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월 첫날의 일기

다림영 2010. 6. 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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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관악산에 오르게 되었다.

몽촌토성을 다녀오려다가 길을 바꾸게 된 것이다.

아침일찍 식구들의 김밥을 싸놓고 출발했다.

안양천을 따라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카메라를 바꾼터라 열심히 폼을 잡고 몇번이나 담아보았다.

멋진 장면들이었다. <나혼자 생각으로>

어릴때 동네 냇가에서 우리도 그렇게 물고기를 잡곤 했었다.  그런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려 보며

웃으며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오랜만에 들려서인지 숲은 깊어질대로 깊어져 있었고  온몸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나는 특히 산의 숲길을 참  좋아하는데  이어지는 길마다 사랑스러워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다.

쉬어가는 바위에 앉아서는 다시 들추어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5시간은 족히 걸었을 것이다.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10년이 넘도록 신던 신발 양쪽이 모두 떨어져 새 신발을 신고 나선 길이었다.

가족모두와 함께 즐거운 휴일의 식사도 마치고, 영화를 즐겁게 보는데, 둘째녀석이 자신의 블러그에 피아노 동영상을 올린다고 카메라를 잠깐 빌려달라는 것이다.

종종 카메라에 자신의 피아노치는 모습을 담는 녀석이어서 특별한 생각없이 카메라를 넘겨 주었다.

 

 

밤이 깊어 오늘 작업할 사진을 챙기려고 다시 한번 들여다 보는 순간

아... 이것이 무슨일인지.. 내 사진이 모두 날아가버린 것이다.

녀석은 카메라가 잘 찍힌다고 좋아하더니 이것저것 만지다가

엄마의 사진이 지워졌는지도 모르고 제 작업에만 열중한 것이었다.

나는 너무 흥분해서 되지도 않는 말로 야단을 쳤다.

하루를 헛 산것 같아 정말 화가 났었다.

 

 

사실 전날밤까지 나는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때 같으면 저녁이면 다음날 할 일이나 행선지를 정해놓고 메모해 놓는데 말이다.

지금생각하니 아무래도 이런일이 있으려고 그런것 같다.

 

 

심심하면 오르는 관악산이니 사진이 없다고 무슨 대수일까마는 아쉽기만 하다.

아이들 너댓명이 물고기 잡는 장면은 정말 괜찮았는데..

0형인데도 마음에 많이 담아두는 나는 오늘아침에도 학교 가는 녀석의 뒤에 대고 말한다.

'다음주엔 다녀와.. 그리고 물고기 잡는 아이들도 찾아서 찍어와...'

...

아, 정말 난 이상한 사람이다.

엄마가 되어서는 이것이 아이에게 할 말인지..

참...

몽촌토성에라도 다녀와 일이 생겼다면 굉장했을 것이다.

..

 

사실 작품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날의 내 흔적들이 그렇게 타인에 의해서 의미없이 지워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속이 상했다.  며칠 들여다 보며 아름다운 길을 더욱 사랑하며 다시 찾게 될때는 어떻게 만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부풀어 다음을 계획하며 웃고 있을터인데 말이다.

이틀이 지나고 이제 아쉬움은 많이 희미해지고   담담하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그날의 일상을 주고 받고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에 크게 웃고 이야기를 나누던 많은 아름다운 이들과 웃음 가득하던 때가 있었다.

나만의 깊은 의미를 담으며 한장 한장 찍어두었던 사진이 한 순간 사라진 것처럼 그들과의 교류도 어느날 돌아보니 내게서 사라졌다. 언제까지 영원할 것 같았던 풋풋한 마음들로만 알고 하루가 가득차며 아이처럼 즐거웠었는데...어느순간 버려진  나의 사진들처럼 그들의 모습이 의미없이 지워지고 있다.

 

..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던 어느친구에게서 불현듯 어제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지내란 인사를 끝으로 또 한동안 그녀에게서는  연락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대화중에는  지천명의 나이는 그런것 같다는 언급이 있었다.

..

아, 지나간 우리들의 젊은 날...

불현듯 사라진 내 사진처럼 하나 둘 지워지고 있는 그리운 친구들의 모습....

누가 우리를 서로에게서 지워가고 있는 것일까....

 

 

장미의 계절 6월이 열렸다.

날씨는 얼마나 화창한지 눈이 부셔서 하늘을 올려다 보질 못하겠다.

문자라고는 선거에 대한것이 전부이고 도무지 전화 벨 소리라곤 울리지 않고

나는 졸음에 겨워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책장을  간신히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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