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남쪽 고을에 만석이 넘는 부자가 살았다. 그는 제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마저도 아까워했다. 그는
재물은 쓰면 없어지고 모으면 쌓인다는 것을 하늘처럼 믿었다. 그래서 고을 사람들은 그를 자린고비라고
불렀다.
만석군에게 빚진 사람들은 빚 갚는 날을 잘 기억해 두어야 했다. 빚갚은 날을 하루만 어겨도 빚보증으로
잡아 두었던 땅문서를 되찾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그는 만석꾼의 땅 부자가 되었다.
만석꾼은 빚을 갚으려고 제 날에 온 사람에게 항상 똑 같은 말로 능청을 부리곤 했다.
"이 고을에서는 내 땅을 밟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어, 온종일 걸어도 내 땅을 벗어날 수가 없지, 높은 이자
를 붙여 빚 갚는다고 고갑게 여길 것은 없어, 모두 내 땅에 붙어 사는 꼴 아닌가. 내것 아닌 것이 무어 있나.
'후하게 쳐줄 터이니 땅을 넘길 생각은 없는가?"
한고을을 통째로 차지하고도 만석꾼은 가난뱅이의 게딱지만한 논이 욕심나는 것이었다. 빚을 갚고 만
석꾼집에서 땅문서를 찾아 나올 때마다 빚쟁이들은 속으로 땅 욕심이 목구멍까지 찬 저 자린 고비는 천벌
을 받을 것이라고 저주 했었다.
빚 갚는 날을 넘긴 사람이 오면 만석꾼은 보는 체도 않았다. 왜 왔느냐고 곁눈질을 할 뿐이었다. 돈 마련하
기가 쉽지 않아 날자를 넘겼으니 이자를 더 붙여 갚겠다고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만석꾼의 문서함에서
땅문서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약속한 바로 그날 밖에 없었다.
만석꾼은 그냥 빌려 주는 법이 없었다. 반드시 높은 이자를 붙엿고 빚보증으로 집은 땅값을 제 마음대로
쳐서 그 절반 이하만을 빌려 주었다. 빚을 갚게 됨녀 이자를 더 벌어들일 셈이고 빚을 갚지 못하면 절반
도 안되는 값으로 땅을 사들인 셈이니 밑질 것은 없다고 ㅣ만석꾼은 쾌재를 불렀다.
하루를 넘겨 빚을 갚으려고 온 한 빚쟁이가 그 땅을 넘기면 살 길이 있으니 한번만 봐달라고 애걸했다.
그러나 만석꾼은 이미 땅주인은 바뀌었다고 문서를 들이대며 윽박질렀다. 빚쟁이는 엽전꾸러미를 들고
땅문서를 돌려달라고 수없이 빌고 애걸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살길이 막막해진 빚쟁이는 분노가 치밀었다.
'네 이놈! 너죽고 나 죽자!'
마침내 빚쟁이는 엽전 꾸러미로 정수리를 내리쳐 만석군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빚쟁이는 엽전 꾸러미로 정수리를 내리쳐 만석꾼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
온 고을에 만석꾼이 맞아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죽어 마당한 놈이 맞아
죽어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그리고 빚독촉을 심하게 하면 엽전에 맞아 죽는다는 유행어가 돌았다.
왜 대원大怨은 생길까
군자는 어울리되 패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를 짓되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공자는 말했다. 노자는 따뜻
이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자연의 품안에 안기라 했다. 자연에 안기는 것은 어울리는 것이요, 이해를 따
져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패를 짓는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느냐고 반문하지 마라. 그것은 동료이면 이롭게 해주고 동료가 아니면 해롭헤 한다
는 말이 아닌가. 그랫 성인은 무정하고 소인은 사사로운 정에 치우쳐 사악한 정을 범한다. 사정은 결국
바른 것을 그르게 하고 그른것을 바른 것처럼 둔갑시키는 짓을 범하게 된다. 이는 이해 탓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독차지하고 남에게 해를 입히면 원이 생기는 것이다.
남의 가슴에 못질을 마라. 이말은 원한을 사지 마라 함이다. 원이란 남의 가슴에 입혀준 깊은 상처이다.
원은 한이 되게 마련이다. 한이란 마음의 상처가 겪게 되는 아픔이요, 신음이다. 나만 잘살자고 남을 못살
게 하면그보다 더 큰 원한은 없다.
원한은 말끔히 가셔지지 않는다.
한번 지어진 원한은 지울 수가 없다. 입은 상처가 흉터를 남기는 것과 같다. 맺힌 원한을 푼다는 것은 용
서를 하되 잊지는 못한다는 단서를 달자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마음이 상처를 입게 되면 그 상처는 앙금
처럼 마음속에 남는다.그러므로 원한을 사고 팔며 삶을 아파한다. 이렇게 아파하면서 삶을 사는 것은 누
리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는 것이라고 노자는 생각했다.
억지를 부려 욕심을 사납게 하면 그것이 곧 유위인 것이고 그 유위는 욕망에 치우친 사람의 짓이라고 보아
도 된다. 원한을 짓지 않으려면 귀덕을 명심하면 된다. 덕을 귀하게 여기면 저절로 보살피고 도와주는 것이
사랑의 길임을 알게 된다. 덕의 길을 걸으면 원한은 없다.그래서 노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고 했다. 덕
이 있는 곳에는 여한이 없다. 여한이란 상처의 근과 같다. 덕은 원한을 짓지 않으므로 처음부터삶의 상처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덕에 이색해 원한을 짓고 여한을 남긴다. 원한을 짓게 되면 부덕의 탓으로 비
롯된 셈이다.
성인은 빌려주되 받지 않는다.
집좌계는 빚을 받지 않았으나 받은 것으로 친다는 말이 된다. 성인은 덕을 베풀지만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
는 것을 노자가 비유해 말한 셈이다. 어디 성인이 빚을 놓아 이자를 따먹는 돈놀이를 할 것인가. 본래 성인
은 일을 해주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 일을 하되 그 일을 앞세워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 성인이 덕을 베
푸는 것은 범인들이 빚지고 사는 것과 같은 셈이다. 신세를 지는 것도 빚이요, 은혜를 입는 것도 빚이다.
계는 빚받을 사람과 빚갚을 사람이 보증으로 작성한 문서를 말한다. 옛날은 문서만으로 빚보증이 되었지만
지금은 돈을 빌려 줄 때 사람을 믿지 않고 부동산을 담보물로 잡아 공증해 놓는다. 옛날은 사람을 믿고 빚
을 놓았지만 지금은 담보물을 믿고 빚놀이를 한다.
빚문서를 절반으로 접어 찢은 다음 오른 족 반장은 갚을 사람이 갖는 것이고 왼쪽 반장은 채무자의 것이고
왼쪽 반장은 받을 사람이 갖는 것 으로 빚보증을 서로 했다. 오른쪽 반장은 채무자의 것이고 왼쪽 반장은
채권자의 것이다. 옛날은 빚갚는 것을 합동이라고도 했다. 빚을 갚을 때 채권자의 왼쪽 반장과 채무자의
오른쪽 반장을 서로 맞추어 본다음 채권자는 돈을 받고 채무자에게 좌계를 주면 빚관계는 청산되었다. 그
러므로 빚을 놓고도 왼쪽 반장을 쥐고만 있다는 것은 빚을 주되 처음부터 받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성인은 덕을 베풀되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베푸는 것은 무엇을 주되 돌려 받지 않는 것이다.
자식에 쏟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것이 베품이다. 그래서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덕이 있으면 빚은 스스로 갚아지고 덕이 없으면 놓은 빚을 억지로 받아내야 한다.
천도에는 사사로움잉 벗다.
불가에서는 중생유정을 고라고 한다. 도가에서는 불가의 고를 원이라고 보았던 모양이다. 고도 삶의 아픔
이요, 원 역시 삶의 아픔이다. 삶의 아픔은 정 때문에 빚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은 미추를 분별하고 호오를 분별하며 이 해가려 내것 네것을 차별한다. 그래서 생모의 슬하에서
는 겨울도 따뜻하지만 계모밑에 있으면 열므도 춥다는 게다. 유정은 미운정 고운정을 따지지만 무정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금붙이는 소중하고 모래알은 천하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유정이요, 금과 모래는 다같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은 자연의 무정이다. 장미꽃을 곱다하고 호박꽃을 못났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편애이다. 그러나 자연
에는 편애가 없다. 있는것이면 무엇이든 품안에 껴안아 주는 것이 자연이요, 무위요, 하늘의 길이다.
성인은 하늘의 길을 따라 걷는다. 그래서 성인에게는 내편 네편이 없고 모든 것을 사랑할 뿐이고 보살펴
주는 덕으로 그득할 뿐이다. 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난을 처음부터 없게 하는 사랑인 셈이다.
<원문의역>
큰 원한을 풀려고 하면 앙금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큰 원한을 푼다고 해서 어찌 선하게 될 수 있
단 말인가.
이러하므로 성인은 빚문서를 지니고 있을 뿐 채무자에게 빚독촉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이 있으면 빚은 스스로 갚아지고, 덕이 없으면 놓은 빚을 억지로 받아내야 한다.
천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과 더불어 어울린다.
<도움말>
제 79장은 삶의 고통이 왜 비롯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지 못하고 서로
오해하고 해를 지으며 산다는 것은 곧 원한을 사는 것과 같다. 왜 인간은 괴롭게 사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제 79장은 유덕과 같다. 왜 인간은 괴롭게 사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제 79장은 유덕하면 괴로
운 삶이란 없음을 밝힌다.
집좌계는 무위를 행하면 백성은 저절로 잘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는 빚을 받지 않았지만 받은 것으
로 친다는 뜻과 같다. 계는 채무와 채권의 증서를 말한다. 계를 좌우로 나누어채권자가 오른 쪽 반장을 갖
고 채무자는 왼쪽 반장을 갖었다. 채무자가 빚을 갚고 채권자가 지녔던 좌계를 받아가면 빚관계는 청산되
는 것이다. 책어인 의 인은 빚진 사람, 즉 채무자이고 책은 채권자가 빚을 갚아달라고 독촉하는 것을 뜻
한다.
사계는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아도 채무자가 스스로 와서 빚을 갚는 것을 뜻한다.즉 민자와를 비유한
말이다. 사철은 빚을 억지로 받아내는 것을 뜻한다.
무친은 사사로운 정이 없음이다. 무심도 무친이며 허심도 무친이다. 무친은 욕심을 버린다는뜻도 된다.
제 80장 자연은 생존의 고향이다.
떠돌이 삶은 괴롭고 번거롭다.
지금은 고향이 따로 없다. 이제 사람들은 이리저리 살 곳을 찾아 떠돌고 사는 곳이 곧 고향이 아니냐고 반
문한다. 고향은 없고 현주소만 있는 셈이다. 물론 명절이 되면 귀향객이 많아 고속도로가 메워 터질 지경
이라고 하지만 고향은 사는 터전이 아니라 일년에 한두번 방문해야 하는 타향처럼 되어 버렸다.
시골은 불편학 도시는 편리하다고 믿는다. 시골에는 산천이 있지만 도시에는 문명이 있다. 그래서 시골
의 산천은 불편하고 도시의 문명은 펀리하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탓으로 시골에 가면 마을마다 빈 집이
많지만 도시에서는 주택난이 극심해 제 집만 있으면 부자라고 한다.
도시생활은 한가할 틈이 ㅇ벗다. 숨을 쉬기가 어려울 만큼 일에 일이 겹쳐 날마다 해야 할 일들이 도시인
을 경마장의 말처럼 달리게한다. 도시의 세상은 쏜살같이 달리며 쏟아지는 정보와 마주하게 한다. 그러니
도시생활을 차분하게 끌어갈 수가 없다. 그리고 정신없이 생활비를 벌어야 방만한 문명생활을 꾸려갈 수
있다.
편않나 삶을 버리고 편리한 삶을 택하면 택할 수록 마음은 �기며 쪼들리게 마련이다. 편리한 삶을 갖자면
그만큼 돈이 필요환 까닭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살 길이 막히고 돈이 없으면 거지가 된다. 이 얼마나 긴장
스러운 삶의 상황인가. 이러한 상황은 싸움터를 방불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현대인은 돈벌레가 되고 성
취욕의 병사처럼 된다.
뱁새가 황새를 부러워 할 것은 없다. 뱁새는 수풀에서 살고 황새는 물논에서 산다. 서로 사는 곳이 다르므
로 먹이도 다르다. 뱁새가 황새의 발걸음이 탐난다고 해서 먹이마저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상대를
짓고 비교를 하면서 서로 유리한 자리를 점령하려고 쉴새없이 다툰다. 이처럼 사람은 인생의 힘겨루기를
하듯이 힘겹게 산다. 인간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문명의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까닭이다.
문명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자연을 떠나게 한다. 도시는 인생을 숨가쁘게 하고 산천은 온갖것들에게 만
족을 준다. 왜냐하면 도시는 분에 넘치는 사치를 충동질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천은 모든것을 수수하게
있는 그대로 간직하게 할 뿐 꾸며서 감추고 치장ㅇ해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20평의 아파트가 30평의
아파트를 부러워하고 30평의 아파트는 40평을 부러워하게 하는 짓 따위는 산천에는 없다.
도시의 모든 것들이 부족을 충동질 하므로 도시인의 마음은 항상 총대에 꽂힌 칼끝처럼 예리하다. 그래서
미소 뒤에 송곳이 숨어 있다는 말을 만들어 낸다. 도시인은 이웃을 얻지 못하고 그저 모여 살 뿐이다. 사
람들이 득실 거려도 마음을 트고 지낼 사람은 없다. 왜 이렇게 삭막하게 살아가는 가. 인생을 검소하고 겸
허하게 맞이할 줄을 인간이 잊어버린 탓이다.
도시인이여, 고향이 그립지 않은가. 도시의 문명생활에 지쳐버린 현대 인일 수록 노자가 그려 놓은 나라를
고향으로 가슴에 지니고 산다면 쉬고 싶을 때 언제라도 쉴 수 있는 빈의자를 마음속에 지닌 것처럼 되리라.
작은 나라에는 사는 사람도 적다. 수많은 사람이 쓸수 있는 기물이 있지만 쓰지않게 하고 죽음을 중하게
여겨 멀리 떠나지 않게 한다. 비록 배가 있고 차도 잇지만 그것들을 타는 바가 없고 비록 병사가 있지만
전선에 배치한 바가 없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아득한 옛날의 덕치로 돌아가 생활 하게 한다.
박노인은 12층 아파트에 살고 김노인은 한 아파트 3층에 산다. 두노인은 아침마다 초록색 깃발을 들고 나
가 횡단보도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그리고 9시쯤 돌아와 아침을 든다.
김노인은 이제 서울생활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것은 박노인 덕이었다. 거진 60년을 시골에서
만 살았던 김노인은 도시 생활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날마다 투덜 거렸다. 박노인은 그런 김노인에게 도시
에 살면서 시골 사람처럼 살 줄을 알면 그만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해 주었다.
김노인은 박노인을 만난 첫날 부터 젊은 것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았었다. 묵묵히 김노인의 푸념을 듣고
만 있엇던 박노인은 달포가 지났을 쯤에야 무거운 입을 열었다.
"노인장 고향이 무주 구천동이라고 했지요. 덕유산을 생각하면서 살면 됩니다. 저는 지리산을 생각하며
삽니다.그렇게 햇더니 서울이 지리산 속 처럼 됩디다."
"여기는 서울인데 어찌 그렇게 산답니까"
"늙었으니 큰일은 못하지만 작은 일을 찾아 하는 겁니다. 낯선 사람들이 사는 서울에서 젊은 사람들은
일에 바빠 못하는 일들이 있습디다.우리 아침마다 교통정리를 하는 일에 나갑시다. 동사무소에 부탁하면
국민 학교 앞에서 일을 하도록 한답디다"
두노인은 그날로 아침마다 교통정리요원이 되었다. 경로비조로 조금 나오는 돈을 받기도 하며 두노인은
일재미를 붙였다. 그 뒤로 김노인은 파고다 공원을 찾아가는 일을 그만 두었고 박노인과 함께 서울 주변 산
을 타게 되었다.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산에 나와 쓰레기 줍는
일을 하면서 두노인은 서울 근처에 산이 있어 살맛이 난다고 맞장구를 치게 되었다.
며느리가 싸준 도시락을 들면서 박노인이 지리산 골짜기를 이야기하면 김노인은 덕유산 골짜기를 이야기
했다. 야산에 없는 나무 이름이며 산새이름을 서로 주고 받았고 약초이름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시간을 즐
겁게 보내다 내려오곤 했다.
두노인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도시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았다. 불평을 한다고 서울이 시골이 되는 것이 아
니라는 것을 김노인은 알게 되었고 박노인은 그런 김노인을 고마워 앴다. 타향에서 만난 두노인은 격의
없이 노년을 보내며 한 아파트에 살게된 인연으로 따분했던 도시생활을 탓하지 않고 마음을 넉넉히 하고
사는 버릇을 되찾게 되엇다. 그래서 김노인은 박노인에게 항상 감사해 한다.왜냐하면 박노인 덕으로 잃었
던 고향을 서울에서 찾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산다.
노자가 알려준 작은 나라는 자연으로 사는 나라이다. 자연으로 산다는 것은 무리없이 산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짓는 무리는 인간을 중심으로 만물을 결정하려고 할 때 빚어진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중심
의 발상은 순리에서 멀다.
도시에는 자연이 없고 산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천만 자연인 것이 아니라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인간이 별개인 것은 아니다. 인간 역시 무수한 생물중에 하나일 뿐이다.도시인 일지라도 덕을 떠나지 않고
산다면 도시에서 자연을 누리는 셈이다.
무기가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기는 목숨을 해치는 흉기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도시에는 잔
인ㅇ한 인간들이 많다. 도시에는 잔인한 인간들이 ㅁ낳다. 별별 범죄가 우심해 치안을 위해 경찰이 총기를
소지하게 된다. 강도는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흉기를 지니고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하여 총기를 든다. 범
인의 흉기이든 경찰의 총기이든 목숨을 해치는 기물임에는 틀림없다.
그 러나 도시에도 선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서낳 사람이 있으면 곧 자연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선
한 살마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노자가 말하는 작은 나라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p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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