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편지

9월의 편지

다림영 2009. 9. 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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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이들이 쉬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아침 준비를 하다 말고 이크 그럼 어제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곳을 다녀와야 하겠다 하고 반찬 두어가지를 번개불에 콩 구어먹듯 재빠르게 만들어 놓고 길을 나섰습니다.

 

큰아이가 타던 좋은 자전거가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값이 싸고 편한 자전거가 그다지 멀리 가는 길이 아니어서 추리닝차림에 달랑 카메라와 핸드폰만 양주머니에 각각 넣고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빠르게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였습니다. 언제나 쫒기는 아침인지라 간신히 한 사십분 걷기만을 행하던 날들이었습니다. 어제 늦은 밤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했는데 아침엔 조금은 내려간 기온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별스럽지 않았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조금은 선뜻했습니다. 걷는 이들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주말이어서 혹은 아이들 쉬는 토요일이어서 먼곳으로들 떠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오른 자전거였습니다.

날아갈듯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서울로 향했습니다.

가끔 삼삼오오 자전거족들을 만났습니다. 대단한 이들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놓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경기에라도 나가는 자전거 선수같은 한결같은 모습들이

나를 지나쳤습니다.

 

 

어느만큼 갈 때였습니다.

잔잔한 음악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누군가 차를 세워두고 음악을 틀었나보다 했습니다. 아, 왠일인지요. 어느 중년의 사내가 무궁화로 조성되어 있는 꽃밭 한 옆에서 섹스폰 을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른아침에 말입니다. 굉장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잠시 서서 주머니에 있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다른 이들처럼 그를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돌아올때 그래 돌아올 때 말을 붙여 봐야지... 실례해도 되느냐구..사진 한장 뒷모습이라도

찍으면 안되겠느냐구...

아 뒤로 미루는 나의 판단은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게 되었고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가 쏟아져 돌아오는 씁쓸한 길에 멋진 음악이 울려퍼지던 그가 있던 자리에서 주춤하며

그가 없는 사진한장을 찍으며

친정엄마의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제때에 하지 않고 미루면 항상 후회를 하게 된다"

 

 

광명시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는데 멀리 먹구름이 퍼져왔습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난간 없는 다리에서 서게 되었습니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뿔사!..비를 맞으며 더 나아갈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비가 얼마나 쏟아지던지 정말 세찬비였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다리밑에 비를 피하는 자전거족들을 보았지만 나는 열심히 페달을 굴러야 했습니다. 그들은 출근하는 이들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멋진 할아버지께서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타면 어쩌냐며 쉬었다 가라셨습니다.

그냥 웃기만 하고 나는 족제비 같은 모습으로 연신 얼굴을 닦아내며 눈을씻으며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비를 실컷 맞아본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땐 빨리 가야 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삐 서둘렀습니다만

나중에는 비맞는 즐거움에 희열을 느끼며  페달을 신나게 밟았습니다.

뚝뚝 떨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각별하게 달렸던 오늘이었습니다.

 

 

 

어느새 9월의 한 가운데 서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 이리 시간이 빨리 흐르는 지요.

거울을 보며 새삼스럽게 늙어가는 나를 발견하며 절로 고개가 떨어집니다.

어깨의 힘도 차츰 기울고 어떠한 삶의 열정들이 식어가는 듯도 합니다.

이러면 안돼겠지요? 힘을 내야 하겠지요? 아름답게 늙으려면

삶의 애틋한 열정을 불러 일으켜야 하겠지요?

...

..

 

어찌 지내시는지요?

늘 바삐지내시는지요?

보람있고 뿌듯한 날이신지요?

..

 

나 이렇게 지내고 있답니다.

언제나 환한 웃음을 머금고 밝은 목소리에 한껏 기운이 스민 우리이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다시 마음나서면 펜을 들겠습니다.

 

안녕.

9월속에서  정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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