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노자의 인간학

다림영 2009. 1. 1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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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선비된 자는  다투지 않으며, 선한 싸움을 하는 자는 노하지 않는다. 선한 상대를 이긴자는 이제 싸움을 그칠 것이며 , 좋은 벗을 얻은자는 오히려 자신을 낮추느리라. 이것이 바로 다툼을 멀리하는 덕이며, 좋은 벗을 옆에 둔다 함이니, 이 모든 것은 하늘의 뜻과 하나가 됨이리라. 이 도한 지극히 오래된 진리이니.

 

 

 

하늘은 너르고 땅은 오래 간다.하늘과 땅이 능히 그럴 수 있음은, 자기의 삶을 조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몸을 뒤로하기에 그 몸이 앞서고, 몸을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하다.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도의 경지에 들어간 선비는 그 모습이 미묘하고 매우 깊어서 아무리 헤아려도 알 수가 없다. 굳이 그 모습을 비유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추운 겨울 냇물을 건너기를 망설이는 코끼리 같구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두려워서 조심하는 개 같기도 하구나. 손님으로 초대받아 간 것처럼 엄숙하구나. 앞으로 녹아 물이 될 얼음처럼 풀리는 구나.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뭇등걸처럼 꾸밈이 없구나. 텅 빈 고을처럼 비어있구나.

 

 

 

 탁류에 휩쓸려 있는 것 같지만 맑은 물이구나.누가 탁류에 머물러, 가만히 있으면서도 서서히 맑게 할 것인가. 누가 편안히 오래 머물러 서서히 맑음을 살아나게 할 것인가. 이러한 도를 간직한 자는 무슨일이든 그 무엇이든 채울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이는 있던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이룩하려고 하지 않는다.

 

 

타인을 아는 자를 지혜롭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아는자야말로 밝은 것이다. 타인을 이기는 자를 힘세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야말로 강한것이다. 족함을 아는자라야 부한 것이요, 행함을 관철하는 자라야 뜻이 있는 것이다. 자기를 잃지 않는자라야 오래 가는 것이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자라야 오래 산다 할 것이다.

 

 

뛰어난 사람들은 내게서 '도'를 들으면 열심히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중간정도 되는 사람들은 내게서'도'를 들으면 잘 알아 듣지 못한다. 그런데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내게서 '도'를 들으면 낄낄대고 웃는다. 그러나 떨어지는 사람들이 웃지 않으면 내 '도'는 도가 되기에 부족하다.  그러므로 예부터 전해오는 말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밝은 길은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길은 물러나는 것 같고,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 한 것 같고, 너른 덕은 부족한 것 같고, 서있는 덕은 금세 무너질 것 같고, 질박한 덕은 엉성한 것같다.  큰 사각이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모습은 모습이 없다. '도'란 늘 숨어 있어 이름이 없다. 대저 '도'처럼 자기를 빌려주면서 또한 남을 잘 이루게 해주는 것이 또 있겠는가.

 

 

 

 

품은 덕의 둬움은 갓난아기와 같다. 벌이나 뱀도 그를 쏘거나 물지 않고, 맹수도 그에게 덤비지 않으며, 새도 그를 채지 않는다. 뼈가 여리고 근육이 하늘한데도 꼭 움켜쥐면 빼기 어려우며, 남녀의 성교는 몰라도 고추가 서는 것은 정기의 힘이 지극한 것이며, 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의 어울림이 지극한 것이다. 어울림을 아는 것을 상常이라 하고, 변함없음을 아는 것을 明이라 한다. 그러나 사는 것을 위한 것을 상祥이라 하고, 마음이 기운을 억지로 부리는 것을 강强이라고 한다. 사물은 성하다가 쇠한다.이것은 변함없는 도가 아니다. 도가 아닌 것은 오래 갈 수가없다.

 

 

 

 

사물이 흔들리지 않을 때 가지고 있기 쉽고, 드러나지 않을 때 도모하기 쉽다. 연약할 때는 바스러지기 쉽고, 눈에 띄지 않을 때는 흩어지기 쉽다.드러나기 전에 도모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라.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생겨나고, 아홉층의 높은 누각도 한 줌의 쌓인 흙에서 일어나고 , 천리의 걸음도 발 아래서 시작한다. 하려 하는 자는 반드시 놓칠 것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함이 없기에 패함이 없고, 잡음이 없기에 놓침이 없다.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늘 다 이루어질 듯하다가 끝내 패한다. 끝을 삼가기를 늘 처음과 같이 하라. 그러면 패하는 일이 없을 지니.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바라지 않음을 바라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배우지 아니함을 배우고 믓사람이 지나치는 본바탕으로 돌아간다.  이리하여 만 가지것의 스스로 존재함을 돕고 감히 무엇을 한다고 하지 않는다.

 

 

 

감히 무엇을 하는데 용감한 자는 죽임을 당한다. 감히 무엇을 하지 않는데 용감한 자는 산다. 둘 다 용기는 용기이지만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 하늘이 미워하는 바, 누가 그 까닭을 알수 있으리오. 그러하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늘 매사를 어렵게 생각한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아니하면서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아니하면서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아니하는데도 저절로 오며, 천히 하면서도 잘 꾀한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또 너르다. 그 짜임이 성긴데도 무엇이든 놓치지 않는다.

 

 

큰도가 없어지니 어짊과 옳음이 생겨났다. 슬기로움이 생겨나니 큰 거짓이 생겨났다. 육친이 불화하니 효도다 자애다 하는 것이 생겨났다. 국가가 어지럽게 되니 충신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성스러움을 끊어라. 배움을 버려라 믓사람의 이로움이 백배가 될 것이다. 어짊을 끊어라. 옮음을 버려라. 믓사람이 다시 효성스럽고 자애로워질 것이다. 교사스러움을 끊어라. 이로움을 버려라.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 셋은 문명의 장식일 뿐이며 족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돌아감이 있게하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통나무를 껴안을지니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이 보인다. 그 쓰임이 낡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게 찬 것은 빈듯이 보인다. 그 쓰임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게 곧은 것은 구부러진 것 같고, 크게 정교한 것은 졸한 것 같고, 크게 말하는 사람은 더듬는 것 같다. 뜀으로 추위를 이기고, 쉼으로 더위를 이기는 데, 그래도 쉬이 깨끗함이 하늘아래 바른 것이다.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하늘 아래를 알고,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길을 본다. 나갈 수록 멀어지고, 알수록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다니지 아니하여도 알고, 드러내지 아니하여도 드러나고, 하지 아니하여도 이룬다.

 

 

나라를 다스릴 때는 정법으로 하고, 무력을 쓸 때는 기법으로 하고, 천하를 취할 때는 무사로 하라. 내 이것을 아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하늘 아래 꺼리고 피할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이 이로운 기물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라나 가정은 점점 혼미해지고, 사람이 기교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도적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백성이 스스로 질서를 찾고, 내가 고요하기를 좋아하니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게 일이 없으니 백성이 스스로 부유하게 된다. 나는 바람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백성은 스스로 통나무가 될 뿐이다.

 

 

 

병을 쓰는 것에 관한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가 되지 않고 객이 되며, 감히 한 뼘이라도 나아가지 않고 몇발 뒤로 물러선다. 이는 행동하지 않는행함이요,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 물리침이다. 또한 병사를 일으키지 않고 붙잡음이자 적의 저항없이 나아감이다.

 적을 얕보는 것보다 더 큰 탈은 없다. 적을 얕보고 소홀히 하면 내가 지닌 보물을 단번에 잃게 된다.

그러므로 병력을 일으켜 서로 증강하는 것을 슬퍼하는 자가 승리한다.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아니하다. 좋은 사람은 따지지 아니하며, 따지는 사람은 좋지 아니하다. 아는 자는 떠벌리지 아니하고, 떠벌리는 자는 알지 못한다. 힘써 남을 위하면 위할 수록 자기가 더 있게 된다. 힘써 남에게 주면 줄수록 자기가 더 풍요롭게 된다. 이롭게 하면서도 해치지 아니하고, 성스러운 사람의 길은 잘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한다. 

 

 

'나무 닭' 처럼-장자

 

옛날에 싸움닭을 훈련시키는 기성자라는 명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닭한마리를 훈련시키라는 왕명을 받았다. 기성자는 왕을 위해 싸움닭을길렀고, 열흘 뒤 왕이 그에게 닭이 쓸 만한지를 물었다. 기성자가 말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여전히 소리가 들리거나 그림자가 보이며 반응을 합니다."

 

또 열흘뒤에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여전히 노려보며 지지 않으려 듭니다."

열흘이 지나고 기성자가 대답했다.

"이젠 됐습니다. 다른 닭이 울더라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보기에는 나무로 만든 닭과 같은데, 이는 그 덕이 온전한 때문이며 이제 다른닭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달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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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까지 정말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몸속은 덕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때 덕에는 이번 장에나온 <노자>의 다섯가지 항목은 물론이며 능력이나 권모술수와 같은 것들까지 내포되어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억지력이 생긴다.

단 그러한 요소는 확실하게 지니되 깊은 곳에 지녀 겉으로 드러나게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나무닭이다.

<채근담>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지혜와 계락과 기계가 오묘하나 이를 모르는 자처럼 하면 높다하고, 알아도 쓰지 않는 이를 더욱 높다하느니라. "

'권모술수를 모르는 것은 고상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높은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가장 좋은 다스림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자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 다음은 백성들을 친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다스림이다. 그 다음은 백성들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다스림이며, 그다음은 백성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다스림이다. 믿음이 부족한 곳에는 반드시 불신이 그윽하도다. 다스리는 자는 그 말을 귀히여기며,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다 되어도 백가지 성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일컬어 나 스스로 그러할 뿐이라고 하는도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대범해 걸림이 없다면 백성은 순순해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번잡하고 옹색하면 백성은 절망한다. 불행은 행복을 뒤따라 오며 행복은 불행의 복병이다. 어느누가 치우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까. 그러한 치우침에 공명정대함이란 없다. 치우침으로 올바른 것이 이상하게 되고, 선함이 요망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를 착각해 왔다. 이로써 분명하고 숨김이 없으면서도 결판을 내지 않으며, 청렴하면서도 인색하지 않고, 솔직하면서도 수작을 부리지 않으며, 빛나되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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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옳더라도 타인을 임의로 판단하지 않는다.

자신이 청렴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다.

자신이 곧더라도 굽어져 다른 사람을 따른다.

자신이 명지를 지니고 있더라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다.

 

 

 

큰나라를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을 조리할 때와 같이 하라. 도로써 하늘 아래에 임하면 그 귀신들도 영력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실은 그 귀신이 영력을 아니 부린다 함이 아니요, 그 귀신의 영력이 사람을 해하지 아않을 뿐아니라, 성스러운 사람 또한 사람을 해하지 아니한다. 대저 귀신도 사람도 서로를 해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덕이 귀신과 사람 서로에게 쌓여간다.

 

 

강과 바다가 온갖 시내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온갖 시내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백성의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ㅁ라로써 자기를 낮추고, 백성의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그 몸을 뒤로 해야 한다. 그러하므로 성스러운 사람은 위에 처해 있어도 아래 백성이 무겁다 아니하고, 앞에 처해 있어도 뒤에 있는 백성이 해롭다 아니한다. 그러하므로 하늘 아래 사람들이 즐거이 그를 추대하면서 싫어하지 아니한다. 항상 그는 다투지 않으니 하늘 아래 사람들이 그와 더불어 다툴 이유가 없다.

 

 

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 내가 너무 커서 말도 안 된다고 빈정댄다. 그러나 오로지 크기 때문에하찮아 보일 수 밖에 없다. 만약 그들 말대로 대단하다면 오히려 보잘것 없었을 것이다.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나에겐 세가지 보배가 있는데 이를 늘 지니고 지킨다. 첫째는 부드러움, 둘째는 아낌, 셋째는 하늘아래 앞서지 않음이다. 부드럽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아끼기 때문에 널리 베풀수 있으며, 하늘아래 앞서지 않기 때문에 온갖 그릇 중에 으뜸이 될 수 있다. 지금 부드러움을 버리고 용감하려고만 하고, 아낌을 버리고 널리 베풀기만 하려 하고, 뒤를 버리고 앞서려고만 한다면 , 그것은 죽음의 짓이다.

 

대저 부드러움으로써 싸우면 이길것이요, 그것으로써 지키면 단단할 것이다. 하늘이 장차 사람을 구원하려고 한다면 부드러움으로 그를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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