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법정스님 법문집 좋은말씀/시공사

다림영 2024. 9. 3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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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습니다 - 산골에서 바람소리, 물소리만 듣다가 오랜만에 직접 생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탁 트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길목에서 맑고 향기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도덕경에 이런말이 나옵니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고, 쉬움과 어려움은 서로를 이루어주며, 길고 짧음은 상태를 드러내주고높고 낮음은 서로를 다하게 하며, 음과 소리는 서로 화답하고 앞과 뒤는 서로 뒤따른다.

 

사물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주는 가르침입니다. 존재는 독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상호 의존하고 보완하면서 비로소 존재 의미를 가진다는 얘기입니다. 현상과 사물을 인식하는 전통적인 동양의 지혜가 돋보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도 인식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빙산의 일각처럼 전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배후에는 무한히 텅 빈 공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과 침묵의 상관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마디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깊은 침묵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말은 인간의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시끄러운 소음들이 말을 가장해 난무하는 것도 그 이면을 침묵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침묵이 깔려있지 않은 말은 그때뿐, 메아리가 없습니다.

 

반야심경의 유명한 구절 '색즉시공 공즉시색'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논리적 비약이 심하기는 하나 현상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밝음의배후는 어둠입니다. 어둠은 밝음의 뒷모습일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둠과 밝음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하고 서로 받쳐주는 작용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둠만을 보려 하거나 밝음만을 보려고 합니다. 생과 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체와 전체의 상관관계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삶은 죽음의 표면이고, 죽음은 삶의 이면입니다. 중생이 있기에  부처도 존재할 수 있숩니다.   우리개개인은 바다 저 멀리에 홀로 떨어져 있는 섬과 같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나무의 가지들처럼 서로 떨어져 있지만 뿌리에서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광대한 대지의 한 부분들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균형적인 리듬이고 음양의 조화입니다.

 

더러 사람들이 제게 어디에 사느냐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저기,저기 산다."라고 답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강원도 어디쯤에 사는지 궁금한 모양입니다만,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거기, 그렇게들 제자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 동떨어져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 공간적으로 함께 있다고 해서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몇 호 집 누구'로 통하는 사이라면 진정한 이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뜻이 같을 때, 고통이든 기쁨이든 나누어 가지는 그때 , 비로소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살다가 돌아갈 곳도 바로 그 생명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두가 연결된 전체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근원적으로 인간들은 하나의 밧줄과도 같은 조재들인것입니다. 가령 어던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면 누구나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바로 우리가 한 대지에 굳게 맺어져 있고, 인간이란 하나의 밧줄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웃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따뜻한 마음을 나눔으로써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개인들을 하나로 이루는 일입니다.

 

알베르카뮈의 전락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장바티스트 끌라망이라는 변호사입니다.

 

어느 날 밤, 바티스트가 강 위의 다리를 건너다가 우연히 강으로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는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여자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날 이후 바티스느는 까닭모를 여인의 웃음소리에 시달리게 됩니다. 소설은 그 웃음소리로 인해 주인공이 전락해가는 과정을 고백의 형식으로 엮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석의 끝머리에서 그는 이런 대사를 읊조립니다. '오 여인이여! 우리 두사람을 함께 구원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물속에 몸을 던져다오,'  참으로 안타까운 독백입니다만, 기회는 두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미 강물에 투신한 사람이 어떻게 다시 같은 광경을 재현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이란 되풀이 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분명코 그것은 일회로 끝이 납니다.

어제와 내일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라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늘 '지금'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p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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