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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 있는 속도
분갈이 ㅣ전영관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놀라지 않겠지
느리지만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
- 느린 게 가장 빠른 것이라는, 소문으로만 접하던 그 말이 진짜라는 거죠? 가장 오래 가는 사랑이란 거죠?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는 초속이 아니라 연속쯤 되려나요. 그런 속도로 누가 만져주면진짜 안정감 있을 거 같긴 해요.
계속 걷게하는 힘 -
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으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나 그런 산속 불빛같은 사람 많이 알아요. 어느 해 겨울인가 내가 자신에겐 등댓불 같았다는 후배의 송년 카톡을 받은 후 등대지기 비슷하게라도 되었던 듯 싶어요. '죽어야만 아이가 잊힐 거예요. 고통도 그럴 거예요.'
그렇게 말해 줬더니, 그걸 알아줘서 고맙다며 손을 맞잡은 아이 잃은 엄마, 그 엄마의 눈물을 손등에 맞으며 함께 눈물을 보탰지요. 그런 사람 생각나면 넘어졌다가도 금방 일어나지던걸요. 계속 걸을 수 있겠더라고요.
같은 길은 하나도 없다
모든 길 /권혁소
모든 길은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이다
단 한 뼘의 길도 결코 평평하지 않다는 것
늦게 배운 자전거가 가르쳐준다
춘천에서 속초를 향해 가는 길
느랏재 가락재 말고개 건니고개
바다, 그 또한 끝없는
오르내림의 반복
그러면서 배운다
봄이 오기까지는
모든 관계가 불편하다는 것
지구상에 같은 순간이 존재하지 않듯 같은 길은 하나도 없죠. 오르막만 있거나 내리막만 있는 길도없어요.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은 오르고 내달리고 멈추고,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한다는 생각에 어지럽다가 그게 또 그렇게 안심이 되더군요. 바다조차도 오르내림을 반복한다니 더 말해 뭐해요. 봄이 오기가지는 모든 관계가 불편하다는 말이 진솔한 고백처럼 느겨져서 좋았어요. 설사 해빙기가 금방 오지 않아도 잘 견딜 수 있을 만큼 편안해지던걸요.
적이자 동지 같은 사람
남편/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ㅣ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실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 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게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받아들일 수만 있어도 -
'어느 신부님의강론/권석창
먹이사슬 꼭대기에 공룡이 살았습니다
먹을 줄만 알고 먹힐 줄을 몰랐습니다
암 세포도 공룡과 같습니다
다른 세포를 잡아먹으면서
다른 세포에 먹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룡이 죽었습니다
암 세포도 다른 세포가 다 죽으면 죽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주기만 하면 신적인 존재고 받기만 하면 암적 존재입니다
주기만 하면 영원히 살고 받기만 하면 죽게 됩니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거두어 함께 사시는 신부님께서 이렇게 강론하시는 걸 들으며,
흰 눈 내려 겨울나무의 시린 발목 덮어주고 가지위의 새도 아멘 ! 하였습니다.
...............
책을 들고 있는 내게 아이는 무슨 이런책을 읽느냐 했다. 책도 붉은 색이고 무슨 지옥인가 싶었나보다.
들여다 보면 각별한 시들의 모임이고 지은이의 생각들을 담은 책이다.
좋았다. 제목은 그러하나 어쩌면 모두 우리는 자신이 파놓은 지옥에서 헤매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고
생각하나 바꾸면 천당에 온전히 살기도 할 것이다.
강렬했으나 별스럽지도 않은 제목이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도 생각에 잠기나...
사람에 따라 삶이 온통 지옥일 수도 있을터이니...
몰랐던 시를 읽고 생각을 들여다 보며 나를 돌아보는 붉은책
재미있게 오고가며 읽으며 따라 적기도 한 좋은 시를 모아놓은 책이었다.
'산다는 것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주기만 하면 영원히 살고 받기만 하면 죽게됩니다'. 아멘 -()-
시련에 빠져있는 모두가 차츰 그 속에서 따스한 햇살속에 서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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