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찢어진 바지 조각에 먼지가 쌓여 거기 걸어놓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무렵, 다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비교적 안전한 공구인 회전 벨트 그라인더였는데, 스웨터의 끝이 말려들어가면서 손가락이 비틀어져 버렸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그라인더가 옷을 잔뜩 휘감고 가슴에 턱 붙어 윙윙거리며 신음소리를 내는데, 마치 영화 ‘에이리언’에 나오는 괴물이 가슴에 달라붙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였다. 겨우 스위치를 찾아 끄고 한참을 승강이한 끝에 놈을 떼어낼 수 있었는데, 옷과 함께 말려들어가 비틀린 집게 손가락이 너무 아파 엉엉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금새 퉁퉁 부어오르는 손가락을 잡고 개울로 뛰어가 얼음을 깨고 담그나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듯하였다. 양동이에 얼음 섞은 물을 담아 손가락을 담그고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있는 동안, 후회하고 반성하고 분석하고 마음을 다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로부터 근 일년동안은 별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그것은 순전히 손가락 때문이었다. 부기가 여섯 달이 지나도록 빠지지 않았고, 통증은 근 일년이 가도록 남아 있었으며, 뻑뻑한 느낌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엔 단순히 비틀린 줄 알고 금방 나을거라 여겨 병원을 찾지 않아 몰랐는데, 몇 달 후 영 낫지를 않아 병원에 가보니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진 상태라고 했다. 그것도 모른 채 미련스럽게 계속 작업을 한 것도 한심한데, 어느 한군데 아픈 곳이 있는 동안에야 조심할 줄 아니 바보가 틀림없다.
목수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대장장이는 쇠를 다룬다.
대장장이는 연금술사와 끈이 닿아 있다. 목수는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나무꾼에 이를 뿐이다. 돌의 시대를 넘어 철의 시대를 거친 문명은 대장장이를 연금술사에서 기술자와 과학자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목수는 건축가와 예술가로 모습을 바꿀수는 있었지만, 나무를 다루는 한 목수는 목수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나무꾼은 현재의 삶에 뿌리박고 있지만 연금술사는 미래의 이상을 꿈꾼다. 물질과의 관계에서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체험을 지니고 있던 연금술사는 아마 심오한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수는 일상적인 체험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목수는 물질의 존재를 생각할 뿐 연금술사처럼 비의적인 세계를 갈망하지도 않는다. 간혹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목수가 있다 할지라도 그의 손은 늘 물질과 맞닿아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그리하여 인간의 평균적 삶에 근접해 있는 존재로서의 목수는 예수나 누군가가 그러했다는 것으로 비범한 인간으로 격상되는 법은 없다.
때로 건축의 기능공으로서 목수는 대목에 이르면 모든 권위를 부여 받는다. 그는 적어도 인간의 모든 창조적 행위, 곧 문명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그는 건축이라는 인간의 가장 장대한 기술과 과학과 정신의 집적물을 머리 속에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눈빛으로 다스린다. 이윽고 그는 구조물을 완성하고 장식을 곁들이며 정신을 불어넣는 과정을 통해 문명의 내면적 지배자가 되었지만, 그것조차 인간의 삶의 공간을 꿈꾸는 현실적인 요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목수는 물질의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다만 물질의 변형이 주는 이로움을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이로움은 다른 존재에 대한 해로움과 다르지 않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목수는 자연에 근접해 있지만, 자연을 말하지 않는다. 숲을 빌미로 살아가는 많은 동물과 곤충과 벌레들처럼 나무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주의자들의 찬미나 자연주의자들의 근심은 목수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아니다. 그들의 말이 목수의 행위를 뒤바꿀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찬양되거나 비난받을 일이 없다.
목수는 목수일 뿐이다.
숲속에서 일하기
앞산 외당숙네 선산에는 잣나무가 제법 있다. 많지는 않아도 수령이 육칠십 년은 되어 보이는 것들이라 그 굵기가 상당하다. 길을 내기 위해 그중 몇 그루를 잘랐으니 쓰려거든 가져가라는 말에 두말 없이 산에 올랐다.
가지를 쳐내고 토막을 내기 전에 나무의 모양새를 살피는 것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다. 왜냐하면 나무의 생김새에 따라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무얼 만들지를 생각하는데, 자를 때부터 살릴 가지와 끊어낼 자리를 재고 상상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즐거움은 일단 거기까지이다.
가지 사이를 헤치고 이파리에 찔리고 잔가지에 걸리며 톱을 대는 동안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자칫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이제가지 생각했던 것이 무시되기도 하여 나중에 보면 처음 생각과 다르게 쳐낸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게다가 나무를 가지 덤불에서 꺼내고 운반하려면 되도록 가지를 미끈하게 쳐내어 두루뭉술한 통나무로 만들어야 하지만,그러면 일은 수월해도 나중에 그저 평범한 나무토막이 되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일이 일단 일이 시작되고 나면 그건 나중 일이다. 젖 먹던 힘에 없는 용까지 써야 간신히 옮길 수 있는 일에 오래 버틸 장사는 없다.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 잠깐잠깐 물 한 모금 먹으며 쉴 참이면, 어떤 서러움 같은 것이 밀려오곤 한다.
힘든 노동을 버텨내야 하는 작업이 끔찍하게 다가올 때는 대개 목도를 하거나 거친 톱질을 하거나 반복적인 일을 쉴새없이 해야 할 때이다.
연장을 내팽개치고 벌렁 누워 꼼짝하기 싫어질 때마다 찾아오는 나른함은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인 육체적 버거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우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하면서 늘 느기는 기분은, 거창하게 말하면 삶 그 자체에 대한 회의 뭐 그런것과 흡사하다.
때로 그런 기분은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의 바다에 망망히 던져져 힘겹게 노를 젓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매우 하찮은 욕망 때문에, 혹은 입에 풀칠하기 위한 수단으로 얼마나 큰 힘겨움을 버텨내야 하는가. 노동의 기쁨이나 땀의 소중함 따위의 수사들이 얼마나 낯간지러운 것인가.
바로 말하면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다.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괴로움에 비하면 사치에 불과할 수 있다. 육체적인 고난에는 매우 깊은 정신적 고통이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거대한 잣나무 한 토막에 달린 네 개의 가지가 그대로 의자의 다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나무토막을 아래로 굴린다. 그게 수월하게 굴러갈 리도 없지만, 한번 구를 때마다 살기를 느낄 정도로 위험하다.
문득 온몸이 비지땀으로 범벅이 된 채 씨름하는 자신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작은 바람에 큰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 바로 삶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누구 말마다나 우리는 그 어디에서건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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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얘기였다. 오래전 나무로 무엇을 만드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보기 너무 좋아서 섣불리 발을 넣었다가 뭐가 싫었던지 얼마가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그때 남겨진 물건 하나만이 내 곁에 있다. 가끔 올려다보면 내가 했을까 싶다. 끈기있게 몇 년 배웠다면 지금쯤 각별한 세계에 빠져 땀방울을 흘리고 기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목수 김씨<김진송>는 국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근.현대미술사와 문화연구에 관심을 두어왔고, 미술평론.전시기획.출판기획등의 일을 해왔다. 몇 년전부터 나무일을 시작하며 전시회도 했다.
한 가지 일에 빠져 땀을 흘리며 자신만의 고집으로 각별한 것을 만들어가며 차오르는 기쁨을 누리는 그가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그는 마음에 드는 나무를 만날때마다 욕심을 내고 상상을 하고 구상을 하며 영혼을 불어넣으며 작품을 만든다.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 그는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완벽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그것의 제목이다.<의자에서 책상다리를 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을 위한 의자>..“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인 사람이 없지 않다. 나 역시 그러한데, 책상 앞에 조금 오래 앉아 있으려 해도 허리가 뒤틀리고 다리가 저려온다. 이리저리 다리만 비비꼬다가 급기야는 좁은 의자 밑판 위에 간신히 책상다리를 하고 앉게 되는데, 가만 살펴보면 그런 사람은 나뿐은 아니다. 자작나무 하나를 반으로 갈라 우선 팔걸이를 만들고, 폭이 넓고 긴 소나무 판재를 그대로 의자 밑판으로 써서 의자를 만들었는데, 한 사람이 앉기에는 넓고 두 사람이 앉기에는 좁았다. 그러고보니 마침 그 위에 냉큼 올라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기에 제격인 의자가 되었다. ”
아, 참 멋지다. 그는 그의 일에 목숨을 건다. 나도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을 찾아야 하겠다. 누군가 보기엔 하찮은 일이지만 내겐 너무 기쁜 그러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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