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히말라야,내가 작아지는 즐거움/법상/불광출판사

다림영 2012. 8. 1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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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 너무 생각이나 판단에 의존하려 하지 말라. 과거의 기억들로 오늘을 판단하거나 과거의 색안경으로 지금 이 순간을 평가하지 말라. 무심의 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가보라.

 

생각이 놓아지는 순간 우리 마음은 짧은 평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실은 생각이 힘을 잃고 대신 그 자리에 무심과 관조 가 빛을 비출 때 우리의 의식은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바로 그때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나 기존의 관습을 넘어서는 번뜩이는 창의,그리고 기억과 사고 너머의 깊은 존재의 심연 속에서 지혜의 가르침들이 직관적이고도 창조적인 영감의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생각과 기억이이라는 과거의 잔재, 또 계획과 바람과 욕망이라는 미래의 잔재가 모두 사라진 지금 이순간이라는 현존의 순간에 깃드는 것이다.

 

그러니 공연한 생각으로 근심 걱정할 것은 없다. 그것은 그저 생각과 기억이 만들어 내는 쓸데없는 것들일 뿐이다. 그래서 어니젤린스키는 그의 책 <느리게 사는 즐거움(Don’t Hurry,Be Happy)>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걱정은 제로라는 말. 본래부터 근심이나 걱정이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바져 공연히 근심하고 있을뿐인 것이다.

 

 

 

왜 분별없이 지켜 본다는 것이 사랑인가! 통상 우리가 행하는 사랑은 반쪽짜리다. 사랑 이면에 미움을 포함하고 잇다.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하면 그 미움 또한 사랑의 크기만큼 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랑이 순수하지 않고 양 극단으로 나뉘며, 차별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진정한 사랑은 그 이면에 증오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진정한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 사랑 그 자체로 이미 사랑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이 바로 무차별, 무분별의 중도적인 사랑이고,그것은 분별없이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볼 때 가능해진다.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모든 날씨는 담염하다. 모든 곳이 칼라파타르요, 쿰부이고 히말라야다. 모든 순간이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샨티, 평화로움 그 자체다.

언제나 우리 삶에는 매 순간 완전하고도 완벽한 날들,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고 하더라도, 내 계획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사실 그 모든 일들, 사건과 날들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들이다. 내게 주어진, 나를 위해 정확하고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더 큰 질서의 이치대로 내가 바로 그 자리에 바로 그 순간 놓이게 된 것이다!

 

 

 

 

삶을 가볍게 받아들이라. 어떤 것에도 너무 과도한 중요도를 부여하지 말라. 어떤 한 가지 대상이나 일이 너무 중요해지면 곧장 경직되고 심각해지게 마련이다. 삶에 긴장을 풀고 모든 것들에서 유머와 해학을 찾으라. 마음의 무게감에 힘을 빼고 어떤 대상에도 가치나 값을 과도하게 매기지 말라. 사실 우리 삶에는 그리 심각할 만한 어떤 것도 없다.

 

세상 모든 것이 실체 없이, 항상 하는 바 없이, 그저 인연 따라 잠시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가는 것들일 뿐이지 않은가. 소유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가족도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잠시 왔다가 100년도 안 되는 잠깐 사이에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어떤 천상세계에서는 우리의 1600년이 그들의 하루에 불과하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갖 욕심을 채우고 삶에서 성공하려 애스는 그 각급한 세월이 천상에서 본다면 그자 잠깐 사이의 찰나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명상할 시간이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많이 걸으라. 온갖 생각의 짐을 짊어지고 걷지 말고 그냥 걸으라. 생각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다만 홀로 걸으라. 그렇게 텅 빈 걸음을 내디딜 때 비로소 이 우주와의 진정한 관계성이 회복되고 지난 시간을 살아온 나의 삶이 분명하게 보여지기 시작할 것이다. 걸으며 애써 수행이나 명상을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무언가를 자주하려는, 성취해 내려는 그런 마음으로 인위적인 걷기 명상’j을 해서는 안 된다. ‘걷기 명상은 진정한 명상이 아니요, 오직 다만 걸을 뿐이 되었을 때만이 참된 명상과 연결될 수 있다.

 

그저 자연스럽게 걸으면 된다. 혹시 걷는 동안 부자연스러운 생각들, 기억들, 계획들이 떠오른다면 그 순간 걸음은 평화를 잃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의식은 곧장 발길을 돌려 집으로,회사로, 컴퓨터 앞으로, 무언가 일거리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걸으면서는 그저 걷기 그 자체로 걸으면 된다.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하라.

 

 

 

 

 

길 위에는 언제나 오르는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과 내려가는 이들의 가벼운 발자국이 함께 찍힌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며 교차되는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선명한 이치를 함께 남긴다. 삶의 오르막에서 힘겹게 비틀댈지라도 그것은 곧 흘러가고 사라진다. 내리막에서 어려움 없이 가볍게 순조롭게 질주하더라도 그 또한 곧 흘러가고 사라질 뿐이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역경이든 순경이든 그 모든 것은 무상하게 흐르고 흘러 우리 앞을 유유히 지나간다. 모든 것들의 본질은 무상 과 덧없음이니 그 양쪽의 삶에 너무 비통해 하거나 너무 으스댈 것도 없다. 잘 나갈 때 오히려 조심할 줄 알아야 하고 침체되어 있을 때독 거기에 너무 빠져 있을 필요는 없다.

 

 

 

 

내가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 나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 나에 대한 사람들의 대접이나 평가가 축소되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흥미롭게 받아들여야 할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길에서는 거꾸로 온전한 길인 것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길이지만 그래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무아 , 무집착 의 길, 모든 붓다와 성인들이 걸어간 요확하고도 명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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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한 것을 억지로 전부 버릴 필요는 없다. 소유하되 소유에 대한 애착과 집착만을 거두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소유를 보다 아름답게, 본질적으로 잘 쓸 수 있는 지혜가 열린다. 그뿐 아니라 소유하되 소유물에 도리어 소유되지 않는다. 그 소유물이 언젠가 떠날지라도 괴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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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의 소멸, 에고의 축소, 내가 줄어드는 것을 즐거워하라.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삶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변한다. 삶이 당당해진다. 걸림없이 자유로워진다. 주변의 눈치를 살필 것도 없고, 윗사람에게 애써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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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거나, ’반드시 내 손에 넣어야 겠다거나, ’반드시 내가 가질거야‘, ’반드시 저 자리에 오를 거야라는 그 어떤 집착도 욕망도 바람도 없기 때문에 언제나 지금 놓여 있는 그 자리에서 충만하고 충분하고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완전하고 완벽하다.

늘 풍요롭고 충만하다. 나의 욕심과 집착만 없다면.

 

 

  

 

생의 매 순간 순간은 언제나 순례 길이며, 여행길이다. 히말라야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매 순간 순간에 거기 그렇게 언제나 있다.

히말라야 순례를 마감하며 또 다른 삶의 히말라야를 내딛는다.

 

히말라야는 지리적인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꽉 짜여 진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묶임으로부터의 벗어남, 욕심과 집착 속에서 허덕이다가 문득 이게 무슨 짓인가싶어 한 생각 돌이켜 내려놓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는 해탈, ‘내 삶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하는 고정된 꽉 짜인 일과와 틀로부터 훌쩍 벗어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인생이었음을 돌연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 ,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틀로부터의 떠남이 바로 해탈이요, 여행이며, 순례의 길이다.

 

탐욕, 집착, 성냄, 질투,짜증, 증오, 미움, 서러움, 외로움, 두려움, 이기심 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홀연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벗어남의 길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고,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삶 속의 히말라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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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화를 내게 되었다. 주름의 골이 다시 깊어졌다. 절대로 화내지 않고 웃을 거야 했지만 무너졌다. 일상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대로 가지 않는다. 그럴까봐 신신당부하고 다시 한 번 얘기하고 전화까지 마무리를 요하지만 상대방은 또 다시 늘 하던 일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럴까봐 그렇게 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

 

화를 내다보면 화가 더 치밀어 오른다. 한 번 더 물어보고 생각하면 실수를 할 일이 아니다. 실수로 하여 오는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어떻게 되고 싶을 지경에도 이른다.

 

다시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왜 한번 잘 하면 될 일을 또 하게 만드는 것인지, 손해를 불러오는 것인지 말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다. 화는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손해에 대해 아쉬움이 가득하다. 어쩔 수 없는 일, 이미 쏟아진 물....

이 일은 이미 백 년 전에 문서에 써 있었지, 벌어져야 하는 일 이었어 ...’

 

좋은 말씀을 날마다 읽고 생각해도 이렇듯 돌아서고 나면 잊는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고, 다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언제쯤이면 스님처럼 평안한 히말라야 바람이 가슴가득해서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단히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거울 한번 보고 주름을 펴본다. 원하지 않는 한숨이 자꾸만 밀려나오지만 휴식의 숨으로 돌리며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진 거리의 지나는 행인들을 어지러운 생각들을 물리며 바라본다.

 

오늘도 열심히 걸어야 하겠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길이 난 곳을 향하여, 가로등 불을 바라보면서 예쁜 상점을 기웃대면서, 자유롭게 어울리며 환한 청춘들을 감상하면서 부지런히 걸어야 하겠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오후 ..아니 어느새 저녁이 몰려오고 있다.

언젠가 아주 길고 좁기도 하고 넓기도 하고 평야가 보이기도 하고 숲도 보이고 산도 그려있는 그런 평화로운 길을 걸을 것이다. 아주 낯선 길을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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