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어느 가을날

다림영 2014. 11. 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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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라는 이름을 지닌 희고 순한 개에 관한 노래를 듣게 되었다. 가족의 일원으로 즐거움을 함께 하던 백구는  새끼를 낳다가 어이없는 슬픈 종말을 맞게 된다. 어린 날 애틋한 추억이 실린 잔잔한 음률을 듣다보니 남루하고 가난하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얼마동안 한두 마리의 개를 키워 여름이면 개장수에게 팔아넘기곤 했다. 아버지의 수입이 변변치 않으니 올망졸망 다섯 남매의 찬값이라도 손에 쥐어야 했을 것이다.
내게는 남동생이 넷이나 있는데 그중 큰 동생은 다른 동생들보다 마음이 여린 편이었다. 동생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벗어두지도 않은 채 개집 앞으로 달려가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기쁨의 조우를 나누곤 했다.
‘해피’는 자신을 사랑해준 동생을 누구보다도 따랐다. 어느 날 해피가 사라졌는데 어머니가 개장수에게 팔아넘긴 것임을 알게 된 동생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종일 눈물을 쏟았고 끼니도 거르며 기절한 듯이 긴 시간 옴짝 달싹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한 마리의 강아지를 구해왔다. 그때에 강아지는 태어 난지 며칠 안 되었는지 어미의 젖을 찾느라 밤새 칭얼거리며 보채던 소리가 우리의 잠결을 흔들어 놓곤 했다.

우리가 쑥쑥 자라는 동안 많은 개들이 우리집을 거쳐갔다. 해피, 메리, 독구 라 불리웠던 그들은 가족처럼 환하게 지내다가도 여름만 돌아오면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동생은 때마다 끼니를 거른 채 이불을 뒤집어써야 했고 그럴 때마다 한 마리의 희거나 검거나 누렇거나 검은 반점이 있는 강아지들이 우리 집 부엌으로 깨알 같은 울음을 달고 입성했다. 이별의 아픔도 잠시 큰 동생은 어머니의 죄상은 까맣게 잊고 먹다 남은 김치찌개 혹은 된장 찌개 등으로 밥을 말아 먹이며 떨고 있는 강아지애지중지 보살폈다.

언젠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한 한 마리의 개가 있었다. 그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냉정했던 어머니는 동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달랑 한 마리만 남긴 채 모두 팔아버렸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마도  맏이인 내게는 동생들에게 물려주어도 충분한 청색의 새로운 옷이 입혀져 있거나 큼직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을 것이다.
아득하기만 한 그 시절 고물고물 부뚜막 옆에서 제 어미의 젖을 파고들던 어린새끼들의 모습과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고 안아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린 우리들이 보이는듯하다.


꽃이나 나무 밭작물이 담장이던 우리 동네, 집집마다 한두 마리의 개들이 집의 수문장이었다.
우리 집은 신작로 바로 앞이었다. 깊은 밤 둥그런 달만 훤히 떠올라도 동네 개들은 허공을 올려다보며 울부짖었고, 술에 취한 아저씨가 길을 걷다가 한마디 고함이라도 치게 되면 난리라도 난 듯 모두 컹컹 거렸다. 어린 잠결에도 또 누구네 아버지인가보다 하며 뒤척였고 먼 소리를 남기고 사위가 조용해지면 아득한 꿈결에 오르곤 했다.
그리고 어느 깊은 밤 세상이 말할 수 없이 고요하면 갑자기 그 밤에 정신이 들고 알길 없는 무서움이 깃드는데 그날 낮에는 분명 개장수가 나타나 동네의 개들을 대부분 데려간 것이다.

어느새 큰 동생도 쉰 고개를 넘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불철주야 고생을 하면서도 회사 옆에 버려진 터를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작물 한 보따리를 누나인 내게 가져왔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마치 농사가 천직인 듯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잘 키웠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릴 적 강아지를 돌보던 마음이 아직도 어딘가 남아 있는지 몸에 배어 있는 순하고 정성스런 마음이 지극하니 손길이 닿는 곳마다 애정으로 피어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부신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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