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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관한 추억

다림영 2009. 6. 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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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진다. 
출근길 아침, 일산역이 잠겼다고 한다. 안양역의 안내 방송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1978년 고등학교 이학년 때로 기억한다. 살기 좋은 안양에도 물난리가 났었다. 그날 나는 
시험공부로 가장 늦게 교실에서 나왔다. 토요일이 아니었나 싶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 보
니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빗방울 이 투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냥 비이려니 했다. 우기였으므로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그 굵기는 진주알만 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는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얇은 천으로 된 우산은 금방이라 도 구멍이 뚫어질 것 같았
다. 세상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렁찬 빗소리는 온 세상을 점거하고, 사람들과의 
전쟁을 선포 하는 듯 들렸다. 
 시내로 내려오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잠깐 동안의 장대비는 발목까지 물이 차게 했
다. 버스들은 마치 헤엄을 치는 듯 물을 가르고 달려 나갔다. 아무래도 전철이 빠르지 싶어 
바삐 역으로 갔다. 아마도 사람들은 전철을 한참을 기다렸는지,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
는 사람들도 있었고, 기다릴 속셈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점점 늘어만 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차가올 방향을 지켜보며 한 시간 이상 을 기다렸다. 차는 오지 않았
다. 모두들 기다림에 지쳐 그곳을 떠나고 있었다. 연신 곳곳의 역이 침수되고 있다는 방송
이 흘렀고 전철은 결국 그렇게 끊기게 되었다. 역을 빠져 나오며 큰일이다, 조금만 일찍 서
두를 것을, 하는 후회로 혼자였던 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버스정거장으로 옮겨야 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삽시간에 시내는 아수라장이었다. 발목 까
지 오던 물은 급기야 종아리에 차고 여기저기서 물이 역류하는 것이 보였다. 한 두 대 의 버
스는 사람들을 태우지도 않고 어디 론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특별한 곳으로 사명 을 띠고 가
는 듯 속도는 빨랐다. 버스가 지나가는 중앙도로에 찬 물은 남쪽 어느 바다처럼 갈라졌다가
는 다시 하나가 되어 출렁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부곡의 버스는 오지 않았다. 어둠은 이미 몰려 왔다. 나는 어쩔 줄 몰랐
다. 그러한 순간, 순식간에 불빛들이 약속이나 한 듯 사라졌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칠흑 같은 암흑……. 
 사람들의 소리는 고함으로 바뀌었다. 잠시 후 각각의 건물에선 하나 둘 촛불이 켜지고 있었
다. 그 상황은 마치 도시의 사람들이 특별한 파티를 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영상으로 펼쳐졌
다. 
 어디선가 우리 학교 학생들을 찾는 낯익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찾아 흔들리
는 빛을 따라 움직였다. 척척 다리를 감는 물먹은 치마를 부여잡고, 물살을 헤치며......
 다행히 그러한 막막한 어둠속에서 후레쉬를 들고 호각을 부는 낯익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
었다. 선생님의 인솔에 몇몇의 학교학생들과 나는 안양 성당 앞에 있는 2층 의 타자학원에 
오르게 되었다. 친한 친구 하나 없이 오롯이 혼자 된 것이 한편으로 무서웠으나, 나름대로
 어떠한 각별한 세상에 발을 들여 놓은 듯 어떠한 긴장과 가벼운 흥분으로 가만 앉아 있지 
못했다. 
 어두운 학원에는 통학하는 학생 들 중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숨이 턱
턱 막혀오고, 촛불은 그렁그렁 타오르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장대비가 쏟아지는 창밖
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걱정의 눈빛으로 높은 곳에 매달린 시계를 올려다보곤 했
다. 지금도 그 수런거림과 불안한 공기가 느껴지는 듯하고 암흑이 되어버린 시내가 훤히 내
려다보이는 그곳에 서 있는 듯하다. 
 선생님은 학교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그때 우리는 안양성당 옆길을 걸어 지나야 했다. 세상
에, 순식간에 물이 허리까지 차는가 싶더니 가슴까지 차올랐다. 가방을 머리에 이고 우산은 
간신히 들었으나 소용없었다. 마치 피난민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뒤를 자꾸 돌아보시며 아
이 들의 머리수를 세는 듯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손에 땀을 쥐고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무사히 학교언덕을 오를 수 있었다. 
학교언덕길은 뭉텅뭉텅 쓸려나가고 있었다. 
 숙직실과 서무실은 한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촛불은 이곳저곳에서 촛농을 떨어뜨리며 타
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몹시 염려스러운 듯이 눈을 크게 뜨기를 반복하며 바라보는 듯 느껴
졌다. 무겁고 습한 공기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교복은 온통 누런 흑 탕 물이 배어들었고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 시켰다. 선생님
은 집에 전화를 하라 하셨다. 손잡이를 잡고 열 번 이상을 마구 돌려 엄마와 의 짧은 대화
를 간신히 마쳤다. 그때는 교환이 연결해 주는 전화였다. 다행히 전화선은 끊기 지 않았
다.   선생님은 자리를 비켜주시며 치마를 벗어 말리라 하셨다. 얇은 다리에 무겁게 감겨들
던 교복을 너 나 할 것 없이 훌렁 벗어, 여기저기 책상 모서리에 걸어두고, 흙빛으로 물이 
든 속치마만 입고 있었다. 얼마나 가볍고 가뿐하던지……. 
 찜통인지 냄비인지 커다란 곳에 누군가 라면을 끓였다. 앉지도 못하고 선채로 허겁지겁 먹
었다. 김치 한쪽 없이 열 명 남짓하던 인원이 둘러서서 정신없이 먹어대던 라면이 왜 그리 
맛이 나던지……. 
 단 한 번도 대화가 없던 학교 친구들, 얼굴만 눈에 익던 동창들과 느닷없는 한 배를 탄 조
난자가 되었다. 억세게 내리던 빗속에 갇힌 어두운 서무실, 우리의 우정은 갑자기 생겨났
다.   풋풋한 소녀들의 얘기는 지칠 줄 몰랐다. 배를 쥐고 웃으며 때로 염려서린 눈빛으로 
…….
 칠월의 무덥고 습한 그 밤, 무지막지하던 장대비소리를 들으며 눈 한번 감지 않고 우리는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웠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비도 아침이 되니 그 완고하던 고집을 풀고 언덕너머로 사라졌다. 차
편은 모두 끊겼다고 했다. 어디선가 떠밀려 내려 온 것들이 거리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
고, 가로수는 대부분 꺾여 져 있었다.
 부곡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 연신 걷고 또 걸었다. 신발은 물
을 있는 대로 먹었고 그 무게는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신발은 또한 무슨 박자를 맞추겠다는
 것인지, 찍찍 소리를 쉬지도 않고 냈으며, 발을 감싸던 피부는 허옇게 부르터 일어났다. 나
중에는 신발을 손에 쥐고 맨발로 걷기도 했다. 
 길은 하염없이 멀었다. 그때 우리 동네와 안양시내 까지는 버스로 오십 여분의 거리였다.
 고천엘 다다르니 집에 다온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몇 날을 걸어온 듯 착각에 빠져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그다지 넓지 않은 개천이 있었다. 다리는 끊어지고 그 형태는 찾
을 수 없었다. 힘센 물살은 누구라도 잡아먹을 듯이 요동치고 그 막강함을 한 눈 에도 알 
수 있었다. 
 4H청년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새끼줄로 서로의 몸을 이어 묶었다. 청년들의 가슴까지 물
이 찼다. 물속에서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들의 팔에 안겨 
간신히 내를 건널 수 있었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진다. 화난 듯이 우두두두 마구 퍼붓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가게의 
환한 불들이 일찍 꺼지고 있다. 나도 어서 집에 들어가야 할 것 이다. 여기저기 사고 의 소
식으로 심난하다. 막내 녀석이 전화를 주었다. 
"엄마 잘 올수 있겠어, 거긴 괜찮아?” 
 종일 비에 대한 뉴스로 아이도 내심 아직 돌아오지 않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집에도 역시 안양 같지는 않았지만 피해가 있었다. 부엌엔 
물이 들어찼었는지 엄마는 쓸어내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젖은 옷을 훌훌 벗어 던져두고 자
리를 펴고 다리를 쭈욱 뻗으니 빗 속 에서의 피곤한 일정이 눈 녹 듯 사라지고 이내 나는 혼
곤한 잠속에 빠져 들었다. 
 그 시절 산본에 친척 중 한 일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물에 잠긴 쌀을 어쩌지도 못 하고 
떡을 했노라고 그 무거운 것을 차를 타고 머리에 이고 왔다. 
 산본의 피해는 유독 심했다. 워낙에 낮은 지역 이었고 파랗고 빨갛던 지붕위에 사람들이 손
을 흔들던 뉴스가 생각난다. 한동안 길고 누렇던 그 떡은 우리의 주식 또는 간식으로 먹던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그 후 학기말 시험을 보았는지 그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몇 며칠 학교의 무너진 운동장
 의 언덕을 돋우기 위해, 저마다 집에서 세숫대야를 들고 등교했다. 날마다 줄을 이어 흙을 
퍼 담고 나르던 그해 7월, 돼지가 집 앞을 떠내려 갔네, 한 박스의 아이스크림 상자를 건져 
올려 먹었네, 똥물 속에서 간신이 살아나왔네 ……. 기타 등등의 그러한 얘기는 오랫동안 소
녀들의 교실을 시끄럽게 흔들어대곤 했다.
 안양의 산동네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다. 나무가 많
지 않던 야트막한 산은 허물어지고 많은 인명피해를 내고 말았다. 우리 중학교 건물은 수재
민이 오랫동안 기거했고, 편지봉투로 쌀을 가득 담아 주일 마다 냈다. 논이 있던 친구 집으
로 벼를 세우러 나가기도 했는데, 어떠한 걱정 보다 새참으로 나오던 노을 빵과 딸기우유 생
각에 젖어들곤 하던 철들지 못했던 한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화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이다. 어느새 칠월의 중반에 들어섰다. 곳곳의 비 피해 소식이 날아
들고 있다. 대 자연의 피해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들의 울음이 터지고 있다. 우리를 비껴가
길 기도할 뿐이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7월의 어둠을 바라본다. 오늘도 나는 한 1.5센치 정도 늙
은 듯싶다. 혼자 추억을 뜯어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그러한 회상에 잠겨 일어설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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