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학교를 다녔던 나는 삼학년 늦은 가을 한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성숙하지 못했는지 매일 눈물바다를 이루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우리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은 회사로 은행으로 취직을 했지만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는 친구들도 제법 있었다.
나도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나보다 성적이 못했던 친구들이 학교를 다닌다는 얘길 들었다. 괜스레 약이 올라 혼자 공부를 하기시작했다. 한동안 나를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여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된다는 말씀을 하셨고 남동생이 넷이나 되니 그만두라 하셨다. 대학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있었고 특별한 목표도 없었던 나는 공부에 대한 생각은 그만 접고 말았다.
집에서 전전긍긍하는 시절이 이어졌다. 그 때 마음 고생을 하면서 부쩍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고 있는 것 같았다.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신문의 광고를 보고 남영동에 있는 글씨학원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졸업할 무렵 나의 펜글씨 등급은 2급이었고 그것은 한 반에서 두 세명 있을까말까 한 등급이었다.
문득 글씨에 관한 모든 것들이 나의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학원에서는 몇 개월 소정의 기간을 마치면 취직을 시켜준다고 했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챠트글씨 쓰기에 매진을 하게 되었다.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회사나 공기업에서 챠트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필요로했다. 나의 작고 여린 손가락엔 싸인펜의 검은자욱으로 마를날이 없었다. 학원에는 취업을 꼭 해야 하는 군대를 다녀온 젊은 남자들이 유독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그들중 나는 가장 나이가 어린 아가씨였다.
학원은 남영역 근처에 있었다. 겨우 차비나 받아 다녔기에 무엇을 사서 먹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도시락을 꼭 싸가지고 다녔다. 반찬도 누구에게든 보여주기 민망한 것뿐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나가면 귀퉁이에 혼자 앉아 공책이나 손으로 가리고 후다닥 먹어치우기가 일쑤였다.
꼬맹이취급을 받으며 오빠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며 지내던 어느날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군대를 다녀온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유독 눈이 큰 남자와 얘길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길 하다보니 그는 고등학교동창의 오빠였다. 아는사람이 하나 없던 나는 그와 갑자기 친해지게 되었고 그 또한 동생친구였던지라 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던 것 같다.
남영역 근처에는 조그만 제과점이 하나 있었다. 어느날 오빠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곳으로 손을 잡고 들어갔다. 그때까지 나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제과점에는 한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제과점의 빵은 특별한 것이어서 비쌀것이라고 생각했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다닐때에는 학교매점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노을'이라 불리는 오십원짜리 빵을 먹을 수 있는날은 내게 있어 굉장히 즐거운 날이었다.
오빠가 무슨빵을 먹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고 입에 올리기에 낯이 익지 않았다. 오빠는 손가락으로 일일이 이것 저것 가르키며 많은 빵과 우유를 시켰고 타원형의 나무접시에 각종 빵이 수북하게 올려져 나왔다. 보는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희고 손잡이가 있는 컵에는 우유가 가득 담겨져 있었고 오빠는 우유에 소금을 조금 섞어 저어주었다. 지금 이런얘길 하면 아이들은 왜 소금을 타냐고 물었을 것이다. 하여간 그때는 소금과 설탕 둘 중에 하나를 우유에 타서 먹었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곰보빵 단팥빵 슈크림빵 등 한 다섯개는 쉬지도 않고 먹어치운것 같다. 스무살의 아가씨는 어디로 갔는지 체면도 없이 희고 부드러운 크림을 입가에 마구 뭍히며 혹은 단팥을 흘리기도 하며 제과점 빵과의 첫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오빠가 얘기하는 것은 듣는둥 마는둥 하고 빵만 아구아구 먹던 내 모습에 오빠는 얼마나 기가막혔을까 싶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내려가며 오빠와 일상의 얘기를 주고 받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오빠는 손을 흔들며 안양에서 내렸고 나는 몇 정거장 더 가야 했다. 몇달을 그렇게 오빠와 함께 글씨학원에 다녔다. 그 이후에도 가끔 달콤한 빵을 얻어먹으며 즐겁게 배가 부르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오빠는 내무부인가 어디인가로 취직이 되었고 나도 이태원에 있는 큰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친구 오빠와 동생친구로 우리는 빵만 먹다가 심심한 사이로 끝이 나 버렸다.
드라마 제빵왕 탁구 때문에 텔레비젼에서 제일 오래된 빵집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집에서 가장 잘 팔리는 빵은 단팥빵이라고 했다. 손님들은 저마다 단팥빵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소년 소녀처럼 까르르거리며 행복한 모습이었다.
태어나 처음 제과점에 들러 창피한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몇개나 먹던 스무살의 내 모습이 떠올라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보았다.
돌아오는 휴일엔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줄 작정이다. 각종 곡물과 막걸리가 들어간 빵의 레시피를 구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어 나는 들떠있고 레시피를 날마다 들여다보며 벙긋거리고 있다. 덕분에 나의 아이들에게도 즐거움 하나 만들어 지겠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빵을 먹는 아이들은 얼마나 신이날까.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후 녀석들은 엄마얘길 하며 빵에 대해 서도 추억할지 모르겠다.
세상의 행복은 그다지 큰 것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빵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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