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 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후웨이홍/이은미옮김/라이온북스

다림영 2023. 2. 2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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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주는 압박으로 번뇌하고 있다면 재빨리 원점으로 돌아오라.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불안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조화로움의 경지에 이를수 있다.

 

언제나 곧은 길로 나아가라. 곧은 길은 순리에 따르는 자연스러움이며,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올바른 이상에 부합함을 뜻한다. 이러한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로움, 전쟁, 모든 계략과 과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미래의 일로 괴로워하지 말라. 만일 그것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면, 지금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바로 그 이성으로 미래의 일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소멸은 그저 하나의 변화일 뿐이다.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은 우주의 본성이다. 이에 복종함으로써 모든 사물이 제대로 순환하며, 자고이래 줄곧 유사한 방식으로 순환을 거듭해왔다. 이는 끝없는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운명에서 비롯된 모든 것은 본성을 벗어나지 않으며 신이 명한 사물과 연관을 맺어왔다. 모든 사물이 이로부터 나오며 그 외에 필연적이 것이 있다. 그것은 우주 전체의 이익을 위함이며 당신은 그 일부분이다. 

 

많일 당신이 올바른 웥칙에 따르다가 모든 일을 이루지 못해도 짜증내지 말고 용기를 잃지말고 불만을 갖지도 말라. 실패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시작하면 되리라. 당신이 행한 대부분이 사람의 본성에 부합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악에 빠져들지 않음은 순전히 그 사람의 역량에 달려있다. 사람을 나쁘게 변화시키지 않는 사물이 어찌 한 사람의 삶을 나쁘게 변화시킬수 있을까?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우리가 그들과 형제라는 이유 때문에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때로 그들은 선악에 대한 무지함으로 인해 우리의 연민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잘못은 흑백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당신에게는 책을 읽을 만한 여가나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당신에게는 오만함을 저지하기에 충분한 여가나 능력이 잇고, 쾌락과 고통을 넘어설수 잇으며 헛된 이름에 대한 열망을 넘어설 수 있는 여기가 있다. 우둔하고 배은망덕한 사람들 때문에 전뇌하지 말며 그들에게 관심도 갖지 말라.

 

만일 당신이 선량함, 겸허함, 진실함, 이성, 침착함, 활달함 등을 얻었다면 이들이 변치않도록 주의하라. 그리고 이들을 잃었다면 서둘러 찾으라.

 

심지어 이루어질 희망이 없는 일에서도 늘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다른 모든 일에 재주가 없는 왼손이지만 말고삐를 잡는 일에서만은 오른손보다 더 뛰어나다. 줄곧 이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나쁜일이 닥치거나 좋은 것을 잃으면 당신은 신을 원망하고 이 불행 혹은 손실을 초래한 사람들을 질책하거나, 혹은 원인이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우리는 확실히 의롭지 못한 많은 일을 행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두고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대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량 범위안에 잇는 사물이 좋고 나쁘다는 확실한 판단이 섰을 때에만 지적하되 빈정거리거나 나무라는 태도를 취하지 말고 아무런 적의를 품지 말고 이야기하라. 

 

당신의 삶속에서 정의,,진리, 절제와 강인함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한다면, 한 마디로 마음의 자족보다 더 좋은 것을 찾는다고 가정한다면, 이 자족은 당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하에서 정확한 이성에 따라 행하게 만들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한다면 몸과 마음을 다해 그것을 향하고, 당신이 가장 좋다고 인식한 그 즐거움을 누려라.

 

인간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자신의 영혼 안에서 더욱 조용하고 안전하게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 쉴 수 있다. 영혼이 평온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특히 더 그렇다. 

 

모든 것에서 아름다운 사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 외부적요소 때문이 아니며, 찬양이 아름다움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하나의 사물을 좋거나 혹은 나쁘게 변회시킬 수 없다. 이는 물질적인것이나 예술 작품등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고 믿는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어떠한 찬사도 필요치 않다. 예컨대 법칙, 진리, 인애 혹은 절제 등도 그러하다. 

 

당신은 이러저러한 일을 보았는가? 그렇다면 일의 다른  일면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말라. 스스로를 단순화시켜라. 누군가 당신에게 해를 입히는가? 그는 자신에게도 해를 입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개의치 말라.

태초부터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고 당신의 운명에 들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당신의 인생은 짧다. 이성과 정의의 도움을 받아 현재를 이용하는 데 집중하라. 긴장을 늦추면서도 깨어 있으라. 

 

당신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라고 남도 이루지 못할 거라 여기지는 말라 . 그러나 남에게는 가능한 일이고 그것이 그의 본성에 맞는다면 당신 역시 이룰수 있는 일임을 생각하라. 

 

참 이상하다. 모두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훨씬 사랑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중시하고,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본인의 생각보다 더 중시한다...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보다 이웃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훨씬 중요시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오직 한 가지다. 정직하게 생각하고 의롭게 행동하고 속이지 말며 성정을 닦으라. 즉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필연적이고 정상적이고 동일한 원칙과 뿌리에서 기인한 일로 여기고 기쁘게 받아들여라. 

 

나는 보편의 이익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에게서 상을 받은 것으로 되었다. 나의 영혼으로 하여금 늘 이 점을 기억하고 선생을 결코 멈추지 않게 하라. 

 

아테네인에게 이런 기도가 있다. 비를 내리소서! 비를 내리소서! 제우스신이시여, 아테네의 경작자와 평원에 비를 내리소서" 우리는 기도를 하지 말거라 , 하려거든 이렇게 단순하고 고귀한 방식으로 해야한다. 

 

당신을 노엽게 하는 사람이 잇다면 먼저 이렇게 생각하라. 나와 그들 사이에 어던 관련이 있는가? 우리는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다.

어떤사람에게라도 합당하게 말하라. 가식적으로 꾸미지 말고 간단명료하게 말하라. 

이성의 세 번째 일은 실수와 속임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원칙을 지켜 정직하게 나아가면 마땅히 소유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키지 않는 일을 하지 말고 사회의 이익을 무시하지 말며 생각없이 움직이지 말라. 한눈팔지 말고 학문을 갖춘 듯한 거짓 외모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재잘대거나 분주한 사람이 되지 말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도덕경-

말할 수 있는 도는 항상 그러한 도는 아니고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음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이 있음으로 만물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늘 무심하면 그 오묘함을 보게 되고 늘 있고자 하면 그 껍데기를 보게 된다. 이 두가지는 같은 데서 나왔지만 이름을 달리하며, 같음을 일러 현(玄막막하여 종잡을 수 없음-역주)이라 한다. 현 중의 현은 모든 오묘한 것들이 생겨나는 문이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으되 그 가운데가 비어야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들되 가운데가 비어야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들되 그 가운데가 비어야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로운 것은 없음이 쓸모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말했다. 갖가지 재료로 마차를 만들지만 객차가 비어 있어야 사람을 태우고 물건을 실을 수 있고, 많은 공을 들여 도기를 만들지만 속이 비어야 물건을 담을 수 있으며 ,

 

힘들여 집을 짓지만 방이 비어 있어야 사람이 살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 즉 유형의 사물을 빌어 무형의 사물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누구도 반드시 어떤 삶을 살도록 운명 지어지지 않았다. 인생의 처지는 모두 자신이 만든 결과일 뿐이라!

 

나에게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있으면 대도를 행하며 오직 잘못 행할까 두려울 뿐이다 대도大道는 심히 평탄한데 백성은 지름길만 좋아한다.

 

-성공한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박학다식한 이가 있는가 하면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총명한 이가 있는가 하면 평범한 자질을 갖춘 사람도 있으며, 높은 신분을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 사람도 잇다. 요컨대 이들은 저마다 처지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근면함이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고단한 순회공연 속에서도 피아노 의자에 한 번 앉으면 열시간을 훌쩍 넘는 연습은 예사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처럼 열심히 하면 누군든 나만큼 성공할 수 있습니다. "

하늘의 도는 근면함을 권하며 , 근면은 바로 성공의 큰 길중 하나이다. 부지런한 노동없이 얻을 수 있는 값진 것은 세상에 없다.

땀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충분한 대가를 얻기 마련이다. 대부호 왕융칭은 이렇게 말했다. "수월하고 편안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모든 일은 반드시 힘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그 속의 오묘함을 진정으로 깨닫고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떤 성공이라도 고생을 근본으로 하며, 일하는 가운데 재능을 단련하고 경험을 쌓아야지만 도달할 수 잇다. 항상 노력하면 길은 자연히 열리는 것이다.

 

만물은 왕성하면 곧 늙으니, 이는 도가 아니라 한다. 도가 아니면 일찍 그친다.-지나치게 바른 성공은 불행의 시작이다. 성공은 일종의 습관이다.성공은 일종의 부담이다. 263

 

옛날에 도를 잘 행하는 선비는 미묘하고 도통하여 그 깊음을 헤아릴 수 없다. 무릇 알지 못하나 억지로 그 모습을 형용하려 한다. 조심함이 겨울에 강 건너듯하고, 신중함이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 같고, 엄숙함이 항상 손님 같다.

 

풀어짐이 얼음 녹듯 하고, 소박함이 나무 등걸 같고, 넉넉함이 골짜기 같고, 혼연함이 탁한 물과 같다. 누가 혼탁한 것으로써 이를 진정시켜 점점 맑게 할 수 있는가?

 

누가 안정한 것으로써 이를 움직여 점점 생기를 찾게 할 것인가? 도를 지키는 자는 가득 차는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이로써 능히 끝내고 새로 이룰 수 있다. -

 

-어수룩함과 안정함은 일부러 그러는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모습이다. 일을 명확히 이해하기 전에는 원래 안정이 필요한 법이다. 노자의 도는 자연에서 얻어지며,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인위적인 요령이 아니라 진실한 지혜이다. 자연의 마음으로 느껴야만 진정 [도덕경]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잘 안은 것은 벗어나지 않으며, 이리하면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도로 몸을 다스리면 그 덕은 참되고,도로 가정을 다스리면 그 덕은 여유가 있고, 도로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은 오래가고,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은 나라를 풍성하게 하고, 도로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은 천하에 두루 미친다. 

 

천지는 장구하다. 천지가 능히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능히 오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몸을 뒤로 하되 오히려 그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돌보지 않되 오히려 그 몸을 보존한다. 이는 그 사私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능히 그 사도 이룰 수 있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천지가 장구 한 것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오래도록 존잴하며 망가지지 않는다.성인은 천지의 도를 받드니 기꺼이 남의 뒤에 서고자 하나 천하를 이끌 수 있고 자신의 득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나 업적이 오래 남는다. 성인은 사사로움이 없어 오히려 큰 사사로움을 이룬다. 

'그몸을 돌보지 않는다'의 '몸'이란 비단 육신과 목숨뿐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한다. 

 

으뜸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능히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있으려 하니, 그러므로 거의 도에 가깝다.

 

있기는 능히 땅에 있고 , 마음은 능히 못처럼 깊고, 더불어 하기는 능히 착하게 하고, 말은 능히 믿음직하고, 정치는 능히 다스림으로 하고, 일은 능히 거뜬히 하고, 움직임에 능히 때를 맞춘다. 오직 다투지 않으니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발돋움하는 자는 오래 서지 못하고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 자는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드러나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인정받지 못하며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功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높은 덕은 덕이 아니라 하니 이로써 덕이 있다고 하고, 낮은 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니 이로써 덕이 없다고 한다. 높은 덕은 하지 않으니 인위적인 것이 없고, 낮은 덕은 억지로 행하니 인위적인 것이 있다. 높은 인仁은 억지로 행하지만 인위적인 것은 없고, 높은 의義는 억지로 행하여 인위적인 것이 있다. 높은 예는 억지로 행하지 그것에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강요한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를 덕이라 하고, 덕을 잃은 후를 인이라 하며, 인을 잃은 후를 의라 하고 의를 잃은 후를 예라한다. 무릇 예는 충忠과 신信이 얄팍해진 것이며 혼란의 시작이고, 먼저 아는 것은 도의 화려함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그런 까닭에 대장부는 그 두터움에 거하며 얄팍함에 머물지 않고 그 실속 있음에 거하고 화려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천지는 어질지 않으니 만물을 추구(지푸라기 개)로 여기고, 상인은 어질지 않으니 백성을 추구로 여긴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구나! 비어있어도 쭈그러들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나온다. 말이 많을 수록 궁해지니 중中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성인은 항상 사람을 능히 구원하여 사람을 버리지 않고, 항상 만물을 능히 구원하여 만물을 버리지 않는다. 이를 밝음이 엄습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자원이다.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근본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를 알더라도 크게 미혹되지 이를 중요하고 오묘하다고 말한다. 

 

큰 원한을 품었다 해도 반드시 약간의 원한은 남는 법이니, 어찌 선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빚문서를 지니고 있어도 독촉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계약서만 살피고 덕이 없으면 거두어들이는 것만 살핀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고 항상 선과 사람이 함께 한다. 

 

가는 것을 잘하면 바퀴자국을 남기지 않고, 말을 잘하면 탓하거나 나무람이 없으며, 헤아림을 잘하려면 묘책이 필요 없고, 닫기를 잘하면 빗장이 없어도 열 수 없고, 매듭을 잘 지으면 끈이 없어도 풀수 없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뚜렷한 실수가 없으며, 말을 잘하는 사람은 뚜렷한 허점이 없고,

계산을 잘하는 사람은 계획이 필요없고, 닫기를 잘하는 사람은 빗장이 없어도 열 수 없고, 제약을 잘하는 사람은 끈을 쓰지 않아도 풀수 없다. 

 

"가기를 잘한다(善行)"는 말이란 무엇일까? 도에 따라 행함, 즉 규율에 따라 일으처리함을 의미한다. '바퀴자국'이란 마차가 지나갈 때 남는 자국을 가르킨다.

고대에는 흙길을따라 마차가 왕래하다보면 길에 바튀자국을 따라 고랑이 생겼다.  마차를 몰 줄 아는 사람은 이 고랑을 따라 다니니 힘도 덜 들고 새로운 바퀴자국도 남기지 않았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한후 실시한 개혁 가운데 '차동궤(車同軌)'라는 조치는 두 마차의 바퀴의 거리를 일정하게 만들어 마차가 다니기에 편리하게 하려는 취지였다.

당시의 '차동궤'는 오늘날의 철로 넓이, 기차 바퀴 간격등과 같은 의미다. 민국 시대 산시성의 군벌인 옌시산이 거점을 확보한 방법중 하나가 바로 산시 지역의 철로를 좁게 만들어 외부로부터 기차가 들어올 수 없게 막아 병사의 진입을 차단 한 것이었다.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마차를 잘 모는 사람처럼 도에 따라 흐름에 순응하며, 억지로 행하지 않으므로 모든 일이 순조롭다. 

 

그것을 움켜쥐고 가득 채우려 하면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그것을 품고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금과 옥이 대청이 가득하면 능히 지킬 수 없으며, 부귀하며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긴다. 공을 이루고 이름을 세우면 몸이 물러나는 것, 이는 하늘의 도이니라.

 

노자가 말했다.(도는 늘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니) 장차 움츠리고자 하면 반드시 그것을 펼치고 ,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그것을 강대하게 하고, 장차 폐하려 하면 반드시 잠깐 그것을 흥하게 하고 장차 빼앗으려 하면 반드시 준다. 이 모두가 소(小)로 대(大)를 보려는 징조이다. 

 

많은 사람이 이말을 처세의 지략이나 심지어 계략으로 이해하지만, 노자는 결코 간교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억지스러운 지략을 가볍게 보아"지혜가 있으니 큰 속임이 있다"고 했고,

심지어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으리라!"고까지 말했다. 많은 번거로움이 사람의 잔꾀에서 비롯되었으니 [삼십육계],[후흑학]과 같은 쓰레기로 머리를 채우느니 마음을 비워 도를 깨우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어려운 것을 도모하려면 쉬운것에서 시작하고, 큰일을 하려면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라.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 이루어지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사소한 데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늘 큰일을 하지 않으므로 그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올바른 관리는 위엄을 뽐내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노하지 않고, 능히 적을 이기는 사람은 다투지 않으며,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그의 아래가 된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사람을 쓰는 힘이라 한다. 이는 하늘의 도에 부합하여 예로부터 지극히 높은 방법이다. 

비움에 이르기를 극진히 하고 고요함 지키기를 참답게 하라. 만물이 다 같이 일어나니 나는 이로써 돌아가는 것을 본다.

무릇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각각 그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함이라하고 고요함을 본성으로 돌아감이라 한다. 본성으로 돌아감을 늘 그러한 이치라 하고, 늘 그러한 이치를 밝음이라 한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움직이면 흉하다. 

 

그 수컷을 알면서 그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시냇물이 되니 , 천하의 시냇물이 되면 항상 그러한 덕이 떠나지 않아 갓난아이로 되돌아간다. 그 밝음을 알면서 그 어두움을 지키면 천하의 법이 되니, 천하의 법이 되면 항상 그러한 도에  어긋나지 않아 무극으로 되돌아간다.

그 영화를 알면서 그 욕된 자리를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되니,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항상 그러한 도가 넉넉하여 통나무로 되돌아간다. 통나무가 쪼개지면 그릇이 되고, 성인이 이를 쓰면 우두머리가 된다.그러므로 큰 다스림에는 분할이 없다. 

 

- 노자가 말했다. 성인의 의지가 굳건하지만 태도가 겸손하여 천하의 작은 시냇물과 같다. 그의 마음도 작은 시냇물과 같아 순결한 본질을 떠나지 않으니 갓난 아이처럼 욕심이 적다. 성인은 마음이 선량하지만 종종 검을 얼굴로 단장하니 천하의 경계선같다. 그의 마음도 경계선 같이 치우침이 없다. 성인의 품성이 고상하지만 명성을 탐하지 않으니 천하의 깊은 골짜기와 같다.

 

그의 마음도 깊은 골짜기와 같이 넓디 넓어 진실하고 순박함으로 돌아간다. 그의 진실하고 순박한 품성은 자연히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가치관이 비슷한 인재는 필연적으로 성장하니 성인은 이들을 우두머리로 삼는다. 이리하여 천하의 정치가 자연히 진실하고 순박한 품성을 잃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하나고 껴안고 서로 떠나지 않을 수 있는가? 기를 집중하여 지극히 부드럽게 하여 갓난아이가 될 수 있는가 마음의 거울을 깨끗이 하여 어떠한 티끌도 없이 할 수 있는가?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무위로 할 수 있는가? 하늘의 문은 여닫히는데 암컷처럼 할 수 있는가? 밝음이 사방에 이르는데 無知할 수 있는가?

 

- 노자가 말했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서로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마음을 가라앉혀 갓난아이처럼 욕심을 적게 할 수 있는가? 잡념을 없애 마음에 티끌도 없이 할 수 있는가?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 사사로운 지혜를 쓰지 않을 수 잇느가?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겸손과 신중을 유지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통찰 할 수 있을 때 지혜와능력을 뽐내지 않을 수 있는가?

노자는 여섯가지 기준을 열거했다. 만일 이 모두를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아'의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때로 어떤 부분은 실천에 옮길 수도 잇지만 매순간 모든 기준을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다.ㅣ일반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일 수록 무아의 상태에 있는 때가 많다. 

 

노자가 말했다. 다채로운 색깔은 눈을 상하게 하고, 감동적인 소리는 귀를 상하게 하며, 풍성한 음식은 입맛을 버리게 하고, 달리며 하는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진귀한 물건은 나쁜 행동을 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마음속의 고요와 즐거움을 추구하며 육체의 향락을 탐하지 않는다.

 

이치는 간단하지만 인생의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뒤에야 비로소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세상 사람이 모두 신선이 좋다지만 오직 공명功名만은 잊을 수 없다"고 했던가.모든 사람이 소탈하고 경쾌한 삶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왜일까? 공명과 재물에 연연하고 얽매이며 억눌리기 때문이다. 공명과 재물을 차지해야만 성공한 인생이고, 공명이 높을 수록 인생도 아름답고 윤택하다고 흔히 생각한다.

 

노자는 사사로운 마음과 탐욕이 강한 사람은 천하를 이끌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그러나 진정 '나라를 내 집처럼 여기고','남을 자신처럼 여기는'사람은 찾기 어려우니, 만일 찾는다면 자격이 있든 없든 천하를 다스리는 위치에 앉아야 할 것이다. 

 

'제 몸처럼 천하를 귀히여긴다. '제 몸처럼 천하를 사랑한다.'는 노자의 말은 결코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하고, 공을 위해 사를 돌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공평公平이라는 두 글자를 강조한 말이다. 마치 하늘에서 비가내려 땅이 촉촉해지면 당신의 땅도 윤택해지고 당신의 땅이 남의 땅보타 크면 윤택한 부분이 또한 더 많아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공을 위해 사사로움을 돌보지 않는 것은 빗물이 다른 사람의 땅에만 내리고 자신은 한 방울도 적시지 않는 것과 같으니 자연스럽지 못하다. 

 

 

노자가 말했다. 상사는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사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하사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그들이 웃지 않으면 도라 칭할 수 없다. 

도에 대한 태도에 따라 노자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상사이다. 대락 행동가라 말할 수있는 부류다. 이들은 도를 들으면 곧 부지런히 행하는데 , 타고난 소질이 특별해서 듣자마자 이해하고 배우자마자 할 줄 알고, 쓰자마자 효과가 날까? 물론 아니다! 사물은 저마다 규율이 있는데 이 모두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 까? 사람의 일로 말하자면 각각의 직업마다 저마다의 도가 있으니, 모든 도에 정통한 사람이 어찌 있겠는가?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고,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하게 보인다.

-노자가 말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굽은 것 같고 평탄한 도는 험난 한 것같다. 

밝은 도가 왜 어두운가? 경쟁사회에서 성공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반드시 어둠 속에서 모색해야만 먼저 그 출구를 찾을수 있다.

 

나아가는 도가 왜 굽었는가? 붐비는 사회에는 곳곳에 인위적인 관문이 놓여 있으니, 반드시 갖가지 장애를 넘어야만 순조롭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평탄한 도는 왜 험난한가? 발전하는 사회속에서 시대에 적응하는 일은 필수적인 요구이다. 이는 곧 자신의 관성과 사상적 결함을 극복하고 낡은 사상으로부터 새싹을 틔워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성공으로 가는 길위에서, 당신은 때로 객관적인 환경으로부터, 때로는 타인으로부터, 때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어려움과 마주칠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당신의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다. 어려움의 뒹는 종종 놀라운 발견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한 유명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난제에 부딪쳤을 때 나는 곧 새로운 발견을 하리란 사실을 알게 된다. "

 

뜻이 있는 사람에게 어려움은 투지를 북돋우는 유익한 벗이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환경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더욱 용감해진다. 

나폴레옹의 아버지는 오만하지만 가난한 코르시카의 귀족이었다. 아버지는 나폴레옹을 브리엔의 귀족학교에 보냈는데 ,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두 그의앞에서 부유함을 뽐내며 그의 가난을 조롱했다. 그들의 안하무인격인 놀림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폴레옹으로서는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5년이나 이곳에서 공부하며 괴로움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그만두겠다며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이 외국아이들의 조롱을 견디느라, 우리집의 가난한 형편을 해명하느라 저는 지쳤어요, 그들이 저보다 나은 것이라곤 돈밖에 없어요. 고상한 사상이라면 그들은 ㄹ제 발끝도 따라오지 못해요. 부유하고 오만한 사람들 속에서 이렇게 굴욕만 당해야 하나요? 이런 시간을 몇년이나 지속해야 하나요?"

 

아버지는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확실히 가난하다. 만일 네가 평생 저들엑 이런 조롱을 받기를 원치 않는다면 반드시 그곳에서 공부해야 한다."

 

그렇다! 5년을 견디든지, 평생을 견디든지 해야 한다. 둘 중에 나폴레옹이 선택한 것은 5년을 견디는 것이었다.

그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5년동안 그는 모든 것을 견뎌냈다. 계속되는 조롱, 굴욕, 무시가 그의 성공을 향한 결심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는 남몰래 생각했다. 이 머리 없고 오만한 자들을 발판 삼아 능력, 부, 명예와 지위를 거머쥐겠노라고 말이다. 

 

성과물은 늘 노동 뒤에 오듯, 나폴레옹의 인내는 마음의 고통을 견디게 하고 이에 힘입어 비범한 의지를 품게 했다. 

훗날 나폴레옹은 하급군관으로 군에 들어갔다. 동료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여자와 도박에 빠져 지냈지만, 나폴레옹은 작은 체구 때문이었는지 아름다운 여자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독서는 숨쉬기처럼 자유롭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원하는 책이라면 돈을 들이지 않고 도서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의미없는 책은 읽지 않았다. 늘 미래에 이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골라 읽었다. 전공 서적뿐만 아니라 계몽사상가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장 자크 루소의 사상에 서 큰 영향을 받았다. 

 

노자가 말했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서로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마음을 가라앉혀 갓난아이처럼 욕심을 적게 할 수 있는가?잡념을 없애 마음에 티끌도 없이 할 수 있는가?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 사사로운 지혜를 쓰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겸손과 신중을 유지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을 때 지혜와 능력을 뽐내지 않을 수 있는가? 

노자는 여섯가지 도덕기준을 열거했다. 만일 이 모두를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아'의 성인의 경지에 이른것이다. 대로 어떤 부분은 실천에 옮길 수도있지만 매순간 모든 기준을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다. 

 

노자가 말했다. 다채로운 색깔은 눈을 상하게 하고, 감동적인 소리는 귀를 상하게 하며 , 풍성한 음식은 입맛을 버리게 하고, 달리며 하는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진귀한 물건은 나쁜 행동을 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마음속의 고요와 즐거움을 추구하며 육체의 향락을 탐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은 밝고 밝은데 나만 홀로 아둔하다. 세상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만 홀로멍청하다. 세상 사람이 모두 쓰임이 있는데 나만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다. 나 홀로 남과 다르니 덕의 어미(德母)를 귀히 여겼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눈부시게 빛나는 데 나만 오직 주목을 끌지 못하고 , 다른 사람은 모두 도를 말하는데 오직 나만 침묵을 지키며 , 모두 총명한데 오직 나만 우매하고 아둔하다. 내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것은 내가 온 마음으로 도를 구하기 때문이다.

 

'덕모'는 즉, 덕의 어미란 말이다. 덕은 도에서 났으므로 덕의 어미란 도를 가리킨다. 노자의 글은 원래 생동감이 넘처 시냇물처럼 막힘이 없이 자연스러우며, 특히 비유에 능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고문을 배우기란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그의 글이 내뿜는 오묘함을 충분히 맛보기는 쉽지 않다. 

'세상사람들이 밝고 밝다'라는 것은 모든 이가 주목받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어째서 나서기를 좋아할까?주로 자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도를 아는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또렷하게 알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다. 장자가 말했든 세상사람이 모두 칭찬해도 우쭐하지 않고, 세상 사람이 모두 비난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자신을 아는 일은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며 철학의 출발점이다.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비로소 이세상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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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번 읽어서 어찌 몸으로 익힐 수 있을것인가 한다. 

그러나 때마다 빌리거나 책을 구입하여 옆에 끼고

몇년씩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명리학처럼 

눈에 반만이라도 들어온다면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어제보다 몇발자욱 앞으로 나아간 내가 되고

일년전보다 그래도 몇계단 올라선 모습이면 된 것이겠다.

그러니 저러니 해도 

이 모든 욕심조차 욕심이니

이런것들을 내려놓고 유유한 때가 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리라.

사람의 욕심은 참으로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또 그것을 위한 공부를 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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