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책추천]안톤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다림영 2008. 6. 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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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한다. 정원의 한 모퉁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서 "
아이세여, 네 너를 사랑하노라..." 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때.

숱한 세월이 흐른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사연이 씌여 있었다.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 는지 모른다...



"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이었을 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왔다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듯한 순환, 이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휠덜린의 시,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앞에 한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누구인가 모래 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데, 당신으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때.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제씨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 때.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여기 열다섯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 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그녀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 하고많은 날을 도회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 수학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버린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불현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 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 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루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淨云


아무리 친절히 얘길하고 인간적으로 대해도 장사꾼으로만 생각하는 손님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데 놀러와서 한시간도 좋고 두시간도 좋고 하물며 세시간까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하며,

시간 무서운줄 모르고 세월아 내월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나이 많은 어른들의 무심한 하루가 나를 슬프게 한다. 한때 경제력이 있다가 무너진 남편의 빈한한 어깨가 그의 얼굴이 그의 주머니가 나를 슬프게 한다.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알수없는 정신으로 돈투정을 하며 함부로 돈을 쓰는 부모가 나를 슬프게 한다. 계획없이 여름방학을 어린아이 처럼 지내는 대학생 큰놈이 나를 슬프게 한다. 시험기간이 발표 되어도 정신을 못차리고 게임에 빠져있는 둘째아이가 나를 슬프게 한다.

피아노를 계속하고 싶다고 정말 끊어야 되느냐고 자꾸 묻는 오학년 막내놈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마음에 와닿는 좋은 책을 메모해놓고서도 사지 못하고 도서관에도 없어 빌리지도 못하는 내처지가 나를 슬프게한다. 큰마음먹고 만원짜리 휴지를 사주었는데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고 또 사라고 다시 들리는 장애우가 나를 슬프게 한다.

친정엄마 훗날을 위해서 매달 모으는 만오천원을 제대로 보내지 않는 내 형제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남편과함께 산위에서 만나 술한잔 권하며 친해진, 잘생기고 음악을 너무 좋아 한다는 오십초반의 남자가 실업자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늦은밤 에도 거리행상을 정리한다며 나와, 암 걸린 아버지 낮에 모시고 밤 장사 나온 과일아저씨 지키며 빈거리언만 장사 못하게 하는 공무원이 나를 슬프게 한다.

서울종로, 빌딩마다 점심을 먹고 내놓은 쟁반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허겁지겁 먹는 노숙자가 나를 슬프게 한다. 촛불시위 과격하게 변질되어가고 하루하루 벌며 모아야 사는 그 주변 상인들의 애끓는 마음이 나를 슬프게 한다.


열심히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는 초등학교 홈페이지, 어쩌다 한번이라도 마음한줄 내려 놓지 않으며 훌쩍 바람같이 이름지우며 다녀가는 친구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세상에 단 한명, 마음 교류 단단한 친구하나 얻지 못하는 바보같은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우울한 경기가, 웃음사라진 친구들의 모습이, 시어머니의 뺨을 때렸다는 며느리의 이야기- 이모든 현실을 비롯해서 가끔 날아오던 친구의 편지가 두절된것이 더없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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