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가게문이 굳게 잠기고 불은 꺼져있다.
더 늦기전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배우러 자전거를 타고 동사무소로 나갔을 것이다.
그의 신나는 삶이 보인다.
나는 언제쯤 그처럼 과감히 일을 잠시라도 접고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가게유리창엔 핸드폰 번호가 붙여 있다.
손님이 급하다면 달려오리라.
웃음쏟아내며 한가지 한가지 배우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하고 싶은 것을 더 늦기전에 과감히 감행한 그가 대단하다. 부럽기만하다.
동화작가의 글이다.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할 그런 내용이다.
더 늦기 전에 사과를 하고 더 나이가 들기전에 나는 무언가 해야 하리라.
오늘은 두권의 책을 다 읽고 말았다.
나는 한 손님도 오늘은 만나지 못했다.
너무도 우울한 경기인것이다.
종일 책을 들고 마음을 다독인다.
어느새 저녁 7시가 넘어간다.
기름값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세상은 온통 어수선하다.
다행인것은 이책을 만나 눈물 몇방울 떨어뜨리고
조금 순해진것 같다. 어제보다 딱 한뼘 착해진 것 같다.
쇼팽의 녹턴속에서 그중 한 편을 옮겨 본다.
일보다 중요한 일
여자는 회사일로 바빴습니다. 결혼까지 포기 할 만큼 자신의 일이 좋았고, 일에서 얻은 보람과 성취감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일한 보답으로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 팀장이 되었습니다.
여자는 결혼해달라며 자신을 따라다니던 남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난 결혼 뒤에도 내 일을 할거예요. 이해해 줄 수 있나요?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가 살림이나 할 것이지 일은 무슨일' 하는 표정으로 포기했지만 지금의 남편은
달랐습니다.
"당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겠소"
"남자들은 처음에 다 그렇게 말해요. 하지만 결혼뒤엔 백팔십도 바귄다는 걸 주위에서 보고 알았어요."
여자의 냉대에도 남자는 7년동안이나 여자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고그저 묵묵히 여자를 지켜 볼 뿐이었습니다. 여자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기뻐해주었고
슬픈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해주었습니다. 결국 여자는 늦은 나이에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여자는 변함없는 열정으로 일했고 , 남편도 약속을 지켰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해 주었습니다. 사랑의 결실로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여자는 그런 기분을 처음 느꼈습니다.
친구들의 집들이나 돌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아이가 칭얼거리면 짜증이 났는데, 자신의 아이를 안았을
때의 황홀함이란, 그느낌은 일에서 얻은 기쁨 만큼이나 컸습니다. 여자는 처음으로 일 외에 또 다른
기쁨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기를 낳고 3개월이 지나 여자는 다시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아이는 친정엄마가 봐주기로 했습니다.
남편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결혼했고, 또 그런 열정을 가진 여
자가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위 시선, 특히 친구들의 수군거림도 들어야 했습니다.
"여자가 너무 설치는 거 아냐?"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아직도 농경시대처럼 '여자는 집안에서 아이
나 키워야 한다' 는 생각엔 동의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사회가 바뀌어 여자들과 경쟁해야 되는 시대
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아직도 백년 전의 의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생각에는 동의 할 수 없었습니다.
여자는 더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직장인의 꽃이라는 임원의 위치가지 올랐습니다.
딸은 잘 자라주었습니다. 딸은 여느 아이들답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일때문에 바쁘다는 걸,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일을 잘 알았습니다. 아이는 단 한 번도 말썽이나 응석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
가 늦으면 설거지 까지 해 놓을 정도였습니다. 여자는 그런 딸이 고맙고 대견스러웠습니다.
딸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자는 처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갔습니다. 딸이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습니다. 딸의 표정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습니다. 여자는, 딸이 속으로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딸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던 여자는 딸과 좀더 시간을 많이 가
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은 3학년이 되자 빨래와 집안청소까지 해놓았습니다. 여자가 미안해하면 꼭 어른같은 말을 했습니다.
"난, 엄마가 자랑스러우.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엄마가 좋아."
그런 딸에게 항상 미안했던 여자는, 오랜 생각 끝에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우리나라 현실의
벽이 높다는 걸, 여자가 가정과 사회 일을 쌓아온 모든 것보다 딸이 더 소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여자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1년만 더 일하기로
서로 양보했습니다. 여자는 잠든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일년만 기다려주렴. 좋은 엄마가 되어 줄게. 같이 놀러도 가고, 학교 급식 배급도 엄마가 해 줄게."
딸은 어느덧 4학년이 되었습니다.봄방학이 끝난 며칠 뒤, 여자가 야근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자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오늘 야근이지? 내가 샌드위치 야식 준비했다"
"우리딸, 고마워서 어쩌나? 지금 어딘데?"
"엄마 회사에 거의 다왔어, 조금만 기다려. 회사 현관에서 다시 전화 할께"
야근할 때면 딸이 야식을 준비해 자전거를 타고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음식도 얼마나 맛있게 만드는지, 딸이
야식을가져온다면 야근하는 직원들이 침을 흘리며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이제 거의 왔을 텐데!"
시계를 보던 여자는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며 손끝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등줄기를 오
싹하게 훑고 지나갔습니다.
여자는 두려운 눈으로 전화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전화가 올 것 같은 느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경비실이었
습니다.
"따님이 회사 앞에서 차에 치였어요. 빨리,빨리 내려와...."
여자는 벌써 승강기로 뛰어가고 있었고, 몇층 아래에 있는 승강기를 기다릴 수 없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습
니다. 10층 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릅니다. 여자의 눈에는 한 가지만 보였습니다.
딸이 쓰러져 있고, 넘어진 자전거와 흩어진 빵들이 아무렇게 뿌려져 있는....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딸과 함께 구급차를 탔다는것, 자신이 한없이 울었다는 것 밖에.
예쁘고 착했던 딸을 작은 상자에 담아 강물에 뿌렸습니다. 딸은 하얀 가루가 되어 새처럼, 물처럼, 구름처럼
훨훨 날아갔습니다. 여자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딸을 잊는 방법은 그 방법 뿐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철야를
했고, 한달 내내 출장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승강기에서, 회의장에서, 순간순간 쏟아지는 눈물을 막
을 순 없었습니다.
6개월이 지났지만 여자는 현관문을 열다가, 회의를 하다가, 수도꼭지를 틀다가, 가스레인지를 켜다가, 밥솥에 쌀
을 안치다가 , 냉장고를 열다가, 넋 나간 듯 멍하게 있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은채 그대로 앉아 있는 바람에 집안
에 물이 넘치기도 했고, 가스 불을 켜다가 넋이 나가는 바람에 온 집안 가스가 퍼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 지도 모릅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슬픔에는 세월만한 약이 없습니다. 가슴 속 상처에 조금씩 딱지가 앉을 무렵 남편이 조심스럽
게 말했습니다.
"이번 생에서 다시 못만날 거라면 흔적마저 지우자. 아이도 그걸 원할 거야"
이제는 가슴속에서 보내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티끌하나 치우지 않았던 딸의 방을 정리할 때가 온것
입니다.
여자는 딸과 관계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박스에 넣었습니다. 훨훨 태워 딸에게 보내줄 것입니다. 책상을 정리하
던 여자는 서랍 깊숙이 있던 노트를 꺼냈습니다. 일기장이었습니다.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여자의 손길이
멈추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도 집에 오기 싫다. 나도 집에 오면 엄마가 맞아 주었으면 좋겠다. 아마 오늘도
엄마 아빠는 늦으실 거다. 두분은 항상 바쁘니까.
저녁에 밥을 해야 하는데 밥하기가 싫다. 다른 애들은 엄마가 밥을 해주는데...
하지만 내가 안하면 늦게 온 엄마가 피곤한 몸으로 밥까지 해야 한다.
내가 해 놔야 엄마가 덜 피곤할 거다.
여자는 일기장을 가슴에 품고 움직일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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