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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다림영 2009. 7. 3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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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태양이  무엇이라도 녹일듯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다.  한쪽으로만 창이 있어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은 가게는 사막의 모래밭처럼 후끈하다.  

모든 것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에어컨도 켜지않고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오로지 책장만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웃음띈 얼굴로 화들짝 나를 부르는 것이다. 불현듯 나는 어린마음으로 돌아가  재재거리며 웃고 또 웃으니 그동안의 젖은 솜 같던 모든 상황들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린다. 더운 여름날 친구와 함께 하는 시원한 점심으로 그  어느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은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슬픔은 사라지게 하는  묘약이다.

 

  

손님을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갖가지 걱정으로 물 한모금 얻어먹지 못한 강아지처럼 집의 초인종을 누르면  "엄마야?" 하며  막내녀석이  쏜살같이 달려 나온다. 엄마의 도시락 가방을 들어주거나 혹은  와락 안기기도 하면서 나이든 엄마의  얼굴을 살피고 엄마의  오늘을 묻는다.  다정한 마음으로 엄마를 챙겨주는 막내아들 덕분으로 불끈 힘을 내지 않을 수 없다.

  

 

굵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비와 어울리는 음악과 함께 하며  지난 추억들을 하나 둘 호젓하게 떠올릴 수 있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생의 중년기에더없는 시간을 소유하며  삶을 누리고 있는것이다.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고 그 수익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곳에 매여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간다면 이렇듯  좋아하는 음악속에서 책을 읽거나 사색에 빠져든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것이다. 그러고 보면 얼마의 수익이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이것이 최고의 내 기쁨일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법칙은 성립해야 하는 것인지 모든 것을 유지시켜주어야 할 손님의 걸음이 없으니 바닥에 내려앉는 우울이 나를 지배한다. 그러나  이런날도 있고 저런날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의 방향을 환한 쪽으로 어느새 돌리는 나를 발견한다.  밝은 생각을 자꾸 하려는 내안의 내가 있다. 더이상의 무엇이 필요있을까.

 

 

 

내게는 시부모님 두 분이 계시고 그분들이 나의 세 아이들을 지켜주신다.  나는 하루중 거의 12시간 가까이  밖에서 지낸다.  우리 일곱식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벌어들인 수입에 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시 어머니의 끊임없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성격적으로 살갑지 못한  나는 따뜻한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속엔 항상 어머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제 곧 큰 녀석이 군대를 가게 된다. 어느날 녀석이 막내를 불렀다. 그때 나는 막 집에 들어서는 참이었다. 큰 녀석이 막내를 부르면서 한다는 말은 이런것이었다.

"막내야, 이제 형이 곧 군대를 간다. 할머니는 한쪽 눈이 잘 안보이신다. 그래서 형이 할머니 안경을 매일마다 깨끗이 닦았는데 이제  네가 해야 하겠다. "

철없이 가방만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며 마음속으로 큰녀석을 밀어내고 있었다.  여자친구도 생겨 걱정했드랬다. 녀석은 이미 가족을 돌보고 있는 따뜻한 청년이었다.

 

 

 

한동안 밥도 그 무엇도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곧바로 체하곤 했다. 이제 그 시간속에서 간신히 벗어나 건강한 위가 되었다. 먹는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마음만 먹으면 맛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개구장이 꼬맹이가 엄마와 대공원에 갈 약속을 한 것처럼 엄청나게 기쁜 일이다.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칠십이 아니라  마치 사십초반의  팔팔한 여자 같다. 항상 배움의 열정이 끓어올라 노인회관의 3개월 코스가 끝날때마다 분주하다.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처럼  눈이 반짝거린다.  일주일에 세번 어린이집에서 몇시간씩 아르바이트도 하신다.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내게 잠깐 들리셨다. 화장실에 가려면 꼭 문을 잠그고 가야하는 나를 위해 들리신 것이고 남편이 함께 하지 않는날은 나를 지켜주기 위해 걸음하신다.

요가와 서예 수지침 사물놀이 ... 토요일은 온전한 봉사 활동으로 일주일을 꽉 채우며 사신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이고 청춘의 삶이다.  나는 소망한다. 더도 덜도 말고 엄마처럼만 늙게 해달라고.. ..그러면 더없는 성공한 삶일 것이라고.

 

 

 

 

전화벨이 불같이 울린다. 부쩍 늙어버린 남편이다. 저녁에 데리러 오겠단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항상 그자리에서 나무처럼 나를 지켜주는 이가 있었다. 그에게  큰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하겠다. 지금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의 나쁜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믿으며  감사해야 하리라.

 

 

 

이러한 것 말고도 내 생의 숲에는 미쳐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소풍때의 아이처럼 보물찾기를 해야 하겠다. 조그만 그 기쁨으로 출렁이며 순간마다 충실해야 할 것이다.  봄날 후르르 날리는 흰꽃처럼 환한 웃음 퍼뜨리며 늙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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