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연암산문선/박지원

다림영 2009. 6. 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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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갓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잔을 배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어뜨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을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 금빛 따위 패물을 꺼내 내게 뇌물로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 지금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강가에 말을 세워 놓고 나룻배가 가는 것을 멀리 바라보았다. 붉은 명정이 바람이 펄럭이고 돛대그림자가 어른거리다가 산모퉁이를 돌아 나무에 가려지면서 다시는 더 보이지 않았다.

 

강 위에 멀리 서 있는 산은 푸르러 누님의 머리채 같고 강물의 풍광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눈썹과 같았다. 눈물지으며 빗을 떨어뜨리던 때를 생각하니 유독 어렸을 때 일이 가장 똑똑히 기억되고 또 기쁨과 즐거움이 많았던 것 같다.

 

 

길고 긴 세월 중에 언제나 괴로움, 이별, 우환, 가난으로 문득문득 꿈속을 살아온 듯한데 형제로 지내던 날은 어찌 그리도 빠르게 지나갔을까? 떠나는 사람 거듭 훗날의 기약을 남겨도 보내는 이의 옷을 눈물 젖게 하건만 쪽배로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오려나. 보내는 자 부질없이 언덕 위로 발길을 돌이키네.

 

 

 

..

김공은 서글프게 말하였다 "실컷 부귀를 누린 끝에야 비로소 넉넉한 줄 알거나, 다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쉬려고 생각한다면 이미 때가 늦은 거라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도 정치에서 일찍 물러날 것을 용감하게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가 어떻게 말한 것만 해도 역시 마음속으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쪽 개성으로 와서 돌아다니다 양정맹과 친하게 지냈으므로, 그 아버지의 별장을 가서 논 적이 있다.

 

 

꽃과 나무가 줄지어 섰고, 집과 뜨락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는데, 그 마루의 이름을 <만휴당<晩休堂>이라고 했다.  양 노인은 아주 순박하여 옛날 어른의 기풍이 보였다.

 

날마다 같은 마을의 노인들과 어울려 활쏘기와 장기 두기로 일을 삼았으며 거문고와 술로 하루를 즐겼다.명예.이익.권세의 길을 일찍이 그만두고, 늘그막을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다. 이야말로 늘그막에 쉬는 즐거움<晩休之樂>이 아니겠는가.

 

그가 나에게 기記를 지어 달라 청하였다. 아아, 김 공도 일찍이 이고을의 사또로 있으면서 공이 갈려 간 뒤에도 그 고을 사람들은 공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전골을 먹던 옛일을 이야기하면서 양노인의 '늘그막에 쉬는 즐거움'을 치하한다. 또한 이 글을 써서 시그럽게 굴다가 손을 세상 사람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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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모습이 바르지 않으면 모습이 바르지 않고, 두려워 마음둘 곳이 없게 된다. 자식들이 오만 방탕하고 제멋대로 하더라도 그 곁에 독서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로 멋쩍어 책을 읽을 것이다.

 

부인네들이나 농부들이라 하더라도 그 자제의 책읽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린아이가 독서하면 요절하지 않고 노인이 독서하면 늙어 혼몽해지지 않는다. 귀한 사람은 그 귀함을 유지할 수 있고, 천한 사람은 분수에 넘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어진 살마은 지나치게 넘치지 않게 되고, 못난 사람 유익함을 얻을 것이다. 나는 가난하면서도 책 읽기를 들어보았지만 부자이면서 독서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

독서하는 방법으로는 일과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제일 좋고 , 오늘 읽을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제일 나쁜 방법이다. 너무 많이 읽으려고 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빨리 읽으려 하지도 말라. 순서를 정해놓고 날마다 해야 한다. 그리고 가리키는 대의를 정밀하고 분명하게 , 음성은 무르녹게, 뜻은 익숙하게 한다면 절로 암송할 것이며,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책을 대할 때는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지말라. 책을 마주해서는 침을 뱉지 말 것이며, 기침이 나오면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하라. 책장을 넘길때 침을 바르지 말고 표시할 때 손톱으로 하지 말라. 책을 베거나 그릇을 덮지 말며, 책을 난잡하게 늘어놓거나 책으로 먼지를 털지 말 것이다. 책에 좀이 슬면 볕이 들 때 볕에 쪼여라. 남의 서적을 빌렸는데 글자가 틀렷으면 고치고 찌지가<표시하거나 적어 붙이는 종이쪽지>찢어졌으면 기워주고 책을 묶은 끈이 끊어졌으면 묶어서 되돌려 주라.

 

 

첫닭이 울면 일어나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전에 암송한 것을 복습하면서 가만히 반복 해 암송하라.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충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시 살펴 심신으로 체득해야 하며 스스로 깨달음을 기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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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빛깔은 바깥 사물에서 생겨난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게 하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한 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강물보다 더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연암골로 돌아가 다시 물소리를 들으며 이것을 경험해 볼것이다. 그래서 처세에 능란한 자들의 교묘한 몸놀림을 경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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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람들은 세가지 어려운 일이 있다. 한번 과거에 합격이 되면 역사와 경서 전부를 사건에 따라 척척 변증을 하고, 제자백가와 아홉가지학파, 처음과 끝을 대체로 상고하여 물으면 메아리가 울리듯 그대로 대답해야 하나니그렇게 하지 못하면 선비라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것은 첫째 어려운 일이다.

 

너그럽고 점잖고 예절이 밝고  의젓하게 생겨 교만하거나 거만을 떨지 않아야 하고, 허심하게 사물을 대함으로써 대국大國의 체면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둘째 어려운 일이다.

 

 

크고 작고 멀고 가깝고 간에 법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으니 법을 두려워하므로 관직을 조심하고, 관직을 조심하기 때문에 제도는 한결같아서 사.농.공.상으로 분업을 똑똑히 하여 제각각 제 앞을 닦으니, 이것이 셋째 어려운 일이다.

조선사람들의 이런 다섯가지 망령도 실상은 중국의 자기 모독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이 자기 모독도 실상은 중국 사람 죄가 아니다. 그들이 본래 가진 세 가지 어려운 일이란 것도 조선 사람이 멸시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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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공자 조승이 소개한 성안후成案後와 상산왕常山王은 그 사귐에 틈이 없이 사귀었다.  한 번 틈이 벌어지면, 아무도 그 틈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랑스러운 것도 틈타서 결합되며, 고자질도 그 틈을 이용해서 벌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남을 잘 사귀는 자는 먼저 그 틈을 잘 타야 한다. 남을 잘 사귀지 못하는 자는 틈을 탈 줄 모른다.

 

 

대체로 곧은 사람은 곧바로 가 버린다. 굽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의 뜻을 꺾어 가면서 무슨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 말에 의견이 합해지지 않는 것은 남이 그를 이간질시켜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앞길을 막은 셈이다.

그래서 속담에도 이르기는 <열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하였고, <구들목에 아첨할 바에는 차라리 아궁이에 아첨하라>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아첨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자기몸을 가다듬고 얼굴을 꾸민뒤에 말씨도 얌전히 할뿐더러 명리名利에 담박하며, 다른 사람들과 사귀기를 싫어하는 척해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상첨上諂이다.

둘째, 곧은 말을 간곡하게 해서 자기의 심정을 나타내되, 그 틈을 잘 타서 이 편의 뜻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첨中諂이다.

 

 

 

셋째 말발굽이 다 닳고 자리굽이 해지도록 자주 찾아가서 그의 입술을 쳐다보며 얼굴빛을 잘 살펴서, 그가 말하면 덮어놓고 칭찬하며 그의 행동을 무조건 아름답게 여긴다면, 저편에서 처음 들을 때에는 기뻐한다. 그러나 오래되면 도리어 싫증나고, 싫증나면 더럽게 여기게 된다. 그제는 '저놈이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법이니, 이는 하첨下諂이다.

 

관중은 아홉번이나 제후들을 규합했고, 소진은 여섯나라를 합종하였으니, <천하에 가장 큰 사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송욱과 탑타는 길에서 빌어먹고 덕홍은 시장 바닥에서 미친 노래를 부를 지언정, 말 거간꾼의 나쁜 술법을 쓰지는 않았다. 하물며 글 읽는 군자는 더 말해 무엇하냐?

 

...

...

 

 

선귤자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거기 앉게, 속담에도 있거니와 의원이 제병을 못 고치고 무당이 제 굿을 못한다고 하니<자기 일은 자기가 처리하지 못한다> 내 자네에게 벗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 줌세. 자기 생각으로는 이거야 말로 내 장점이라고 믿고 있는 점도 남들이 몰라 준다면 어떤 사람이거나 속이 답답해서 자기 결함을 지적해 달라는 말로 말을 꺼내게 되네.

 

그러나 이 대 칭찬만 하면 아첨에 가까워서 멋대가리가 없고, 타박만 하면 흉보는 것으로 떨어져서 본의와 틀려지네. 그러니까 그의 장점 아닌 점을 들추어서 어름어름 당치 않은 말을 한단 말일세. 그렇게 적절한 내용이 아닌 만큼 설사 책망이 좀 과하더라도 저 편에서 골을 내지는 않을 것일세.

 

 

그러다가 숨겨 놓은 물건을 알아나 맞히는듯이 슬그머니 그가 믿고 있는 그 점을 언급한단 말일세. 마치 가려운 데나 긁어 준듯이 속마음으로 감격해할 것일세.

 

가려운 데를 긁는 데도 도가 있네 그려. 등에 손을 댈 때에는 겨드랑이에 가까이 가지말고, 가슴을 만질 때에는 목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네. 칭찬같지 않게 하는 칭찬이 그 사람은 왈칵 손을 잡으면  자기를 알아준 다고 할 것일세. 그래, 이렇게 벗을 사귀면 좋겠는가?"

 

자목이 손으로 귀를 가리고 달아나려 하며 말하길 "이것은 선생님이 저에게 시정잡배의 일이나 종놈의 역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귤자는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도 과연 저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일세그려. 대체 장사치의 벗은 이속으로 사귀고, 체면을 차리는 양반님네의 벗은 아첨으로 사귀네.

 

본래부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세 번 달라고 해서 멀어지지 않을 사람이 없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세 번 달라고 해서 멀어지지 않을 사람이 없고 아무리 원수로 치부하는 사이라도 세 번 주어서 친해지지 않을 사람이 없단 말일세.

 

 

그렇기 때문에 잇속으로 사귀어서는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 사귀면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일 세. 만일 깊숙하게 사귀자면 체면 같은 것을 볼 것이 없고 진실하게 사귀자면 특별히 죽자 사자 할 것이 없네. 오직 마음으로 벗을 사귀며 인격으로 벗을 찾아야만 도덕과 의리의 벗으로 되네.

 

이렇게 사귀는 벗은 천년 전의 옛 사람도 아득히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오. 만리의 거리도 소격<疏隔-사귀는 사이가 멀어져서 왕래가 막힘>한 것이 아닐세.

 

..

 

 

 

 

옛 사람이 술을 경계한 것이 아주 심했 다 할 만 하네. 술에 부림당하는 것을 주정한다<>하니 그 흉덕凶德을 경계한 것이요, 술 그릇중에 주舟가있으니 뒤집어져 빠지는 것을 경계한 것일세.

 

술독< 

 >이란 글자는 괴롭다<  >는 글자와 관계되고, 술잔<  >이란 글자는 혹독하다<嚴>는 글자에서 빌려온 것이네. 잔< >이란 글자는 그릇이 아니라 <不血>는 뜻이고, 잔<  >이란 글자는 위험하다危는 글자와 비슷하지 않은가. 뿔잔<觥 >이란 글자는 부딪침< 觸 >을 경계한 것이고, 잔<盞>이란 글자는 창戈두개를 그릇血위에 얹은 것이니 서로 다툼을 경계한 것이지.

 

술통<樽 >이란 글자는 절제하라<(억제할존)節>는 뜻을 나타내고, 술 따르는 그릇禁은 금하고 억제하라禁制는 말이라네. 죽음을 따르는 것 從卒이 취함< >이 되고, 삶에 속하는 것 屬生이 술깸<醒>인 것이지. 주관周官은 평씨萍氏가 술을 맡았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살펴보니, 부평초가 능히 술을 깨게 한다고 했던군.

 

우리들이 술을 즐김은 옛사람보다 더하나 옛 사람이 경계를 드리운 뜻에는 어두우니, 어찌 크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원컨대 이후로 우리가 술을 앞에 두면 문득 옛 사람이 만들었던 뜻을 생각하고, 여기에 더하여 옛사람이 만든 그릇의 이름을 살피기로 하세.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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