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여행

제주 올레 1코스 마지막 광치기해변

다림영 2009. 10. 1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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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1코스 마지막에 광치기 해변을 걷는다. 멀리 외국여인이 한 남자와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잠에 빠졌고 여자는 어깨를 다 드러내고 햇빛을 쬐며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밀려 오는 파도

...

모래는 마치 철가루를 모아놓은듯 검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바다를 담을 그릇/이생진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이 길이 참 괜찮았다. 이 길을 걸어보지 않고 등을 돌린 긴머리의 그녀가 자꾸만 생각났다.

 

바다로 가는길/이생진

 

돈을 모았다

바다를 보러간다

상인들이 보면

흉볼 것 같아서

숨어서 간다.

 

 



바다의 오후/이생진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분의 시다.

아, 이렇게 '덜컹 덜컹 세월이 흘렀다'..!

 

 

 

난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지 못했다. 똑 같은 것인줄 알았다.

먼저 사진을 찍어주던 어떤 선생님께서 구분해 주셨다.

갈대는 물가에 있고 억새는 산속에 있다고...

 

친구는 돌아보라고 하는 내 말에 순순히 응했지만 사진찍기를 마감한듯 했다.

나 때문에 머리가 약간 아팠을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싶다.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던 친구였다.

 

술에 취한바다/이생진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더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가는 중년의 남자에게 실례를 무릅썼다.  길도 사람을 안고 있었을때 아름답듯이 바다 역시 사람의 배경이 되어줄때 더욱 눈부시다.

 

 

 

 

난 이 마지막 걸음이 아쉬워서 자꾸만 사진찍기를 원하고 

 

 

 

 

친구더러 귀엽게 올라 앉아 찍자 하니 날더러 가 앉으란다. .. .그녀가 지쳤다.

 

 

 

너무 근사했다. 가족인가 보았다. 조그만 여자아이와 아빠 그리고 멋진 아들... 아이들 마음에 이 풍경은 내내 떠오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음엔 우리집 녀석들과 함께 하고 싶다. 녀석들에게 바다한번 구경시켜주지 못했다.

 

 

 

광치기 해변에서 제주공항까지는 택시요금이 30,000원이란다. 그런데 둥지게스트하우스 얘기를 하니 할인이 된다. 25,000원에 3시 30분 예약을 해 놓고 바다에서 올라와보니 건너편에 유채밭이 있었다. 계절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 . 가을까지 피어 있는 것인지..

 

 

마지막 성산포 일출봉을 배경으로 발바닥 지압해 본사람있음 나와보라고 그래... 우하하..

활짝 웃으며 아프다는 친구... 안내판을 읽어보니 발이 아프면 몸의 어딘가가 아픈것이라고?

 

 

 

친절한 택시가 달려왔다. 공항으로 달리며 어떡해를 남발하는 날 위해 창문을 열어 주셨는데... 뛰어내리고 싶었다. .. 억새와 풍력발전소?...  

 

 

 

한라산도 다녀가야지 어째 금방 가느냐 하시는 아저씨 ..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고 이 굉장한 길을 우리가 달렸는데 더이상의 욕심은 금물인 것이다.

 

 

 

삼나무란다. 제주도의 풍경이 곳곳이 우리나라 같지 않지만 이곳은 더우기 외국풍경 같았다. 정말 높다란 삼나무...잠깐 쉬자고 해도 괜찮았을 터.. 약간의 보너스를 드리며 사진 한장 찍었어야 했는데 내내 후회로 남았다.

 

달랑 하루의 여정임에도 한 삼박사일 정도 다녀온 느낌이었다. 내내 걸어서 그럴것이다. 다음엔 혼자라도 훌쩍 잘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것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여행통장하나 만들어야 하겠다.

 

 170,000원가량이 들었다. 사실 큰 금액이지만 여행에서 얻은것은 그것의 몇배나 되고도 남았다. 정말 근사한 여행이었다.

 

우리나이또래는 대부분 펜션을 이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난 게스트하우스를 권하고 싶다. 혼자 떠나 문득 열린 마음으로 앉은 낯선 자리.  문득문득 슬며시 웃으며 앉아 친구가 되고 술한잔을 기울이는 그들이 아름답다. 그들이 얘기하는 모습만 보아도 내 가슴안에는 온통 젊음이 되 살아나는것도 같았다. 내년엔 계절을 달리해서 아이와 함께 떠나보는 상상을 해 본다. 참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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