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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뭐 있어’

다림영 2015. 1. 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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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불 속에서 마냥 누워 있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11, 여기서 무너지면 일 년 이 바로 서질 않을 것이다. 스트래칭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 솔잎차를 만들어 보온병에 담았다. 나보다 늦게 일어난 옆 지기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며칠 전부터 언지를 해 둔 터였다.

 

길은 어두웠다. 다행히 십 오년이 넘도록 끌고 다닌 차를 바꾼 것은 얼마나 잘 한 일일까. 만약 옛날의 그 차였다면 엄동설한에 산 밑까지 가는 길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문도 히타도 엔진도 등도 뭐 하나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맹추위가 몰아친 2015년 첫날 ,우리는 날렵한 새 차와 함께 편안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산 입구에 다다르니 어둠을 헤치고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 강아지를 이불로 동여맨 아가씨, 나이든 어르신, 사춘기소년, 그리고 청년, 아저씨 아줌마 들 가족끼리 오르는 이들도 꽤 있었다. 모두가 두런두런 이야기웃음꽃을 피우며 때로 숨 가쁘게 올라가고 있었다.

새해 첫날 가까운 산에 올라 첫 해맞이를 하는 일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불속 따뜻함에 안주하여 집을 나서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을 보면, 춥고 어두운 산길을 헤치고 성큼성큼 정상을 향해가는 단단한 의지는 올 한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둘레길만 휘적휘적 걸어 다니고 한동안 등산을 하지 않았더니 턱밑까지 숨이 차올랐다. 굽이굽이 험한 산길도 아니고 가파른 바위 길도 아닌 그저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넉넉한 오름 길이었다. 시간에 쫒기는 오랜만의 산행이어서 더 힘들게 느껴졌을 것이다.

 

칼날 같은 바람 탓인지 해 뜨는 것을 보지 않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지런한 이들이 존경스럽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부지런하지 못하고 한 발 늦지만 눈부신 새해를 맞을 수 있경우도 있으니 인생은 묘한 것이다. 좋은 일이 꼭 좋은 일만을 불러오지 않을 수도 있고 좋지 않았던 시작도 괜찮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숨 가쁘게 정상에 오르니 어디서 나온 사람들인지 향 좋은 커피를 타 주고 있었다. 해도 올라오지 않은 그 아침 마음속에는 이미 햇살의 온기가 퍼지고 있었다. 나의 보온병에도 뜨거운 차가 담겨져 있었지만 새해의 덕담까지 얹어 얻어먹는 커피 맛이란 말할 수 없이 반갑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 순간에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짐작 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은 지났지만 무엇 때문인지 해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한쪽에 주저앉아 구름 때문에 보기 힘들 거야하며 주절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 내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정상의 기온은 장갑을 낀 손조차 감각이 없을 정도였지만 우리는 기다리기로 했다.

해맞이하기에 좋은 자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삼십분 정도 기다렸을 즈음 사람들이 수런거렸다. ‘올라 온다 , 올라 온다 ...’ 카메라와 핸드폰들은 일제히 해가 뜨는 방향으로 세워지며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나는 큰 나뭇가지 위에 올라갔다. 카메라 셔터를 한 번 눌러보았다. 아 뿔 사! 이런! ....카메라 켜지는 화면으로 건전지가 다 되었다는 자막이 흘렀다. 저녁에 충전상태를 분명 확인했는데 이런 낭패가 없었다. 작은 카메라도 하나 챙겨두었는데 가방에 넣지를 않았고 오래된 나의 핸드폰의 충전상태도 촛불처럼 가물가물 거렸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건전지가 급속도로 방전될 수 있다는 얘길 들은 적 있었지만 이렇게 될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옆 지기는 스마트 폰을 쓰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나 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2015년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옆지기의 스마트폰 밖에 없었다. 해는 솟아오르고 있었고 마음만 급해 만지다 보니 카메라표시는 사라져버렸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서 있던 학생에게 물어 겨우 찍을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찍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마음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하는 자세로 11일 첫날부터 호된 가르침을 받았다. 쓰디 쓴 마음을 달래며 을미년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따뜻한 이불 속을 빠져나와 산 정상에서 새해의 다짐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내려오는 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오래된 추어탕 집에서 그와 큰아이가 담배를 멀리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찾을 수 있어서 감사했고 15년 이상 된 차를 바꿀 수 있음에 감사했고 세 아이들 모두 착하고 잘 지내고 있어 감사했고 어머님 건강하시니 행복한 가족이라고 우리는 더없이 감사했다.

꿈나라에 있을 식구들의 추어탕까지 챙겨 돌아오는 순간 술 몇 잔을 걸친 그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인생 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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