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P116부터

다림영 2008. 8. 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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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대인은 물이 돈이 되고 돈이면 못할 게 없다고 오만을 떨고 방자하다. 그래서 화락을 잊어 목

숨을 소중히 지키고 어렵고 사실만 믿다 보니 동기를 무시하고 결과만 놓고 길조냐 흉조냐를 따지므로

일을 도모하는데 어려움을 산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노자는 말하지만 현대인

은 비웃는다. 물질이 취약한 줄을 모르고 미약한 줄을 몰라 현대인은 신표를 심증으로 삼지 않고 물증으

로 삼아 오히려 심증을 의심하고 물증을 확신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착각은 다음과 같은 노자의

말을 비웃을 것이다.

 

편안함을 지키기 쉽고,징조가 들어나기 전에는 처리하기가 쉬우며 취약한 것은 절단나기가 쉽고 미약한

것은 흩어지기가 쉽다. 일어나기 전에 해치울 것이요. 분란이 나기 전에 다스릴 것이다. 등걸을 안고 있

는 나무는 터럭같은 잔뿌리 덕으로 사는 것이며 구층의 누대도 흙을 쌓아올려 세우고 , 천리 길도 한 걸

음 부터 시작한다.

 

맥장스님은 중국의 복주 장락 사람이다. 95세 로 입적 할 때까지 그 스님은 하루도 놀고 먹은 날이 없었

다. 스님의 손에는 항상 호미 아니면 괭이가 들려 있었다.

너무나 연로하신 큰스님이 날마다 밭에 나가 일하는 모습이 딱해 호미와 괭이를 숨겨 버렸다. 그러자 큰

스님은 밥상을 받지 않았다. 젊은 스님들이 몸이 불편해 잡수시지 모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백장스님

은 이렇게 말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이말을 듣고 감추어 두었던 호미와 괭이를 갖다 드렸다.그러자 백장 스님은 밭에 나가 일을 한 다음

밥을 먹었다.

놀고 먹는 것처럼 불편한 일은 없다. 얻어먹는 것과 빌어먹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깨우치기 위하여 고

행도 좋고 정진도 좋으나 제 먹을 만큼은 제몸으로 벌어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백장스님은 보여준 셈

이다.

하루는 백장 스님이 대중에게 말했다.  "한사람은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고프단 말을 하지

않고 한사람은 온종일 밥을 먹는 데도 배부르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대중은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왜 말을 못했을 까.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무

심이고 밥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싶다.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한이 없고 끝이 없다. 그

래서 욕심을 부리면 부릴 수록 그만큼 불안하고 불편하다.

 

백장스님은 또 이렇게도 말한 적이 있다.

"옛날과 사람은 달라진 것이 아니다. 옛날에 하던 것과 다를 뿐이다."

사람의 생김새는 달라진 것이 없다. 옛날 사람의 얼굴에 코가 두개 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코는 여전히 하나였다. 하는 짓이 달라졌을 뿐이다. 옛날 사람은 마음을 근본으로 치고 물질

을 말단으로 보았다. 그러나 요새 사람은 마음따위는 밀쳐내고 물질이 근본이요 으뜸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하는 짓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요새 사람은 돈, 돈 하며 산다. 돈으로 물건을 사기는 편리하다. 그러한 돈을 벌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하

는가! 혹시나 조금이라도 돈을 못벌거나 덜 벌까봐 아니면 손해를 보거나 사기를 당할까봐 얼마나 조바

심을 내고 용심을 쓰는가! 그래서 편한가 아니면 불편한가? 이렇게 백장의 말은 반문하게 한다.

 

백장스님은 불가에 몸을 담은 선사로 말했지만 노자의 말과 서로 통한다. 호미를 들고 일을 하면 밥

걱정은 않는다. 굶을 걱정이 없으니 얼마나 편한가! 굶을 걱정을 하기 전에 일을 하니 일을 얼마나 잘 처

리 하는 것인가! 백장의 손에 들린 호미나 괭이는 탈이 일어나기 전에 처리해 버리는 것이요, 분란이 일

어나기 전에 다스려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탐욕이나 허욕을 부리지 마라. 그러기 위해서는 물욕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물욕은 사람을 조급

하게 하고 몸둘바를 모르게 한다. 뒤꿈치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돌개 바람은 한

순간을 버틸 수 없으며, 소나기는 반나절을 지속하지 못한다고 노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총알을 보

고 새구이를 생각하지 말것이요, 달걀을 보고 새벽을 알려주기를 바라지 마라고 장자도 말했다.

 

일을 꾸며서 하지 마라.

자벌레는 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펄펄 날아다니는 나비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기는 놈위에 뛰는 놈이 있

고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하지만 사람은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 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뛰

려다 망해 버리고 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날아보려다 떨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나 많다. 일을 턱없

이 벌려 놓으면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중도에 주저 않는다. 이러한 짓을 실패라고 한다.

 

고집을 부리지 마라.

낚시에 걸려드는 물고기는 먹이를 물면 놓을 줄 몰라 매운탕 거리가 되고 덫에 걸려든 멧돼지는 뒤로 물

러날 줄 몰라 매운탕 거리가 되고 덫에 걸려든 멧돼지는 뒤로 물러날 줄몰라 목이 졸려 죽는다. 미끼를

물고 있다가 제 목숨을 잃는 물고기나 앞으로 끌고만 가려는 멧돼지의 고집이 또 한 목숨을 잃게 한다.

붙들고 놓치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면 부릴 수록 잃고 만다. 어디 세상만사가 제 뜻대로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래서 천지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일을 꾸미거나 벌이지 않아 성인에게는 실패가 없고 고집을 버렸으므로 잃는 것도 없

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나 성인은 누구인가? 이에 대하여 노자는 다음처럼 답해 준다.

 

성인은 욕심을 내지 않기를 바라고 취득하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배우지 않은 것을 배

우고 사람들이 지나친 짓을 범한 것을 되돌려 만물을 자연으로 되찾아주고 감히 턱없는 짓을 하지 않는

다. 이러한 성인은 현대인에게는 웃음거리에 불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이 분통이 터

지거나 불안해 밤잠을 설칠 때 안되는 일을 놓고 애간장을 태워 끓일 것이 아니라 노자가 안내하는 성인

마음 속에 불러 들여 대화를 나누어 보라. 그러면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의역>

편안함은 지키기 쉽고, 징조가 들어나기 전에는 처리하기가 쉬우며 취약한 것은 절단 나기 쉽고  미약

한것은 흩어지기가 쉽다.

일어나기 전에 해치울 것이요, 분란이 나기전에 다스릴 것이다. 등걸을 안고 있는 나무는 터럭 같은

잔뿌리 덕으로 사는 것이며, 구충의 누대도 흙을 쌓아 올려 세우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일을 꾸며 하는 자는 실패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붙들고 있는 자는 잃는다. 이로써 성인은 무위하므로

실패가 없고 붙들고 고집부리지 않으므로 잃는 것이 없다.

백성이 일에 임하는 데 성급하게 이루려고 하면 항상 실패하게 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하면 일을

망칠 이가 없다. 이로써 성인은 욕심을 내지 않기를 바라고, 취득하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우고, 취득하기 어려운 재화를 귀학 여기지 않으며 배우지 않기를 바라고

취득하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우고, 사람들이 지나친 짓을 범한

것을 되돌려 만물을 자연으로 되찾아주고, 감히 턱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도움말>

제 64장은 앞장의 무사 무미를 다시 부연하며 무집이라고 풀이해 주고 있다. 만물의 자연을 따라 산다면

싶래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기안은 무위 무사로 오는 편안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지의 지는 지킬 수와 통한다.

미조는 일의 코투리가 일어나기 전을 뜻한다.

이모의 모는 걱정되어 처리하는 여와 통한다.

기취는 물질의 취약함을 뜻한다.

이판의 판은 절단을 낸다는 단과 통한다.

기미이 미는 부스러져 작아지고 사라져 흔적도 없게 되는 모습을 뜻한다. 즉 물질이란 微하다는 것이다.

위자는 제 고집을 앞세워 일을 내는 것을 뜻한다.

무집은 자기 고집이나 아집을 버리고 순리에 따라 일에 임하는 것을 뜻한다.

학불학의 뒤의 학은 바깥지식에 매달리는 것을 배우려는 것이고 앞의 학은 자기마음을 다스려 무욕할

줄 아는 명식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노자의 절학을 말하고 있다.

소과는 지나치며 어긋남을 뜻한다.

불감위는 순리에 벗어나는 짓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제 65장백성을 영악하게 하지마라

어리석어도 되는 세상은 편하다.

모두들 눈뜨고 코베이는 세상에서 산다고 푸념한다. 살기가 무척 힘들다는 말이다. 잠시도 마음놓고

살 수 없다면 항상 긴장하고 산다는 것과 같다. 도둑맞지 않으려고 긴장해야 하고 속지않으려고 긴장

해야 하고, 억울하게 당하지 않으려고 긴장을 풀 수 없다면, 온 세상은 바로 감옥과 다를 바 가 없다.

밤새 안녕하냐는 인사는 무엇을 뜻하는가 세상탓으로 편히 살수 없음이다.

나라가 백성을 속이면 백성은 나라를 속이려고 한다. 백성과 나라가 서로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면 그 탓

은 백성에게 잇다기 보다는 나라에 있다. 나라가 잘못한다는 것은 바로 치자가 정치를 잘못한다는 것으

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잘못된 나라의 치자는 백성의 원성을 사게 마련이다.

 

나라� ㅓㅇ치가 어머니 같다면 백성은 그 품안으로 안겨질 것이고 나라의 정치가 사기꾼 같다면 백성

은 그 품안으로 안겨질 것이고 나라의 정치가 사기꾼 같다면 백성은 당하지 않으려고 무엇이든 숨기고

감추게 될 것이다. 잘못되어가는 정치는 패거리를 지어 몫다툼을 하면서 백성을 농락할 때 빚어진다.

신흥세력, 특권층, 실세등의 용어들은 무엇을 듯하는가. 권력형 부패를 뜻하고 부정을 뜻하는 것이 아닌

가. 백성이 밝히려고 덤빚ㄴ다는 것은 나라의 정치가 썩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썩지 않고 싱싱하다면 왜

백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권부에 삿대질을 할 것인가. 피를 볼지라도 목숨을 걸고 결판을 내야겠다는 심

정이 백성의 가슴에 서릴 때는 어떠한 정권의 권부이든 무너지고야 만다.  권력의 총칼로 버텨보려고 온

갖 재주를 다 부려도 소용없다.  잘못된 정치는 제목을 조이는 족새를 스스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은 배불리 먹고 다른 한편은 배고프게 하지마라. 백성을 패로 갈라 놓고 제편이면 떡을 주고 제 편

이 아니면 매질하는 정치는 소인배가 치자로 군림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역으로 패를 가르고 혈연

으로 패를 가르고, 학연으로 패를 갈라놓고, 나라 살림이 마치 도마위에 올려 놓은 고깃덩이쯤으로 여긴

다면 어느 백성이 어수룩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백성을 잘라 먹을 고깃덩이처럼 생각하는 데 어찌 어

리석게 가만히 있을 것인가. 푸닥거리를 일삼는정치 밑에서 허덕이다 보면 백성은 꾀만 늘고 눈치만 앞

서 영악해진다. 굿이 시원찮으면 무당은 쪽겨나게 된다.

 

눈치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리숙하게 살아도 탈이 없다. 세상이 그렇게 되려면 먼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제대로 되게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순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노자는 무위의 무사에서 나오고 무집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로써

다스린다는 것은 곧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백성이 어리석어도 되게 정치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옛날 도로써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밝히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백성을 어리석게 했다. 백성을 다스리기

가 어려운 것은 겉보기 지식이 ㅁ낳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겉보기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

의 도적이며 겉보기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것은 나라의 복이다. 이 두가지를 아는 것이 본보

기가 된다. 이러한 본보기를 알 수있는 것을 일러 현덕이라고 한다.

 

김구선생의 아호인 백범은 백성과 나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짐작하게 한다. 백범은 양반이

아니라 천민과 상민이란 뜻이다. 백은 백정이요. 범은 필부필녀를 나타내는 까닭이다. 이미 백범이란

아호의 속뜻에서 조선조를 뒤집어 놓은 정신이 깃들어 있었던 셈이다. 관존민비의 조선은 양반은 영

악해야 벌열에 끼어들수 있었고, 상민은 짐승인 척해야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세상이었다. 양반은 온갖

술수를 부려 궁궐안에 자리를 차지하려고 피흘리는 다춤을 벌였고 상민은 철저하게 종살이를 하게 했

던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었으니 어느 백성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겠는가!

 

그러나 서러운 고향이라도 매정한 타향보다 나은 법이다.조선이 망하자 백성은 나라를 잃게 되었다 .그

래서 중국 땅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독립투쟁을 하게 되었다.  백범은 임시정부 주석이 된 다음 주석

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민주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신을 서러운 백성에게 실

제로 보여 주었다.

어느 치자가 제 권한을 약화시키는 짓을 할 것인가아마도 백범 밖에 없을 것이다. 백범의 뜻에서 위

도의 정치를 만나게 된다.백범같은 치자라면 백성을 훑어내는 짓을 하지 않는다.  배것을 진실로 사랑

하므로 백성은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어린 아이처럼 살아도 된다.ㅇ ㅓ린아이는 순수할 뿐 영악하지

않게 산다.  백성을 그렇게 살도록 하자면 세상이 백성을 유별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백성을 영리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백성을 바보로 만들어 천덕 꾸러기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편

해 다른 잔꾀를 내지 않고도 편안히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면 된다는 것이 비이명민 일 뿐이다.

백성을 어리석게 하라.

이말도 오해해서는 안된다. 조선조처럼 나라의 정보는 양반이 독점하고 상민은 무지몽매하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 아니다. 속일 사람이 없다면 차라리 어리석어도 되고 농간을 부릴자가 없다면 누구나

어수룩해도 된다. 둥치는 놈이 있으면 당하지 않으려고 꾀를 쓰는 것이 아닌가. 노자으 우는 무명지

박과 같은 뜻이다. 순박하고 수수한 것이 곧 우이다. 정치가 순박하면 백성도 순박하다. 이것이 정치

의 우이다.

 

겉보기 지식이 많으면 탈이다.

노자의 말을 들을 때 안다는 것을 잘 살펴 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아는 것이 힘이라고 믿는 세상일수록

노자의 생각은 귀중하다. 노자의 앎에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내 자신을 아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바

깥을 아는 것이다. 힘에도 두 갈래가 있다. 나를 이겨내는 힘은 강이요, 남이나 외물을 이겨내는 힘은 역

이라고 노자는 가름한다.

노자는 나를 아는 것을 명이라 하고 남을 아는 것을 지라고 했다. 비이명민의 명은 자기자명의 명이

아니라 겉보기 지식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성찰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서 바깥 것에 정

신이 팔렸을 때 인간은 욕심 사나운 동물 처럼 된다. 사냥을 잘하는 사냥개보다 도둑을 잘 지키는 똥개

가 더 주인을 아낄 줄 안다. 백성으로 하여금 사냥감을 찾도록 부채질을 하면 세상은 투전판이 되고야

만다. 한탕주의 재테크 복부인 등은 바깥것을 너무 밝히다 보니까 세상을 다스리기 어렵게 된다. 왜그

렇게 되는 가. 자기를 이겨내는 힘을 강이라 하고 남을 이겨내는 힘을 역이란 노자의 말을 들을줄 모르

기 때문이다. 이러한 꼴 이 곧 以其智多의 難治이다.

 

나라의 정치가 대범하면 백성은 순박해지고 나라의 정치가 번잡하면 백성들이 실망하게 된다고 노자는 제 58장에서 밝혀 두었다. 민민하게 정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찰찰하게 정치를 할 것인가. 이미 두갈래

의 정치를 하는 본보기가 밝혀졌다.

바깥 지식에 빠져들게 하면 정치는 번잡하게 되고 성찰하는 지식에 골몰하게 하면 정치는 대범해진다.

그렇다면 대범한 정치는 어떻게 이루어 진단 말인가. 노자는 다음처럼 말해 준다.

 

사물이 따로 있고 인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모조리 다 도의 후손들 일 뿐이다. 도의 후손치고 생성

소멸의 길을 밟지 않는 것은 업다. 있으면 유인 것이고 없으면 무가 아닌가. 이 유무가 서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은 없는 것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곧 노자의 반이다. 온갖 만ㅁ물은 모두 다시 도로

되돌아 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덕인가.

 

모두 다 한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가 어디있고 타인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아가 나와 사물

이 다르다고 할 것도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하고 미워할 것도 없고 도와주고 피해를 입히는 짓 따

위를 범할 필요도 없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이다. 여물반은 이를 말해 주는 셈이다. 이러한 여

물반은 곧 크나큰 순리이다. 대순이란 무엇일까. 물질을 사랑하기에 앞서서 철저하게 모든 생명을 사랑

할 줄 알면 대순은 이해된다.

정치여 .그리고 백성이여 대순을 잊지 마라. 이것이 노자이 바람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러한 절규를

외면한다.

 

원문의역

옛날 도로써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밝히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백성을 어리석게 했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겉보기 지식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겉보기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것은 나라의 도

적이며 겉보기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이다. 이 두가지를 아는 것이 본보기가 된

다.  이러한 본보기를 알 수 잇는 것을 일러 현덕이라고 한다.

사물과 더 불어 도로되돌아 오게 하라. 그런 연후에야 크나큰 순리에 이르게 된다.

 

도움말

제 65장은 나라를 다스리는 두갈래의 본보기를 말해주고 있다. 그 본보기는 이미 제 58장에서 개진된 바있다. 백성을 영악하게 하는 치국의 본보기가 있고 백성을 어수룩하게 하는 치국의 본보기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백성을 영악하게 하는 치국은 학정이고 백성을 어수룩하게 하는 정치가 선정이 되는

연유를 밝히고 있다.

위도는 도로써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명민은 명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뜻하고 여기서 명은 살피고 따지고 밝혀내는 짓으로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하지 마라는 것이 많은 정치를 피해가려고 영악해 진다.

 

우지의 우는 수수한 것을 돌아가게 하는 것이요, 순박한 것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므로 어리숙한 것

을 뜻한다.

이기지다의 지는 겉보기 지식을 뜻한다. 사물에 대한 지식이 이에 해당한다. 바깥것만 알려하고 자기자

신을 성찰하여 자기를 알려고 하는 것을 멀리 하는 경우를 이기지다가 암시한다. 계식은 본보기 모범등

을 뜻한다. 현덕은 도가 만물을 보살펴 주는 것을 뜻한다. 이를 대상으로 이해해도 된다.

여물반은 사물과 더불어 도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즉 순리를 말한다. 절대의 순리를 대순이라고 보아도

된다.

 

제 66장 자기를 낮출줄 알면 높게 된다.

베풀면 은혜이고 뺏으면 원한이다.

누구나 흥부를 좋아하고 놀부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흥부처럼 되기를 바라고 놀부처럼 되기를

꺼린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는 흥부으 탈을 쓴 놀부이면서 남이 흥부처럼 되어주기를

바라는 심사들이 넘치고 풀렁인다.

온갖 자물쇠는 왜 생겨나며, 담장을 높게 치고 철조망을 왜 치는가. 세상을 도둑의 소굴로 보는 까닭이

다.  천지가 도둑의 소굴로 보이면 나 또한 도둑의 무리일 뿐이다. 도둑의 눈에는 모두 도둑으로 보이는

탓으로 사람을 못 믿고 의심하는 경계심리가 판을 치게 된다.

 

경계심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트지 못하고 막게 된다. 인생을 서로 함께 누린다는 생각이 앞서면

서로 어울릴 수 있지만, 인생을 성취의 전리품처럼 여긴다면 서로 맞상대 노릇을 하게 된다. 현대인은

어느 쪽에서 인생을 바라보는가. 현대인은 인생을 누린다고 믿지 않고 성취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세

상은 살벌하고 인심은 각박한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성취해야 한다. 무슨일이 있어도 삶의 현실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승리

해야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 인생의 승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전진하라. 그러자면 출세해야 한다. 출세

의 길에는 허다한 장애물이 많다. 그것들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 이렇게 다짐해 보라. 그러면

앞이 캄캄해 막막할 것이고 속이 답답해질 것이다. 온갖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현실을 요리한다면 사

는 곳은 어디나 전쟁터가 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출세는 높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서로 높은 자리를 향하여 진군하려고 한다. 그러나 덕이 높

여주는 것과 힘이 높여 주는 것은 판이하다. 덕은 저절로 높게 해주고 힘은 억지로 높여지는 까닭이다.

덕으로 높게 된자는 자신이 높게 잇는 줄 모르고 힘으로 높게 된 자는 자신이 높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한다. 높되 높은 줄모르면 새기를 품은 어미처럼 될 수 있지만 높은 것을 과시하는 자는 소몰이 꾼의 흉

내를 내려고 하게 된다.

 

왜 덕으로 높게 된자는 어미같은가?

덕은 베풀되 빼앗지 않는 까닭이요 한일을 두고 공치사를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의 수중에 들어오면

공 다툼이 없고 따라서 논공행상도 없다. 그래서 덕에서는 누구나 마음을 푹 놓고 서로 어울릴 수 있다.

왜 힘으로 높게 된자는 두목 같은가.

힘은 베풀줄 모르고 빼앗기를 일삼는다. 뺏는 것은 빼앗기는 쪽을 생겨나게 한다. 뺏는 족에서는 다시

빼앗긴 쪽에서는 다시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를 쓰고 빼앗긴 쪽에서는 잃은 것을 다시 빼앗아오려고 호

시탐탐 노린다. 약점을 보이면 당한다는 걱정 탓으로 힘은 끊임없이  굴복과 복종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힘을 부리는 두목은 부하를 항상 의심하고 모든 부하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정치의 힘은 권력이고 경제의 힘은 돈이다. 이렇게 믿게 되면 권력을 차지하려고 갖은 음모가 판을

치게 되며 돈의 액수에 정비례해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면 돈벌이에 나선 돈벌레처

럼 되고야 만다. 도의 보살핌은 굳고 강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라고 노자가 말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세력과 생명을 밝힌 거으로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도가 보살피는 것은 생명이지 세력

이 아니다. 세력은 강강하고 생명은 유약하다. 굳고 단단한 것은 부러지고 부서지지만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끈질기다. 이러한 생명을 보살펴 주는 것보다 더 높은 것으 없다.  이를  높은 덕이라고 보아도 된다.

 

높은 덕은 아랫자리를 좋아한다 .   노자가 밝힌 하류란 이를 비유해 말한 셈이다. 상류로 갈수록 폭은

좁아지고 깊이는 얕아지면서 물의 흐름도 강팍해진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하류를 보라.  인생도

가팍하고 조급한 상류의 흐름보다 늠름하고 넉넉해 여유가 있는 하류를 보라. 인생도 강팍하고 조급한

상류의 흐름보다 늠름하고 넉넉해 여유가 있는 하류의 인생이 생명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상류

사회가 추세를 한 것이고 하류사회는 미천한 것이라고 흉보는 것은 모두 힘을 믿고 세를 믿는 세상인

까닭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출세를 하고 명성을 얻어 보려고 온갖 재주를 부리기 때문에 인생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게 된다.

 

그러나 힘이 질주하는 인생을 좀 멈추고 다음과 같은 노자의 말을 들어보라 그러면 저절로 높아지는

비밀은 다음과 같다.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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