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정원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이레

다림영 2014. 9. 1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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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도 이곳으로 도망쳐 온다. 목덜미는 햇빛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등은 피로하고 눈은 가물거린다. 정오가 될 때까지 노는 것처럼 가볍게 일하면서 원기를 돋울 생각이다. 나는 헛간에서 작고 다루기 쉬운 둥근 체를 갖고 나온다. 불쏘시개와 종이 한줌도 갖고 나온다. p150

 

이곳에 머물때면 거의 언제나 불을 지피곤 했다. 불 지피기를 좋아하는 내 마음의 유래는 여러 가지다. 어린시절 불을 피우는 일을 즐기던 것에서 희생물을 바치던 아벨 혹은 아브라함의 의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리라. 왜냐하면 모든 관습은 그것이 미덕이든 악덕이든 간에, 전생에까지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는 모두 특별한 의미를 띈다. 나의 경우에 불은 , 물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많지만 신에게 봉사하는 연금술적이며 상징적인 의식을 의미한다. 다양한 변화라는 건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므로, 나는 그때 사제가 되고 봉사자가 되어 의식을 치르며, 의식은 이행된다. 나는 나무와 잡초를 재로 변하게 하고 죽은 것들이 빨리 사라져 속죄하도록 돕는다. 그러면 내 안에서 스스로 명상하며 이 속죄하는 발걸음이 걸어나와 하나 속으로 되돌아 걸어간다. 신 앞에 나는 순종한다. 그렇게 연금술의 정련 과정을 거쳐 금속의 제물은 한 번은 불길을 거쳐 뜨겁게 달궈지고, 그 다음에는 차갑게 식혀진다. 화학 물질을 첨가하고 초생달과 만월을 기다린다. p152

 

그리하면 가장 고귀한 물질, 현자의 돌로 변화시키는 신성한 일이 금속에서 이루어질 때, 경건한 연금술사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똑같은 과정을 이행한다. 자신을 숭고하고 순수하게 만들며, 화학적인 변화 과정을 자신 안에서도 겪는다. 명상하고 깨어 있고 금식하면서, 그 의식이 끝날때까지, 며칠 후나 몇 주후에는 금속처럼 도가니 속에서 자신의 영혼의 독을 제거하고 감각을 순화하여 신비로운 합일을 이룰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p153

 

현명하다는 것은 현자들에게는 연금술이자 유희인 것이다. 세계가 거칠고 격렬한 충동에 지배되는 동안에도 그러니 우리는 겸허해지자. 가능하면 세계가 질주하며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도 저 영혼의 고요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옛사람들이 칭찬하고 노력했던 것이니, 우리도 그 선한 것을 따르자.159

 

제발 서둘러 세계를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갈 것이다. 주위에 뜨거운 한낮이 침묵을 지키며 무겁게 내려앉는다. 멀리 공중에서, 골짜기 깊숙한 곳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손수레가 굴러가는 소리, 가끔 불꽃이 탁탁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불길이 나무뿌리를 바싹 말리며 탐욕스럽게 갉아들어간다. 조용히, 그러나 무료한 기분은 없이 나는 땅에 무릎을 꿇고서 부드럽게 손으로 재를 모아 멋들어진 둥근 체를 채운다. 방금 전에 불에서 생겨난 그 재 속에 흙을 섞는다. 오랫동안 따스하고 축축하게 퇴비가 쌓여있던 땅바닥에서 서서히 발효하고 부패한 흙이다.

 

마구 섞인 그것을 흔들면, 체 밑으로 재가 된 흙의 고운 알갱이들이 쌓인다. 일부러가 아니라도 나는 그렇게 흔들며 서로를 하나가 되게 하는 또렷한 박자 속으로 빠져든다. 그 박자 속에서 결코 지치지 않는 기억은 다시 음악을 만들어내고, 제목도 작곡가도 모르는 곡을 나는 함께 흥얼거린다. p161

 

우리 인간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독으로 오염된 비참한 세상에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위에서 썩어가는 것들에 대항해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매번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쓰러져 누워 있는 복숭아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무언가를 잃어 버렸을 때 늘 그렇듯 다른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생각을 했다. 새로 나무를 심어야겠다. 쓰러진 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먼저 구덩이를 판 다음, 얼마동안 대기 속에서 비와 햇빛을 받도록 놔둘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거름, 썩은 잡초더미, 나무 태운 재를 섞은 비료를 줄 것이다. 그런 다음 어느날, 될 수 있으면 따스하고 온화한 날을 잡아 어린 묘목을 심을 것이다. p171

 

꽃잎이 가득 핀

 

꽃잎이 가득 핀 복숭아나무

모든꽃이 다 열매를 맺지는 않으나,

꽃들은 부드럽게 마치 장밋빛 거품처럼

하늘의 푸름과 구름 사이에서 반짝인다.

 

꽃잎처럼 생각도 피어오른다.

매일같이 수백 송이씩

피어나도록 두자, 사물이 되어 가는 대로 두자.

수확에만 매달리지 말자!

 

유희도 하고 순진무구하게

넘치도록 꽃잎을 피워보기도 하자.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너무도 초라하고

삶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으리니. p172

 

중국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같은 인물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복해서 나온단다. 젊은시절에 그 사람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직업을 갖기 위해 무언가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보살피며 살아간다. 그러다 조국애를 배우고 무엇보다 선조와 자손의 일을 염려하게 되지. 그는 열심히 일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 나서서 국가를 이끌어가는 일을 돕는다. 그러나 결국 나이를 먹게 되자 자신이 여전히 고독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서, 어느날 밤 집과 논밭, 아내, 하인들, 직무와 서책을 모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속으로 들어가 이슬과 꽃잎만을 먹고 살면서, 자신에게 붙어 있던 껍질을 모두 벗어던져 버린다. 그리고 나서 그는 불사의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된다.”

말을 마치자 아버지는 다시 두어 걸음 조용히 걸었다. 그의 흰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p247

 

“...우리는 거의 아는게 없지. 우리 시대는 그때와는 다르다. 더구나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신을 믿지 않아. 언젠가 우리는 그 때문에 몰락할지도 모르지.

..그리하여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놀라운 것임을 알려 주었다. 우리가 옛날보다 가난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우리는 어쩐지 갑자기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진짜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노인은 작은 화분을 들어올려 화초가 제대로 심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이란 도대체 뭐지요?”

한스는 주저하듯이 물었다.

소박함이란다.”

노인은 짧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 장난기 어린 어조로 덧붙였다.

신약성서에는 단순함이라고 씌어 있지.”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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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정원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마 어디 찾아보면 내게도 이 책이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줄을 그어가며 읽던 기억이 있다. 그의 글은 수채화 같아 편안하게 읽혀지곤 했다. 예전에는 문장을 읽기 위해서 읽었다면 이젠 전혀 다른 마음으로 읽는다. 해세의 소박한 삶을 지지하며 존경하며 한껏 마음을 열고 읽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해 낼 수 있을까 하며 젖어들곤 하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단순한 삶으로 걸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언제쯤 가능하게 될까. 마음 밭이나마 부지런히 그 작은 나무들을 심기로 했다. 언젠가 울창한 숲을 이루다보면 현실의 땅을 밟고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리라.

..아름다운 Michael Hoppe’의 음악을 들으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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