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선비/이용범

다림영 2008. 9. 2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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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서 항일기까지 우리 선비 234인의 향내나는 일화"

 

웃음나는 일화도 있고

가슴아픈 애기도 있고

너무나 근사한 선비들의 엄숙하기도 한 생활의 단편..

사육신 한분 한분의 글이 그때의 상황이 그려지는 듯하여 가슴이 울컥 메여왔다.

고귀한 그들의 정결함을 배워 익혀야 하리라.

 

국민을 이끄는 자들이 필히 읽고 체득해야 할 이야기이다.

 

 

"선물받은 말에 망아지 한 마리를 끼워 보내다

 

최석은 충렬왕 때 사람인데 생몰연대는 자세히 알수 없다. 1277년 탐라에 기근이 들었을 때 이를 위무하기 위해 탐라로 가서 순시하였다. 이후 승평부사가 되었다가 임기가 차서 1281년 에 비서랑이 되었다.

 

그가 승평부사로 있을 때였다.  당시 승평 고을에서는 수령이 임기를 마치고 갈 때마다 반드시 말을 주었는데, 부사의 경우에는 여덟마리, 부사에게는 일곱마리, 그리고 법조에게는 여섯마리를 마음대로 골라가게 하였다.

 

마침내 그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자 고을 사람들이 관례에 따라 고을에 있는 말 중에서 좋은 말 여덟마리를 고르라고 하였다.  하지만 최석은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도성까지 가기만 하면 그만이지 말은 골라서 무엇하겠느냐?"

그가 말을 받으려 하지 않자 고을 사람들은 일곱마리 의 좋은 말을 골라 그가 떠날 때 딸려 보냈다.  최석은 하는 수없이 일곱마리의 말에 가족을 태우고 도성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집에 도착하자 최석은 사람편에 말을 돌려보내며 말했다.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제 말은 내게 필요 없다. 고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거라"

하지만 고을사람들은 관례에 다라 이 말들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최석은 급시 사람을 보내 이렇게 전했다.

 

'오는 도중에 말이 새끼를 났았는데 깜빡 잊고 그 망아지를 내가 데려오고 말았다. 이것은 나의 탐욕이었다. 이제 너희가 받지 않은 것은 나의 탐욕스러움을 알면서도 겉으로 사양하는 척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최석은 망아지 한 마리까지 돌려 보냈다. 이때부터 승평고을에서는 말을 선물로 보내는 관례가 근절 되었다. 고을 백성들이 마을 입구에 최석의 송덕비를 세우고 팔마비라 불렀다고 한다.

 

곧은 선비를 죽인 임금의 이름이 후세에 남을까 두렵노라

맹사성이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을 때였다.  태종의 부마인 조대림이 목인해와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는 고변이 전해졌다. 이에 맹사성은 태종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지평 박안신과 함께 두사람을 잡아다가 심문하였다.

 

태종이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하였다. 더구나 심문 과정에서 고문까지 행해졌다는 사실을 안 태종은 맹사성과 박안신을 붙잡아 그 책임을 묻고자 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음 체포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다. 잔뜩 화가 치민 태종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저 두 놈을 저잣거리로 끌고 나가 달구지로 찢어 죽이라!"

이윽고 두 사람은 저잣거리로 끌려나가 죽을 운명에 처하였다. 거리에 두 사람을 능지처참할 소달구지가지 나타나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소 달구지가 나타나자 맹사성은 너무 놀라 말문을 열지 못하였는데 박안신은 조금도 두려워 하는 기색없이 맹사성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사성아, 너는 나의 상관이요, 나는 그 밑에 있는 사람이지만 이제 죽을 죄인이 되었으니 어찌 높고 낮은 직위를 따지겠는가. 나는 일찍이 그대가 지조있는 인물이라 여겼는데 어찌 오늘은 이렇게 겁을 내는가. 그대는 저 수레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러면서 박안신은 곁에 있는 나졸을 불렀다.  나졸이 다가가자 박안신으 주위를 둘러보더니 땅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기와조각을 가져오너라."

나졸이 듣지 않자 박안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꾸짖었다.

"네가 만약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반드시 너에게 화를 미치겠노라"

나졸이 두려워 하며 마침내 기와조각을 가져다 주었다. 박안신은 기와조각을 받아들더니 곧 시를 지어 기와조각에 쓰기 시작했다.

 

천 년이 흐르면 황하의 물도 응당 맑아지거늘

나라님이 스스로 성군이라 일컫네

직분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죽음은 달게 받겠으나

바른말을 하는 선비를 죽인 임금의 이름이 후세에 남을 까 두렵네.

 

시를 쓴 박안신은 나졸에게 기와조각을 건네주며 말했다.

"속히 가서 임금께 보여라!"

나졸이 황급히 대궐로 달려가 기와조각을 바쳤다. 이때 좌의정 성석린이 맹사성과 박안신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성석린은 그때 병을 앓고 잇엇으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급히 대궐로 향했다. 성석린이 설득하자 마침내 태종은 두 사람을 용서하고 죽이지 ㅇ않았다.

 

훗날 서거정은 박안신이 쓴 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시는 사람을 궁하게 만들 수도 있고 출세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시는 사람을 죽일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말하겠다."

 

 

내 안의 도둑이 문제요

허조가 젊었을 때였다. 어느날, 그는 책상앞에 단정히 앉아 밤이 깊도록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도둑이 집안에 들어와 귀한 물건들을 모두 훔쳐 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허조는 졸지도 않으면서 마치 진흙으로 구워놓은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 달아난 지 한참이 지나 집안 사람들이 비로소 그 사실을 알고 뒤쫓아갔다.  하지만 집안 사람들은 도둑을 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내가 분통을 터뜨리며 허조에게 말했다.

 

"당신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으면서 도둑이 다녀간 줄도 모르고 있었떤 것이오?도대체 도둑이 집안을 다 뒤지는 동안 뭘 하고 계셨습니까?

아내의 힐난에도 불구하고 허조는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도둑놈보다 더 심한 도둑이 내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느 여가에 바깥 도둑을 걱정하리요."

 

허조는 부모의 제삿날이면 반드시 어릴 때 어머니가 지어준 푸른 옷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제사를 지냈다.

그의 형 허주는 판한성부사였다. 허조는 매일 새벽닭이 울면 형에게 가서 문안 인사를 올렸다. 또 형의 집에 갈 때는 하인들을 멀리 떼어두고 동구밖에서부터 수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다.  형 허주 역시 동생이 찾아올 것을 짐작하고 밤마다 의관을 갖추고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한 후 기다렸다.

 

허조는 늘 형에게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고 조언을 구했다. 그러면 형은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그때마다 허조는 형의 집에서 물러나오면서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어진 아버지와 형님이 있음을 즐거워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형님을 두고 한 말이로다."

형 허주 역시 청렴하기가 동생 못지 않았다고 한다.

 

 

새털처럼 가벼운 세상에선 죽음 또한 영광일세

이개는 목은 이색의 증손이다. 수양대군이 보위에 오르기 전 그 의 숙부인 이계전이 수양대군의 집에 자주 출입하였다. 그때 이개는 그런 숙부를 극구 말렸다.

그는 성삼문등과 함께 단종 복위서건에 연루되어 세조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그때 세조는 예전의 일을 들어 이개에게 말했다.

 

"일찍이 네가 숙부 계전에게 그런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못된놈이라고 여겼더니 과연 다른 마음이 있어 그랬던 게로구나"

이개는 몸이 파리하고 약했지만 곤장 아래에서는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불에 달군 쇠로 몸을 지지자 그는 태연히 말하였다.

"이것도 형벌이냐!"

그는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향하면서 시 한수를 남겼다.

 

우왕의 솥처럼 중할 때엔 삶도 또한 크거니와

기러기 깃털처럼 가벼운 데에선 죽음 또한 영광일세

새벽 일찍 잠깨어 문 밖으로 나서니

현릉의 솔빛만이 꿈속에도 푸르러라.

 

 

황금을 물려준 들 한 권의 책을 물려 주는 것 만 못하다

유효통의 본관은 기계이며 자는 행원인데 생몰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태종 8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에 등용되었고, 세종 때 대사성을 거쳐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는데 문장에 능하고 의학에 정통하였다.

 

유효통의 아들이 정승 황보인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당시 풍속에 장가를 들일 때  돈 많은 사람은 반드시 진귀한 보물을 함에 담아 처가에 예물로 보냈다. 특히 권세 있는 집안에서는 처가에 보내는 예물이 커다란 함으로 수십개에 이르렀다.  유효통 역시 황보인의 집으로 아들의 예물을 보냈다.

 

함을 받는 날, 정승 황보인의 집에는 수많은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이윽고 함이 도착하자 황보인은 여러 손님들이 모인가운데 함을 열었다. 그런데 함에 들어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친척들과 권문세가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황보인은 창피하고 부끄러워 이를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황보인은 우연히 유효통을 만났다. 황보인은 사돈을 보자 대뜸 따지듯 물었다.

 

"혼인하는 데 예물함에 왜 책만 넣어 보냈습니까?"

유효통이 대답했다.

"황금이 함에 가득차 있어도 자식에게 한권의 경서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혼인을 하는데 어찌 책을 예물로 쓰지 못하겠습니까?"

 

크게 꾸짖은 다음에야 절교 하리라

연산군때 조언형은 단천 군수로 있었고, 강혼은 함경도 감사로 있었다. 두사람은 죽마고우였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조언형은 그릇된 것을 싫어하고 늘 올곧은 일만 주장하여 세상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때문에 벼슬에서 여러번 좌천되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엿다.  그러나 그의 친구 강혼은 연산군 밑에 있으면서 아첨을 일삼았다.

 

강혼은 김종직에게서 배워 문명을 떨쳤으나 연산군에게 문장과 시로써 아부하여 총애를 받았다. 조언형은 그의 행실을 보고 분개하여 마침내 강혼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가 단천 군수로 있게 되자 강혼이 감사가 되어 순시하러 나왔다.

그러자 조언형은 길을 떠날 채비를 갖추고, 가족들에게 일러 막걸리 한 통을 준비하라고 했다. 조금 지나자 아전이 와서 말하였다.

"감사가 곧 도착하니 예를 잘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언형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놓고, 그를 맞으러 가지 않았다. 강혼 역시 친구가 몸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굳이 마중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조언형은 감색옷에 커다란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그의 뒤에는 술통을 멘 하인이 따르고 있엇다. 그는 곧장 강혼이 머물고 있는 숙소를 찾아갔다.

"혼이 어디 있는가?"

강혼이 그 소리를 듣고 급히 일어나 문을 열고 맞았다.

"나 여기 있네"

강혼은 매우 반가운 기색으로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맞았다. 그러나 조언형은 미처 인사도 나누지 않고 술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날씨가 찬데 한잔 하겠나?"

 

강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큰잔을 들어 술을 따랐다.  그는 손수 술을 다라 안주도 없이 연거푸 들이켰다. 강혼도 제 손으로 잔에 부어 술을 마시는데 석잔째 마시고 나자 강혼이 조언형의 술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그러자 조언형은 그의 술잔을 거절하며 말했다.

"자네가 지난날에 한 진은 개돼지만도 못한 일인데. 누가 그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겠는가? 자네가 젊었을 적에는 총명하고  민첩해서 사귈만하다고 여겼는데, 어찌 조그마한 재주를 잘못부려 처신을 이토록 형편없이 하였는가? 자네가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만 같지 못하네.

 

내가 글을 보내어 절교 하고 싶었지만 옛친구로서 정이 남아 그래도 한 번은 크게 꾸짖은 다음에 절교하려던 참이었네

이제 서로 만나보았으니 나는 내일이면 떠날 것이네."

그러고는 다시 한잔 더 하자면서 연거푸 세잔을 부어주었다.

 

강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튿날 조언형은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가 뒤에 판교까지 지내고 죽었다. 조언형은 남명 조식 선생의 부친이다.

강혼은 연산군 말년에 애희의 죽음을 슬퍼하는 왕을 대신하여 궁인 애사와 제문을 지은뒤 사림으로 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었고 중종반정 후에도 이윤으로부터 폐조의 행신이라는 탄핵을 받았다.

 

아름다운 집에 살다가 산언덕으로 돌아가리라

신항은 신숙주의 증손으로, 일고여덟살 때부터 시를 익혀 시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열네살 때 성종의 첫째 딸 혜숙옹주를 아내로 맞아 고원위에 봉해졌다.

나중에 통헌대부에 올랐으나 1504년 임숭재의 참소로 의금부에 하옥되엇으며, 이후 궁궐 출입이 금지 되엇다. 이에 두문불출하고 손님을 맞지 않으며 홀로 적막하게 지냈다.

 

말년에 이르러 그는 병이 들어 위독하였다. ㅣ그 소식을 들은 어떤 이가 신항을 찾아와 위로 하엿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못된 사람에게 화를 내린다는 데, 그대처럼 착한 사람이 어찌 이런 불행을 당하셨습니까?"

그러자 신항이 웃으며 답했다.

"하늘이 과연 그럴까요?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린다면 어찌 안자같은 사람이 일찍 죽었겠소? 하늘이라고 어찌 만물하나하나에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수명을 매겨주겠소. 사람이란 모두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고 일찍 죽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조물주는 아무런 사심도 없이 수명을 내려주니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소?"

 

그러고 나서 신항은 시 한구절을 읊었다.

"아름다운 집에 살다가 시들고 떨어져 산언덕으로 돌아가리라." 시구를 읊으며 그는 초연히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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