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책추천]김용익의 꽃신

다림영 2008. 7. 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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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소설이라고 이름되어있던 책이던가.. 지금은 친구에게 주어버려서 내겐 없다.
늘 곁에 두고 읽고는 했던 그의 꽃신이 실려 있던 책이었는데..
.. 도서관에 가 보니 그의 단편을 묶어 놓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때 올려다 본  하늘의 구름처럼 흐르는  그의 글을 나는 참 좋아한다.
꽃신을 다시 필사 해본다.
이글은1956년 미국 <하퍼스 바자>에 수록된 이후 전 세계주요매체에 19회 소개 되었다.


지은이의 젊은 시절을 읽어보니 그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늦게까지 글을 썼는데
동네에 "한국 사람은 잘 적에도 불을 켜 놓고 자기를 좋아한다" 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는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늘 그의 마음에는 책이 출판되어  빛나고 향기로운 가죽
으로 커버가 되있는 자신의 책에 대한 꿈을 꿨다. ..


그는 일을 하면서 시집 한권 앞에 두고 소리르 내가며 읽었다.
시를 읽으면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서 좋았다.
더러운 손으로 페이지를 넘길수 없어 그가 읽는 시가 중단될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의 레코드에
금이 가서 바늘이 빠진 것 같이 실망했다.


나는 이러한 그의 표현이 너무 근사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하루는 그가 프로스트의 가지않은길을 읽고 있을때 그곳 부도서관장이 바로 그의 뒤에 있었다.
학생들이 일하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을 엄격히 다스렸지만 이 부인은 선뜻다가와 그의 한 페이
지를 넘겨주고 말없이 방을 나갔다.
그는 그때 참으로 큰 감명을 했고 '그것이 그 작은일에 그토록이나 큰 차이를 가져왔다.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였다...
그는 그 부인과 재회를 했다. ..


아름다운 그분의 소설을 더욱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는 한출판사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그의 책을 아름답게 가죽으로 장정한 것이었다.




꽃신

그래도 나는 시장에서 노인의 앞 판자 위에 놓인 꽃신을 보다가 오고 또 오곤 했다. 앞으로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이,올때마다 이 시장 모퉁이에 더 오래 있게 한다. 앞으로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이, 올 때마다 이 시장 모퉁이에 더 오래 있게 한다.  다시 오면 꽃신이 한 켤레씩 눈에 띄지 않았지만 사려고 머뭇거리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슬퍼서는 안 될 일이 슬프게 되어버린 어떤 결혼의 내 추억처럼 꽃신을 사가는 사람은 눈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저 판자 위에 꽃신 다섯켤레만이 피난민으로 가득찬 시장의 공허를 담고 있다. 그것이 다 팔려가기 전, 한 켤레 신발을 위해 돈주머니를 다 털어버리고 싶지만 결혼 신발 아닌 슬픔을 사지나 않을 까 두렵다.


늦가을 채소장수와, 외롭고 미신을 좇는 얼굴을 보며 중얼거리는 점쟁이 사이에 앉은 신장수, 시장에 햅쌀을 찾아다니던 그날 나는 이 노인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부산에 오기전, 우리집 울타리 뒤에 살던 신집사람이라 알았을 때 걸음은 멈춰졌다. 전쟁을 피해 꽃신을 메고 온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슴이 철렁하고 쓰라렸다. 나는 원한에 찬 말을 마음으로 울부짖었다.

'3년 묵은 빈대가 탄다면 삼이웃이 불타도 좋다!'
신집사람-그의 딸에 대한 청혼을 거절하고 저희 세업을 자랑하며 백정인 우리를 모욕하던 그 입, 슬픔이 복받쳐 굳게 주먹이 쥐어진다.  신집 부인이라면 인사를 했을 지 모르지만 저 노인에게 내가 인사를 하다니, 결코. 그의 집에 갔었던 날이 어제같이 생생하다.
못자리에 비친 그림자처럼 언제나 내 마음에 그림자를 던져주었고 어디를 가든 그일은 내 눈앞에 선하다.

별안간 비바람이 불던 다음날, 마을을 둘러싼 네개의 언덕과 푸른 하늘사이에 공기는 맑고 풍성하며 꿈 꿀수 있는 그 거리, 농부들이황금빛 새 짚으로 단자안 마을 초가들은 젊고 매끄럽게 보였다. 우리집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사는  시끄러운 참새들이 수수밭으로 날아가기전, 이른 아침 아버지암소를 사러 부산으로 떠났다. 그날 아침 농부 몇 사람이 자식들 혼인날에 쓸 갈비, 쇠대가리 등을 구하러왔었다.  그들은 밭 너머 저편에 있는 사람에게 얘기하듯 경쾌한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모두 중매쟁이 입에서 나온 듯 싶은 좋은 얘기만 하면서 아들, 혹은 딸 사돈이 될 집안 자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 혼인날 다음에 메뚜기가 짝을 지을거요."
늙은 농부가 말했다.
"햅쌀은 났고 설렁 설렁한 바람이 두 사람을 이불속에 몰아 넣을 거요. 잔치 음식은 쉬지 않지, 온 마을 사람은 잔치에 왔다가 달이 훤한 언덕을 넘어 돌아 갈 때 장고 같은 배를 두들기며 우리 신랑 신부 잘 살라고 노래 하겠지"
그들은 해가 언덕과 하늘 복판 사이에 걸려 있을 때까지 말하고 잇었다. 떠날 때 그들은 신집 지붕에 누운 커다란 호박을 보고 하는 말이,
"호박이 너무 커서 지붕이 내려앉지나 않을까?"
몇 해 이엉을 갈지 않아 빛깔이 거무칙칙하고 호박의 무게도 겨웁게 보였다.
농부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풋고추 시절에는 꽃 신 없이 혼인 못할 거로 알았지.
우리보다 자식놈들이 더 똑똑 하다 생각지 않소? 그놈들은 돈 먹는 꽃신보다 고기를 사라하니"

우리집은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그들이 떠들지 말앗으면 했다. 그들이 와서 자식 혼인 얘기를 하고 가는 날이면 신집 사람은 술을마시고 밤늦게 돌아와 온 동리를 잠 못 이루게 했다. 나는 왜 그가 상심해 하는지 알고 있다. 꽃신을 맡기러 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때문이다.

그가 젊었을 시절 아니, 몇 가을 전만 해도 농부들은 꽃신부터 맞추러 갔었다.  농부들은 신집에서 중매쟁이 말을 하며 쌈지 의 담배가 다 떨어져야 겨우 일어섰다.  그러고 나서 누가 꽃신을 맞췄는지 그가 들은 얘기를 묻곤 했다.  신집 사람은 마을 일을 다 알고있었다.  어머니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한 숨 쉬고 부러워 했다.

"신집 문턱은 손님들 발로 닳아 빠지는 데..."
이제는 해마다 울타리 너머로 신집 찾는 손님이 적어졌다.  그거은 오래전 일이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우리집에 와서 고기를 주문하며 혼인 얘기를 했다.

그날 무엇이 나를 구혼하러 가게 해는지. 붉고 거무스름한 단풍잎 사이의 살랑 부는 가을 바람 탓일까? 아름다운 하늘빛 탓일까?
아마도 화사한 그날을 엮을 오색무지개 가락이 오랜 세월 머뭇거렸던 내 발길을 그 집으로 돌려 놓았을 게다.  신집은 그 앞에서 마을 아낙네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백정네 집이오' 하고 나그네엑 가르쳐 줄 만큼 가까웠다. 그러나 구혼 할 것을 생각할  때 신집은 언덕너머로 물러가 버린다.  내 마음은 여러해를 걸쳐 많은 언덕을 넘어 왔으며, 그날 마침내 목적지 가까이 닿은 것이다.


신집 딸은 어느 일갓집 부엌아이로 가고 없었다.  신집 사람도 출타중이었고 그의 부인이 고추를 따면서 인사했다.  처음에 내 마음을 이야기 하기전 다른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내 목은 메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부인의 빠진 볼에는 문앞에 빚쟁이가 왔을 때볼 수 있는 슬픔을 띠고 가을 햇빛 아래 있었다.  드디어 나는 빚진 돈 때문에 온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으나 다음말이 안나왔다.
숨막히는 몇 순간이 흘렀다.


"따님한테 장가들겟소!"
소리쳤다. 나는 부인을 바라보지 못햇다. 아이 아버지와 상의하겠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눈을 들었다. 부인의 얼굴에는 기쁜 응낙이 있었다.  다음, 부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 그 자리를 떠났을 때 나는 부인의 행복스런 얼굴에 모든 내 감정을 담은눈을 남겨 놓고 온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말했을 때 그는 자신있게,
"요다음 네가 그집을 찾아가면 신집 사람은 한 바짓가랑이에 두다리를 끼고 서둘며 너를 맞이할 게다."


그날밤 잠을 못이루었다. 나는 신집 사람이 돌아왔는지 알려고 여러번 들락 거렸다. 서리 맞은 낙엽과 귀뚜라미 울음 속에 나는 내 생애 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예고해줄 그의 발소리를 기다렸다.  언덕위의 반짝이는 별들이 어찌나 가까이 보이던지 연이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내 결혼에 방해가 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웃사촌이라면 몰라도 그들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사촌이겠지. 두 집 담사이에  자란 표주박은 싸움없이 나누었고, 아버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잇는 옛부터 신집에 쇠가죽을 팔아왔다.
요즘에 와선 코 높은 그는 오지않고 부인을 보내서 다음 달에 돈을 갚을테니 쇠가죽을 한가음 팔라 했다.  우리는 지불할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두 켤레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쇠가죽을 가져가게 했다.


신집 사람은 신발 재료가 없어지면 흥겨운 노래도 슬픈 가락으로 투기며 술이 취해 밤중에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을 깨웠다. 신집 부인은
길에서 내 부모를 우연히 만나면 별안간 엉뚱한 동리 소문을 얘기하고 도망치듯 가버린다 . 부인은 빚 얘기를 꺼낼까봐 그랬던 것이다.


신집 사람은 나를 좋아했다. 내가 울타리 높이만큼 클까말까했을 때 그는 일방에 흩어진 줄, 끌 바늘 따위를 치우고 나와 그의 딸의 자
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가 쇠가죽 바닥에 둥근 은빛 못을 박고 화려한 비단에 풀칠하여 붙이고 신발에 알맞은 빛깔의 장식을 하는 것에
나는 정신이 빠졌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네가 커서 장가들 때는 너하고 너의 신부, 중매쟁이를 위해 제일 예쁜 꽃신을 만들어 줄게."
다시 어느날 그는 내 얼굴을 한 참 보고 있다가 자기딸을 힐끗 쳐다보며,
"상도야, 너는 얼굴이 깨끗하고 잘생겨서 장차 중매쟁이 신발이 닳아지지 않겠다.  그러나 신부집 부모는 중매쟁이가 나서기를 바란단다.
그 은방울 같은 구수한 이야기가 부모들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거든. "


그의 눈은 꽃신 쪽으로 내려갔으나 , 미소를 머금은 입은 나를 향하고 있엇다.  언제나 나는 신랑, 신부 , 중매쟁이 얘기를 하는 그의 비뚤어진 입에 마력을 느꼇다.  그대 그는 한달에 꽃신 , 적어도 신랑, 신부, 중매쟁이의 꽃신 세 켤레를 만들어 생활 했다.

그의 딸과 나는 훗날 언덕을 두개 넘어 학교에 같이 다녔다. 신집 사람은 딸에게 꽃신을 신겨 학교에 보냈다. 그녀만이 꽃신을 신었기때문에 다른 애들처럼 뛰지 못하여 그는 가끔 꽃신 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신집 사람은 담뱃대를 물고 한 켤레의 신발을 내밀며, "상도야, 옥색 비단과 빨간 치레가 예쁘지 않어? 내 딸이 이걸 신으면 더 예쁘지."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난다 할지라도 꽃신 신는 것 이외 좋은 일이 없을 성 싶었다.


마을 아낙네들은 부처님처럼 그녀 눈 사이에 난 사마귀와 볼의 보조개를 보고 남자깨나 끌겠다 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생각해 본적이 없고 다만 그녀가 신은 꽃신을 좋아했다.  그녀는 발이 부르틀까봐 흰 버선을 신었는데 학교로 가는 좁은 길에서 나는 가끔 그녀보다 뒤져가며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의 오목한 선과 배 모양으로 된 꽃신을 바라보았다. 그 선은 언제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가온 다음날 물이 괸 길에서 나는 그녀를 업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청개구리처럼 등에 꼭 매달렸는데 나는 내 허리 양 켠에서 흔들리는 꽃신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내가 진급하자 차츰 신집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나는 집밖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엇고 신집 사람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 신발을 만드느냐고 물어도 그는 입을 봉하고 말이 없었다.  그의 비뚤어진 입은 깊은 상심을 나타내고 있어 가까이 할 수 없었다.  하루는 그 입이 열리어 나를 놀라게 했다.


"요즘 혼인은 너무 서둘러서 메뚜기 홀레식이다. 혼삿날에 양화 고무신을 신거든. 내 딸은 고무신을 백날 신기느니 보다 단 하루라도 꽃신을 신기겠다."
그때서야 주문도 받지 않고 꽃신을 만들고 잇는 것을 깨달았다.


꽃신의 코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잊어버린다. 아직 덜 된 꽃신은 점점 커져서 해도 없는 바닷가에 사공잃은 배가 떠내려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농부들이 저렇게 아름다운 꽃신을 원치 않는지 알수 없었다.  신집 사람은 목덜미를 붉히며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꽃신 한 켤레 값이면 고무신 세켤레 살수 있다고? 난 그들이 고무신 백켤레 갖다주어도 내 꽃신 한켤레하고 바꾸지 않을끼다."
어린 내 마음에도 그가 자꾸 가난해지는 것을 짐작했다. 오는 여름이면 비가 샐 지붕을 가을이 되어도 갈지 못했다.  그의 딸이 아주적은 돈으로 고기를 사러 왔을 때, 나는 얼마나 아버지가 덤을 많이 줄것을 원했는지- 아버지는 꼭 덤을 주었다.

여름이 다 갔을 무렵 태풍 경고에 설레이고 있는데 신집 부인과 딸은 조심스레 꽃신을 한 보따리 싸가지고 우리집에 와서 밤을 지새웠다   그들은 그들 집의 지붕이 날아갈까봐 두려워 했던 것이다.

봄철 어느날 그녀가 학교를 그만두고 부엌아이가 된다 했을 때까지 나는 그렇게 딱한 줄은 몰랐다.  나는 그녀에게 떠나지만 않는다면 집에서 고기를 훔쳐내겠다고 말하며 애원했으나 기어코 떠나버렸다.

그녀는 기와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그 기와집 옆을 지나지만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나는 울타리 하고 집 사이에 난 틈에서 발돋움을 하고 목을 뽑아 한 번만이라도 그녀가 마당에 나올 것을 기다렸다.
특히 비라도 심하게 온 다음이면 겨우 꽃신만이 처마 밑에 보인다. 왔다갔다 하는 꽃신은 공중에 춤 추는 것 같아 얼마나 아름다웠나!
나는 기와집에서 내 꽃신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다.



그해 온 봄철 동안 청개구리가 논에서 울때 나는 그 공중에 뜬 꽃신을 보러갔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내가 뜰안을 기웃거리던 것을 본,턱이 두개 있는 기와집 뚱보영감이 앵두나무를 심어 울타리의 틈을 가려버렸다. 해가 저물면 마을 집들에 등잔이 커지듯 소문은 퍼져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열을 띠운 신집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도야, 나는 결코 값을 내리지 안 할끼다. 나는 내 딸에게 부엌에서도 꽃신을 신기겠다. 그리고 딸이 시집 갈 때 꽃신을 다 주어 보낼끼다. "
그가 말하는 시집가는 날은 여러 산을 넘어야 할 그런 먼일로 생각되었다.  나는 실망하여 내가 장가들 날 까지 몇 켤레의 짚신을 갈아 신어야 할 것인지. 신집 사람은 굵은 손가락으로 내 턱을 치켜 올리고 내 눈을 들여다 보며 희망에 찬듯,
"요다음 가을에는 어느 혼가에서 꽃신을 사겠지. 그러면 내 딸도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해 부터 앵두꽃은 다섯 번이나 지고 둥근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도리어 멀리 있는 다른 집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  이제 내가 청혼 했으니 내일 큰 쇠가죽을 가지고 가서 그의 딸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꽃신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리라. 혼인 날이면 가마 타는 대신 이웃집끼리니 우리 가족은 집에서 짠 하얀 베를 깔아 꽃신이 그 위를 밟게 할 것이다.

가을밤은 조용히 깊어갔고 나는 차가운 뜰을 몇바퀴 돌았는지, 그때 거칠고 취기 어린 신집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신이 만든 비꼬는 노래에 곡조를 실어서 부르고 있었다.  "농부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가을날이 참좋군요. 여보 신집 사람, 댁 호박들 잘 자랍니까?"

잠시 후 네모진 미닫이에 그림자가 지나갔다. 신집 부인이 남편을 마중하러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다. 몸이 떨렸다.  부인이 남편에게 전할 내 청혼 얘기를 듣고자 나는 울타리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싸움 소리가 들려온다. 미닫이는  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처럼 확 열리며 노기 띤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 딸을 백정네 집 자식에겐 안 주어!"
나는 그 다음 말을 들을 때까지 내귀를 의심했다.

"백정 녀석에 빚진 게 있다구 내 딸을 홀애비가 부엌뚜기 해먹듯 쉽사리 할려구 했지.  백정 녀석이 중매쟁이 있다는 걸 알리 있나.
내 딸은 일곱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꽃신장이 딸이야."
그 말은 그릇이 와그락와그락 깨지는 것 같았다. 부인은 말을 막으려고 미친 듯 소리를 질렀으나 남편의 큰 소리에 눌린다.
"쇠고기 덤이나 좀 있을 까 해서 혀끝으로 한 좋은 말이 백정 녀석 마음을 크게 했다.  나는 혼인식 때 나는 혼인식 때 신는 꽃신장이다.!"

내가기억한 것은 어머니가 내 팔목을 잡고 허덕이며,
"어떻게 하려는 거야."
나는 손에 백정 칼을 들고 대문간에서 떨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어머니는 칼을 배앗았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힘이 센 줄은 몰랐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엄했다.
"너는 손톱을 갖고도 남을 해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백정을 어떻게 생각하겠니?"


내 심장은 갈퀴로 긁는 것 같이 아팠다.  나는 내 팔을 깨물고 그 아픔을 잊으려 했다.  이것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쓰라림이라 깨달은 나는 땅을 치고 울었다. 

여러 날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처녀가 아이를 밴 것처럼 햇빛을 피하였다. 해가 저물었을 때, 나는 가가운 언덕에 가서 풀밭에 얼굴을 묻고 태산 같은 슬픔에 내가 찌그러지지 않앗는가를 의심했다. 여러사람들이 언덕을 넘어갔다. 어떤 늙은 부인의 흙묻은, 그 모양없는 신발에 나는 구역을 느꼈다.  그가 신은 신발도 한 때는 꽃신이었던가. 그 신발은 내 가슴처럼 무겁게 움직였다.


가을이 언덕을 넘어 멀리 갔다. 햇볕이 내리쬐는 밭에서, 사방 언덕에서, 나는 가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이 와도 놀라지 않을 어두운 날 신집에 들어가는 중매쟁이를 보았다.  이미 밑바닥에 깔린 내 마음은 더 이상 내려앉을 수 없다.  다만 딸의 결혼에 쓸거라고 쇠고기와 꽃신을 만들 쇠가죽을 사러 올 부인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어머니는 내 괴로움을 다 알아차렸지만 아버지는 얼마만큼이나 알아차렸지만 아버지는 얼마만큼 이나 알아차렸을까.  아버지는 부산 쇠고기 시장에 있는 삼촌에게 나를 보내려 했다. 부모는 내가 이 골짜기를 빠져 나가기만 하면 마음을 잡고 바람 부는 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로 가나 여자가 있다는 말을 하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내게 이런말을 하지 않았지만, 해가 짧은 겨울에도 걸어갈 수 있는 부산을 향해 떠날때 그는 애매하게 부채질하는 투로,
"도회지여자들과 바람을 피워라, 그러면 한 여자만 생각하지 않게 될 걸."

봄은 동해로 부터 부드럽지만 다소 매운 바람을 싣고 부산에도 찾아왔다. 봄바람은 도회지 여자들의 치마를 이리저리 나부끼게 했지만 나는 여자들과 봄바람을 �지 않았다.
내 마음은 언제나 어렸을 대 신집 일방에서 꿈꾸던 아름다운 꽃신 곁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나는 이미 과거에 묻혀버린 미래의 신부를 그려볼 수 없었다.


그녀왁 ㅡ녀의 꽃신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녀 뒤를 따랐으며 꽃신 뒤축과 그녀의 흰 버선 뒷모양만 바라보았다.내 마음이 그 뒤를 따르면 그들은 마치 나로부터 멀리 도망칠 운명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넘고 또 넘어 달아났다. 나의 행복을 담은 꽃신은 결코 똑바로 나를 보고 걸어오지 않았다.

전쟁이 부산에 번져왔을 때까지 나는 꽃신 뒤축을 �는 것을 단념 할 수 없었다. 부모는 골짜기 집에서 피신하여 내 곁에 와 살고 있었다. 쏟아지는 피난민, 다들 집 문을 닫았으니, 그들 말대로 길-먼지 많은 거리의 손님 이었다. 밀려오는 전쟁통에 농민들은 백정에게 개 값을 소를 팔았다. 인플레 지전은 나에게 기쁨없이 나뭇잎처럼 호주머니를 부풀게 했다. 나는 이제 꽃신을 잊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름이 추억 하나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나는 가을이 다 지나갔을 때까지  가을이 온지도 몰랐다.  추수를 마친 논밭에서 남쪽으로 떠나는 새 떼들 그림자가 내 마음 구석에 옮겨졌다.  그래서 나는 멍청하게 햅쌀을 구하러 장마당을 헤매었다. 그때 내 눈은 판자 위 꽃신에 끌렸다.  꽃신의 코는 나를 향하여 노려보았다. 왜 다가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유를 따짐으로써 내 마음은 다시 노여움과 쓰라림에 찼다. 그때 심정 같아서는 꽃신을 모조리 사서 그에게 보라는 듯 신발 속에 돈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판자앞, 몇 발짝 되는 곳에서 내 걸음은 멈춰졌다.  신집 사람 얼굴에는 어찌나 많은 주름이 갔던지, 비뚤어진 입은 기름기 없는 초 심지 같았다.  저 입은 다시 큰소리를 치지 못하겠지.

나는 누가 꽃신을 사는지 보려고 기다렷다. 그러나 물건 값을 물어보지 않고 못배기는 장돌뱅이 이외 누구 하나 눈여겨보려는 사람조차 없었다.  장돌뱅이 한사람이 소리쳤다.
"퇴물인 꽃신을 가지고 하늘값을 부르니, 여보 노인, 당신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게 아니오?"
그는 장돌뱅이 욕지거리에 무관하며, 아직 고부라지지 않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으나 그의 배는 등에 닿을 것 같이 보였다.


꽃신은 한 켤레 두 켤레 없어졌다. 나는 오고 또 오곤 했다. 노인의 물건이 차츰 줄어 들자 그에 대한 날카로운 내 감정은 식어갔다.그 대신 슬픔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날씨가 차지자 노인의 비뚤어진 입은 흰 입김도 없이 기침을 했다. 꽃신을 다 팔고 나면 그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웠다. 내 마음에도 기침하는 그 입이 , 한때 따뜻한 일방에서 자신의 결혼얘기를 하며 미소 짓던 입으로 변해 있었다.  그 때 꽃신은 얼마나 가벼웠던가.


나는 장터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들어 사람을 헤치고 걸어나왔다.  여러종류의 신발-구두, 고무신, 징을 박은 군화-모두 무겁게 보였다.  아마도 사는 사람 기분에 따라 신발의 무게는 달라지겟지. 이나라에는 꽃신을 채울 기쁨, 그런 기쁨을 가질 겨를이 없고 공허뿐-공허뿐.


때때로, 나는 노인이 나를 알아보기글 바랐다.  그러면 나는 부인과 딸에 관한 말을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깜박이지 않는 눈에는 알아보는 흔적이 없었고 나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꽃신이 다른 사람에게 다팔려가기 전 한 켤레 가지고 싶었지만 꽃신 아닌 슬픔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다.  나는 먹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기 직전 길을 더듬어 보는 눈초리로, 꽃신을 바라보았다. 꽃신이 세켤레 남았을 때 나는 그 곳에 차마 가지 못했다.  예쁘게 꾸며진 꽃신의 코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훌쩍 뒤돌아설 것 같아 더 이상 찾아 못갔다.


첫눈은 일찍 왔다. 길위에 남겨진 발자국은 꽃신이 밟고 간 것일가. 그 아름다운 꽃신이 젖은 것 같아 애처롭다.  불현듯 나는 빠른 걸음으로 시장에 달려갔다.
그때 심정은 노인이 꽃신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면 싶었으나 한편 꽃신이 있었으면-장모퉁이 가까이 갔을 때 가슴이 뛴다. 검은우산 아래 놓인 판자. 두켤레의 꽃신이 나를 보고 있다. 기뻤다.  그 기쁨을 나는 두 손에 꽉 쥐었다. 그런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휘어진 어깨에 노란 담요를 걸치고 한 부인이 눈을 맞고 앉아 있었다.  부인은  자기 보다 꽃신위에 우산을 받쳐 주고 잇었다. 신집 부인일까. 처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신집 부인이었다. 눈은 비스듬히 내린다. 어서 신발을 싸서돌아가지. 부인은 왜 저리 앉았는지


양복 웃저고리에 한복 바지를 입은 사나이가 발을 멈추고 안경 너머 꽃신을 보고 있다. 흥정하는 것 같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돈을 찾는다. 나는 달려갔다. 손에 쥘 수 있는대로 돈을 꺼내어 부인앞에 내놓았다.
"여기 있소. 이 꽃신은 내겁니다.!"
사나이는 매우 불쾌한 눈초리를 보냈는데, 눈송이가 그의 안경을 가리지 않았다면 사나이의 노여움을 똑똑이 보았을 게다. 부인은 담요를 땅에 떨어뜨리고 마치 위조지폐로 그녀를 속이기라도 하는 듯 몸을 뒤로 사렸다. 잿빛 눈동자는 피곤해 보였고, 슬프게도 무표정하며 앞으로 그림자 하나 더 받을 수 없는 겨울 길 같았다.  나는 급히 말을 이었다.


"상돕니다. 아저씨는 어디 계시죠?"
부인은 넋빠진 사람처럼 나를 쳐다 보았다. 그의 입술은 떨리기 시작하면서 이빨이 다 빠진 잇몸이 드러났다. 겨울바람처럼 메마르고 소리죽인 울음이 들렸다.  나는 가족들을 잃은 늙은이의 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절망적인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다. 나는 부인이 떨어뜨린 우산을 주워 들고 꽃신 위에 받쳤다.  눈보라는 꽃신위에 날렸다. 부인은 꽃신에 묻은 눈을 조심스레 닦고 신문지에 가만히 쌌다.

"바깥어른은 이 꽃신을 낯선 사람에게 고무신 값으론 안팔려했다."
부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침마다 수용소에서 그를 쫓아냈지. 한달에 겨우 한 켤레만 싼값으로 팔고 오고 그러면 나는 다시 신을 팔라고 짜증을내고...
꽃신이 두 켤레 남았을 때 그는 어린애처럼 꽃신을 안팔려고 고집을 부렷다. 할 수 없어 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언제나 꽃신은 그대로 갖고 돌아왔지. 하루는 온종일 빈속으로 떨다가 돌아와서...."

부인은 다음말을 못했다.  부인의 뺨을 타고 내리는 것은 눈인가-부인은 누그러져서,
"그분은 꽃신이 다 팔리기 전에 돌아갔다. 그것이 소원...."
부인은 내가 내놓은 지폐를 잠시 보고 신발을 싼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돈 가지면 이제 버젓이 장사도 치르겠다"

나는 그 구러미를 받지 못했다. 잠든 어린이가 꼭 쥐고 자는 버들피를 빼앗는 것 같이, 아직도 신집 사람이 꽃신을 꼭 쥐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따님을 위해 이 꽃신을 가지세요."
잠시 동안 그녀가 결혼했는지 어떤지를 생각했으나 이제는 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 �신을 가지게 될까. 다만 그녀가 어느곳에 있건 꽃신을 받아주었으면 싶었다.
담요를 개켜 그 속에 돈을 넣고 꽃신이 든 구러미와 함께 부인 팔에 안겨 주었을 때, 부인은 그것을 꼭 껴안았다가, 어린애를 안고 가는 듯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걸었다.
부인은 말했다.
"그애는 죽었다.  그애는 지난 여름 폭격에 죽었다."


아아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래 전 내 예감은 그 녀의 죽음을.
우산을 폈다. 부인이 젖지 않게 팔을 뻗치며 그녀의 뒤를 �았다. 뒤에서 누가 신난 소리로,
"야아! 자리가 생겼다.! 판자도 놔두고 간다."
시장밖에는 바람이 눈을 휘몰앗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우산을 반쯤 꽃신을 가진 부인이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의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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