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P248~노자..

다림영 2008. 9. 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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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귀해 멀리 이사가지 않는다.

고향을 떠날 수는 없다. 몸은 떠나 있어도 마음은 항상 고향이 있는 법이다. 타향에서는 고향을 생각하고

외국에 나가면 고국을 생각한다.  왜 그렇게 고향을 버릴 수 없는 것인가. 고향은 태어난 곳인 까닭이다.

태어난 곳에 묻힌다는 것은 자연으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산천을 향한다고 하지

않는가.  죽으면 묻힐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고향을 잊지 못함이요.고향을 잊지 못함은 자연을 잊지 못함

과 같다. 만물의 고향이 자연이다. 그러므로 멀리 이사가지 않음은 자연을 어기는 짓을 하지 않음을 뜻한

다고 새겨도 될 것이다.

 

수수하게 꾸밈없이 산다.

결승은 꾸밈없이 수수한 것이다.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두텁게 하지만 문명은 사람의 마음을 얄팍하게 한

다. 얄팍한 마음은 이해에 따라 변덕스럽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마음은 꾀를 내고 거짓을 일삼는다 .

그러나 꾸밈없고 검소한 마음씨는 도울 줄은 알아도 해칠 줄은 모르며 보살필 줄은 알아도 미워할 줄은

모른다.. 이러한 순질은 바로 무위로 통하는 마음씨이다 노자가 말하는 작은 나라� 개성은 그러한 마

음씨로 산다.

 

도시음 문명생활에서도 질박한 생활을 찾으려고만 하면 그 순간 바로 자연의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만

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복결승을 현대문명을 등지고 원시시대로 복귀하자는 말로만 들을 것은 없다.

유위의 와중에서 무위를 잊지 않으면 그것이 곧 복결승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사치스러움을 멀리하라

함이다.

 

의식주를 경쟁하지 마라. 남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남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나보다 더 좋은 집에

살아야 잘사는 것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마음 편한 삶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인생에 우열반이 있다

고 여기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착각은 없다. 숲속의 새는 나뭇가지 하나로 제 집을 둥지로 삼고 강가의

두더지는 물 한모금이면 목을 축인다고 장자가 말했다. 인생을 욕망의 제물로 삼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명은 승패를 가름하는 경기처럼 인생을 유혹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생에는 승패가 없다.  오직

생사의 사이를 맞이하고 누리면 거기에 곧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자연은 가르쳐 준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

의 유혹에 매달릴 뿐 자연의 가르침을 외면하려고 한다. 그래서 노자는 작은 나라는 백성이 어떻게 사는

가를 다음처럼 밝히고 있다. 

 

거둔곡식으로 밥을 지어 맛있게 먹고, 손수 길쌈한 천으로 옷을 지어 아름답게 하고, 손수 지은 집에서

편안히 살며, 손수 가꾼 습속을 즐긴다.

아침은 토스트와 밀크로 때우고 점심은 일식점에 가서 초밥을 먹고 저녁이면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티본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자랑할 것은 없다.  연사흘만 그렇게 먹으면 싫증이 나고 김치와 찌개를 생각하는

것이 한국인의 식성아닌가. 소스가 간장을 대신하고 드레싱이 양념을 대신하고 케첩이 된장을 대신한다고 믿을 지경이다. 식성도 외제를 닮아가고 우리의 어린이들은 김치맛을 잊어간다고 하니 입맛도 앞으로는 타

향살이를 할 모양이다.

 

그러나 식성에는 고향이 있다는 생각은 아직 살아 있는 셈이다. 한복은 양복에 이미 밀리고 말았다. 한복

은 명절날에나 입는 치례옷처럼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길쌈한 베로 어머니가 바느질한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은 이제는 없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의류를 삿 입고 여인들은 이제 식솔의 옷을 만들어 입힌다는 생각

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것도 모르고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야 한다

고 생각한다.  복식에도 고향이 있다는 말은 이제 성립되지 않는다.

 

한옥도 양옥에 밀려나고 말았다. 기와집이나 초가집은 민속촌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구경거리처럼 되었다.

온돌보다는 침대를 좋아하고 뒷간도 이제는 화장실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옥은 불편하고 양옥이  편리하

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건축에도 고향이 있다는 말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대대로 내려오던 우리의 습속은 빈사지경이다.절하는 대신에 악수를 하고, 이웃사촌이라던 인정은 매정

한 물정으로 옮겨 가는 중이며, 젊은이는 어른을 모시고 어른은 젊은이를 보살피는 마음도 엷어져 가면서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요리하려는 외고집들이 세태를 살벌하게 꾸려가고 있다.

 

이러한 습속의 변화를 외세의 물결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접어두는 형편이다. 뜬 세상에서 부평

초처럼 사는 꼴이다.

 

노자여. 이렇게 먹성도 바뀌었고 복식이나 주거도 바뀌었는데 어찌 옛날 습속을 따르며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대가 그려놓은 작은 나라라는 것은 지금 세상에서 보면 외딴 섬과 같을 뿐이 아닌가. 이렇게 반문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된 세상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면 노자가 밝혀 놓은 작은 나라는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나라마다 힘센 국가가 되려고 별의 별 전쟁을 치루려고 한다. 무력전쟁은 고사하고라도

경제전쟁, 무역전쟁, 문화전쟁을 일삼고 서로 빼앗고 뺏는 짓을 우리는 지금 국제교류라는 미명 아래 온세

상이 치고 받는 중이 아닌가.

 

인간의 모습이 괴물처럼 변신해 가는 와중이지만 선이 부재하고 덕이 부정되는 삶을 어느누가 바랄 것인가.

인생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인간이 선하고 유덕하기를 바란다면 노자의 작은 나라는 생존의 고향으로 삼

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원문의역>

작은 나라에는 사는 사람도 적다. 수맣은 사람이 쓸수 있는 기물이 있지만 쓰지 않게 하고, 죽음을 중하

게 여겨 멀리 떠나지 않게 한다. 비록 배가 있고 차도 있지만, 그것들을 타는 바가 없고, 비록 병사가 있

지만 전선에 배치한 바가 없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아득한 옛날의 덕치로 돌아가 생활하게 한다.

 

거둔 곡식으로 밥을 지어 맛있게 먹고, 손수 길쌈한 천으로 옷을 지어 아름답게 하고, 손수 지은집에서

편안히 살며, 손수 가꾼 습속을 즐긴다.  인접한 두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울음 개 짖는 소리가 들

렸지만 ,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고가지도 않았다.

 

<도움날>

제 80장 떠돌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자연에 안겨 탈없이 사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장

이다.  무위의 생존을 생각해 보게 하며 번잡하고 불안한 문명의 현실을 헤아려 보게 한다. 편리한 생활

이 중한가 편안한 생활이 중한가를 따져 보게 하는 장이다.

 

습백지기는 수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기물을 뜻한다. 습은 열사람이요, 백은 백사람을 뜻한다.

중사는 명대로 살다 편안히 죽는 것을 말한다. 흉사는 억지를 부리다 제명에 못죽는 것이다. 죽음을

중히 여긴다는 것은 생을 검박하고 무사하게 누리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갑병은 군대를 말한다.

결승은 법령으로 다스리기 전에 행해졌던 다스림을 뜻한다. 주역 계사편에 상고결승이치라는 귀절이 나온

다. 결승은 덕치를 연상해 준다.

불상왕래는 서로 다투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며 자연에 안겨 만족하며 사는 것을 떠올려 준다.

 

제 81장 덕은 베풀수록 불어난다.

미덥고 맑은 마음은 입을 다문다.

속이 더러우면 입을 치장한다. 떳떳하면 말이 필요없고 당당하면 구실을 붙이지 않는다.  미더움은 말에 있

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본래 불신은 속 다르고 겉다른데서 생긴다. 거짓이란 입속에 있는 것이 아니

라 가슴속에 숨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것은 속 좁은 사람들이 감정의 오기타툼을 할 때나 있는 일이다. 넓고

깊은 마음은 바다같아 드러내지 않아도 걸림없이 받아들이고 새긴다. 그래서 깊은 바다는 그림자를 이루지

않는다고 했다.

 

비단결처럼 철철 감치는 말은 혀끝의 농간이고 어눌한 말은 마음속의 진실이 입조심을 하게 하는 까닭이다.

뻐꾸기가 울면 뱁새는 집단속을 한다. 목청만 간드러진 뻐구기는 바람만 피울 뿐 제 새끼를 키울줄 모르

고 거둘줄도 모른다. 뻐꾸기는 건달로 살고 뱁새는 착실하게 산다. 뻐꾸기 같은 인간이 뱁새 같은 인간을

속이려고 말을 꾸민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것이 진실이다 . 진실은 덧칠 할 것이 없으므로 말을 꾸며 듣기 좋게 할 것도 없고

유리하게 토를 달 필요도 없으며 말꼬리를 잡아 남의 허를 찌를 것도 없다.

그러나 입씨름에 자신이 있다는 사람들은 구변을 앞세워 말을 말고 물고 늘어져 상대를 누르려고 한다.

 

말꾼들은 세상을 법정쯤으로 알고 형세에 따라 판검사도 되고 변호사도 된다. 변사들은 머리 싸움은 곧

입싸움이라고 치부한다. 말의 미더움보다 말을 창으로 쓰기도 하고 방패로 쓰기도 한다. 코걸이 귀걸

이 의 말을 어떻게 선하다 할 것인가.

 

미더운 말은 꾸밈이 없고 속셈이 있는 말일 수록 꾸미고 수작을 부린다.  본디 부처는 미소를 짓고 객승

이 지껄인다. 빈수레가 요란하고 얕은 물이 시끄럽다. 설익은 이삭은 고개를 들고 영근 이삭은 고개를

숙인다. 제 마음속을 밝히려는 사람은 바깥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것저것 을 두루 잘 아는 것보다 자

기를 알아보려고 하는 자는 오히려 무식해 보이고 묵묵하다.

 

무엇을 엉거주춤하게 아는 것보다는 전혀 모르는 것이 낫다. 반풍수가 집안을 망치는 법이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은 명이고 남을 아는 것은 지라고 노자가 말했다. 명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알고 밝

히려는 것이고 지는 등잔 밑이 캄캄한 줄 모르고 바깥 것만 밝히려고 한다. 보고 들을 수록 지식이 넓어진

다고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자기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현대인은 저마다 공작새처럼 제 꼬리의 깃털을 뽐내려고 한다. 말을 멋있게 하고 재치를 부려 돋보이게 하

며 견문이 넓어 아는 것이 ㅁ낳다고 떠들어야 남들이 알아준다고 설치는 사람은 인생의 광대와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을 무대라고 하는 것은 남을 흉내내 연기하는 굿판이 아니라 자기의 자리가 어디인가를 밝히는

과정이란 말이다.

 

세사람만 함께 가도 그중에 선생으로 모실 사람이 있다고 한다. 우주만물을 자기가 비쳐주는 거울로 맞이

하는 사람은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으면 되울려 오는 바가 있을 것이다.

미더운 말은 꾸미지 않고, 꾸민말은 미덥지 않다. 선한 사람은 어눌하고 구변이 좋은 사람은 좋지 않다.

진실로 아는 자는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자는 진실로 아는 것이 없다.

 

조선 후기에 익살꾼을 대라면 단영 정수동일 것이다. 정수동은 딱딱하고 꽉 막혔던 조선시대를 풍자하며

살았다.  요새로 친다면 그는 개그맨이엇거나 세태를 꼬집는 해학가였던 셈이다.

정수동이가 과거에 급제하게 되었다는 우화를 듣다보면 경서에 박식하다고 자부하던 부류를 농락한 대목

이 폭소를 터뜨리며 마음속을 후련하게 한다.

 

정수동이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과장에 두툼한 누비솜옷을 입고 시관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 사관이 정수동의 모습을 보고는 이 더위에 웬 솜옷을 입고 왔느냐 고 물었다.

 

"소인은 염병이 들어 계절 에 상관없이 오한에 떱니다. 그래서 삼복 염천에도 솜옷을 입어야 목숨을 부지

합니다."

이말을 듣고 시관들은 질겁을 하면서 일제히 저만치 물러가 멀리 떨어져 앉으라고 호통을 쳤다. 시관들

은 염병이 무서운 돌림병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수동은 황송해 하면서 멀리 뚝 떨어져 자리를 자고 의젓하게 앉았다.

마치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듯 자신있는 앉음새로 시관들을 바라본 다음 암송할 것을 하명해 주기를 기다

리는 시늉을 했다. 시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쑤근댔다. 이꼴을 보고 정수동은 자기를 낙방시키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빙긋이 웃으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줄 모르는 얼간이들이라고 흉을 보고 있

었다.

"염병에 든 놈이 벼슬을 해서 무얼하나. 저놈에게 경전을 암송하라고 할 것이아니라 엉뚱한 시제를

주도록 하자."

시곤들은 서로들 말을 맞추었다.

"저것들이 내귀가 부엉이보다 밝은 줄을 모르는 구나"

시관들은 정수동의 구동냥이 유별나게 밝다는 것을 몰랐다. 드디어 엉뚱한 대목을 암송해 보라고 한 시관

이 명을 내렸다.

 

정수동은 공손하게 절을 올린 다음 목청을 가다듬어 구성진 목청으로 흥얼 거리며 몸을 앞뒤로 저어 구구

절절 넘어가는 대목에 맞추어 육자배기를 불러댔다.

정수봉이 암송하는 가락이 하도 흥겨워 시관들도 따라서 흥얼 대게 되었다. 암송시험은 아주 구수하게 끝

났다.

저렇게 박식하니 아무리 염병이 들었다지만 급제를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시관이 운을 뗐다. 다른

시관들도 동의 했다.

"방에 이름이 붙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과장에서 육자배기를 불러 박식하다고 콧대를 세우는 시

관들을 놀려 주었으니 장원 급제야 헌신짝과 같은 것이아니냐?"

과장을 떠나며 정수동은 능청을 떨었다.

 

겉만 곱고 속이 더러운 말은 들을 수록 역겹게 된다. 역겨움을 나타낼 것이 무어 있는가. 정수동이 처럼 놀

려주먼 그만이다. 왜 거짓을 일삼느냐고 따질 것도 없다. 허튼소리를 듣지 않는 것으로 치면 귀청이 울리지

않아도 된다. 본래 까마귀싸우는 골에 백로는 가지 않는다.

박식함을 앞세워 시비를 걸어오면 맞받아 다툴것은 없다.  그대 말이 옳고 내 말이 틀렸다고 미루어 주면

그만이다.달변을 믿고 말씨름을 하자고 하면 벙어리가 되어주면 말장난은 멈추게 마련이다.

 

시비를 가려 이기자고 하는 것은 선할 수가 없다. 마음에 없는 말로 방어를 하는 까닭이고 결국 자기를 스

스로 속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는 차라리 정수동이처럼 육자배기를 불러 박식하다고 콧대를 세

우는 시관들을 놀려주는 것만 못하다.

성인은 덕을 쌓아두지 않는다.

성인은 앎을 놓고 다투지도 않고 겨루지도 않는다. 성인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분이 아닌가. 부지는 무

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다는 금줄을 긋지마라 함이다. 그래서 성인은 아는체를 하지 않고 차라리 덕을 베풀

뿐이다.

거짓말을 피하고 참말을 하는 것이 말의 덕이다. 참말은 침묵해도 서로 통한다. 그래서 성인은 말하지 않

아도 할 말을 다하는 게다. 험담은 속병을 내고 덕담은 속병을 고친다고 하지 않는가.

 

 

행복은 나누면 두배로 불어나고 불행은 나누면 절반으로 준다고 한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남이 잘못

되면 안타까워 하면 덕은 저절로 찾아온다. 덕은 자기를 위해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베푸는 것

이다. 이를 노자는 다음처럼 말했다.

 

남을 위해 베풀어주므로 더욱 자기에게 덕은 불어나고 남과 더불어 이미 나누었으므로 덕은 많아진다.

 

왜 성인은 덕을 베풀어 나누는가.

성인은 하늘의 길을 따라 인생을 누리기 때문이다. 하늘의 길에는 사사로움이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 편을 유리하게 하고 상대를 불리하게 하는 짓을 하늘은 하지 않는다. 인간은 귀하고 지렁이는 천하다

고 하늘은  생각하지 않는다.

 

목숨은 다 귀하독 다 같다. 그러므로 어느것 하나에도 귀천의 차별을 두지 ㅇ낳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이러한 뜻을 펼치는 하늘의 길은 편편하고 크고 넓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만 가파르고 험한

인도를 따라 걸어가려고 한다.

 

밥은 귀중하고 똥은 몹쓸것이라고 말하지 마라. 목숨은 먹어야 사는 것처럼 배설해야 사는 것이 아닌가.

다만 인간들이 밥과 똥을 별개로 보지만 하늘은 같다고 본다. 똥은 구더기의 밥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하늘의 뜻은 공평하고 무사하다.

 

공평하고 무사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롭게 해주되 해치지 않는 다고 노자는 밝혀준다.

이해가 엇갈리면 다툼이 일어난다. 서로의 몫차지를 놓고 끌고 당기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롭게만 할 분 해가 되는 일이 없다면 무엇을 놓고 서로 다투고 싸울 것인가.

하늘의 뜻에는 다툼이란 없다. 항상 여일하게 태어난 것이면 살도록 하고 때가 되면 거두어 갈 뿐이다. 봄

과 여름이 앞다툼을 하지 않고 사슴이 사자의 힘을 부러워 하지 않고 산다. 이것이 자연이고 무위가 아닌가.

 

하늘의 길을 걷는 성인에게는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있을 뿐 남과 다툴것도 없고 속이거나 감출것도 없다.

남으면 덜어내 모자란 데 보태줄 뿐 더주고 덜 주는 짓을 성인은 하지 ㅇ낳는다. 하늘의 도는 활을 메우는

것 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유가의 중용이나 불가의 중도나 노자의 부쟁은 같은 맥락으로 통하는 말씀이다. 선도 지나치면 악으로

통하고 보약도 지나치면 독약이 되는 것이 아닌가.

성인은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제몫을 생각하면 항상 부족한 생각이 들어 남의 밥에 있는 콩이 커

보이지만 남을 돕고 보살펴 이롭게만 하는 덕의 손길을 따르는 성인에게 남아돌 것도 없고모자랄 것도

없다.  성인은 덕을 남김없이 베풀기 때문이다.

 

악은 지을수록 험하고 사나워지지만 선은 행하면 행할 수록 편하고 부드러워진다.  이처럼 선악은 엄청

나게 달리 드러난다 선은 덕을 실천하는 것이고 악은 부덕을 실천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덕으로 말하면 그 말이 믿음을 얻는다. 이것을 신언이라고 새겨두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덕을 따르면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선하면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을 선자

라고 새기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덕을 ㅇ라고 부덕을 모르면 널리 몰라도 막힘이 없다.  촛불을 옆에 켜두고 어둡다 하거나 뒤에

켜두고 어둡다캄캄하다고 투덜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로 자기 앞에 켜두고 자기를 밝혀 가는 사람

은 등잔 밑을 어둡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덕은 맨 먼저 자기를 맑게 하고 밝게 하며 깨끗하게 한다. 이를

아는 것을 명의 지자라고 한다.

 

노자여. 그대가 왜 성인을 모시고 인생을 살펴 가라고 했는 가를 이제는 알만하다. 내 마음에 욕심의 불길

이 타올라 괴로울 때는 밖에서 물을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야 함을 알게 되었노라.

욕망으로 절절 끓고 타는 목마름에는 재물의 물을 아무리 퍼부어도 꺼지지 않음을 미쳐 몰랐던 자라도

노자가 안내하는 성인을 곁에 두면 마른 목을 축여 목숨을 편하게 하고 즐겁게 사는 물을 마실 수가 있구나. 목숨의 물을 성인은 도덕이란 샘물에서 길어내노라.

 

신언과 선자 그리고 지자는 도덕이란 샘물에서 길어낸 목숨을 소중히 하는 물맛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원문의역>

미더운 말은 꾸미지 않고, 꾸민말은 미덥지 않다. 선한 사람은 어눌하고, 구변이 좋은 사람은 착하지 않다.

진실로 아는 자는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자는 진실로 아는 것이 ㅇ없다.

성인은 덕을 쌓아두지 않고 남을 위해 베풀어 주므로 더욱 자기에게 덕은 불어나고, 남과 더불어 이미 나

누었으므로 덕은 많아진다.

자연은 이롭게 돕되 해치지 않고 성인의 도는 남을 위해 일하되 다투지 않는다.

 

<도움말>제 81장은 말로 도덕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장이다. 자기를 밝히는 지를 간직하면

서 도덕의 길을 따라 인생을 누리라고 노자는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있다. 신언은 꾸밈없고 질박한 말이다.

이는 도덕을 따르는 말이다.

미언은 꾸미고 세련스럽게 말재주를 부리는 것을 뜻한다. 거짓말은 언제나 부자연스럽게 마련이다.

 

선자는 맑고 투명하게 마음을 비운 자라고 볼 수 있다.  무심이나 허심은 선자의 마음씨에 속한다.

변자는 말재주를 부려 옳고 그름을 뒤짐어 놓는  밑질을 일삼는 자를 말한다.

기이위인의 기는 스스로 덕을 남김없이 베풀었다는 뜻으로 새긴다.

기유유와 기유다의 기는 성인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P26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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