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이별연습<지구반대편을 향한 달 이야기>니콜라스 보른/임우영

다림영 2009. 7. 2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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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우르젤. 이제 다시 모든게 정상이야"하고 말하고는 내 자신도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우르젤은 여권과 비행기표가 들어 있는 투명한 봉지를 공중에 흔들었다. 우르젤이 내게서 떠나갈 때면 대부분 마음에 내키지 않아 하고 수줍어 하는 듯이 보였다. 우르젤이 통제구역으로 들어가 검사하는데 정신이 팔린 듯 하자 마치 내게 달려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번에 는 에리카한테서도 우르젤이 불이 꺼지듯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르젤이 회전문을 통과해 사라졌다.

 

내가 아직도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 어딘가를 보고 있는 동상이 생각났다. 그것은 결코 고통이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 공허함이 다시 채워진 공허함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곧 우르젤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는 것도 다시 잊어 버릴 것이다."

 

..

"유리창을 통해 레스토랑을 안에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레스토랑 위는 다시 유리로 뒤덮여 있었고, 녹지대 쪽으로 터져 있었다. 거기에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종업원들이 쟁반위로 몸을 숙이고 식탁 사이를 돌아 다녔다.

 

 

생활에서 분리된 휴식의 한 토막이랄까. 잘 보이지도 않고 방해를 받기도 했지만 사진사가 스탠드바의 높은 의자에 앉아 있고, 마리아가 그 앞에서 그의 무릎에 기대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리아는 음탕하고 상냥한 눈으로 사진사에게 웃고 있었다.

 

 

마리아의 피부에는 은은한 광택이 났으며, 얼굴에는 항상 새로운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고, 마리아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점에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원하지 않았던 안도감을 느꼈다. 테이블보다가 휙 날아가자 어떤 사람이 그것을 꼭 잡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의 팔목에 번쩍이는 팔찌와 손가락에는 반지가 여러개 끼여 있는 것도 보였다. 마리아는 술을 마시면서 사진사를 쳐다보며 점점 더 만족스러워 했다. 마리아는 어깨에 가죽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어떤 감정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꿈과 같이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치 내가 다시는 아무것도 알거나 경험할 필요가 없는 듯이 또 아무것도 아쉬워 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통로로 쏟아지는 사람들의 홍수로 영원히 흔들리는 움직임속으로 휩쓸려 갈 것이 분명 한 듯했다.

 

 

더 이상아쉬운 것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무감각했고, ...

 

 

..

 

모든 움직임이 내게는 차분하게 느껴졌고, 마치 임시로 발생하는 것처럼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역 뒤편 건물을 보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벽에는 확실한 치수로 나눠 놓은 창문과 발코니들만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은 스스로 자기 방향을 잡았다. 교차로에서 가벼운 교통사고가 일어났으나 재빨리 치워졌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활기를 되찾았다"

 

 

 

역자 후기 중에서

 

"마리아의 진실성에 회의를 느낀 화자는 끊임없이 그녀와 헤어지려고 노력하지만 마리아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그녀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이 뇌종양이라는 치명적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숨기며 살아간다. 절친한 사이였던 라스키 마저 지병으로 죽자 그는 마지막으로 딸 우르젤과 함께 자연 속에서 휴가를 보낸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시 사진 작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은 마리아에게 최종적으로 이별을 선언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한 번도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 살지도 서로 헤어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신들의 생활과 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그들을 몰락으로 내몰고 있다. 그들 자신만이 그 몰락의 증인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질 따름이다.

...

남자는 마침내 내 자신들의 잉야기를 쓰면서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탈출구를 찾는다. 그의 친구 라스키도 비슷한 상황에서 정치적 문제에 뛰어들어 결정적인 탈출구를 찾는다.

..

비인간적으로 진행되는 남녀간의 갈등 속에서 스스로의 균형도 무너지고 거짓 보호막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시대 <68년 학생혁명시대>를 살아온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이 이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다.  

 

 

 

니콜라스 보른

니콜라스 보른은 1937년 12월 31일 독일 중부 루어 지방의 뒤스부르크에서 출생하여 독일과 네덜란드 국경지역인 엠머리히에서 성장했다. 에센에서 철판제작 실습을 마치고 60년대 중반부터 베를린에 정착한뒤 이란의 팔레비왕 반대시위에 적극 가담하면서 좌파성향의 작가로 활동했다.

 

니콜라스 보른은 특히 시와 동화, 그리고 방송극으로 유명해졌는데, 그 공로로 "브레멘 시 문학상" 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긴 투병생활 끝에 1979년 12월 7일 암으로 함부르크에서 사망했다. 작품으로논 <시장상황 Marktlage><1967><무엇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Wo mir der Korf steht><1970>,<발견자의 눈 Das Auge des Entdeckersj<1972>,<지구 반대편을 향한 달 이야기 Die erdabgewandte Seite der Geschichte><1976><위조Falschung><1979>등의 소설과 다수 시집이 있다. 그의 마지막 소설인 <위조>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영화화한 유명한 감독 폴커 슐륀도르프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임우영

대구에서 출생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및 뮌스터대학에서 독문학, 사회학, 철학, 고전 중국학을 공부했다.<실험적 자기묘사-괴테의 초기희곡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이다.

 

.......

 

 

휴일에 책을 빌리지 못해 출근하는 월요일 급히 세권을 빌렸다. 빌릴책을 메모한 용지도 가져가지 못하고 눈에 띄는 책을 골랐다.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무언가와 끊임없는 이별을 해야 했으나  여전히 이별이 낯설어 선뜻 책을 빼내었다.

 

소설 빌리기를 주저하는 나다. 그러나 한번씩 도전해본다. 소설과 가까워 지고 싶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나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 한줄 한줄을 읽는 사람같다.

이사람의 글은 쉽게 읽혀지는 글이다.

언젠가 어느선생님께서 말씀하셨을까

쉽게읽혀지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하셨다.

 

 

소설을 읽고나면 백지가 되어버리고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

분명 몰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의 짐을 잔뜩 지고 있는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책을 들기전엔 싸리비로 깨끗하게 모든 것을  쓸어내고 읽어야 할 것이다.

 

 

국적에 관계 없이 이별은 모두 비슷한 모양새다.아니 어디에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성격의 차이 이겠다.

해를 거듭해도  낯선이별에서  헤매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당차게 지워버리고 활달하게  더욱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애인이 보이는 모든 풍경이 그저 그런듯이 지나간다.

사랑과의 결별후 주인공의 마음이 환하게 들여다 보였다.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함께 그 고독한 길을 걸어보았다.

 

삶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그다.

단 하나의 혈육인 딸과의 공항에서의 이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딸은 엄마에게로 신이나서 돌아가고 아빠만 어린딸을 가슴시리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만약 이책을 샀다면 필사를 할 것 같다.

한귀절 한귀절이 마음에 걸어 들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어떤 이별이든 잘 견디어 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처럼 모든 풍경을 찬찬히 살피며  묵묵히 잘 걸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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