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나날의 일상속에 운치를 깃들여라

다림영 2010. 9. 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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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득취법<日常得趣法>

 

지구는 둥글고 사방은 평탄하다. 그럴진대 천하에 내가 앉아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은 없다. 하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곤륜산에 오르고 형산과 곽산을 등반하여 높은 곳을 찾는다. 가버린 것은 쫒을 수가 없고, 장차 올 것은 기약할 수가 없다. 그러니 천하에 지금 누리고 있는 지경보다 즐거운 것은 없는 법이다.<어사재기於斯齋記>

 

선자리를 사랑하라

일상득취는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운치를 찾아 누린다는 말이다.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다. 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곁에 있다. 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맑은 눈, 밝은 귀,그리고 무엇보다 텅 빈 마음이 있어야 한다. 탐욕과 운치는 서로 인연이 없다. 재물이 많다고 운치가 따르지도 않는다.

 

귀양지에서 다산의 생활은 신산스럽기 짝이 없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진작 자포자기해서 폐인이 되고도 남았을 그 긴 시간동안, 올곧게 자신을 세워 뚝심 있게 공부를 밀고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일상득취의 묘를 잘 실행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를 가든 자신이 처한 공간을 정성껏 꾸몄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냐 아니냐는 상관하지 않았다. 거처를 옮길 때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정원을 꾸미고 꽃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이 절에서는 다산의 생활 공간과 정원경영에 대해 살펴보자.

 

 

내 집은 명례방에 있다 명례방에는 공경公卿의 큰 저택이 많다. 그래서 수레바퀴와 말발굽이 날마다 거리 사이를 엇갈려 내달린다. 그러다 보니 언덕이나 연못, 그리고 원림園林으로 아침저녁 구경할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뜨락의 반을 갈라 경계로 삼고, 여러 꽃나무와 과일나무 중 좋은 것을 구해다 화분에 심어 이곳을 채웠다.

 

 

안석류安石榴는 잎이 살지고 크며 열매가 달다. 해석류 또한 왜석류라 한다. 왜석류가 네 그루다. 줄기가 곧게 한 길 남짓 오르도록 곁가지가 없다가, 위에 쟁반처럼 둥글게 틀어올린 속칭 능장류稜杖榴가 한 쌍이다. 꽃만 피고 열매맺지 않는 석류는 꽃석류라 하는데, 이것이 한 그루다.

 

 

매화는 두 그루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묵은 복숭아나 살구나무 뿌리가 썩어 골격만 남은 것을 가져다가 괴석처럼 조각해 놓고, 매화는 겨우 작은 가지 하나만 그 곁에 붙여두고 이것을 기이하게 친다. 나는 뿌리와 줄기가 실하고 가지가 무성한 것을 가품佳品으로 꼽는다. 꽃이 좋기 때문이다.

 

치자가 두 그루다.두보는 "치자를 여러 나무에 견주면, 인간에 진실로 많지가 않네 梔子比中木,人間誠未多"라고 했다. 대개 또한 희귀한 품종이다. 산다화가 한 그루다. 금잔은대金盞銀臺, 즉 수선화 네포기를 한 화분에 같이 심은 것이 하나 있다. 파초는 크기가 방석만한 것이 한 그루다. 벽오동은 두 살짜리가 두 그루다. 만향이 한그루요, 국화는 종류별로 열여덟 화분이 있다. 부용화 화분이 하나다.

 

이에 서까래만한 대나무를 구해다가 동북쪽 면을 잘라 난간을 둘럿다. 하인들이 지나가다가 옷으로 꽃을 스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죽란竹欄이다. 매일 조회에서 물러나오면 건巾을 걸치고 난간을 따라 걷는다. 혹 달빛 아래 술을 따르며 시를 짓기도 했다. 시원스레 산림과 원포園圃의 정취가 있었다. 수레바퀴의 시끄러움도 거의 잊고 지낼만했다.

 

 

한창 젊은 시절 서울 명례방에 살 때 일이다. 코딱지만한 도회지 한복판의 마당이 답답해서 정원을 꾸몄다. 그냥 심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화분에 담아 울멍줄멍 늘어놓았다. 그나마 대나무난간을 설치하지 않으면 지나는 옷깃에 꽃이 다 떨어질 형국이었다. 그래도 그 좁은 공간에 국화만 서로 다른 종류로 열여덟 화분이 잇었고, 부용화와 수선화를 심은 화분이 하나씩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석류. 매화. 치자. 산다화. 파초. 벽오동. 만향 등이 열여섯 그루나 심어져 있었다.

 

 

다산은 꽃밭에 꽃이 피면 벗들을 불러놓고 밤중까지 술을 마시며 놀았다. 이 시절 지은 시에서는 "한 해가 늦어가매 쌀이 외려 귀하지만, 집이야 가난해도 꽃은 더욱 많다네 歲熟米還貴,家貧花更多"라 하였다. 그것만으로 성이 안 차 벗들과 아예 죽란시사竹欄詩社를 결성하여, 살구꽃.복숭아꽃.참외 .연꽃.국화. 분매를 핑계로 꽃이 필 때마다 한 번씩  모여 시회를 열었다. 이렇게 해서 보잘것 없는 다산의 죽란은 한 때 장안의 명소가 되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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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머물든 그집이 내집이든 아니든 운치를 깃들이는 일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고 또한 아름다운 생을 일구는 일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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