어안고서 불을 끄려는 것과 같다.

 

능력에 임무를 맡겨야 한다

큰 계략을 가진 사람에게 자잘한 기교를 문제 삼아 책망할 수 없고 작은 지혜를 가진 자에게 큰 직무를 맡길 수 없다.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재능이 있고 사물에는 서로 다른 형태가 있기 때문에 하나를 맡겨도 너무 무겁게 여기는 경우가 있고, 백 가지를 맡겨도 오히려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작은 계획을 잘 아는 자는 반드시 천하의 대수(大數,천지의 운행원리를 말함)를 잃고, 작은 물건만을 뽑는 자는 큰일을 거행하기에 부족하다. 비유하자면 살쾡이에게 소를 잡도록 할 수 없고 호랑이에게 쥐를 잡도록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도는 사물을 인도하는 것이요, 덕은 본성을 돕는 것이며, 인은 은혜를 쌓아 그 증거를 드러내는 것이요, 의는 인심에 견주어 뭇사람들의 뜻에 적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사라지면 덕이 사용되고, 덕이 쇠퇴하면 인의가 생긴다. 옛 세상에서는 도를 체득하고 덕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중간 세상에서는 덕을 잘 지켜 무너지지 않았으나 말세에 오자 오직 인의를 잃을까 급급해한다. 

 

도를 터득한 사람의 모습

군자는 잘못된것을 볼 뿐 벌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간언을 할 수 있고, 어진 사람을 볼 뿐 그의 미천한 신분을 생각하지 않기 대문에 겸양할 수 있으며, 부족한 것을 볼 뿐 가난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수 있다. 진실한 마음이 가슴속에 있으므로 행동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행동이 진실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비록 허물이 있어도 원망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행동이 진실함을 담고 있지 않으면 비록 충성해도 나쁜일만 다가온다. 후직后稷은 천하를 널리 이롭게 하면서도 오히려 스스로 자랑하는 일이 없었고, 우 임금은 공정이 없거나 재물을 낭비한 일도 없는데 스스로는 오히려 항상 부족하다고 여겼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부족한 것처럼 여기고, 충실하면서도 비어 있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도를 터득한 사람이다. 

 

성인이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은 며예를 구하기 위한 일이 아니지만 명예가 저절로 따른다. 도한 명예는 이익을 기약하는 것이 아닌데 이익이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사람의 근심과 기쁨은 인위적으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다 보면 저절로 생겨난다. 그러므로 지인은 꾸미지 않는다. 마치 티끌이 눈에 들어가면 눈을 비비고, 넘어지면 다른 물체를 잡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행한다.

 

성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막연해서 그의 지혜로움이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 위대함을 알게 된다. 이것은 마치 태양이 운행하는 것과 같아서 천리마라도 그와 경쟁할 수 없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

군자의 도는 가깝지만 도달할 수 없고 낮지만 오를수 없는데, 어떤 것을 담아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오래가면서 빛나고 고원하면서 풍성한 것이다. 이것을 아는 방법은 남에게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서 얻어야 한다. 자신을 버리고 남에게서 구한다면 도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군자는 즐거움에서 여유가 있지만 명예에서는 부족함이 잇다. 반면 소인은 즐거움에서는 부족하지만 명예에서는 여유가 있다. 여유와 부족함의 거리를 보면 군자와 소인의 거리가 먼것은 매우 분명하다.

 

입에 머금고 있으면서 토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감정이 있으면서 그 싹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군자는 정의로움을 생각하고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며, 소인은 이익만을 탐내고 정의로움을 돌아보지 않는다. 공자가 말하기를

"다 같이 곡을 할 때, 어떤 사람은 '그대를 내가 어찌하리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찌 나를 버리는가!"라고 말한다.  슬픔은 같지만 슬퍼하는 이유는 다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슬픔과 즐거움이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은 깊은 것이다. 

 

정의로운사람은 이익을 가지고 그를 속일 수 없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를 겁나게 할 수 없다.  마치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빈 그릇으로 속일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에게 욕심이 많아지면 정의를 훼손하게 되고 근심이 많아지면 지혜를 해치게 되며, 두려움이 ㅁ낳아지면 용기를 해치게 된다.

 

오만함은 소인에게서 생기는데  오랑캐가 모두 이런짓을 잘하고 선善은 군자에게서 생기는데 일월과 빛을 다툴만큼 아름다워 천하가 막을수도 빼앗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니리기 보존되는 이유를 즐기고, 망하는 나라에서는 망하는 이유를 즐긴다. 

 

지극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지혜를 넓혀라

큰 방울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스스로 훼손되고, 촛불은 빛 때문에 스스로녹으며 호랑이와 표범은 가죽의  무늬 때문에 화살을 맞고, 원숭이는 민첩함 때문에 잡힌다. 그러므로 자로는 용맹때문에 죽고 장흥은 지혜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지혜때문에 알수 있는 것이지 지혜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험난한 길을 가는 사람은 먹줄처럼 반듯하게 밟고 갈 수 없으며, 숲속을 빠져 나가는 사람은 곧게 뻗은 길을 갈 수 없고 , 밤길을 걸을 때 앞이 어두우면 손으로 더듬으며 가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마땅한 바가 있어서 총명함이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어둠을 둟고 밝은 데로 들어간다면 더불어 지극함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화복은 모두 자기로부터 생긴다

교만이 가득 찬 군주에게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없고,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신용이 없으며,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작은 가지가 없고, 작은 도랑에는 배를 삼킬만한 고기가 없다. 나무의 뿌리가 앝으면 끝이 짧고 부리가 상하면 가지가 마른다.

 

복은 무위에서 생기고 근심은 다욕에서 생기며 , 해로움은 대비하지 않은데에서 생기고, 잡초는 김매지 않은 데에서 생긴다. 성인이 선을 행할 때는 마치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하고, 재앙에 대비할 때는 마치 벗어나지 못할까 두려운 것처럼 한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먼지가 눈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며, 물을 건너면서도 젖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 한일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천명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복은 자기로 말미암아 생기고, 재앙도 자기로 말미암아 생긴다.

 

본성에 따라 행하는 것을 道도라하고 , 천성을 터득하는 것을 德덕이라고 한다. 본성을 잃은 뒤에 仁인을 귀하게 여기고, 도를 잃은 뒤에 義의를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인의가 확립되자 도덕이 물러나고, 예악으로 꾸미게 되자 순박함이 사라졌으며, 시비가 나타나자 백성들이 현혹되었고, 주옥珠玉을 귀중하게 여기자 천하가 다투게 되었다. 이 네 가지는 쇠퇴한 세상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말세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다름의 가치를 존중하라-형체가 다르고 본성이 맞지 않으면 한쪽에서 즐겁게 여기는 것이 다른 쪽에서는 슬픔으로 여겨지며, 한쪽에서 편안하게 여기는 곳이 다른 쪽에서는 위태롭게 여겨진다. 이에 천지가 만물을 덮고 싶러주며 해와 달이 만물에게 빛을 내려 주게 되면 각자 자기 본성을 편안하게 여기고, 거처를 안락하게 여기며, 자신에게 맞는 곳에 거처하고, 자기 능력에 따라 행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도 장점으로 여길 것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부족한 것이 있다. 

 

혼란한 나라는 왕성한 것 같고 다스려지는 나라는 텅 빈 것같고, 망한 나라는 부족한 것 같고 보존되는 나라는 여유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텅비었다는 것은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직분을 지키는 것이요, 왕성하다는 것은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모두 말단만 추구해 분주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재물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절제되어 일이 적은 것이며,부족하다는 것은 재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조급하여 소비가 많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옳고 그름은 정해져 잇지 않다. 세상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한다. 각기 다른 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은 옳고 남은 그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보건대 일이 자신에게 맞는 다고 하여 처음부터 옳은 것은 아니고 마음에 거슬린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옳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요 자신에게 맞는 것을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릇된 것을 제거하는 것은 잘못되고 왜곡된 것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거슬리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에게 거슬린다고 해서 반드시 남에게 맞지 않는것도 아니고, 나에게 맞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세속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옳은 것 가운데(항상)옳은 것은 그릇됨이 없고, 지극히 그릇된 것 가운데 (항상)그륷된 것은 옳은 것이 없다. 이것이 진실한 옳고 그름이다. 만약 여기서는 옳은데 저기서는 그르며, 여기서는 그른데 저기서는 옳은 것은 한 번 옳고 한 번 그른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한 번 옳고 한 번 그른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진실로 옳고 그른 것은 우주일 뿐이다. 이제 나는 옳은 것을 택해서 거기에 머물며 그른 것을 택해서 그것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세상에 말하는 옳고 그름을 알 수 없어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것이 그른지 모르겠다. 

 

본성을 지키려면 외물의 유혹을 벗어나라- 무릇 사물을 가지고 사물을 다스리는 자는 사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화목함으로 다스리고, 화목함을 다스리는 자는 화목함이 아니라 사람으로 한다.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 임금으로 한다. 임금을 다스리는 자는 임금이 아니라 욕망으로 한다. 욕망을 다스리는 자는 욕망이 아니라 본성으로 한다.

 

본성을 다스리는 자는 본성이 아니라 덕으로 한다. 덕을 다스리는 자는 덕으로 하지않고 도로 하다. 사람의 본성이 황폐해지고 맑지 못한 것은 사물이 본성을 더럽혀서 그렇게 된 것이다. 

 

식견이 넓어야 도를 말할 수 있다-질박함이 지극히 큰 것은 형체가 없고, 도가 지극히 오묘한 것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둥근 모습은 원을 그리는 그림쇠로 잴 수 없고, 땅의 모난 모습은 자로 잴 수 없다. 예로부터 지금까지를 宙주라 하고, 사방과 상하를 우宇라한다. 도는 우주 사이에 있지만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없는 사람과는 큰 것에 대해 말할 수 없고, 지혜가 좁은 사람과는 지극한 것을 논할 수 없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무시가말했다. "도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니 들을 수 있다면 도가 아닙니다. 도는 볼 수 없는 것이니 볼 수 있다면 역시 도가 아닙니다.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ㅁ라로 표현할 수 잇다면 도가 아닙니다. 형체가 잇는 것이 곧 형체가 없는 것임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노자는 '세상사람들이 모두 착하다고 여기는 것을 착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진정한 착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의 글은 성인이 남긴 찌꺼기다-

"임금께서 읽고 계신 책은 어떤 책입니까?

환공이 말했다.

"성인의 글이다."

윤편이 말했다.

"그 성인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환공이 말했다.

"이미 죽었다."

윤편이 말했다.

"그러면 그것은 성인의 찌꺼기 일뿐입니다."

환공이 화를 내는 얼굴빛을 하며 말했다.

"과인이 독서를 하는 데 일개 목수가 어찌 나에게 충고를 하는가? 대답을 잘하면 괜찮지만 말을 제대로 못하면 죽이겠다."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말을 하겠습니다. 신은 제가 갂고 잇는 수레바퀴로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수레바퀴를 깎으면 좁아서 들어가지않고 너무 오랫동안 깎으면 넓어서 고정시키기 어렵습니다. 넓지도 좁지도 않게 손놀림에 따르고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야 오묘한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도 제 자식에게 가르칠 수 없고, 저의 자식또한 이러한 기술을 저에게 배울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늙어 70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성인이 말한 것도 역시 그 진짜 내용은 성인의 가슴속에 품고 결국에는 죽었기 때문에 오직 그 찌꺼기만 남았을 뿐입니다. "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기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고 붙여진 이름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했다.

 

세가지 원망-

고구 땅의 덕이 있는 노인이 손숙오에게 말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원망이 있는데 그대는 그것을 알고 있소?"

손숙오가 말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노인이 대답하여 말했다.

"작위가 높은 사람은 선비들이 질투하고, 벼슬이 큰 사람은 군주가 미워하며, 봉록이 많은 사람은 곳곳에서 원망이 그에게 올것이오."

이에 손숙오가 말했다.

"내 작위가 높아질수록 내 뜻은 더욱 낮추고, 내 벼슬이 더욱 커질수록 내 개인적 욕심은 더욱 줄이며, 내 봉록이 더욱 많아질수록 내가 베푸는 것을 더욱 넓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 가지 원망을 면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노자는 "귀한 것은 반드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반드시 낮은 것을 기반으로 삶는다."라고 말했다. 

 

조화로움으로 만물이 생성된다- 천지의 氣기가운데 화기(和氣,조화로운 기운)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和화란 음양이 균형을 이루고 낮과 밤이 나뉘어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다. 만물은 춘분에 생성되어 추분에 완성되니 생성과 완성은 반드시 조화의 정기를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는 관대하면서도 엄숙하고, 엄격하면서도 온화하며, 부드러우면서도 곧고, 사나우면서도 어진 것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너무 부드러우면 말리낟. 성인의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에 반듯하게 있기 때문에 도의 근본을 얻는다. 음기를 쌓으면 가라앉고, 양기를 쌓으면 위로 오른다. 음양이 서로 만나야 조화로움을 완성할 수 있다.

 

성인은 무형과 무위에서 노닌다- 성인은 명예의 주인이 되지 않고, 모략의 곳간이 되지 않으며일의 책임자가 되지 않고, 지략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형체 없이 숨어있고, 흔적없이 다니며, 조짐없이 노닌다. 福복의 선봉이 되지 않고 재앙의 근원이 되지 않으며, 허무에서 몸을 보존하고 부득이 할 때만 움직인다. 복을 바라는 사람이 간혹 재앙을 당하기도 하고,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 간혹 해를 입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한 자가 편안한 근원을 잃으면 위태롭게 되고 아무일도 하지 ㅇ낳고 다스리는 자가 다스려지는 근원을 잃으면 혼란해진다. 별은 하늘에 펼쳐져 있으면서 빛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의義는 덕에 펼쳐져 나타나기 때문에 살마들이 그것을 주시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리키는 별이 움직이면 궤적이 남게되고 , 사람이 주시하는 의가 행해지면 자취가 남게 된다.

 

별이 움직여 궤적만 남게 되면 비난하는 말이 생기고, 의를 행하여 자취만 남으면 논란이 생긴다. 그러므로 성인은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속에 총명함을 감추고, 무위로 자취를 숨기는 것이다. 용맹한 왕자 경기慶忌는 칼에 찔려 죽었고, 활을 잘 쏘는 예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몽둥이에 맞아 죽었고, 용맹한 자로는 위나라에서 젓갈로 담아져 죽었으며, 달변가인 소진은때문에 죽었다. 

 

성인은 비난받을 행동을 하지 않지만 남이 자기를 비난해도 미워하지 않으며, 칭찬받을 덕을 닦지만 남이 자신을 칭찬해 주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재앙이 오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재앙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복이 반드시 오도록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복을 물리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재앙이 닥쳐도 자신이 요구하여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곤경에 빠져도 걱정하지 않고, 복이 다가와도 자신이 요구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일이 잘 풀펴도 자랑하지 않는다. 화복이 닥치는 것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가로이 거처하면서도 즐기고, 무위하면서도 다스린다. 성인은 이미 가지고 잇는 것을 지킬 뿐 얻지 못할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얻지 못할 것을 추구하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마져 잃기 때문이다. 

 

성인은 추한 것을 버리려는 마음이 없어도 마음에 추함이 없고, 아름다운 것을 취하려 하지 ㅇ낳아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사 지낼 때는 부모를 생각할 뿐 복을 구하지 않고, 손님을 접대할 때도 공경을 다할 뿐 덕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구하지 않는 사람이 라야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잇는 사람은 공적인 도리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고 사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존귀하다고 칭하는 것이지 어질다고 칭하지 않는다. 큰 땅을 소유한 사람은 일정한 방법은 있지만 권모술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명하다고 칭하고 지혜롭다고 칭하지는 않는다. 안으로는 포악한 일로 백성에게 원망을 듣는 일이 없고, 밖으로는 어진 행실로 제후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없으며, 상하의 예가 계승되어 서로 배반하지 않는다.

 

그러니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막연해서 보지 못한다. 이것을 바로 무형에 감춘다고 하는 것이다. 무형에 감춘것이 아니라면 어찌 드러나지 않겠는가?

 

군자는 행실을 닦으면서도 善선이 소문나지 않도록 하고, 보시를 하면서도 인仁이 드러나지 않게한다. 그러므로 선비는 선을 행하되 선의 유래를 알지 못하고, 백성은 충분히 이익을 누리면서도 이익의 출처를 알지 못한다. 그러하니 무위하면서도 저절로 다스려진다. 선이 드러나면 선비는 명ㅇ케를 다투고 이익의 근원이 있으면 백성이 공을 다툰다. 두 가지 다툼이 생기면 비록 어진 사람이라도 다스릴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선을 행하여도 자취를 감추고 인을 행해도 이름을 감춘다. 

 

내면을 고요하게 유지하라-

천하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제후의 나라를 잃지 않고,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신하의 집안을 잃지 않는다. 집안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신의 몸을 잃지 않고, 몸을 닦을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마음을 잃징 낳는다.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살마은 반드시 본성을 어그러지게 할 수 없고, 본성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도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광성자가 말하기를 "내면을 신중하게 지키고 외면을 두루 차단해야 한다. 지식이 ㅁ낳으면 해가 될 뿐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라. 고요하게 정신을 유지하면 형체도 스스로 바르게 될 것이다. "라고 햇다.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것을 아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주역>ㅇ[산,ㄴ "주머니 끈을 묶듯이 하면 허물도 없으며 칭찬도 없으리라"라고 했다. 

 

바른기운과 나쁜기운 

성인은 마음이 욕망을 이기고, 보통사람은 욕망이 마음을 이긴다. 군자는 바른 기운을 행하고 소인은 나쁜 기운을 행한다. 안으로 본성에 편안하게 의지하고 밖으로 의에 맞으며, 이치에 따라 움직이고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바른 기운이다. 맛있는 음식을 중시하고, 좋은 소리와 여색에 바지며, 기쁨과 노여움을 드러내고 뒷날의 근심거리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나쁜 기운이다.

 

나쁜 것과 바른 것은 서로를 상하게 만들고 욕망과 본성은 서로를 해치는 것이므로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가 존재하면 다른 하나는 없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망을 줄이고 본성에 따른다.

 

눈은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고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좋아하며, 입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이러한 것들을 접하면서 좋아하기만 하고 이익과 해로움을 모르는 것이 욕망이다. 먹는 것이 몸에 편아하지 않고, 듣는 것읻 도에 합치되지 않으며, 보는 것이 본성에 편안하지 않으면 이 세가지 감각기관이 서로 다투게 되는데 , 이것을 의로 제어하는 것이 마음이다. 

 

하나로 집중하라-장사하는 사람이 벌여놓은 일이 많으면 가난하게 되고, 장인이 기술이 많으면 곤궁하게 된다. 그러므로 큰 나무는 가지가 해를 입고, 큰 물은 깊은 곳에 해가 닥친다. 지혜만 있고 술수가 없으면 비록 구멍을 내도 통하지 않고, 백가지 기술이 있어도 한 가지 도가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지킬수가 없다. 

 

@재주가 많으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있는 반면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다. 재주가 많으면 하나에 마음을 쏟지 못하듯이 많은 일을 번거롭게 벌여 놓으면 정신이 산만하게 될 것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한 우물을 파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 성리학에서는 정신을 하나로 모으고 다른곳에 흔들리지 ㅇ낳는 것을 '敬경'이라고 한다. 주자는 이것을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고 불렀다. 

 

즉, 정신을 하나의 중심으로 모아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학문을 할 때는 학문에 집중하고 일을 할 때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경의 상태다. 이처럼 어떤 일에서나 하나에 집중해서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

완전한 전쟁은 먼저 승리한 뒤 싸우고, 실패한 전쟁은 먼저 싸운뒤에 승리를 구한다. 덕망이 비슷하면 군대가 많은 자가 적은 자를 이길 것이고, 병력이 비슷하면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이길 것이며, 지략이 비슷하면 술수가 뛰어난 자가 술수가 없는 자를 사로잡을 것이다. 무릇 전쟁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조정에서 전쟁을 계획한다.

 

군주는 누가 더 현명한지, 장군은 누가 더 능력이 있는지, 백성은 누구 편이 될지, 나라는 누가 더 잘 다스리는지, 군수물자는 누가 더 많은지, 병사들은 누가 더 정예부대인지, 무기는 누구의 것이 더 좋은지, 장비는 누구의 것이 더 편안한지 등을 논의한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판세를 헤아리지만 승리는 천리 밖에서 결정된다. 

 

세 가지 위태로움-

세상에는 세 가지 위태로운 것이 있다. 덕망이 부족하면서도 총애를 많이 받는 것이 첫 번째 위태로움이요, 재능이 부족한데도 지위가 높은 것이 두 번째 위태로움이며, 스스로 큰 공적이 없는데도 많은 봉록을 받는 것이 세 번째 위태로움이다. 그러므로 일이라고 하는 것은 간혹 손해를 보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익이 되고, 간혹 이익을 보지만 그것이 손해가 된다. 

 

세상의 일은 새옹지마다-

일은 간혹 이롭게 하려고 하지만 마침내 해가 되는 경우가 있고 간혹 해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해가 상반되고 화복이 드나드는 문은 반드시 잘 살펴야 한다. 양호가 노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노나라 군주는 성문을 닫고 그를 잡아 오도록 했다. 잡는 자에게는 많은 상을 주고 잡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벌을 줄 것이라고 했다.

 

세겹으로 둘러싸고 포위하자 양호는 칼을 잡고 자기 턱을 찌르려고 했다. 문지기가 저지하며 말했다.

"세상은 지극히 깊고 넓어서 그대를 찾으려면 끝이 없을 것이오, 내가 그대를 보내 주겠소."

양호는 포위망으로 다가가 그들을 물리치며 칼과 창을 휘두르고 달아났다. 문지기가 그를 보내주자 도리어 문지기를 잡고 창으로 찔러 겨드랑이에 상처를 입혔다. 양호를 내보내준 문지기가 원망하며 말했다.

 

"나는 본래 그대와 친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대를 위해 죽을 죄를 무릅쓰고 보내주었는데 도리어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가? 그대가 이런 어려움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구나."

노나라 군주는 양호를 놓쳤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어느 문으로 나갔는지 묻고 담당관리를 시켜 문지기들을 잡아 오도록 했다. 상처를 입은 자는 큰 상을 받고, 상처를 입지 않은 자는 무거운 죄를 받았다. 이것이 이른바 해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이익을 본 경우다.

 

대화의 기술-

노나라 애공이 서쪽에 집을 더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천문과 점을 담당하던 사관이 서쪽에 집을 짓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일이라고 하자, 애공은 얼굴빛을 바꾸며 화를 냈다. 좌우의 신하들이 강하게 간언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에 애공은 스승인 재절수에게 물었다.

 

"내가 집을 더 지으려고 하는데 사관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니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세상에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서쪽에 집을 짓는 것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애공이 매우 기뻐하더니 조금 지나서 다시 물었다.

"세가지 성서롭지 못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선생이 대답했다.

"예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 첫번째 상서롭지 못한 것이요, 욕망을 멈추지 않는 것이 두번째 성서롭지 못한 것이며, 간언을 듣지 않는 것이 세번째 상서롭지 못한 것입니다."

 

애공은 아무말없이 깊이 생각하다 분연히 스스로 반성하고 마침내 서쪽에 집을 짓지 않았다. 사관들은 반대하는 주장으로만 멈출 것을 알았지 반대하는 주장을 하지 않고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지혜로운 사람은 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도를 얻고, 어리석은 사람은 도를 지키려다 길을 잃게 된다.

 

말을 잘 하는 아열兒說은 그 기술로 닫히고 막힌 일을 풀지 뫃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푼 것은 아니며 풀 수 없는 것은 풀지 않았을 뿐이다. 풀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푸는 사람과는 더불어 도를 논할 수 있다. 

 

도를 깨달은 사람의 행동-

도를 깨달은 선비는 밖으로는 사람들과 동화하지만 내면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밖으로 동화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들어가기 위한 것이고, 내면이 변하지 않는 것은 자기 몸을 온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면에는 일정한 지조를 지키고 있으면서 외면으로는 굽혔다 폈다, 자랐다가 수축했다, 쥐었다 펼쳤다하면서 사물의 변화와 함께 옮겨 가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이 성인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용龍처럼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애써서 하나의 절개만 지키거나 하나의 행동만을 밀고 나가면서 비록 무너지고 멸망해도 오히려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작은 만족만을 살필 뿐 대도大道에는 막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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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었던 책...

어느 명언을 찾다가 다시 찾게 된 책이다. 

군주와 정치에 관한 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하나 근본이 사람의 도리에 관한 말씀이 주되니 새겨야 할 말씀이 한가득이다. 

소중하고 귀한 글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렇듯 쓰면서 읽고 헤아리니 깊이 스며든다. 

몇며칠 이리 쓰며 읽는다.

허리가 싫다한다. 잃어서야 할 일이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이리 빠지면 문제가 되겠다.

더 적을 수 있었으나 그만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를 일굴 것을 명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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