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백성의 가려운 곳을 찾아 시원하게 긁어주어야 하고 아픈곳을 찾아 고쳐 주어야 왕이 된다. 왕이
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천지와 백성 사이를 오고가는 것을 맡은자가 아닌가. 그래서 왕은 왕이라고 하
는 것이다.
임금이 나라의 허물을 맡아야 하는 것은 백성을 편안히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관료층이 부패해 백성을
얕볼 때 누가 병든 관료층을 도려낼 것인가.
바로 임금이 책임지고 해야 하고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여 백성이 빗자루를 들고 쓸어
낼 때는 정권이 바뀌는 법이다.
왕은 신하에게 군림하되 백성에게는 봉사해야 한다고 성인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을 의 말을 들
었던 임금은 없었다. 아마도 미국의 링컨 대통령 정도면 성인을 미소짓게 할런지 모른다 . 그러나 링컨
도 성인을 흡족하게 할 수가 없다. 전쟁을 치러 수많은 백성이 피를 흘렸던 까닭이다.
임금은 백성이 웃고 살 수 있도록 눈물을 흘려야 한다. 이것이 바른말이다. 임금의 눈물이 백성의 웃음이
된다는 것은 반이다. 말하자면 임금이 불행을 짊어짐으로써 백성은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 곧 정언약반인
셈이다.
대권을 쥔 치자가 노자가 밝힌 정언약반을 귀담아 들어 새기고 정치로 실천한다면 어느 백성인들 그 치
자를 어버이로 받들지 않을 것인가. 주인이 머습을 존경하면 그 머슴은 주인의 길잡이 노릇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의 길잡이야말로 물길을 닮아야 한다. 아래를 향해 흐르므로 바다를
만나고 크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대인의 마음은 하류와 같고 소인의 마음은 상류의 맨 끝짬에 있는 옹달샘과 같다. 옹달샘이 바다
흉내를 내면 탈이 나는 법이고 백성은 목말라 조갈증이 드는 것이다. 백성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임금
은 항상 목마름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그래서 노자는 임금이라면 나라의 허물과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
고 한 셈이다.
<원문의역>
세상에서 부드럽고 약하기로는 물보다 더한 것은 없다.그리고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자면 물보다 더 나은
것이란 없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물을 대신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드러움이 단단한 것을 이기고 , 연약함이 강한 것을 이긴다.
세상은 유약이 강강을 이긴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한사코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이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허물과 치욕을 맡는 것이 임금이요, 천하의 불상사를 떠맡는 것이
황제라고 했다. 바른 말은 뒤집어 놓은 것 처럼 들린다.
<도움말>
제 78장은 인간의 미혹을 밝혀 주고 있다. 인간은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이기고 거친것이 부드러운 것을
이긴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은 목숨의 소중함을 몰라 짓는 착각이다. 목숨이 유약한 것이고 죽음이 강
강한 것임을 밝혀 승패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헤아리게 한다.
막지능승의 지는 물을 대신하고 있다.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국지구의 구는 더러운 것을 뜻하고 그 더러움이란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사직주는 군왕을 말한다. 요새로 치면 수상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천하왕은 황제나 천자를 말한다.
대통령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정언약반의 정언은 이치에 맞는 말이며 반은 이치에 맞는 것을 뒤집어 놓는 말과 같다. 즉 여기서 반은 역
설이요, 배리와 같은 셈이다.
제 79장 자연에는 집달리가 없다.
빌려주고 욕먹는 짓을 마라
열번 잘하다 한번 잘못하면 허사다. 주인을 알아보던 개도 미치면 제 주인을 문다.ㅇ ㅣ는 사람을 조심하
라는 말이다. 조심한다는 것은 믿지않고 의심하며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마음을 트고
살지를 못하고 서로 담을 쌓으려고 한다. 왜 인생을 이렇게 요리하는가. 인생은 거래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까닭이다.
그러나 인생은 팔고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누리는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
답고 찬란하게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을 장사꾼의 눈으로 바라보면 항상 어둡고 침침할 뿐이다. 사
사건건 흥정을 해야 한다면 모든일이 힘들고 벅차게 된다.
어디 손쉬운 흥정이 있는가. 어느 흥정이든 몫을 다투게 되므로 서로 더 받자고 하지 깍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인생을 거래감으로 치면 몫을 더 차지하는 쪽이 덜 차지하는 쪽에 상처를 남긴다. 그렇게 남긴
인생의 상처를 원한이라고 한다.
흘맺혀 맺으면 풀기 어렵지만 고름쳐 맺으면 풀기도 쉽다. 원한을 사지 않으려면 매듭처럼 맺지말고 저고
리 옷고름을 매듯이 하라. 맺은 것이면 풀어야 하는데 풀때는 맺힌 결을 따라 풀어야 한다.ㄱ ㅡ러나 상처
를 입은 인생은 옹이처럼 굳어져 풀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이 원한 처럼 되면 오뉴월에 도 서릿발이 내린
다고 한다.
약속을 잘 지키려면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상택이고 빚돈을 떼이지 않으려면 빚놀이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현실에서는 강자는 채권자처럼 군림하고 약자는 채무자처럼 밀리는 처사들이 빈번하다.
그래서 백성이 춤을 추고 한숨을 잊게 되면 대원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대원은 나라가 짓지 한 개인은 짓기 어렵다. 대원을 풀려고 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대원을 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짓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4.19의 뒤처리로 대통령이 망명했고 내무장관을 교수형에 처했으며, 수류리 산자락 4.19묘지를 성역화
한다고 해서 정권유지의 총탄앞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못을 뽑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래서 노자는 원한의 자리를 덕으로 메우라고 했다. 원한을 덕으로 같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원한을 짓지마
라 함이다.
원한을 없애자면 사정을 떠나면 된다. 사정을 떠나면 그것이 곧 덕으로 통하는 길이다. 그러나 인간은
덕의 길을 잃은지 오래여서 하는 일마다 사리사욕에 걸려들어 �나을 낳고 쌓는다. 성인은 원한을 살
일을 하지 않으며 원한을 낳을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한이 쌓일 이유가 없다. 왜그런지 노자는
다음처럼 밝혀준다.
큰 원한을 풀려고 하면 앙금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큰 원한을 푼다고 해서 어찌 될 수 있단 말인
가. 이러하므로 성인은 빚문서를 지니고 있을 뿐 채무자에게 빚독촉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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