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레길 1코스 중.. >
그러니까 그제 밤과 어제 아침 사이 일 것입니다. 아마도 한 7시쯤.. 그때 혹시 창밖을 보셨는지요?....
전 그때 마악 개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개울을 반쯤 건넜을때 나는 감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봄과 그만 부딪친 것입니다. 봄은 환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모르는척 나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돌아보고는 씽긋 웃으며 손을 마구 흔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한 날이 급작스럽게 개울을 건너올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날은 이른새벽부터 온 대지는 촉촉히 젖어들기 시작했고 개울가 버들개지는 제몸을 부르르 털어내며 기지개를 한껏 펴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시는 줄도 몰랐던 나는 알수없는 누군가의 부름으로 겉옷을 걸치고 우산도 없이 집을 나섰드랬습니다. 우산 때문에 집으로 돌아서긴 싫었습니다. 길이 이어진 곳까지 비를 맞으며 걷기로 했습니다.
조금씩 옷이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봄의 온기로만 느껴졌고 새털처럼 가벼워지기까지 해서 날아갈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어떤 이는 흥겨운 리듬을 웅웅대며 곁을 빠르게 지나 멀리 사라졌고 개울물은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았고 연두빛 새순들을 정확히 볼수는 없었지만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렇게 봄의 빛으로 물이 들어가는듯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나는 차가운 겨울속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아무것도 보지않으려 하였습니다. 그저 나의 고달픔에 정신을 잃고 깜깜한 내 안에서만 겨우 눈만 뜨고 있었습니다.
어제 이른아침 7시 봄님이 불현듯 개울물을 건너왔습니다. 차갑고 어두웠던 나의 가슴에 환한 불을 켜 주었습니다. 세상이 두려워 꼭꼭 숨어 몸을 감추었던 나의 영혼도 자신의 자리로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거친 바람은 흔들리는 나무를 흙속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게 하여 더욱 단단하게 자신의 몸을 지키게 한다지요? 아마도 삶의 모진 바람들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 더욱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 나의 뿌리는 거듭나며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따뜻한 창가에 잠시 차 한잔을 들고 서서 눈부신 봄햇살을 쬐입니다. 눈을 감고 빨래인듯 햇살아래 나를 맏깁니다. 가끔 문을 열면 부드러운 바람이 살풋이 밀려들며 소근거립니다. 아무것도 염려말라며 나를 다독입니다.
이제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가벼워졌습니다.
봄이왔습니다.
오늘은 새날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살피겠습니다.
인생 또한 그와 같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밤이 깊어져야 아침이 가까이 다가옴을"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비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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