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고전산문을 읽는 즐거움/정진권 역해

다림영 2009. 5. 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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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소리 듣기/박지원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사나운 짐승으르렁거리듯 바위 를 친다. 그 놀래고 성나고 험악한 물결, 더러는 슬퍼하듯 원망하듯, 급한 여울이 되어 내닫고 부딪치고 휘말리고 엎어지고 소리쳐 만리장성이라도 무너뜨릴 듯 하니, 전차만대와 기병만 명과 전포 만 문과 전고戰鼓만 좌로도 그 무너뜨려 짓밟으려는 소리를 비유하기 어렵다.

 

 

모랫벌에는 큰 바위들이 우뚝 우뚝 하고 강둑에는 버들들이 어둠속에 서 있어 금방이라도 물 밑의 귀신들이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짓누를 것 같은데, 배 양쪽에서는 또 이무기들이 불숙 솟아올라 사람을 나꿔챌 듯만 싶다.  누가 말하기를 이곳이 옛날의 전쟁터여서 강물이 이렇게 운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강물 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내 집이 산중에 있는데 집 앞에 큰 내가 흐른다. 해마다 여름에 소나기 한바탕 지나고 나면 냇물이 사납게 불어 늘 전차, 기병,전포, 전고 소리로 귀가 멍해진다. 나는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 들을 때마다 서로 다른 그 소리들을 비교하며 들은 일이 있다.

 

 

내 마음이 맑았을 때 그 냇물 소리는 솔바람 소리로 들렸다. 성났을 때는 산언덕 무너지는 소리로 들리고, 교만으로 차 있을 때는 뭇개구리 다투어 우는 소리로, 노했을 때는 일만개의 악기 소리로, 놀란 마음이었을 때는 천둥 번개 소리로, 내 마음에 운치가 깃들었을 때는 찻물 끓이는 소리로, 의심으로 가득 찼을 때는 바람에 문풍지 우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이것은 그 물소리를 바르게 들은 것이 아니다. 다만 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귀가 이런저런 소리를 지어낸 것일 뿐이다.<열하일기>

 

 

 

 

음식으로 점을 치는 사람/이옥

 

장봉사는 서울 사람이다. 어느 사대부댁에 제사나 잔치가 있으면 꼭 찾아가 얻어먹느데, 혹 음식이 남으면 소매 속에 넣고 다른 집을 향한다. 하루에도 여러집이다. 어느 행인이 그에게 그리 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가 점친 것이 맞는 지 알아보려고 그럽니다."

"무슨 점을 칩니까?"

"음식으로 그 댁으 운수를 점칩니다. 이 점의 신령스러움은 다른 점에서 멉니다.

내가 어느 댁에 들어가 절을 하고 앉으면 주인이 상을 차려 냅니다. 나는 곧 상을 당겨 음식 솜씨를 살피고 그 맛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면 곧 그 댁의 가운家運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일찍이 어느 상서댁엘 갔는데 그 제사 음식은 호화스럽고 그 잔치 음식은 새로웠습니다. 내가 속으로 걱정했는데 걱정한 대로 되었습니다. 나는 또 어느 태수댁엘 갔는데 그 제사 음식은 깨끗하고 그 잔치 음식은 수수했습니다. 내가 속으로 축하했는데 축하한 대로 되었습니다.

 

 

지금 나는 속으로 걱정하는 것이 큽니다. 옛날의 음식은 담백했는데 오늘의 음식은 맛있는 것만 취합니다. 옛날에는 품위가 있었는데 오늘은 난잡합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찌 음식뿐이겠습니까?  의복은 호사스럽게 바뀌고, 궁실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음악은 날로 음란해지고, 임금의 시종은 사치스러운 사람만 고르니, 이로써 나라의 앞날을 미루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생산되는 재화는 한정이 있는데 쓰는 사람은 한정없이 쓰니, 설령 하늘이 쌀비를 퍼붓고 땅이 술샘을 솟구친다 한들 장차 백성들이 어찌 굶주림을 면하겠습니까? 이것이 걱정입니다."

 

 

행인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당신은 음식만 아는자라 했는데, 이제 보니 당신은 그 사이 점치는 방술方術을 터득했습니다. 그 방술점을 친다면 누가 안 믿겠습니까?

 

-문무자문초

 

 

 

글을 쓰려면/정약용

 

변지의 군이 천리 먼 곳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그 온 뜻을 물었더니 문장을 공부하고자 함이라 했다. 마침 집의 아이들이 뜰에 나무를 심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나무를 비유로 들어 그에게 문장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람에게 있어서의 문장이란 나무에 있어서의 꽃과 같은 것일세. 나무를 심는 사람은 그 심은 뒤에 곧 그 뿌리를 북돋우고, 그 가지를 편안하게 펴주네. 그러면 머잖아 그 줄기에 진액이 흐르고 가지에 잎이 나며 마침내 나무에 꽃이 피네. 그러니 꽃은 어디 다른 곳에서 빼앗아 올 수가 없는 것일세.

 

 

그러니 군은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그 뿌리를 북돋우게. 행동을 독실篤實하게 하고 몸을 수양함으로써 그 가지를 편안하게 펴 주게. 경전을 궁구窮究하고 예법을 연찬硏鑽함으로써 그 줄기에 진액이 흐르게 하며, 견문을 넓히고 육에六藝를 익힘으로써 그 가지에 잎이 나도록 하게.

 

이에 그 깨달은 바를 갈래지어 온축蘊蓄하고 , 그 온축한 바를 펼쳐서 글로 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문장이라 하네. 문장이란 이런 것일쎄. 다른곳에서 빼앗아 올 수가 없는 것이네.

군은 이제 돌아가 스스로 구하게. 다른 스승이 있을 것일세

 

-여유당전서.

 

 

구습舊習을 버려라/이이

 

사람이 학문에 뜻을 두면서도 용감히 전진하여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구습에 매이기 때문이다. 이제 구습 몇 가지를 다음에 적으려니와 만일 뜻을 굳건히 하여 이를 무섭게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의 땅에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첫째, 뜻 세우기를 게을리하고 몸가짐을 방종하게 하며, 다만 한가한 것과 편한것만 생각하고 구속받기를 싫어하는것.

둘째, 항상 돌아다닐 것만 생각하고 조용히 있지 못하며, 부산하게 드나들고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면서 날을 보내는 것.

셋째, 뜻 같은 사람만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며, 세상에 유행하는 풍속에 골몰하여 정신이 없고, 잠시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려 하다가도 사귀는 무리와 멀어질까 두려워 하는 것.

 

넷째. 문장으로 칭찬받기 좋아하고 예슬 훔쳐다 제 글 꾸미는것.

다섯째, 편지를 교묘히 쓰고 술과 거문고를 일삼으며, 한가하게 놀아 해를 마치면서도 스스로 이를 맑은 운치라고 말하는 것.

여섯째, 볼일 없는 사람들을 모아 바둑 장기 두게 하고, 종일 토록 배불리 먹고 마심, 다만 내기하는 것이나 돕는것.

일곱째, 부귀한 자는 부러워하여 따르고 빈천한 자는 싫어하여 박대하며,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수치로 아는것,

여덟째, 즐기고 욕심내는 일에 절도가 없어 끊지도 억제하지도 못하고, 재화와 이익과 음악과 여색에 맛들여 이를 꿀맛처럼 아는것.

 

 

마음을 해치는 구습이 대개 이와 같다. 그러나 이 밖에도 수없이 많아 이루 다 들기 어렵다. 이런 악습은 사람으로 하여금 뜻ㅇㄹ 견고하게 하지 못하게 하며 행동을 독실하게 하지 못하게 하니, 그러므로 오늘 잘못한 일을 내일 고치지 못하고, 아침에 후회한 행동을 저녁에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름지기 용맹스러운 뜻을 세워 단칼로 뿌리 자르듯 할지니, 이로써 마음을 깨끗이 하여 털끝만 한 구습의 잔재도 남김없이 하고, 시시로 여기에 맹성猛省을 더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에 한 점의 옛 찌꺼기도 남지 않게 되면 가히 학문하는 일을 논의 할 수 있다.

 

-율곡집

 

 

 

마음의 쉼/이승인

 

나의 문하생 김시용이 내게 와서 말했다.

"식암息庵은 계림鷄林의 사족士族으로 열 두 살 어린 나이에 신인종神印宗에 들며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 뒤 학문에 정진하여 승僧科과에 오르고 여러 사찰의 주지를 역임했는데, 하루아침에 이를 다 버리고 나옹懶翁을 따라 떠난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에게 무슨 터득한 바가 있는 것도 같아 나옹에게 물어보려 했더니 나옹이 이미 돌아가고 없습니다.

지금 식암은 사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그가 터득한 바를 여기저기 묻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옛날의 중 된 자는 어깨에 까마귀가 깃들이고 팔뚝에 잣나무가 나는 일이 있어도 문밖에 나가는 것을 꺼렸는데, 지금 식암은 호를 암자에 쉰다 하고서도 빈 산에 숨어 스스로를 즐기지 않고 멀리 사방을 뛰어다녀 발병이  나고 몸이 축나게 함에 어찌 이토록 거리낌이 없는가 했습니다. 저에게도 의혹이 없지 않으니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암자에 쉰다는 그 호의 쉰다는 것은 몸을 쉰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쉰다는 것이다. 스스로 몸을 쉬는 자는 비록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 그 형상이 고목과 같은 지라도 마음속으로는 분주하게 내닫는 수가 있다.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쉬는 자는 그 속이 맑고 비어 사물에 초연하므로 산림엘 가든 조정엘 가든 시장엘 가든 쉼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그 어떤 사람의 말이 식암을 욕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식암은 자신의 터득한 바가 흡족하지 못하여 높은 스승을 찾아 그 가르침을 청하려 그러는 것이 아닌가.

어깨에 까마귀가 깃들이고 팔뚝에 잣나무가 나는 일이 있도 문밖에 나가지 않는것, 이 또한 도의 하나일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식암을 헐뜯을 수는 없는 일이다.

 

김군, 돌아가거든 내가 한 말이 맞는지 식암에게 물어보라.  맞는다고 하면 이말로써 식암을 보내는 글을 삼으리라.

 

-동문선

 

 

 

 

사랑과 미움/이달충

 

유비자가 무시옹을 찾아가서 물었다.

"ㅇ러마전 몇 사람이 모여서 인물평을 했는데, 혹자는 그대를 일컬어 사람답하고 혹자는 사람답지 않다했다.  대체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누구에게는 사람 대접을 받고 또 누구에게는 받지 못하는가?"

 

무시옹이 말했다

"남이 날보고 사람답다 해도 내가 기뻐할 것이 없고, 사람답지 않다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하고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 하면 좋으리라.

 

나는 나를 사람답다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사람답지 않다 하는 사람이 또 어떤 사람인지 사람답지 않다 하는 사람이 또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하면 기뻐할 일이요,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 해도 또한 기뻐할 일이나,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 하면 두려워할 일이요, 사람답지 앟은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 해도 또한 두려워 할 일이다.

 

그러나 기뻐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나를 사람답다 하는 사람이 어떤 살마인지 사람답지 않다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핀 연후에 그런일이다. 옛말에 오직 어진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 했는데, 이제 자를 사람답다 하는 사람, 사람답지 않다 하는 사람, 그들은 어진 사람인가?"

 

유비자가 웃으며 물러갔다. 무시옹이 이로써 잠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니 잠은 다음과 같다.

 

자도의 아름다움, 역아의 음식솜씨 다 알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 싫은 마음 어지럽거든 스스로 제 몸을 살펴라.

 

-동문선

 

 

 

 

개와 사람/최자

 

김개인은 거령현 사람이다. 개 한 마리를 길러 심히 사랑하였는데, 하루는 밖엘 나가게 되어 개도 함께 따라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인이 너무 취한 나머지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때 들불이 타 들어와 곧 몸에 닿게 되엇다. 그러자 개가 냇물속을 연신 들락거리며 그 물 흐르는 몸으로 마른 풀을 적셔 타들어오는 불을 끄고 끄고 하였다. 드디어 들불이 잡히었다. 그러나 개는 기운을 다하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마침내 개인이 깨어나 죽은개의 형적을 살펴보니 너무도 비감하엿다. 해서 노래를 지어 그 슬픔을 표하고, 개를 묻어 그 자리에 지팡이를 꽂고 그것으로 무덤임을 표시하였다. 헌데 그 지팡이가 살아나 산 나무가 되었다. 이로 해서 그곳을 오수獒樹라고 한다. 악보중에 <견분곡, 개 무덤의 노래>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곧 그 노래다. 어떤 사람이 시를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사람이 개라고 불리면 다 부끄러워 하면서

큰 은혜를 입고서도

그 주인이 위급할 때 죽을 줄 모르니

어찌 개만이나 하랴.

 

진양공이  그 문객으로 하여금 이를 기록하게 하여 세상에 행하게 하니, 무릇 은혜를 입은 자 그것을 갚을 줄 알게 하고자 함이다.

 

-보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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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이 나는 참 좋다.

그 오래전 얘기 임에도 낯설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한다.

어떠한 일로든 마음 잃어버리면

돌아와 다시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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