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중에서-
“작가의 임무는 단순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것을 단순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라는 빌헬름 세퍼의 문장에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참되고 올바른 진리라면 뒤집어 놓더라도 끄떡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인 것은 그역도 참일 수 있어야 하니가. 셰퍼의 명제를 뒤집으면 이런 문장이 된다. “작가의 임무는 의미심장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것이다.”
헤세는 훌륭한 종교교육을 받은 자에게 문학은 위험하다고 본다. 문인은 빛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명백한 경험을 통해 빛에 대해 알아야 하며, 빛을 향해 창문을 활짝 열고 있어야 하는 존재니까. 그렇지만 헤세는 작가가 스스로를 빛의 전달자나 혹은 빛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조그만 창문은 닫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세는 자신을 추앙하는 외국의 젊은 문인에게 자신을 되고 싶고 닮고 싶은 모범이자, 추구할 가치가 있는 모범으로 간주하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진리의 투사, 영웅이자 횃불드는 사람, 신의 열광한 빛을 가져다주는 사람, 빛 자체로 생각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것은 도를 넘은 행위이자 소년같은 이상화일뿐만 아니라 원칙적인 오류이자 실수이기 때문이다.- 홍성광
본문 중에서
누구와 사귀든 개의치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주변의 자기와 마음이 잘 맞는 이를 고르고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나아가서 생활방식이나 옷 입는 방식, 성격이나 보다 중요한 생활습관까지 따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책의 세계에 대해서도 독자적이고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하고,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취향과 필요에 따라 읽을 거리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선 아직 너무나 심한 타의와 태만이 만연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대등한 두 권의 책 중에서 하나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어쩌다가 유행을 타고 수십만 권씩 팔리는 일이 어찌 해마다 되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떤 책의 가치를 따질 때 그 책의 유명도나 인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p49
의무감이나 호기심으로 단 한 번 읽은 것으로는 결코 진정한 기쁨이나 보다 깊은 즐거움을 얻을 수 없으며,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금방 잊히는 긴장을 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어떤 책을 처음 우연히 읽고 보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얼마 뒤에 잊지 말고 꼭 다시 읽어보라! 두 번째 읽을 때 책의 핵심이 드러나고, 순전히 표면적인 표현적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내적인 삶의 가치, 서술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힘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경탄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두 번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값이 싸지 않더라도 반드시 사도록 해야 한다. p51
평생 동화책만 즐겨 읽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녀들에게 동화책을 멀리하고 못 읽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정된 형식이나 틀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과 마음의 요구를 따르는 자의 생각만이 언제나 옳다. 그렇다고 내가 온갖 것을 가리지 않고 다 읽는 이들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신문 쪼가리 하나라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뭐든지 계속 읽어대면서도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병적인 탐족가에게는 어떤 조언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의 경우에는 독서 방식이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 성격이 더 심하게 잘못되어 있어서 인간으로서도 열등하다. 아무리 세련된 독서법이라 해도 그런 사람을 쓸모있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예술과 문학 방면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소박하지만 사랑스럽게 독서법을 가꾸어 삶의 기쁨과 내적인 가치를 키워나갈 줄 아는 진지한 살마들이 충분히 존재한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온갖 비평에 주눅들어 귀 기울이기보다는 의연히 내면의 요구를 따르며, 유행이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을 충실히 충실하다면 좀 더 빨리 좀 더 확실하게 진정한 문학교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58
인생은 짧다. 저승에서는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고 해로운 일이다. 내가 이때 염두에 두는 것은 나쁜 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서의 질 자체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발걸음이나 호흡에서 그러듯이 독서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보다 풍부한 힘을 얻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는 보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자신을 잃어야 한다.. 문학사를 읽어서 우리가 기쁨이나 위안, 힘이나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없는 산만한 독서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 우리는 냉담한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소심한 학생이나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또한 피난민이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할 것이 아니라 호의를 품고 친구나 조력자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만약 내가 말한대로 한다면 지금 읽히는 책의 10분의 1정도밖에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열 배는 더 기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의 책이 전혀 팔리지 않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 작가들이 열 배는 더 적게 글을 쓰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세상에 해가 되지 않으리라. 말할 것도 없이 글을 쓰는 일이 독서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p121
진리를 뒤집어보는 건 언제나 유익하다. 한 시간 동안 내면의 그림을 뒤집어 걸어두면 언제나 유익하다. 사고가 더 경쾌해지고 착상이 더 빨리 떠오른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각배가 세상이라는 강물을 보다 수월하게 미끄러져 간다. 만일 내가 교사라서 수업을 해야 한다면 작문 같은 것을 시킬 학생이 있다면, 원하는 아이들에게 한 시간씩 따로 면담을 하며 이렇게 말하리라.
“얘들아, 우리가 너희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매우 좋은 거란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의 규칙과 진리를 한번쯤 그냥 시험 삼아 재미로 뒤집어보렴!”
심지어 어떤 단어의 철자를 하나하나 바꾸어보면 때로 교훈과 재미, 탁월한 착상의 놀랄 만한 원천이 생기기도 한다.
다시말해 그런 유희를 함으로써 사물에 붙은 꼬리표가 떨어져 나가고 그 사물을 새롭고도 놀랍게 우리에게 말해주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낡은 유리창에 엷은 색칠 놀이를 하다가 비잔틴 모자이크가 나오는 것이나 차 주전자에서 증기기관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분위기에서다. 우리는 바로 이런 분위기, 이런 정신자세, 세계를 익숙한 모습 그대로가 아닌 새롭고 더욱 의미심장하게 발견하려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의미 없는 것의 의미에 관해 말하는 저 작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p186
장자 , 열자와 맹자가 이야기 하는 중국의 스승과 현인은 격정가와는 반대였다. 그들은 놀랄만치 소박했고, 민중이나 일상과 가까웠다. 그들을 어떤 것에도 속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은둔하고 자족하며 살았다. 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에 우리는 번번이 놀라움과 기쁨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노자의 위대한 맞수인 공자는 체계를 세우는 자이며 도덕주의자요, 법치주의자이며 윤리의 수호자이다. 그는 고대의 현인들 중 그나마 유일하게 격식을 차리는 자이다. 그는 예컨대 때로 이런 모습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한다. “그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행하는 자가 아니던가?”
이는 내가 다른 어떤 문학에서도 유사한 예를 알지 못하는 평정심과 유머이며 소박함이다. 나는 다른 몇몇 경우에, 즉 세상사를 관찰할 때나 세계를 단 몇 년, 몇 십 년 만에 제패하여 완벽하게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발언을 들을 때도 가끔 그 구절을 생각하곤 한다. 그들은 위인 공자처럼 행동하지만, 그들의 행위이면에는 ‘그것은 안 된다’는 공자의 앎이 결여 되어 있다. p292
...기쁘고 풍요롭게
소박하고 단순하게...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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