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집으로 가는 길/이스마엘 베아/송은주

다림영 2010. 8. 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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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가끔은 길 가다 들른 마을에서 먹을 것이나 신선한 물을 대접받는 작은 행복을 맛보기도 했지만, 어차피 순간의 위안에 지나지 않으며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해도 마음껏 행복해질 수가 없었다. 여러감정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는 슬픔에 머물러 있는 편이 훨씬 더 쉬웠다. 게다가 슬픔은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결연한 마음을 더욱 다져주었다.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칠흑같은 어둠을 투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을 때까지 어둠 속을 응시했다. 우리가족은 어디 있을까. 살아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한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총끝과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들이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키 작은 야자나무 옆에 시체들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야자 앞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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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구들의 시체에서 총과 탄약만 거두고 시체는 숲에 그대로 버려둔 채 떠났다. 마치 숲이 저 나름의 생명을 갖고 있어서 죽은자들의 몸을 떠난 영혼을 사로잡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뭇가지들은 손을 맞잡고 머리를 숙여 기도도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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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즉각 목표를 겨냥했다. 총을 든 반군들과 소년들이 수풀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나타나 나무 뒤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우리는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앞장선 반군 몇이 쓰러졌다. 늪까지 나머지를 추적했지만 놓치고 말았다. 가재들이 어느 틈에 죽은 시체들의 눈을 노리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잘려나간 팔다리와 산산이 부서진 두개골이 늪지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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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고, 내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달이뜨고 해가 뜨면 밤낮이 오고 가는 줄만 알지, 그날이 일요일인지 금요일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6년1월 마지막 주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열다섯 살 되던 해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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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잠시 가만히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동안 혼자 살길을 찾고 내 앞가림을 하도록 배웠다. 짧은 삶이었지만 거의 내내 아무도 믿지 않고 혼자 힘으로 헤쳐왔다. 솔직히 혼자 있는 편이 좋았다. 그쪽이 살아남기가 더 쉬웠기 때문이다. 믿고 따랐던 중위 같은 사람들 탓에 나는 누군가를, 특히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본심이 무엇일까 항상 의심했다. 친구가 되려 할 때는 반드시 상대를 이용해먹기 위한 속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간호사를 무시하고 창밖만 멀거니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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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할머니는 나에게 하늘이 자기를 쳐다보고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는 말을 걸어준다고 하셨다."언제나 하늘에 모든 것에 대한 답과 설명이 있단다.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혼란이든, 뭐에 대해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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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얼떨떨했다. 행복이란 살짝만 건드려도 깨질 듯 위태롭게 느껴져서 여전히 마음을 놓기가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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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은 1980년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다. 랩음악, 힙합댄스를 좋아해서 어느날 친구들과 이웃마을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그 길이 영영 집과 이별을 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쟁이 일어난것이다. 그 자신도 모르게 소년병이 되어야 했고 총을 들고 사람에게 총을 겨누게 되었고 매일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했고 죽어가는 이들을 낱낱이 아무일도 아닌듯이 밟고 지나야 했다. 그 기간은 자그마치 2년이나 지속되었다.  마약으로 밤을 견뎌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수많은 죽음들이 피바다를 이루며 그들앞에 누워 있었다. 겨우 열몇살 아름다운 소년들이었고 그들이 보는 풍경은 그것이 전부였다.

어린 영혼들은 참혹하게 성장해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그들은  고통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았다.

결코 그들의 죄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소년병들은 어른들에게 말썽을 부리며 가끔 야단을 맞으며 친구들과 행복한 사춘기를 맞아야 했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행복을 지나치고 있을때 소년병들은  전쟁속에서 굶주림에 떨어야 했고 삶을 죽을 듯이 잡아야 했다. 저희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총을 겨누며...

 

 

분단국에서 태어났지만 우리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아직도 세상에는 굶주림과 헐벗음속에서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잊혀지지 않는 말씀 하나가 있다.

이 지구상에서 누군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단 한명의 어린이라도 있다면 우리가 배불리 먹는 것은 죄악이다....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전쟁터를 빠져나온 이스마엘은 열일곱살이 되던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있는 유엔국제학교에서 고교과정을 마쳤고, 2004년 오벌린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미국외교관계위원회와 해병대 전쟁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NGO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 인권의 실상에 대해 증언했으며, 유니세프에서 주관하는 '소년병 근절을 위한 국제회의'에 여러차례 연사로 참석하였다.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국제 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츠 위치Human Rights Watch'의 어린이 인권분과자문위원'유니세프 소년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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