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한줄의 고전/이창일

다림영 2009. 7. 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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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일

1969년 서울생.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강절의 선천역학과 상관적 사유>로 박사학위 받음.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워 고전학연구소전임 연구원으로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고전에 바탕을 둔 인문학으로 관심을 넓힌 이유는, 고전이 여러분야로 나뉘지 않은 통합적 학문이기 때문이다.요즘에는 동아시아 자연철학이 가지는 미래적 비전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 앞으로 이 주제를 좀 더 깊이 탐구할 계획이다. 또 하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와 한국의 고전에 담긴 '영원한 지혜'를 여러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TV강의와 책 쓰기는 바로 이 '소통의 인문학'을 위한 발걸음이다.

지은책으로는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53가지><사상의학><소강절의 철학><새로운 유학을 꿈꾸다><공저><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동무유고><황제내경><음양과 상관적 사유><자연의 해석과 정신><공역> 등이 있다.

 

 

 

 

 

무용지용 無用之用

 

"장자는 숲길을 산책합니다. 그러다가 엄청나게 큰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곁에 장석과 같은 나무꾼이 있었는데 그도 나무를 거들떠 보지 않는 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용하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제목이 아니라서 천수를 누리고 있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무용하기 때문에 살았구나!" 둘 다 무용이 문제지만 나무꾼은 유용에 신뢰를 보내고, 우리의 주인공 장자는 무용에 신뢰를 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자는 숲길을 산책하고 친구의 집으로 향합니다. 친구는 반가운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거위를 잡아 내오라고 합니다. 거위고기가 맛이 어떤지는 몰라도 우리 풍습에 닭을 잡아 내오는 것과 같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묻습니다.

"어느놈을 잡을까요? 한놈은 잘 울고, 다른 놈은 잘 울지 못하는데요?"

"잘울지 못하는 놈이 좋겠다!"

 

친구집에 계속머물던 장자가 제자들에게 공부를 가르칩니다. 아마 무용지용을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한 제자가 갸우뚱하며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 , 말씀하신것 에 의문이 생깁니다. 숲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목숨을 보존햇는데, 친구 분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둘 다 무용인데, 도대체 어떤 입장이시죠?"

 

 

장자의 태도는 분명 서로 달랐습니다. 무용을 유용보다 더 위에 있는 가치라고 했지만, 숲속에서 한 말과 거위 사건에 대해서 모순되는 언행을 보였습니다. 우리의 장자는 뭐라고 했을까요?

"껄껄, 나는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중간에 처하겠다!"

..

"쓸모있음과 없음의 중간이란 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아주 같지는 않다"

 

..

여기서 말하는 도는 장석과 거대한 나무의 대화, 거위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나무는 무용을 통해 죽음을 피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는 죽지 않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천수를 바랐습니다. 천수라는 말은 살아 있는 동안 삶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며, 죽을 때가 되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잘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까지, 끝을 넘어서까지 죽지 않고 살겟다는 생각은 도가는 물론이고, 한자문화권에서는 '삐뚤어진 욕망'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는 것은 살아서 잘 살고, 그 때문에 죽음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죽음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회피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삶과 죽음을 포괄 하고 있습니다.

 

..

장자는 이 도를 용에 비유합니다.

 

"길<도>을 따라 노닌다면 용이 되었다가 뱀이 되듯이 마음대로 늘었다 줄엇다 할 수 있으며, 한군데 집착하지 않는다. 이 길을 다른다면 온갖 사물을 뜻대로 부리지만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니, 재앙이 있을수 있겠는가?

아 그러나 이 세상이란 그렇지 않구나! 만나면 헤어지고, 만들어 놓으면 부수고, 모가 나면 깎이고, 귀한 사람은 해코지를 당하고, 뭐 좀 하려 하면 흠이 보이고, 어진 사람은 욕을 먹고, 어리석으면 속으니, 누구라서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까?

그대들이여, 명심 또 명심할지니, 오직 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중지와井中之臥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를 말 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사는 곳에 매어 있기 때문이라오. 여름벌레는 어떻겠소?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철밖에 모르기 때문이지요. 한구석만 파고 있는 사람과 함께 도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아는 것에 묶여 이기 때문이라오"

하백은 북해약의 말을 듣고서 자신이 더 넓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스로 만족하고만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백은 북해약의 말에 끌렸습니다. 이 위대한 신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하백은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다는 크고 터럭은 작은 것인가요?"

"작다 크다가 문제는 아니지.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큰것은 큰대로 그것이 만족스러운 이유가 잇다오. 다만 작은 것으로 큰것을 큰것으로 작은 것을 바라보는 데서 문제가 생기지요. 터걱은 바다보다 작지만 터럭이 원래 작은 것은 아니지요. 바다는 터럭보다 크지만 천지보다 크지는 않지요"

 

"부귀와 귀천, 대소의 구분은 어디서 생깁니까?'

"너른 견지에서 보면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오. 사물 각각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만의 눈을 유일한 하나의 눈이라 생각하지요. 이것은 한곳에 매어있는 것이 아니겠소?"

 

북해약의 말을 듣던 하백은 그런 전체적인 생각을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세상사물은 작지 않으면 크고, 귀하지 않으면 천한 서로의 자리가 있는데. 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허허, 만물은 생겨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소.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된다 이런것은 없소. 본래부터 조화의 스스로 그러함에 맡겨 그 흐름을 따를 뿐이지요."

 

북해약의 생각은 무위자연입니다. 스스로 그러함, 곧 자연을 따르는 것과 따르지 않는것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세한송백 歲寒松栢

 

어려울 때를 만나 이전의 영화로운 때에 지속했던 만남을 계속 이어가는 제자 이상적에게.. 추사..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 송백이 나중에 시듦을 안다'고 하셨으니, 송백은 사철을 통해 시들지 않는 것이라면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추워진 뒤에도 하나의 송백인데도. 성인께서는 특별히 날씨가 추워진 뒤만을 칭찬하셨다. 지금 자네가 내게는 앞이라고 더한 것도 없고 뒤라고 덜한바도 없으니 날씨가 추워지기 이전의 자네는 굳이 칭찬할 것이 없지만 , 날씨가 추워진 이후의 자네는 성인께 칭찬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봄이나 겨울에 집착하는 사람은 봄과 겨울을 보지 못합니다. 만물의 무상함을 알아야 만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송백이 늦게 시듦을 알자 다른 나무들이 일찍 단풍이 들고 먼저 지는 것을 압니다..

 

 

 

 

이판사판理判事判

 

이판사판의 철학에는 불교 철학의 제일가는 장점인 관계에 대한 깊은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관계란 이미 하나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 하는 말입니다. 주위를 보시고 자신을 들여다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있다는 것은 이미 '나 아 닌 다른 나들' 이 먼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다면 중요한 것은 나와 나 아닌 다른 나들이 어떤 관계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불교는 근본적인 인식을 가르쳐 줍니다. 자신의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의 협동과 조화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번판은 죽을 판이니, 막가는 대로 한번 해보자!" 원래 불법의 말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말에는 불교가 가진 융합의 정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판사판이라는 말은 그 쓰임이 한자문화권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정도로 그 의미가 변형되었습니다.한자의 혼동을 겪은 것이지요. 언어의 혼란은 생각의 혼란이고, 그 생각이 생긴 삶의 세계와 역사의 경험이 거친 혼란 속에 있었음을 반영합니다. 불교가 고난을 대신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이판사판의 세상'이 다시 되어야 합니다.

 

 

 

이순耳順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는 나이가 이순이라는 것은 인생이 조금씩 수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동적이라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말과 통합니다. 다 받아들이는 자세. 그것은 사랑입니다.

 

 

불혹不惑

 

"40살이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다"

...

 

몸도 마음도 중심을 잃는 순간 병이 찾아옵니다. 불혹은 단단한 중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단단한 중심을 갖는 나이가 40살입니다. 참 대단한 나이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의 다른 구절에서 이런말도 했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두려워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출세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중심을 잡고 사는지 아닌지를 보라는 뜻이라고 생각할수 있겠죠?

 

 

 

 

지천명知天命또는 지명知命

 

"50살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

..

이 나이가 되면 천명이라는 말처럼, 나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함께 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원칙을 제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고집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천명이 아니지요. 외곬이나 독불장군에 그치게 됩니다. 자신의 원칙이 집안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이 따라도 될 정도의 가치가 있어야, 비로소 천명을 알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모두 하늘입니다. 지천명의 나이는 나에게 맞는 원칙이 모두에게도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50대는 아직 노년기에는 접어들지 않고, 실력과 자산이 있는 연령입니다. 그 사회의 유연성과 개방성은 이들 나이 사람들이 나잇값을 해야 보장할 수 있습니다.

 

 

 

 

황희의 깨달음

 

검은소와 누런 소 두마리를 가지고 밭을 가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황희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여보시오. 게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떤 놈이 더 말을 잘 듣소?"

농부는 그 말을 듣자, 밭을 갈던 일손을 멈추고 황희에게 다가와 소곤거렸습니다. "검은 놈이 더 잘합니다. 누런 놈은 성질이 좀 있거든요." "아니, 그 말을 하려고 하던 일을 멈추고 작은 소리로 소곤거린다 말이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비록 짐승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일도 안하고 실망하는 법이지요."

 

 

이에 황희는 깨달았습니다. 황희는 수십 년 동안 재상의 지위에 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날 두 사람이 다투다가 그에게 판결을 부탁했습니다.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람의 말을 먼저 듣고는 "이 말이 옳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도 하소연 했습니다. 그걸 듣고는 " 이말도 옳다"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쭉 지켜보던 한 사람이 발끈 하면서 "도대체 누가 옳고 그른 것입니까?" 그러자 황희는 "이말도 옳다"라고 했습니다. 이건 무슨소리인가요?

..

..

..

이순이 되면 나쁜 소리도 나쁜소리로 들리지 않습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

귀에 거슬리는 것 이 없는 나이가 이순이라는 것은 인생이 조금씩 수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천명의 고집과 원칙도 이순에 이르면 부드러워지고, 부분이 아닌 전체를 생각하게 됩니다.

 

 

 

종심 從心

"70살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청수무어 淸水無魚

 

좋은 뜻으로는 자기 원칙이 있어서 그것을 철저히 실천하는 의지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뜻으로 말하면, 삶의 다양한 변화를 두루두루 고려해서 상황에 따라 원만한 방향으로 일을 결정하는 유연함이 없는 사람을 비난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렇게 청수어는 좀 부정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

 

호학했던 공자는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책을 묶고 있던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편삼절이라고 하면 독서에 열중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씁니다. 열독熱讀이라는 말로 줄일 수 있겠지요. 다른 한 가지로는 책 하나를 되풀이 해 읽을 때 쓰기도 합니다. 모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

..

끈이 탁 끊어집니다. 공자는 흩어진 나무조각을 원래대로 꿰맞추고 새 가죽으로 묶습니다. 공자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요? 영원한 것을 지키려, 그 질서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을 확신하려고? ..

..

 

 

....................

 

 

나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


깨달음을 얻으려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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