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알자스/<프랑스 어느 작은 시골마을이야기>신이현

다림영 2009. 7. 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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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리니 집 옆으로 흐르는 겨울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몇 마리의 야생노루와 멧돼지, 여우가 사는 집 옆 야트막한 밤나무 숲이 텅 비어있다.계곡 옆 텃밭도 흰 눈에 덮인 채 텅 비어 있다. 이 텃밭은 시부모의 집에서 부엌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끊임없이 무엇인가 생산해 내는 부지런한 땅이다. 종류가 다양한 상추들로부터 시작해서 양배추, 양파, 파, 완두콩, 토마토, 딸기, 감자, 당근, 호박, 오이와 같은 것들, 한국의 텃밭에 심겨지는 태소들과 다를 것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국적의 살마이 요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호박과 감자지만 시어머니가 하느냐 내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요리가 된다.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음식이 나온다. 우리는 늘 생각도 못한 상대방의 요리 방법에 눈이 휘둥그레지곤 한다.

 

 

 

1층 부엌에서 라디오 소리와 함께 시큼한 듯하면서도 향긋하고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슈크르튼냄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오늘 점심은 슈크루트구나 미소 짓는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면 적어도 서너번은 먹게 되는 음식이 슈크루트다. 소금에 절여서 푹 삭힌 양배추를 '슈크루트'라고 하는데 훈제한 돼지 넓적다리나 삼겹살과 같은 다양한 부위의 돼지고기 삶은 것과 여러종류의 부드러운 햄을 곁들여 겨자 소스와 함게 먹는 겨울 음식이다.

 ..

 

사이사이 요리법도 적어 두었다. 낡을 대로 낡은 자그마한, 어쩌면 매매 평생 가장 소중했을 공책이다. 루시는 그 공책을 그대로 간직하여 시어머니에게 배운 요리를 할 때는 항상 펼쳐 놓고 본다...

 

 

생선회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냥 끔찍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자기가 자란곳의 특성에 따라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음식을 못먹고 죽게 되는 지 모르겠다.

..

 

자동차는 봄의 초록 속으로 끝없이 달려간다. 눈을 감았다 뜨니 아직도 초록을 끼고 달린다. 눈을 감았다 뜨니 다시 초록, 이렇게 끝도 없이 초록속을 달려가다 보면 봄이 시작되는 그 최초의 구멍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

 

그러나 내가 보기엔 독일과 알자스는 닮은 구석이 많다. 알자스어도 얼핏 들으면 꼭 독일어처럼 들린다. 지리상으로 봤을 때 알자스는 보주산맥으로 가로막힌 프랑스 중심보다는 르와르 숲을 사이에 둔 독일과 훨씬 가깝다. 말뿐만 아니라 음식도 많이 닮았다. 감자와 돼지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알자스 음식은 기본적으로 독일음식의 수수함과 닮아 있다.

 

 

 

프랑스식 아침 식사를 하다가 영양 결핍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유로 만든 버터에는 지방과 칼슘이 들어있고 잼에는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다. 그리고 한끼에 필요한 탄수화물은 통밀빵으로 채우면 된다. 거기다 한 사발 가득 먹는 커피는 아침 기분을 맑게 해주는 것은 물론 수분도 공급해 준다. 그래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면 요구르트나 생치즈를 곁들여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나라에 누군가 온다면 나는 첫번째로 이렇게 권해 주고 싶다.

"아침은 프랑스식으로 하세요"

 

 

마당은 이렇게, 다락은 저렇게. 아침식사는 이런 스타일로...현실적으로 농가는 꿈도 꿀 수 없는 비싼 가격이다. 오늘 오후에 점심을 먹기로 한 집은 직접 소를 키우고 치즈를 만들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집에서 먹는 것은 모두 그 집 농장에서 나온 것이다. 겨울 동안 에 문을 닫았다가 눈이 녹으면서 새로이 문을 연것이다.

 

 

아마도 이 부엌에서 그녀의 반평생이 흘러갔을 것이다. 재봉틀 바느질은 물론 우편물을 읽고 답장을 하고 방문객들과 차를 마시는 곳도 부엌이다. 완벽하게 그녀가 주인인 그녀만의 공간이다. 그래서 그녀의 성향을 금방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부엌문 위에는 십자가가 매달린 조그만 예수상이 걸려있고 수수한 찬장위에는 옛 알자스 전통 물병들이 진열되어 있다. 식탁 옆 벽에는 새가 그려진 옛날 접시들과 레몽이 만든 액자들, ..

 

 

 

결혼하고 첫딸을 낳은 뒤 두 사람은 20년 상환으로 은행 돈을 빌려 터를 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정원을 일구어 중앙에는 전나무를 심고 네 구석에는 그늘도 주고 꽃도 주고 열매도 주는 사과나무와 체리나무를 심었다. 복숭아나무도 심었다. 루시는과일 나무 아래 꽃나무를 심고 집 맞은편 땅은 텃밭을 일궜다. 첫밭엔 감자와 야채를 심과 사과나무와 산딸기 나무로 텃밭 울타리를 쳤다.

 

 

 

병마다 과일 이름과 연도를 적은 작은 딱지가 붙어 있다.멋지게 폼을 낸 레몽의 글씨체다. 잼을 만드는 어제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소쿠리에 가득 담긴 노랗고 붉은 작은 열매들과 설탕포대, 저울, 유리병들, 커다란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녹아드는 과일을 나무 주걱으로 휘젓는 루시와 작은 글자를 써서 병마다 붙이는 레몽...

 

 

 

알자스 포도밭은 보주 산맥 아래 능선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까지 170킬로미터 정도 길게 이어진다. 봄에는 물이 올라 온 능선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여름엔 싱싱한 초록의 포도 넝쿨로, 가을에는 노랗게 단풍 든 풍경으로, 겨울에는 앙상한 줄기에 흰 눈을 듬뿍 쓴 모습으로, 어느 한계절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다. 이 포도밭 길을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다. 오르막길에서 지칠 때면 자전거를 팽개쳐두고 포도를 따먹어도 된다...

 

 

 

신부들은 온 동네 남자들이 주정뱅이가 되어 간다고 탄식을 하며 계몽해 보려 했지만 하나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과음금지법을 제정해 주정뱅이들에게는 얼마동안 물과 빵만으로 살게 하는 엄벌을 내렸을 정도였다. 아무튼 술이 생긴 이래 알자스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못한 경우는 전쟁이나 엄청난 자연적 재해 로 포도를 따지 못한 해 뿐이었다. 그런해에 만들기 시작한 것이 맥주였다. 이렇게 해서 알자스는 포도주뿐만 아니라 맥주로도 그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레몽이 뙤약볕 아래 빨갛게 익은 얼굴로 우리에게 온다. "날씨가 좋으니 바비큐를 하자꾸나" 루시가 제의한다. "불은 우리가 붙일게요." 내가 마른 포도나무 장작을 찾으러 가는 사이 도미는 부엌으로 가 티퐁슈를 만들어 온다. 그는 신문지를 구겨 바비큐 굴뚝에 넣고 그 위에 포도나무 덩굴을 얹어 불을 지른다. 포도나무는 단단해서 불을 붙이기는 힘들지만 일단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탄다. 등뒤로는 따가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고 앞으로는 바비큐를 이한 숯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서서 독한 티퐁슈를 마시는 것, 완벽한 바캉스 풍경이다. 도미는 햇빛을 좀 더 받기 위해 윗도리를 벗어 버린다.

 

 

 

 

우리는 부질없는 대화를 한다. 그녀는 절대 집을 놔두고 두어 달 쉬지 못할 성격이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윈 루시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할머니는 엄격한 가톨릭 방식으로 손녀를 키웠다. 열두살이 될때까지 검은 옷만 입게 했다고 한다. 여자가 낮에 침대에서 뒹군다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었다. 가끔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루시는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소녀때부터 두 오빠를 위해 집안일은 물론 포도밭일까지 하느라 잠잘 때를 제외하고 허리를 펴 본적이 별로 없었다. 평생 아침에침대를 정리하고 나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간 일이 없었다.

 

 

 

 

붐빠빠 붐빠바, 레몽이 좋아하는 왈츠다. 죠제와 로베르가 손을 잡고 중앙으로 나가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자 레몽은 보청기를 끄고 주머니에 넣은 뒤 루시의 손을 잡고 중앙으로 나간다. 루시는 언제 다리가 아팠냐는 듯 날아갈 듯 돌아간다.

모두들 딴 사람처럼 보인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한다. 모두들 너무 아름답다. 청춘시절 그들은 이런 나비 같은 춤을 추면서 사랑에 빠졌구나!

 

 

 

 

"일찌감치 물건들 좀 챙겨야 되지 않겠니?"

아침 커피가 끝나기 바쁘게 레몽이 창고 앞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오후에 떠나야 하는 우리 물건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라지만 그는 어제 벌써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깨끗이 닦아서 윤을 낸 탁자는 다치지 않도록 두꺼운 헝겊에 싸여있고 사과는 구워 먹을 수 있는 것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구분해서 망사주머니 가득 세 보따리나 담아 두었다. 거기다 리슬링과 피노 그리 백포도주 두 박스, 당근과 양파 한 주머니, 양배추와 파 한 주머니, 올해 만든 과일 잼 두 박스, 루시가 만든 고골로프와 비스킷 두박스 등등."

 

 

 

 

 

 

신이현

장편소설 <숨어 있기 좋은방>으로 문단에 첫선을 보인 신이현은 현재 파리에 살고 있다. 그녀의 하루는 집 앞 빵집으로 빵을 사러 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음에 나올 책을 위해 파리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들러 저녁에 먹을 기다란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글쓰기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설레는 즐거움이다. 지금까지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잠자는 숲속의 남자>와 번역서 <에디트피아프>등을 펴냈다.

 

........

 

어느날 갑자기 소소한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었다.

프랑스 어느 작은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의 아름다운 일상이 들어 있다. 달콤한 과일냄새 과자냄새 빵냄새 같은 것들이 잔뜩 배여 있다.  평범한 우리나라의 시골어머니의 정겨운 냄새도 새어나온다.   어머니는 자식을 끔직히 생각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먹을 것을 마련하고 가족이 즐거워 하는 것을 즐긴다.

 

 

힘에 부치기도 하련만  해가뜨기 시작해서 질때까지 제대로 앉지도 못하며 그저 바삐 움직이는데 모든 것이 행복으로 기쁨으로 보인다. 모든 주어진 삶을 즐기는 것 같다.  그녀의 시어머니 루시는 남편때문에 툴툴거리는 일도 다반사이지만 모든 것이 동화 속 이야기 같다. 책 <빨간 지붕아래서>처럼 소꿉장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지은이는 그러한 어느 프랑스 산골마을에 시부모를 둔 파리의 한국 작가 이다.

 

그녀가 김밥을 만들어 내었는데  마을사람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다른 먹거리들에대해 마구 물으며 한국의 근사한 음식에 고개를 흔들며 궁금해 하는 아이같은 모습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

 

알자스는 알퐁스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배경이 된 곳이라 한다. 포도밭, 와인이 유명하고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그곳의 사진들이 가며가며 들어있다.

 

그녀의 시부모들은 그 집을 아들이 물려받으며 살기를 소망하나 그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잘모르겠단다. 시골의 집을 유지하려면 온통 집에 매달려야 하기도 할 것이다.

 

그곳의 부모님 또한 우리나라의 부모님과 어쩌면 그렇게도 같은 모습일까

참기름 들기름 콩 ..그런것들을 바리바리 차에 넣어 주는 우리들의 시골 부모님과 똑 같다.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언젠가 부턴 나는 그런것들이 그리워 지기 시작했다. 멀리 있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멀리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게 보일터이니..

보통일은 아닐 것이다.  굉장한 일일 것이다. 왠만한 각오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지도 않던 일들을 자꾸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참 재미있게 읽었다. 여유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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