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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는 이유

다림영 2009. 6. 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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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귀가길 나는 대부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때 하늘을 올려다 보곤하는데 그때의 시간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어쩌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희미한 별을 찾아 눈을 맞추기도하고 언덕위의 조그만 빌라들의 따뜻한 불빛을 보기도 하고 그 반대편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상가들의 반짝이는 조명들도 참 예쁘다 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정한시간을 초과하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조금은 차가운 초여름의 밤기운이 엄습하고 여름밤에도 몸을 웅크리며 버스가 오는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막연하게 세상에서 빠져나온듯한 느낌으로 서늘하게 서 있다. 하루를 무사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다림의 시간은  각별한느낌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어두운 밤 조금은 거리가 있는 전철역에서 퍼져나오는 형광불빛이 아스라이  버스정거장을 비출 뿐이고 아무도 서있지 않으면 어쩌면 버스는 주로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희미한 불빛사이로  몇이 서성이며 담배연기를  피워 올릴 때 기다리던 버스는 저만큼에서 동화속 행운의 마차처럼 불현듯 달려와 멈춘다.

 

 

 

어느때엔 그냥 이대로 어디론가 떠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오른다. 그러나 버스는 여지없이 내가 사는 곳에 나를 내려놓고 언제나 제 할일을 다했다는 듯  서둘러  달아나는 것이다.

 

 

나는 기사로부터 네번째 의자에 변함없이 앉는다. 언제나 그자리는 비어있고 내자리 인 것이다. 멀리 떠나는 이처럼 다소곳이 가방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보조가방은 단단히 한쪽 다리곁에 세워두면 버스는 마구 달려 나가고 나는 금새 편안해 지는 것이다.

 

 

버스는 시외로 나가는 차이고 그래보아야 집까지는 사십분정도가 소요된다. 나는 아주 긴시간 갈것처럼 허리를 곧추 세우며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밤의 풍경만을 응시한채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추억을 더듬는시간을 갖고는 한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울적해져서 눈물이 맺혀지기도 하고  기막힌 운명의 주인공처럼   알수 없는  서러움으로 가슴이 저며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울한 슬픔이 아니다.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늦은 밤  버스를 타는 시간 만큼 철저히 혼자가 되어 쓸쓸한 여행자가 되어 보는 것이다.

 

 

동네를 빠져나가는 길은 시금털털한 냄새도 날아들고  사뭇 깊은 산골을 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길을 달리는 동안  불빛이라고는 희미한 가로등과 이따금 보이는 음식점이 고작이다. 그러한  어두운 밤에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 내게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여행길 같기만 한 것이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큰도시의 길로 들어서면  1번 국도를 만나게 되고  버스는 날개라도 단듯 몇 되지 않은 손님을 태우고 마치 강원도 바닷가라도  되는 듯이 시원하게 달려간다.  그렇게 버스가 빠른속도로 달리면 나는 오래전 소녀적 선생님의 재미난 말씀이 떠오른다.  

그때 우린 설악산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멋드러지게 설명하시던지  강원도 동해를 한번도 가본적이 없던 소녀들은 '와, 와' 하는 소리를 지르고 한편 숨을 죽이기도 했다. 가끔 그때의 생각으로  마치 내가 타고 가는 버스가 동해바다의 길을 달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있지 말이다, 버스가 강원도 에 마악 도착하면 양쪽이 모두 바다야 ,그 한가운데에 버스길이 있지, 그런데 바다 물살이 얼마나 센지 버스가 도로를 달리면 양쪽의 바다에서 파도가 이는데 버스를 뒤덮고 말아.  오징어며 새우며 웬갖 물고기들이 파도를 타고 버스위를 넘는거야....., 창문을 열면 오징어도 그냥 손으로 잡을 수 있다니까..... " 

졸음이 쏟아질 오후 5째 수학 시간.. 선생님의 그 황당한 말씀으로 우리는 화들짝 잠을 깨고  상상속으로 들어가 얼마나 크게 웃으며 즐거워 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꿈에까지 그 상황은 연결되고는 하는 것이었다.  설악산을 다녀오며 모든 것이 거짓말임이 드러났지만 지금껏 그 맛난이야기가 가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길에서  떠오르며 나는 혼자 웃는 것이다.

 

 

6차선이상 되는 넓은 길, 자동차들의 불빛은  무늬처럼 길게 길게 이어지고 늦은 시각까지 영업하는 가게들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은 나를 유혹하는 듯 하다.

 

 "그냥 내리세요. 한번 낯선 도시에서 내려보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당신을 즐겁게 해드릴게요'..

이어지는 상점들의 불빛들은 반짝거리며  내게 윙크를 해대고 그렇게 말하는것 같기만 한 것이다.

 

  

가끔 주말일 때면  '한번 내려서 걸어볼까' '저기 저 옷집에 들어가 볼까? 저 술집 조명 참 괜찮은데 ...."하면서 '나중엔 정말 이곳 저곳 예쁜 가게들을 찾아서 사진도 찍고 아무데서나 내려볼꺼야 그리고 그 마음을 적어보아야지' 하며 나의 미래는 그렇게 보내리라 다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조그맣고 인상적인 가게들을 찍어서 스크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에 나의 집이 있는 도시에 다다르고 나는 정신이 들어 서둘러 내리고 다시 우리 동네를 지나는 버스를 기다린다. 도시의 불빛은 깊어가는 밤 더욱 화려해 지고 육교위에는 음악회가 열린다는  플랜카드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언제나 여유가 있어 그러한 곳엘 가보나 하고 고개를 돌릴때   피곤은 더욱 무겁게  어깨위에 내려앉고  오토바이족들은 굉음을 쏟아내며  곡예를 하듯 한 차례 지나가고  그뒤를 이어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연달아 날아드는 것이다.

 

 

 

그래도 긴시간은 아니지만 앉아서 왔기에  나는 다음차에서는 서 있기를 고집하고 한손엔 도시락가방을  반대쪽 어깨엔 온갖것들이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중심을  잡으며 버스와 함께 집으로 달려간다.

몇분후 도착한 나의 집 앞에는 시내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6월의 숲 향기가  나를 마중한다. 녹음진 아파트 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어떠한 작은 평화에 흠씬 안기게 되는 것이다. 늦은 밤 나의 짧은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다.

 

 

 

10시간이 훌쩍 넘도록  열평도 안되는 사각의 틀속에서 삶을 견디고 있다. 고작해야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는 화장실 가는 것이 전부이다.

전철을 타면 훨씬 빠르게 갈 수 있는 집이지만 나는 항상 집으로 돌아갈 때 만큼은 언제나 버스에 오르는 것을 7년가까이 고집하고 있다.

전철이 제아무리 빠르게 나를 실어다 준다지만  기꺼이 그것을 사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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