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제주 걷기여행/서명숙

다림영 2009. 7. 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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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이다. 차량으로 휙휙 이동하면 눈만 즐겁지만, 같은 장소라도 걸어서 가면 오감이 충족된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라이브 음악으로 들으면서, 목덜미를 간질이는 해풍을 트끼면서, 꽃향기를 흠흠 맡으면서 , 풀섶에 숨은 산딸기와 볼레낭 열매를 따먹으면서, 나비의 미세한 날개짓까지 지켜보는 즐거움이란 !

 

 

몇 시까지 어디에 반드시 당도해야 한다는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올레꾼, 진정한 간세다리가 될 수 있다. 당신, 시계를 자주 들여다 보게 되는가. 그렇다면 아직도 숙제하듯 여행한다는 증거다. 무릇 여행자라면 그 공간 그 시간에 머무를 줄 알아야 한다.

 

 

 

온종일 이불 위에서 뒹구는 날보다 온몸이 복삭하게 올레를 걸은 날, 몸과 마음은 더 가쁜하다. 지치도록 걷는 사이에 몸은 회복되고 마음은 절로 충만해진다.

 

 

 

만만한 거인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어진 걸까.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한민국 도보여행의 강점이 뭔데. 어느곳, 어느시간, 어떤 종목이나 배달이 가능하다는게 아닌가. 당장 근처 화순 반점에 자장면 스무그릇을 시켰다. 여자들이 찜질을 즐기는 사이에 순비기 언덕위로 배달차가 나타났다. 아아, 그날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형제섬을 반찬 삼아 먹은 자장면의 맛을 필설로 어찌 형용하랴.

 

 

 

풍경은 아득하고 소리는 가까웠다.

 

내려오는 데 길에 노조간부 엄마와 일곱 살짜리아들아이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엄마, 여긴 하느님에게 칭찬을 참 많이 받은 곳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칭찬을 많이 받았으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거지요"

"아름다운게 뭔데?"

"빛나게 예쁜게 아름다운 거예요"

 

 

걷기에 깊이 빠져들수록 평화롭게 느릿느릿,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면서 걷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오래오래 길에 머물고 싶었다. 잠깐 걸어도 이토록 몸과 마음이 치유되거늘, 몸과 마음이 지치도록 걷는 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다.

 

 

애면글면 아등바등 살아온 내게 평화와 휴식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 길 위에서 찾고 싶었다. 일에 치여 사느라고 잃어버린 나를, 그 길위에 서 묻고 싶었다.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산티아고 여행을 위한 실용정보를 얻으려는 사람은 나 같은 덜렁이에게 훈수를 받기 보다는 네이버의 '까미노'카페 등에 올라오는 꼼꼼, 실속 정보를 보는게 나을것이다. 일러두고 싶은 건 필수 생존장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취향을 전적으로 존중하라는것.

 

 

 

흰 수염이 무성한 자원봉사자가 내게 영어로 묻는다. 이 길을 걸으러 온 목적이 무엇인가?

종교적 목적? 영적인 목적? 스포츠? 그 외에?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나는 왜 이곳에 온 것일까.

나를 찾기 위해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일정표대로만 하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그건 해치워야 하는 숙제일뿐.

 

 

흐르는 물과 무심한 하늘에만 없는 것이 바로 산티아고 사인이다. 산티아고협회에서 발행된 팸플릿은 순례자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풍경와 사인에 마음을 집중하라'

 

 

우리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긴 인생길에서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중이라는것.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묻는 순례자들이었다.

 

 

 

분노는 옅어지고 그리움만 짙어진다. 미움은 사라지고 더이상 사랑할 수 없음만이 안타깝다. 강물위에 띄운 종이배처럼 흘러갈 일에 왜 그리 마음 상하고 애를 끓였을까. 대관절 무엇을 위해 뜨는해, 지는 노을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이 살았던 걸까.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자신에게 왜그리도 무심했을까.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한 내가 세상을 ,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포도주가 숙성하는 계절이 있듯이 생각도 익는 시간이 따로 있는 걸까. 이글거리던 태양의 위세가 한풀 꺾이고 짐승들도 제 집으로 돌아갈 무렵, 홀로 길을 걷는 것은 행선이요行禪,묵상이요, 기도였다.

 

 

"이곳은 완벽하게 조용한 곳이다. 고요는 자연이 준 귀한 선물이니 충분히 즐기라."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순 없잖아.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만들어져 있는 길만 길이라고 생각하던 나. 우리나라엔 왜 아름다운 걷는 길이 없나. 불평만 일삼던 내게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찾아왔다. 아, 내가 직접 길을 만들 수도 있구나.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어릴 적 걷던 내 고향 제주의 길을 내내 떠올렸는데...그곳에 길을 내면 되겠구나. 제주올레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었다.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른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순간 쏟아지는 햇볕을 즐기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남조다 더 빨리 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속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가 됐고, 목적이 돼 버렸다. 더 빠른 컴퓨터를 사기 위해 돈을 벌도록 끊임없이 강요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데는 시계가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는 것이다."-페터 보르샤이트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느림'과 '여유'를 통해서만 찾아오는것. 사람들을 '간세다리'로 만들어야만 했다. 적어도 평화의 섬 제주에서만큼은.

 

 

 

올레꾼이 올레에서 지켜야 할 몇가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지 않는다.

꽃을 꺾지 않는다.

동물을 쫒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비닐봉지를 갖고 다니다가 눈에 띄는 쓰레기를 줍는다.

개인이 치울 수 없는 쓰레기가 눈에 띄면 올레 홈 페이지 '킬린방'에 정확한 위치와 발견한 시간대를 적어놓는다.

제주 올레 홈페이지 www.jejuolle.org

 

 

관계지향인 여성의 속성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에도 적용된다. 길을 걸으면서도 들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비에게도 말을 건넬 줄 안다. 파도와도 몸을 섞을 줄 알고 바람과도 희롱할 줄 안다.

 

 

약간은 흐린날-비가오거나 희끗희끗한 눈발이 날리는 날이면 더욱 좋지만-에 놀부네집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순댓국밥을 허겁지겁 퍼먹을라치면, 장돌뱅이 아낙이 된 기분이다. 옆자리 손님도 '한라산' 소주를 "커어"소리나게 들이켜더니 "이 맛에 장날만 기다리주게"하면서 탁 소리나게 술잔을 내려놓는다. 그의 벌건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순대국밥 한 그릇'의 행복이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바람부는 날에도 올레를 걸을 수 있는가. 나는 대답한다. 바람 부는 날 올레 길을 걷게 된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제주의 길만이 아니라 제주의 삶을 느끼게 될 터이니. 바람 속엣 제주 바당은 당신에게 깊은 속살을 내어 보일 터이니. 어디 제주의 삶 뿐인가. 당신의 인생에도 바람이 자주 불거늘.

 

우도의 밤은, 다정하고 포근했던 낮과는 또 달랐다. 고즈넉하고 멜랑콜리했다. 불빛이 없어서 별빛은 더 빛났다. 총총한 별들이  우리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밀린 할 말이 많았지만 한동안 우리는 말을 잃고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우도의 밤풍경에는 인간의 언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인생도 사람도 그런게 아닌가 싶다. 세상 살면서 힘든 고비를 넘겨보고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어쩐지 맹숭맹숭하고 사람 맛이 덜난다. 반면 갖은 풍파를 헤치면서 살아온 사람은 구수한 인간미를 풍긴다.

..

 

그대, 삶에 지쳤는가. 한번쯤 삶의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가. 그러면 마라도로 가보라. 마라도 바닷가, 눈이 베일 것처럼 수평헌만 가로지른 그곳에 한 번 서보라."

 

 

 

서명숙

23년에 걸친 기자생활을 때려 치우고 길 위에 서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고향 제주를 떠올리다.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제주에도 만들 수 있음을 깨닫고. '나만의 길을 만들리라' 다짐하다. 귀국후 사단법인 '제주 올레'를 발족하고 걷는 길을 내기 시작하다. 현제 일곱 개 코스 101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개척하다. 올레 길로 제주를 한 바퀴 잇는 날까지 '길만드는 여자' 서명숙의 길 내기는 계속 될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올레(ᄋᆞᆯ레)는 제주도 주거 형태의 특징적인 구조로 볼 수 있으며,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제주의 거친 바람으로 부터 가옥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 주변으로 돌담을 쌓았다. 하지만 돌담의 입구로 불어 오는 바람을 막지를 못하기 때문에 입구에서 부터 좁은 골목을 만들었다. 제주에 많은 현무암을 쌓아 만들었다.

소설가 서명숙씨의 제창으로 걷기 좋은 길을 선정하여 지정한 걷기 여행 코스이다. 2007년 9월 8일 제1코스(시흥초등학교~수마포 해안)가 개장된 이래, 제13코스까지 개장되었다.

..........

 

나는 올레 길이  처음부터 그냥 있는 길인 줄 알았다.

..

아름다운 사람의 책을 만나 기쁘기 그지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가 빌려준 책이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읽는것만으로도 가슴에 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를 준비를 한다.

숨죽여 기다려 본다. 그 기막힌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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