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헤세의 단상들
-편지와 저서-
행복은 '어떻게'이지 결코 '무엇'이 아니다. 행복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지 결코 대상으로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아니다.
아름다운 것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 나의 친구이다. 그는 산에도 있고, 골짜기에도 있고 꽃 속에도 있고, 수정 속에도 있다.
아름다움을 소유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구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영혼이 심각하게 병든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갑자기 재산을 잃고 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고 유일하게 가능한 구원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일과 돈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서 벗어나 놀이의 가치를 인식하고 우연적인 것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인식이 너무나 결여 되어 있다.
내일 무슨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만 행복이 찾아옵니다.
행복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행복에는 꿈속에서의 행복과 똑 같은 비밀이 있다. 그 행복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고 밖과 안을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마치 무대장치처럼 연장시킬 수 있는 자유로 이루어진 행복이다.
내일 무슨일이 일어날까 염려할 때 오늘을 잃어버립니다. 현재를 잃으며 그와 함께 진리를 잃게 됩니다. 오늘에 감사하고 모든 날들과 모든 시간,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십시오.
바로 이순간이야말로 가장 좋은 시간이며 가장 적당한 때이며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행복은 이성과 무관하며 도덕과도 무관하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불가사의한 어떤 것이며 , 유년기에 속하는 어떤 것이다. 요정에게서 선물을 받고 신들의 특별한 배려 속에 천진한 모습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은 결코 이성적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상징이며 세속적 가치 저편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행복'을 타고난 특별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들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잇는 적절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너무 일찍 태어나지도 않았고 너무 늦게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인간이 욕구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을 좌절시키는 것은 언제나 시간뿐이다. 시간이라는 허구의 가공물 말이다. 우리가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행복은 사랑이다. 그 밖의 어떤 다른 것도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깊은 명상을 통해 우리는 시간을 초월할 수 있으며 지난 날의 삶과 현재의 삶, 미래의 삶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때 모든 것은 선하며 모든 것은 완전하며 모든 것은 브라만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선하다. 죽음과 삶은 동일 하며, 죄와 성스러움은 동일하며, 지혜와 어리석음은 동일하다. 모든것이 그렇다. 내가 동의하고 원하고 기꺼이 인정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 선하며 결코 내게 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몸과 모든 영혼에서 경험했다. 세상에 대한 적대감을 포기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세상을 더 이상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대로 판단하는 대신 세상을 인정하고 사랑하여 그 세상에 기꺼이 속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죄가 필요했으며 관능적 쾌락이 필요했으며 재물에 대한 욕망과 허영심이 필요했으며 철저한 절망이 필요했다.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은 행복을 원하며 우리 밖에 있는 것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원한다. 우리와 사물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아닐 대 이런 조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이 의무라는 것은 아니다. 행복의 의무가 있을 뿐이다. 행복을 위해서만 우리는 세상에 존재한다. 그 밖의 어떤 다른 의무와 도덕과 계명을 통해서도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그런것을 통해서는 자기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선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을 할 수 잇다, 그가 행복하고 자기 내면에 조화를 가진다면, 따라서 그가 사랑한다면 비로소 그는 그런것을 할 수 있다.
내게 중요한 것들을 언제나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의 자아의 가치와 자아성장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 사이에서 선하고 자연스런 관계를 가지는 것만이 중요하다. 우리는 새악ㄱ하는 기계가 아니라 유기체이다.
잠시 동안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것 한 여인의 웃음을 위해 여러해를 희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생산적인 일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우리는 비록 다른 것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행복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개개인의 삶에서도 그렇다. 행복이 그를 피곤하게 만들며 그를 게으르게 만든다. 조금 지나면 그 행복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곧 시들어 버리는 꽃이다.
우리가 낙원에 쫒겨날 때 비로소 우리는 낙원을 낙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구름이 덮인 하늘에서 한 줄기 햇빛이 어두운 골목에 비칠 때 그 빛이 무엇을 비추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길바닥에 깨어져 있는 병조각이든 찢어진 벽보이든 어느것이든 태양은 빛을 비추어 준다. 태양은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가진다.
나는 행복한 사람들을 숨어 있는 현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들이 어리석어 보인다 할지라도 말이다. 영리한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으며 불행하게 하는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가치를 부여할 수 없고 가치있는 것으로 바꿀 수 없는 어떤 행복이나 불행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느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믿음을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믿음을 나를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깊이는 맑은 것과 밝은 것에 있다.
명랑함은 시시덕거림도 아니고 자아도취도 아니다. 명랑함은 최고의 깨달음이며 사랑이다. 명랑함은 모든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며 가장 깊은 절망 가운데서도 깨어 있음이다. 명랑함은 아름다움의 비밀이며 모든 예술의 본질적 토대이다.
현재의 가치와 중요성을 기준으로 해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합리적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아서도 안된다. 오히려 세상을 향유하고 조용히 관조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순수한 기술이 재산이다. 아무리 냉철하고 세련된 지성인도 우리에게서 그 재산을 빠앗아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가 파괴되어 세상의 어떤 지성으로도 그것을 다시 회복 시킬 수 없게 된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가 나타내는 현상들 중 하나이다.
친구가 된 길들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는 모든 세상이 한동안 고향처럼 보인다.
향유의 힘과 기억의 힘은 상호 보완적이다. 향유는 과일의 단맛을 남김없이 빨아먹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은 전에 향유한 것을 단지 잃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점점 더 순화함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행복을 관찰하지 않을 때에만 행복을 소유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 실패와 재건, 몰락과 부활의 끝없는 반복이다. 우리 문화의 붕괴를 알리는 어둡고 우울한 모든 징조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 다른 밝은 징조들도 있다. 그 징조들은 형이상학적 욕구들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들이며 , 새로운 정신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들이며,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열렬한 관심이 일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들이다.
우리가 최초의 유년기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작고 확실한 보물창고에 간직되어 있다. 거기에는 유년의 이미지들과 인상들이 뒤섞여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
자기 희생의 행복, 욕심이 없는 상태의 행복,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협력의 행복을 경험해 보라. 어떤 다른 길도 당신을 그렇게 빠르고 안전하게 인생의 통일과 신성함을 깨달을 있도록 인도해 주지 못한다. 어떤 다른 길도 그렇게 확실하게 당신을 인생의 지혜에 통달하게 해주고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지 못한다. 이기심의 극복이란 인격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최고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볼때 언제나 만족 이외에도 하나의 슬픔이나 불안을 가진다.
...인간은 명예나 행복을 원해서도 안되고 영우이나 달콤한 평화를 바라서도 안된다는 것이며 순수하고 예민한 감수성, 용기있는 마음과 신뢰 그리고 행복과 고난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ㅣ시끄러움과 조용함을 동시에 견딜 수있는 지혜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본질을 깊은 바다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의 표면은 그 깊은 바다의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표면은 의식입니다. 그롯에 서는 우리가 사유라고 부르는 것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바다의 일부인 이 표면은 아주 작습니다. 그 표면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물은 공기와 빛과 접촉할 때 새로워지고 변화되며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면에 있는 물들은 끊임없이 바뀝니다. 그 물은 언제나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위에서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폭풍이 일어났다 잠잠해지고 파도가 밀려가기도 합니다. 모든 물은 한 번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합니다. 바다가 물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의 자아 또는 영혼도 수천 수백만의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바뀌는 기억들과 인상들로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의 의식이 보는 것은 ㅣ표면에 불과합니다. 영혼은 그의 내용의 훨씬 더 큰 부분을 보지 못합니다. 큰 어두움에서 작은 불빛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영혼은 풍성하고 건전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연적 상태의 행복과 어리석음의 행복을 동경하는 것은 결코 특정한 사람들만의 성향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하거나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행복을 은근히 부러워할 것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보다 더 무겁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지불하고서만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가치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은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듯이 말이다. 영혼이 순수하지 못하고 최소한 선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선한 것과 가장 귀한 것도 더 이상 순수하고 완전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왜소해지고 부패하였으며 혼탁해진 세계상으로 만족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 추구한다면 그는 단지 그가 찾고 있는 것만 보기 쉽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고 아무것도 자기안에 받아들일 수 없게 되기 쉽다. 자기가 찾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며,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 목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목표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발견한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며 열려 있다는 것이며 아무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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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수필이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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