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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안톤슈낙/문예출판사

다림영 2014. 10. 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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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안톤슈낙/문예출판사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네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여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왔다 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듯한 순환 이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휠덜린(1770~1857:독일 서정시인)의 시. 아이헨도르프(1788~1857):독일 낭만파 민요시인)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 밤, 누구인가 모래 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이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제씨(諸氏)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 때.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다섯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 그녀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

 

하고 많은 날을 도회(都會)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불현 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지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葬儀行列).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 바이올렛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풀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滿月)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루트 함순’(1859~1952:노르웨이 작가. 1920년 노벨문학상 수상. 가난, 방랑, 노동이 그의 작품의 주제다) 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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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 나의 막내를 볼 때.

그 막내가 반장이 되었는데 그것이 아이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학부모인 내게 파도처럼 밀려왔을 때.

삼십이 멀지 않았는데도 어떤 형태이든 삶의 방향을 잡고 있지 않는 큰 아이를 볼 때.

 

어쩌면 나도 노인이 되면 그러할지 모를 일이지만 세상이 변했음을 모르고 예전방식만 고수하는 노인들을 만날 때.

예의 없는 소비자를 만날 때.

없던 주름을 발견했을 때. 작년모습과 또 많이 달라진 느낌을 받았을 때. 누군가 어머님하고 얘길 꺼냈을 때. 무릎에서 이따금 소리가 날 때.

 

어머니가 될 몸인데 예쁜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담배를 물고 있을 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걱정을 멈출 수 없다.

푸릇푸릇 상큼한 사춘기 소녀들이 화장을 하고 너무나 짧은 교복을 입고 거리에 침을 뱉으며 지나갈 때.

주인 잃은 강아지를 만날 때. 지치고 가엾은 눈길을 무시하고 매정하게 그냥 지나치는 나를 생각할 때.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접수를 받는 간호사가 인상을 쓰고 함부로 대할 때, 마음같아선 의사실로 바로 들어가 그녀의 친절하지 않음에 대해 폭로하고 싶었다.

스님행세를 하며 목탁을 두드리고 혼자 웅얼거리며 염불을 하는 듯 보이려 애쓰는 사람을 만났을 때.

진짜 스님께서 시주를 한 돈을 문을 나서자마자 헤아릴 때.

낯익은 교인이 들어와 절에 다니면 지옥 간다고 얘기할 때.

 

 

커피집에서 예쁜 커피잔에 커피를 내리지 않고 비닐과 프라스틱으로 된 용기와 종이컵을 사용할 때, 그것이 또 거리에 마구 버려져 있을 때.

음악이 흐르지 않는 카페 , 꼭 도깨비 시장 같은 카페 그리고 주인이 시장아주머니 같을 때 와 그녀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릴 때.

시장이든 어디든 남발되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와 그것이 사람들의 손마다 들려 있는 것을 볼 때.

미구에 어떤 모습이 불을 보듯 확연한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족을 볼 때.

세비를 올린다는 국회의원들의 소식을 들을 때와 공무원들의 연금 소식을 뉴스로 접할 때.

애지중지 물을 주며 키웠던 꽃이 병에 걸려 시들거릴 때 .

자식들을 결혼시키며 오가는 기막힌 얘기를 들을 때.

 

일자리를 찾아갔다가 나이가 많아 안되겠다는 소식을 전하는 남자의 얘기를 들어줄 때.

오늘의 소득이 한 삼천원 일 때.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파고들 때.( 깻잎을 따며 그것이 돈다발이었으면 참 좋겠다는 ..)

친구의 아이가 조금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옛날 핸드폰을 쓰고 있다. 문자를 열심히 보냈는데 상대방에게서 지원하지 않는 무엇이라고 다시 되돌아 올 때 . 그 수가 점차 늘어간다.

예쁜 접시를 사고 싶어서 몇날 며칠을 살피다가 정작 마음을 먹고 갔더니 딱 한 장만 남았을 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을 볼 때.

운전하다가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버스기사.

늦은 퇴근시간 전철안의 분위기. 무언가 고뇌에 젖어 창밖을 응시하는 사람이 없다.(모두 고개가 아래로 향하고 있다. 주변을 살피지 않는다. 오로지 스마트폰에만 정신이 가 있다. 정말 반가울 친구가 앞자리에 앉아 있었음에도 알지 못한다....)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자리에 집중하지 않으며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친구들을 볼 때, 이것은 마치 젊은 사람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로 막역하게 아는 사이지만 자신이 필요할 시점에만 얼굴을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 등을 돌리는 사람.

볼 때마다 약속을 남발하며 자신이 했던 얘기도 기억하지 못하며 또 같은 약속을 하는 이를 만날 때.

 

친구들과 함께 하는 페이지가 비어있는 것이 안쓰러워 무언가 남겨놓으면 너도 나도 들여다보지만 누구 하나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것처럼 자취는 남는데 좋아요 한번 누르지 않을 때, 누군가 눌러주기를 바라며 올린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렇게 인간미를 지닌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싶고 누군가 새로운 이야기를 올리면 얼른 도장을 찍어주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빠진다.

 

이러한 슬픔은 사실 슬픔이라기보다 잠시 지나가는 우울한 바람같은 것이다. 슬퍼한다고 변하지 않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며 때로 알 수 없는 미소가 찾아오기도 하는데 계절이 변하듯이 사람은 변하고 또 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문득 서늘한 바람결이 인다. 꼭 사람마음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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