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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내 영혼의 작은새/니논헤세 서간 선집<헤르만의 마지막 연인>/두행숙

다림영 2008. 9. 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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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에서 1961년까지의 편지 니논헤세의 편지이다.

"헤세는 자신에게 결여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 의미와 구심점이 빠져있습니다. 이따금 나의 집필 활동이야말로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 보지만

그것은 여전히 결여 되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요. 그래서 하루도 기쁜 날이 없습니다"<1922년 힐데 융에게 보낸편지>

 

"앞으로 어떤 것을 시작해야 할까. 그리고 지속적으로 절망앞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물음은 점점 더 타는 듯합니다"<1925년 알리스 로이톨트에게 보낸편지>

 

""아무런 기븜도 없는 이 고독한 지옥 속에서 얼마나 더 오래 뜨거운 불에 타고 있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7년 전부터 그 속에 있는데도 말입니다"<알리스 로이 톨트에게 보낸 엽서>

"나는 늘 혼자 있으며 나를 타인들로 부터 분리 시키는 광막한 공허함을 결코 뚫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1925년 1월 25일 에미 발 헤닝스에게 보낸 편지>

 

"내가 이따금 여기 저기 시범적으로 이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 있다 해도 내가 주위에 여전히 껍질을 쓰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내게

서는 동료들이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나기에 스스로 혼자가 되곤 합니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은 곳에서 조차 말입니다"<1925년 7월 30일 후고 발에게 보낸 편지>

 

그는 '가족도 없이 인간 세계 밖에서, 어떠한 삶의 공동체와도 함께 하지 못한채 거의 매일 자살의 문제에 부딪혀'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1925년 헬레네 벨티에게 보낸 편지>

 

"몇개월 동안 나는 거의 매시간 심연 가가이가지 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서 빠져 나오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내 관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1926년 2월 7일 후고발에게 보낸 편지>

 

그는 '헤세라는 폐허를 보지 마십시오'라고 경고했다<1926년 7월 7일 하인리히 비칸트에게 보낸 편지>

 

1926년 헤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라고 에미발 헤닝스에게 털어 놓았다. "내 목을 칼로 그어 버리는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50세 생일날인 1927년 7월 2일에 50번재 생일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했다.

위의 인용문들은 1926년 봄 니논이 <황야의 이리>의 작가와 해후 했을 때 그녀의 눈에 비친 그의 상태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헤세는 영혼이 짖겨져 나갈 듯한 고독속에서 이따금 술을 위안으로 삼았으며 지금까지 경련적으로 자증을 내며 놓쳐 버린 삶, 놓쳐버린 사랑을 뒤늦게 만회하려고 몸부림 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니논의 편지들 속에 억제된 모습으로 반영되고 있다. 헤세가 수년동안에 걸쳐 지기들에게 보낸 위와 같은 반복된 구조 신호가 없었다면 니논이 빈을 떠나 헤세의 발치 가까이가지 간 이유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삶의 심연

속에 빠진 그의 곁에 있어줘야 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헤세는 지속적인 우울증 속에서 두번재 결혼이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감히 누구를 자기 곁으로 불러 들여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거나 거기에 응답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

 

 

"그녀는 1926년 4월 3일 남편 프레드 돌빈에게 다음과 같이 알렸다.

"만약 그가 나를 부르면 그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가 나를 사랑하면서도 내 생활을 삶다운 삶이 아니라 순교자의 삶같은 자신의 삶에다 묶어 두기를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ㅛ."

그리고 헤세에게 '느슨한 동거 생활'을 하자는 제안을 해야 겠다고 결심하고 난뒤 남편에게 이렇게 써 보냈다.

"헤세 선생님은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어요, 그는 끔 직하게도 자신을 학대하고 있고 삶에 대해 고통을 겪오 있어요, 그러면서 도 그 삶을 사랑하고 잇지요. 그에게는 고독이 필요하지만 그는 그것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잡한 비극이지요. 그러나 우리 세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체념적인 것은 내가 맡은 역할 이지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드린 인간 헤세와 행동할 자유를 지닌 당신. 그리고 나. 이 세사람 말입니다. 나는 '허공에 떠 있어요. 나는 혼자 입니다. "

1927년 쓴 편지는 그녀의 용기를 증명 해 주고 있다.그녀는 뒤에 남은 모든 것들과 단절했으며, 양친으로 부터 물려 받은 집을 팔았고, 빈에 있는 남편 집에서의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고고학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작업도 포기 했다.

그녀는 그의 삶을 위기로 부터 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주어졌던 모든 임무들로 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이것은 그의 의지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헤세는 자신은 지속적으로 누구와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고 그녀에게 경고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고정된 관계도 신결질적으로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말에 위축되지 않았으며 , 헤세가 겉으로는 자기 는 나이가 들었고 통ㅁ풍에 시달리며 장에 문제가 있고 눈병까지 앓고 있다고 하소연하며 거부하지만 내심은 애정을 바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헤세가 <황야의 이리>를 집필하던 시기에 그를 파열 시킬 것 같던 긴장감이 18살 연하였던 니논과 함께 지내면서 극복되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며 또 확인되고 있다. 삶에 대한 싫증과 자아에 대한 회의는 사라졌다.  그는 운명과 공동생활의 긍정하는 관점을 얻게 되었고 이는 작품들 속에 �사 되었다. 삶에대한 구토에 대한 서술은 줄어 들었으며 자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꺼내지 않게 되었다.

 

니논의 '이해심'이 그의 '삶의 황폐함'에 �마나 중요했는지는 헤세가 그녀에게 헌정한 최초의 시에서 충분히 예감할 수 있다.

 

니논

 

당신이 나에게 온 그길은 멀었습니다.

이따금, 당신은 오는 도중에 혼자였습니다.

어떤 꿈을 꾸었기에, 어떤 행복을 바랐기에

이 여러해 동안 당신은 부득이 나를 사랑 한 것입니까?

 

아, 나를 , 이 '잃어버린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오직 분열과 쓰라린 압박을 가져올 뿐입니다.

수많은 당신의 자매들을 이미 나는 사랑하였으나

모두에게 미로와 불운 일 뿐이었습니다.

당신의 그 많은 이해심에 나는 감사합니다.

당신이 부르는 소리는 내 삶의 황폐함 속에 다정스레 울립니다.

 

1927년 4월 말경 이혼한 헤세는 몬타뇰라의 카사 카무치에 그녀가 머물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서로 '떨어진 채로 하는 동거 생활'은 두사람이 머물 거처를 비치함으로써 쉽게 가능해졌다.

니논의 거천는 카사 카무치의 왼쪽 날개 건물의 아래층에 있었으며, 헤세의 여름 거처는 오른 쪽 날개 건물의 위층에 있었다. 정원으로 열려 있는 테라스의 석조 나간에서 니논은 헤세의 작품속에 나오는 '클링 조르의 발코니'를 올려다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소리쳐 부르거나 작은 쪽지를 남겨서 서로에게 혼자 있을 시간이나 함께 무슨 일을 할 시간등을 미리 약속하거나 알릴 수 있었다.

이처럼 두사람이 연습을 통해 곧 익숙해진 '멀고도 가가운'관계는 헤세가 집필 작업을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니논은 '상대방이 펼요하지 않을 대 없어 주는 것'의 필연성을 준중하였다.

 

저녁시간에 그들은 대부분 함께 지냈다. 그 몇달 동안 니논은 매일 같이 몇시간동안 헤세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고통스러운 안질 때문에 불편해 하던 헤세는 이같은 니논의 다정한 봉사를 거부할 수 없는 친절로 느끼게 되었다.

1929년 부터 니논은 두 사람이 함께 읽은 책에 대해서 노트에 적어 놓았다. 어던 해에는 그들이 읽은 책이 100권이 넘었으며, 두 사람이 함게 사는 동안에 읽은 책은 모두 1447권에 달했다.

 

1928년 5월 22일 취리히에서

사랑하는 H씨여 . 이 취리히야 말로 얼마나 황홀하기 그지 없는 도시인가요! '도시'라고 말했지만 사실 마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폭의 그림처럼 조용하고 친밀감이 들며 깨끗한 작은 마을 입니다! 불타오르듯 붉은 밤나무들과 파리에서는 주로 흰색만 보였었지요- 도처에 너도 밤나무들과 라일락, 오랑캐�들이 즐비하게 피어있습니다. 그리고 호수와 산들은 또 어떤가요! 저는 완전히 감동 받았습니다! '자동차'라는 말이 단수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차가 적다는 것도 여기서 비로소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파리에서는 항상 한꺼번에 달리는 차들이 일흔다섯대 정도 는 되니까요!...

모레 이 시간 즘이면 저는 당신 곁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가능 하겠지요? 오늘 저는 비르허에 다녀왔습니다. 배운 것을 새롭게 하려고요.....

-엽서에 쓴 편지

 

1931년 11월 16일 몬타뇰라에서

사랑하는 , 사랑하는 새여!

이제 당신이 안계시니 서글픕니다. 당신은 전혀 상상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으려니까 비로소 , 당신 곁에 다시 가까이 가 있는 듯 하여 기브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어수선 합니다. 모든 것이 바닥에 널려 있으며 저 자신도 그렇지요. 그 어수선한 물건들 사이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서 저는

계산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가지 계산서를 챙기고 잇습니다. 하나는 '집에 마련할 물건들'을 위한 것이고 도 하나는 '가계를 구리는데'드는 비용의 계산서이고 또 하나는 '니논'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권의 작은 공책과 세개의 돈주머니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 서두르다 보니 주머니 한 개 속에는 잔돈이 안들어가 있는가 하며 다른 주머니 안에는 들어가 있기도 해서 아주 끔찍할 정도로 정신이 없습니다! 그더다 보면 계속 앉아서 계산을 하고 있어야 하니 제 자신에게 따귀라도 때려 주고 ㅣ싶을 정도 입니다.

 

내일은 온종일 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으며, 수요일에 비로소 출발 할 수 있게 되어 서 기쁩니다.  그러니 저는 서두를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아 새여, 당신이 기차의 객차 안에 서신 채 제게 눈짓을 보내셨을 대는 그 얼마나 다정하셨던가요! 나의 사랑하는 연인이여, 저는 언제나 당신의 다양한 모습에 새로이 놀라곤 한답니다. 어던 대 당신은 마치 제 아버지처럼 선량하셔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 아버지를 보는 듯합니다. 저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새여, 작은 소년이면서 비밀스러운 마법사여...그래서 저는 마치 기적을 받아 들이듯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이건 사실이 아니야, 이런 생복이 이렇게 쉽게 올리는 없어!'라고요. 저는 경이롭고 훌륭한 시인을 꿈구는 작은 니논입니다.

 

저는 아직도 열네살 난 소녀가 되어 푸른 나무밑 그늘과 호두나무 사이에 걸려 흔들리고 있는 해먹에 누워서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헤르만, 그때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라우셔에서 레오에 이르기가지 길은 참으로 멀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체험 하였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또 아름다운 것들을 간직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에 해먹에 누워서 그랬던 것 처럼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람에 대해서 말입니다!

당신이 저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띤 분이 되셨습니다.-연인이자 보호자이며 이제는 남편이십니다.-그러면서도 당신은 저에게 여전히 경이로운 존재로 머물러 계십니다. 제 생애 가장 행복한 경이로움으로요.

 

당신에게 언제나 감사드리고 싶어요. 사랑 대문에 감사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말 은 그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저의 사랑은 정말 서로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당신이 거기 계시기 대문입니다! 당신이 마법의 풍경을 다 그리신 다음에 그속으로 사라져 버리시지 않고 아직도 이세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연인이여! 당신에게키스를 보내드립니다.

 

당신의 니논이.

 

1962년 8월 9일 헤르만 헤세는 세상을 더났다. 뇌출혈로 잠자듯이 평화로이 눈을 감았다. 니논은 장례식대 조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답했다. "우리가 35년 동안 함께 산것에 대해 저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고령에 까지 이르실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요. 하지만 감사하는 대신에 절망스럽고 부리가 뽑힌 느낌입니다. <1962년 8월 16일 아테네 콜브에게 보낸 편지>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일기

"최최의 뻐꾸기 울음소리. 그런데도 나는 H.에게로 달려가 그에게 그 소리를 전해 줄수가 없다....어제 나는 외출을 시도 해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햇다. 나는 동백꽃 한다발을 들고 무덤으로 갔다.  날시가 너무도 화창해서 나는 그곳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데 놀랐다.  목련꽃들이 피어있고 나무들에는 새순이 피어나고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고, 밝은 구름들이 창공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놀랍게도.

항상 H와 의견이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어가는 삶이나 나한테 부과된 삶이 늘 만족하지는 않았던 것 처럼.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적응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 마음에 한번 들지 않는 것은 늘 마음에 안들었으니까...하지만 나는 H와 너무도 깊이 이어져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밖이 아닌 내 안에 있었으며 없앨 수는 없는 것이었다. H와 나는 서로의 마음속에서 성숙해져 갔다.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으로서 나에게는 파악될수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였다. 그의 고통은 내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나는 나인 동시에 그였다. 나는 그를 위해서 느꼈고, 책을 읽었으며 체험하고 바깥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한테 그런 것을 말 할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나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그와 나는 하나였다. 그의 죽음은 나를 갈기갈기 짖고 말았다. 나는 남아있는 절반이었다. 피를 흘리는 절반의 존재였다."

 

니논헤세는 1966년 9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9월 26일 몬타뇰라에 있는 산 아본디오 공동묘지에 있는 헤르만헤세의 묘 옆 그녀의 마지막 안식처에 함께 안장 되었다. "

 

 

 

___

 

장장 724쪽이나 되는 서간문이었다.

나는 생각에 빠진다.

한사람이 한 사람을 철저하게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각별한 영혼으로의 성숙을 위해 거듭나기를 꿈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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