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산책에 대하여

다림영 2010. 9. 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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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장그리니에 <일상적인 삶> 중에서

 

 

그것은 나에게 빈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살면서 빈틈을 만드는 일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겹겹이 쌓여진 일상에서 어떤 빈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면에서 산책과 여행은 닮은꼴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혹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5월의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의 의지 같은 것이어서 자주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다시 말하면 산책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간신히 몸을 돌려 코에 바람을 넣는 일이었고 나는 콧바람을 몹시 좋아했다.

 

 

모든 것에는 취향이 있기마련, 산책에도 내 나름의 취향이 있다. 코에 바람을 들게 하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일지 고민하는 것처럼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니다. 그저 내 이야기가 당신의 경우이기도 하여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로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을 선호한다. 숨을 깊이 내 쉴 수 있는 공기와 관조할 수 있는 볕이 잘 드는 곳이면 더욱 좋겠다. 우연이라도 이런 장소를 만난다면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 같군"이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여긴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그치?"

라고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할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한적한 교토의 좁은 골목들은 그런 면에 있어서 거닐기 좋은곳이다. 가끔씩 골목에서 불숙 나오는 사람들이 산책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산책하기에 좋은 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장그르니에는 낮의열기가 사라진 뒤나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난 뒤의 시간, 그러니까 온대 기후에서는 해질 무렵이고 다른 기후대에서는 밤이 좋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 시간은 깨어 있기만 한다면 동틀 무렵의 새벽 시간이다. 여행지에서 새벽 산책을 늘 시도하지만 '깨어 있기만 한다면'의 조건이 까다로워 거의 대부분 실패한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나에게 종종 두근거림을 주는 산책 시간은 해가 적당한 기울기로 기울어져 잇는 오전 10시와 오후 4시경이다.

 

 

이 시간의 빛은 수줍은 듯 투명하고 열기를 머금은 채 차분하여서 다 닮아진 풍경조차도 반짝반짝하게 한다. 오전 10시의 산책은 명상하기에 좋고 오후 4시의 산책은 몽상하기에 좋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명상은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다. 주변의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오전 산책을,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오후 산책을 추천해줘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한 끼를 채우기 위해 방을 나섰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골목에는 뜬금없이 빨래를 널고 싶을 정도로 깨끗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바람은 잠깐씩 가볍게 지나갔다.

 

 

나는 골목 이리저리로 거닐며 빨래 대신 나를 널기로 했다. 머리위로 떨어지는 햇볕에 뽀송하게 살균 소독되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평소보다 깊은 호흡으로 시간과 공간을 지니는 것, 그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산책이다. 그렇게 거닐 때, 들고 나는 것은 바람과 빛 뿐 아니라 사유와 가치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거닐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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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정운
 
 며칠 비가 내린탓에 개울물은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삼삼오오 징검다리를 건너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줄을 잇고, 조그만 가게 앞 마당에서 커피를 나누는 택시기사들의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퍼진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젊은 할머니가 저 혼자 달려가는 강아지를 부르고,  벚나무길을 무심히 걷는 중년남자의 모습이 남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늘 보는 이들의 평범하고 사소한 모습이  그림속에 있는 풍경 같기도 하다. 그 풍경속을 나 또한 걸어 들어간다. 바른자세로 앞을 바라보고 몸을 단단히 하고  입가를 올리며 웃어본다.  어디선가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몸은 가벼워지고  세상의 시름과 걱정은 안개처럼 사라진다.  
 
 조금은 버거운 걸음이었다. 젊은 경비아저씨가 경쾌하게  인사를 한다. 그의 아침이 굉장히 즐거워보인다. 마음을  전혀 숨기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하회탈 같은 웃음이  선명하기만하다. 싱그런 아침 그의 기운이 금새 내게  전이되고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나 또한 경쾌한 인사를 하게 된다. 나와 만난 이들도 오늘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인사를  전하게 될 것이다.  빠듯한 생활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도 웃음 깃든 인사는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것은 세상이 온통 환해지는 일이다.
 
 내게는 하루 일과중에서  아침 산책 말고도 늦은 밤의 산책이 하나 더 있다.  사실 아침의 산책은 산책이라기 보다 빠른걸음으로 일정한 보폭으로 걸으니  엄밀히 따지면 산책보다 운동에 가깝다. 그러나 굳이 산책이라 부르고 싶은이유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충분히 느끼며 걷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아침산책은 오늘 하루를 이끌어 가야 할 힘이 필요하고 조금은 서둘러야 하기에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그것에 비하면 밤의 산책은 하루를 견디어 내고 일상을 훌훌 털어내며 걸을 수 있어 자유로움이 깃드니  퇴근길이지만  산책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늦은 밤  상점등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반짝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젊은남자가 밤 공기를 가르며 달려가면 문득 온기가 퍼지고, 사투리가 심한 여자의  꽃집 향기는 언제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떡집 사장은 한쪽다리가 조금 짧다. 그래서 가끔은 안쓰럽다.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들뜬 목소리가 문밖을 넘나들면 그의  좋은하루가 짐작된다.  나의 발걸음이 사뭇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넘어간 곱창집을 지나고 조용한 여자의 순대국밥집을 건너면 역으로 향하는 건널목에 초록색불이 마악 켜진다. 그 길은 재빠르게 통과해야 한다. 초록불이 켜 있는 시간이 다른 건널목보다 유난히  짧은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여차하면 깜빡이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에 젖어드는 것이다.
 ,
 전철이 마악 떠났나 보다.  늦은 밤이어서 출 퇴근때보다 조금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나는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전철홈을 사이에 두고  내가 걸어온 동네는 밤의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반대편으론  기차들이 잠들어 있기도 하고 그 너머로는 들판이 이어져 있다. 가까운 곳에는 넓고 깊은 호수도 있으며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이 흠씬 묻어있다.
굉장히 빠른기차가 거대한 바람을 휘몰아치며 무섭게 지나가고나면 바짝 엎드려 숨어있던 귀뚜라미들은 고개를 들고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그래보았자 어찌 그 큰 소리의 기차와 대결할까만 결코 조용히 숨죽여 있는 법이 없다. 대모를 하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하다가 노래로 판정 짓는 나는 귀를 바짝 기울여본다.  음정 박자 전부가 고르지 않지만 정겹기가 그만이다. 하루를 이겨낸 가장의 몸은  문득 부쩍 기울어지고 벌레들의 합창소리에 빠져들고 만다.
 가을은 불현듯 그제와 어제 사이에 마악 도착했는지 모든 세상의 소리는 깊어질대로 깊어지고 있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커피색으로 위 아래를 맞추어 입고 영화속 주인공처럼 집을 나서야 할 것 같다.
  나의 산책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이 있는 도시의 역에서 내리면 동네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가끔은 아주 오래 기다리고 또 가끔은 버스를 마침 만나기도 한다. 그럴때면 또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곳을 지나는 버스는 두 세대 밖에 없고 사방이 어두컴컴하고 그 어떤 풍경도 멋스럽지 않다.
 기다린 사람의 심정을 읽기라도 한듯 버스는 늦은 귀가 길을 서두르며 마구 달려간다. 고만고만한 가게가 졸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고 캄캄한 군부대를 휘리릭 지나치다보면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자 같은 기분이 되고만다.
 어느새 제법 큰 개천이 있는 우리동네에 도착했다. 물 위에는 아파트마다 켜진 불빛들이 소리없이 내려와 물살따라 반짝거린다. 매일 만나는 풍경임에도 각별한 아름다움으로 흔들린다.행복해 지는 순간이다.
 버스에서 선뜻 발을 내리면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내게 벌레들이 들려주는 심심한 위로의 환영인사가 울려퍼진다. 흡사 먼 시골에라도 도착한 것 같다. 어깨는 한껏 세워지고 손에 들려진 도시락 가방에 힘이 들어간다. 거리가 있는 도로에서 굉장히 큰 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다시 적막이 흐르고 산처럼 우람하게 서 있는 아파트가 눈을 부빈다. 높고 높은 아파트  층마다 꺼지고 켜진 등불을 올려다보며 하나 둘 셋 넷 층수를 세며 천천히 걷는다.
우리집이다. 창문은 반쯤 열려있고 유독 빨래가 많이 널려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숙제를 하고 있거나 컴퓨터의 바다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유영을 하리라. 텔레비젼 앞에는 아이들 할아버지께서 졸음에 겨워  꾸벅이고  텔레비젼은 저 혼자 놀고 있을 것이다.
 눈길은 어느새 아파트를 벗어나 하늘에 닿는다. 검은 바다 같은 하늘.. .. 흐릿한 별 하나 찾기 힘들다.  그 옛날 스물무렵 도시에서 상처를 받고 돌아오던 그때 , 수 많은 별들이 눈부시게 쏟아질 것 같던 하늘이 어제일처럼 떠오른다.  맑고 투명하던 밤 하늘의 별무리에 따뜻해 지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가끔 그렇게  가슴속에서 고요히 살아나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나를 위로해준다.
 밤이 깊어간다. 밤이 깊어갈 수록  아파트 뒤 묵묵히 앉아있는  숲의 향기도 깊어만 간다. 사람들이 꿈나라로 떠나는 늦은 밤 그들은 어둠을 뚫고 산에서 우르르 내려와  집으로 돌아오는 아주 작아진 나를 엄마처럼 안아주고 토닥여준다.하루의 시름이 눈녹듯 사라지는 순간이다.  길고 깊은 호흡으로 나는 정화되는 것이다.
 
 고된 하루, 두 가지의 산책길에서 나는 힘을 얻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피곤한 하루를 씻어내고 내일의 찬란한 태양을 그리며 잠이 드는 깊은 밤, 아이들은 지친 엄마에게 한번씩 안겨보고 저마다 잠 자리에 든다.
 꿈을 꾼다. 아름다운 아름드리 나무가 끝이 보이지 않는 산책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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